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른바 4월 초파일이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시대엔 국교로 지정됐을 정도로 모든 국민들이 신앙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깊게 남아 있다. 불교의 상징인 사찰은 일찌감치 산에 자리 잡아 수천 년 한민족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산에서 자연스럽게 사찰을 보게 된다. 절에는 항상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부처의 모습을 불상으로 재현한 것이다. 절 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직접 모셔놓은 곳도 있다. 이를 적멸보궁이라 한다. 전국에 5대 적멸보궁이 있다. ‘부처님 오신 달’을 맞아 적멸보궁 따라 산행을 해보자.
5대 적멸보궁은 속초 설악산 봉정암, 평창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 함백산 정암사, 양산 영취산 통도사를 말한다.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 유학 갔다 귀국할 때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와 정골(頂骨)을 모셔놓은 사찰이다. 이 중 함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가 친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눠 봉안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적멸보궁(寂滅寶宮)이 무슨 뜻인가? 왜 적멸보궁이라 했는가? 불교용어 그대로 해석하면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 즉 적멸도량(寂滅道場)을 상징한 데서 비롯된다. <화엄경>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人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 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했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과 한 몸과 됐다고 전한다.
따라서 적멸보궁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법당에서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을 갖춰 놓는다. 이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戒壇)을 설치한다. 이는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진신사리는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었다. 한국에서는 5대 적멸보궁 외에도 신라 불교가 처음 전래된 구미 도리사, 김제 모악산 아래 금산사, 달성 비슬산 용연사 등에도 적멸보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장율사는 왜 이 다섯 곳에 적멸보궁을 세웠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자장율사는 신라 승려다. 신라는 경주가 수도다. 5군데의 적멸보궁은 경주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방어하고 있는 모양새다. 설악산과 오대산은 수직으로, 사자산과 함백산은 수평으로 경주를 방어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는 경주의 남쪽 아래에 위치해 있다. 자장율사가 적멸보궁을 봉안할 때 부처님의 힘을 빌려 고구려의 침입을 방어하려 했다는 설도 있다. 따라서 경주의 북쪽에 있는 4곳의 적멸보궁은 고구려의 침입으로부터, 남쪽에 있는 통도사는 왜구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을 빌려 차단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이 5군데인가’에 대한 이론은 없다. 단지 당시 상황을 비쳐 5군데 정도면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짐작으로 조성했을 것이다고 추측해볼 뿐이다.
의문은 또 있다. 당시 설악산이나 오대산은 고구려 땅인데, 신라 승려가 남의 땅에 적멸보궁을 창건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기록에 없는 역사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 이 역시 알 수가 없다. 적멸보궁 산행을 하면서 이런 궁금증을 안고 한 번 가보자.
5대 적멸보궁 중에 오대산 적멸보궁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고려 때 승려이자 <삼국유사>를 쓴 일연(一然)은 “오대산은 국내의 명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고 말했다. 오대산은 바위와 암벽이 별로 없는 육산에 가깝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들이 잘 자란다. 지금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은 “전국의 명산 가운데 오대산 식생이 가장 뛰어나고 풍부하다”고 말한다.
자장이 중국 유학을 할 때 7일 동안 간절한 기도로 문수보살의 현신(現身)을 만났다고 알려진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자장은 귀국해서 우리나라의 오대산에도 진성(眞聖)이 거주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대산에 모옥을 짓고 문수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월정사와 상원사, 사자산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함백산 갈래사(葛來寺․지금의 정암사) 등을 옮겨가며 간절한 기도를 했다. 이 절들의 창건 기원이다. 자장은 비로봉 아래 중대에 터를 잡고 그 위에 적멸보궁을 지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오대산은 중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의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결국 산명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동대에는 관세음보살, 서대에는 아미타불, 남대에는 지장보살, 북대는 석가모니불, 중대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고 믿었다. 특히 중대는 자장이 친견하고자 했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으로 가장 소중한 정골사리를 이곳 적멸보궁에 모셨다고 전한다. 중대는 일명 사자암이라 한다. 이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짐승이 사자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대산은 풍수지리적으로도 대단한 명당으로 꼽는다. 이곳을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천하의 명당이라 한다. 뒤로는 비로봉이 호위하고 앞으로는 오대산의 육중한 능선이 펼쳐진다. 풍수가들은 “승려들이 먹을 것 걱정 없이 수도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할 정도다. 일반인이 봐도 능선이 적멸보궁을 감싸 안아 포근하기 이를 데 없다고 느낀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도 이곳에 와서 “승도들이 좋은 기와집에서 일도 않고 남의 공양만 편히 받아먹고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그런 명당이다.
