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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구룡포 과메기축제 15일부터… 과메기 유래가 어떻게 될까? - 마운틴
구룡포 과메기축제 15일부터… 과메기 유래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구룡포는 몰라도 과메기는 안다. 과메기가 전국에 알려진 뒤부터 구룡포라는 이름도 알게 됐을 정도다. 구룡포에서 생산되는 과메기가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불과 2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과메기가 전국의 별미가 됐다. 덩달아 관광지로서도 명성을 얻게 됐다. 인구도 몇 십 년 만에 다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 잘 키운 축제 덕분이다.

구룡포 과메기 축제. 올해로 17회째다. 11월15~16일 이틀 간 개최하기로 예정돼 있다. 2010년 기준 경제 파급효과만 3,628억 원으로 평가됐다. 과메기 생산판매금액이 625억 원, 미역․김․야채류 판매 72억 원, 택배 등 물류비 31억 원, 고용 인건비 91억 원, 그리고 음식점 등 2차 부가적인 창출금액이 2,809억 원 등이다. 구룡포에서는 과메기가 돈줄을 끌어내는 노다지다.

겨울 별미인 구룡포 과메기를 말리고 있다.

겨울 별미인 구룡포 과메기를 말리고 있다.

과메기 생산업체는 전국 400여 곳이 있으나 대부분 구룡포, 장기, 대보, 호미곶 등 포항 일원이다.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90% 이상이 포항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 중 80%가 구룡포 인근이 차지한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년 매출도 조금씩 늘어난다. 2006년 4,430여t에 400억 원 가량 되던 총 생산량과 판매금액이 2013년에는 5,770t에 750여억 원에 이르게 됐다. 7년 만에 거의 2배에 달하는 매출실적을 올린 것이다. 그 사이 수출도 미국․일본․태국․필리핀․중국 등지로 확대됐다. 수출시장 다각화로 매출실적은 더욱 늘어난다. 

과메기는 원래 11월에서 2월 사이에 먹는 계절적 겨울 별미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추운 날씨에 미역․파․고추와 더불어 톡 쏘는 고소한 맛을 느끼며 먹을 때가 제맛이다. 옛날에도 매년 겨울에 임금님께 올린 다음에야 먹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영일현편에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맨 먼저 주진(注津․지금의 영일만 하구)에서 잡힌다고 하는데, 먼저 이를 나라에 진헌(進獻․임금에게 예물을 바치던 일)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으로 그 해의 풍흉을 짐작했다’고 나온다. <경상도읍지>(1832년)에도 ‘영일만의 토속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선정된 관련 식품은 영일과 장기 등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가공의 관목청어뿐이다’고 돼 있다. <규합총서>(1815년)에도 ‘비웃(청어) 말린 것을 세상에서 흔히들 관목이라 하니 잘못 부름이요. 정작 관목은 비웃을 들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며 그 맛이 기이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이 과메기는 아주 오래된 우리 전통음식이다.

과메기 축제를 앞두고 과메기가 제대로 건조되고 있는지 직원들이 확인하고 있다.

과메기 축제를 앞두고 과메기가 제대로 건조되고 있는지 직원들이 확인하고 있다.

과메기를 언제부터 먹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름의 유래로 봐서는 구룡포 인근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겨울음식을 즐겼던 사실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과메기는 원래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나온 말이다.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영일만에서는 ‘목’이란 말을 흔히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다. 이 때문에 ‘관목’은 ‘관메기’로 불리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관’의 ‘ㄴ’받침이 탈락되고 ‘과메기’가 됐다고 한다.

요즘은 청어잡이가 별로 시원찮지만 예로부터 동해는 청어의 주요 어획기지였다. 겨우내 잡힌 청어를 냉훈법이란 독특한 방법으로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건조시킨 것이 과메기다. 청어과메기의 건조장은 농가부엌의 살창이라는 곳이었다. 농촌에서 밥을 지을 때 솔가지를 많이 사용한다. 이 살창은 솔가지를 땔 때 연기가 빠져 나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살창에 청어를 걸어두면 적당한 외풍으로 자연스럽게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살창으로 들어오는 송엽향까지 첨가됐다. 지금은 꽁치를 그냥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어 자연 건조되는 것과는 달리 냉훈법에는 조상의 슬기와 지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기록에 나오는 과메기.

기록에 나오는 과메기.

특히 구룡포는 꽁치를 말리기에 적당한 바람과 온도 조건을 지녀, 다른 지역보다 과메기 생산에 유리한 편이다. 과메기는 온도가 너무 높을 경우 꽁치의 지방분이 수분과 함께 빠져나오고, 너무 낮을 경우 과메기 전체에 골고루 스며들지 않는다. 구룡포 일원은 겨울철 날씨가 영하 5~영상 10℃의 적절한 온도조건을 유지, 과메기를 건조하는데 아주 좋다.

하지만 구룡포에서 1960년대부터 청어수확량이 점차 줄어들었다. 청어과메기를 계속 생산했지만 꽁치로 대체할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 과메기 생산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여 년째 포항에서 과메기 사업을 하고 있는 포항 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 김점돌 이사장도 마찬가지였다.

“20여 년 전에는 통과메기였다. 통과메기는 청어로만 했다. 통통한 청어를 내장이 있는 그대로 말렸다. 날씨가 춥지 않으면 내장과 고기가 상하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 때만 기다려 25~30일 간씩 말리는 작업을 했다. 말리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과메기 생산량도 많지 않았고, 수익성도 별로 없었다. 통과메기는 내장이 있어 노년층은 고소한 맛이 있다고 했지만 젊은층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청어 통과메기는 날씨가 추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리는데 한 달 가량 걸리기 때문에 겨울에 한 번밖에 팔 수 없었다. 이상난동으로 겨울날씨가 춥지 않으면 그 해 과메기장사는 끝이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대로 말라가고 있는지 구룡포 직원들이 과메기를 확인하고 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대로 말라가고 있는지 구룡포 직원들이 과메기를 확인하고 있다.

그 뒤 청어 어획량도 줄자 비슷한 어종인 꽁치로 대체했다. 꽁치는 청어보다는 날씬하지만 내장을 전부 꺼내 살만 말렸다. 말리는데도 3~4일밖에 안 걸렸다. 빠른 시일 내 출하가 가능했다. 내장을 없애니 비린내가 나지 않아 모든 계층이 좋아했다. 꽁치는 원양어선으로 공급이 됐다. 청어와 같이 어획량이 들쭉날쭉 하지 않았다. 생산량을 맞출 수 있었고, 과메기 공급량도 더욱 늘릴 수 있었다. 단지 내장을 갈라내는 작업과 말리는 과정을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 일손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지역경제에는 크나큰 도움이 됐다. 노인들은 아예 물량을 집에 가져가서 밤 늦도록 작업했기 때문에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출하량을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덩달아 맛있는 과메기를 저렴한 가격에 전국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20여 년 전 포항 박기완 시장과 함께 과메기 홍보하러 전국 가보지 않은 시도가 없었다. 방방곡곡 누볐다. 박 시장이 전국에 홍보도 중요하지만 지역축제를 열어 더욱 알리는 작업을 하자고 했다. 그게 과메기축제의 발단이 됐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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