오대산이란 지명의 유래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섯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오대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수도한 산이 오대산이며, 이를 한반도에도 그대로 붙였다는 설도 있다. 지형적으로나, 자장율사가 적멸보궁을 세운 곳이라는 점으로나 오대산 지명은 두 가지 유래에서 다 비롯됐고 관련이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약 9㎞.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2㎞, 적멸보궁에서 오대산 비로봉까지 1.5㎞.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은 오솔길 같은 산길로 연결돼 있다. 절반쯤 올라가면 계단이 나온다. 계단에서는 은은한 목탁소리와 독경소리가 들린다. 경건한 마음으로 적멸보궁으로 향하게 한다.
4월 초파일을 맞는 연등이 좌우 양쪽으로 걸려 있다. 연등엔 ‘적멸보궁’ ‘오대광명’이란 글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고, 오대광명은 다섯 개의 봉우리와 동서남북중대 오대 암자에 있는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문수보살이 밝히는 세상을 말한다.
이어 적멸보궁 가는 길과 비로봉 가는 갈림길이다. 당연히 적멸보궁부터 먼저 들른다. 조그만 암자가 방문객을 맞는다. 보궁의 문을 열자 역시 불상은 없다. 붉은 색의 방석만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다. 보궁 뒤로 약 1m 높이의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아담하게 서 있다. ‘세존진신탑묘’다. 이 탑이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일종의 표식이다. 어느 곳에 진신사리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비로봉 아래 봉우리 전체가 하나의 불탑이요, 진신사리일지도 모른다. 오대산의 오대광명 중의 유일한 문수보살이 현신했고, 천하의 명당에 부처님이 봉안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멸보궁은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능선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중앙에 우뚝 서 있다. 오죽했으면 풍수지리가들이 이곳을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했겠나.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고, 풍수지리적으로도 천하명당인 오대산 적멸보궁, 이보다 더 좋은 땅이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천하의 명당으로 꼽히려면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 왼쪽에 ‘용안수’라는 우물이 나온다. 말 그대로 용의 눈에 해당하는 샘이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이 가파르게 내려온 자리다.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온다.
적멸보궁에서 출발한지 1시간 40여분 만에 비로봉(1,563m)에 도착했다. 그런데 비로봉(毘盧峰)이란 정상 봉우리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우리나라에 비로봉이란 이름의 봉우리가 유달리 많다. 소백산, 금강산, 치악산, 속리산, 묘향산 정상이 다 비로봉이다.
적멸보궁과 비로봉, 지명의 절묘한 앙상블이란 느낌이 든다. 비로란 불교 용어로 범어의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의 준말이다. 원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다. 부처의 진신을 비로자나불이라면 더더욱 오대산 정상이 비로봉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로자나불은 종파마다 각각 달리 불린다. 화엄종에서는 석가모니불, 진언종에서는 대일여래, 천태종과 법상종에서는 법신불 등으로 부른다. 절에 있는 대웅전(大雄殿)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이다. 그 큰 영웅이 바로 불교에서 으뜸이신 부처, 석가모니다. <화엄경>에서는 영원한 부처님인 법신불을 침묵의 부처님, 광명의 부처님으로 언급하여 비로자나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3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로 인정받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산스크리트 표기는 바이로차나 붓다(Vairocana Buddha)이다. 바이로차나는 태양이 모든 곳을 밝게 비추는 특징 내지 태양 자체를 이름 하는 것이다. 원래 골고루라는 뜻의 부사 ‘비(vi)’와 ‘빛나다’라는 뜻의 동사 ‘루츠(ruc)’에서 파생된 것으로 불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달을 지칭하기도 한다.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포괄한다는 뜻이다. 적멸보궁에서 올라와 그 비로봉에 지금 서 있다. 의미를 생각하니 감격이 서서히 밀려온다.
적멸보궁을 감싸고 있는 능선을 바라본다. 아늑하기 짝이 없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서쪽으로는 한강기맥이 감싸고 있다. 적멸보궁에서 한 번 솟구친 능선은 상원사까지 그대로 내려간다. 천하의 명당이라 한 이유를 대충 알 법하다.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오대산 등산객은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해서 비로봉까지 오르는 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가장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코스로 육산으로 오르는 오대산 적멸보궁을 보며, 부처가 설한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한번쯤 되새겨 보는 산행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