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nt Eastwood 와 영화 Mule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poses for Newsweek International on January 24, 2004, in Los Angeles, CA. (Photo by Neil Wilder/Corbis via Getty Images)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영화 배우이며 영화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 Mule`을 보았다. 아주 진부한 주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평생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집중해온 가난한 노인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주 사랑 받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듯싶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영화는 코메디 영화인데 어떤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해서 갔었다. 90에 가까운 노인, 평생 꽃가꾸는 일을 좋아해서 집안 일을 뒤로 했다가 가족에게까지 외면 당하는 외로운 삶이다. 그가 일부러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에 빠지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가족의 사랑도 Give and Take 가 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부 앤드 테이크의 기술에 무딘 사람들에게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90이 다 된 연세에 저정도로 영화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대단한 일이다. 백세 시대라서 그런지 요즘 활동하는 노인들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옛날에는 70 노인만 되어도 자다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편견에 우려했었는데 20세기 의학 발전이 거둔 커다란 성과일 수도 있다. 영화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고 결론이 뻔해서 중간에 나오려고 우물쭈물하다 끝까지 보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마약 마피아들의 생활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즐긴다는 것만이 인생의 모두인 것같은 사람들…. 어쩌면 언젠가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 순간 동물적 직감으로 살아가는 것같은 사람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 할 수없이 적응하는 사람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인간의 존엄성이 그 무지한 세계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상황을 영화로 연출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영화지만 정말 너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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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나이 든 모습이 어떤 화려했던 사람도 결국은 늙고 힘 없이 되고 만다고 느끼면서도 난, 클린트 이스트의 지금 모습ㅇ 젊었을 때 모습보다도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람만이 아름답게 늙을 수 있는 동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clint-eastwood-a-fistful-of-dollars1964-directed-by-sergio-leone-F4PB9T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시절 모습

 

First man (달에 첫발을 디딘 암스트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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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서 매주 수요일은 새 영화들이 선을 보이는 날이다. 어제는 유난히 표파는 창구에 사람들이 긴줄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난 영화카드가 있기때문에 기계에서 카드를 통해 표를 발급 받을 수가 있는데 기계에서 표를 발급받는것도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대부분의 경우에 실패를 하고 만다. 영화 상영 시간이 급박한데 너무나 긴줄에 매달려 표를 사려면 늦어질 것같아서 기계에서 표를 발급하려고 했었으나 역시 실패하고 긴줄의 뒤에 가서 섰다. 창구에서 표를 부탁하면서 기계에서 표를 받으려다가 실패했다고 설명하면서 시간이 늦었으니 다른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했더니 창구에서 오는 대답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들어가라고 했다. 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는 예고편 영화와 광고들에 할애되어서 그렇겠구나 하면서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영화가 시작된지 꽤 되었었다. 온통 화면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우주선 실험을 하는 암스트롱의 긴장한 얼굴 표정과 흔들리는 화면이 전부였다. 영화의 80프로는  시끄러운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채워졌었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자리 하나없이 좌석이 꽉 채워졌었다. 프랑스 영화관에서 이건 아주 드문일이다. 더군다나 이영화는 개봉된지 2주 된 영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80프로가 시끄러운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1초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영화 관련 비평을 읽어보니 감독인 Damien Chazelle 이  영화 속에 사용된 우주 비행 관련 기계들을 실제와 같은 것으로 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기 그지 없었지만 영화 상영 내내  나의 사고를 놓지 않는 단어들은 죽음, 삶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것이었다. 우주 비행을  하기 위한 인간의 조건도 매우 까다로울 것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우수 인재들이 죽음을 무릅쓴  모험에 뛰어드는 요인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암스트롱은 1930년 생이다. 1966년에 처음으로 우주 비행을 했고 1969년에 달에 첫발을 디딘 지구인이 되었다.  1969년에 아폴로 호의 대장으로 선발 되기 전에 3명의 우주 비행사가 불에 까맣게 타 죽는 사고도 있었다.   지구를 벗어나서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 그것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심장이 약한 나같은 사람은 어떠한 보상을 준다 할지라도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69년 7월 21일,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딛는 순간, 전세계에서  4억의 인구가 그 모습을 지켜 보고 환호했다. 암스트롱은 딸이 하나 죽고 아들만 둘이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여행 전날, 암스트롱은 아이들이 이미 잠 들었을 거라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부인의 권유로 결국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지만 말이다. 저렇게 까지 암스트롱을 위험한 우주 여행으로 내몰고 있는 진짜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는 혹시  이 지루한 지구내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장면은 아폴로호를 타고 성공리에 달에 도착했다가 돌아온 암스트롱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타행성에서의 감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갇혀 있어야 하는 연구소에 찾아 온 부인을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장면이다.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했을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 이것은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이다.’

비 속의 바스티유 거리

20181030_102919겨울을 알리는 보슬비가 내린다.  빠리는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겨울엔 비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겨울에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어린시절 일본에 갔을때 알았다. 겨울에 빠리에서는  햇빛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 그리고 회색빛 거리가 빠리의 겨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장소에 갔는데 너무 일찍 갔다. 잠시 까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다. 카운터에 앉아서 신문을  읽으며 모닝커피를 마시던 프랑스인들이  호기심 섞인 시선을 보낸다. 한때는 이 풍경을 몹시 좋아했었다. 아침의 자유라고 할까?

 

20181030_103349카페를 나와 약속 장소까지 걷는다.  걷는 것이  늘 상쾌하고 재미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개성 있는 상품들이 즐비한 곳, 가게의 이름도 독특하고 개성 있다. 지나가다 특이한 색갈의 운동화가 눈에 띈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프랑스인들은 아이디어가 출중하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도 디자인에서 색갈까지 재미있으면서도 뛰어나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런 재능들이 유럽에서도 유난히 사랑받고 부러움받는 민족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가끔 상점에 놓인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인들이 있다.  그들의 물건을 모방하는 아시아 인들을 몹시 경멸하는 눈치이다.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쨋든 나의 경우는 그 물건을 모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 본 다음에 사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냥 살짝 미소를 지어 마무리 한다.

20181030_103114바로 며칠 전만 해도 오후가 되면 더워서 땀이 났었는데 불과 며칠만에 겨울이 되었다. 올여름은 길었다. 뜨거운 열기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었고 그 더위가 싫지 않았었다. 2000년에만 해도 여름이 덥지 않아서 때로는 한여름에 코트를 걸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도무지 여름 옷을 걸쳐 볼 기회가 오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었다.  최근 들어서 여름에 더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여름이 길어진 것이 싫지 않다. 빠리에는 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 겨울을 예고하는  비를 맞으며 새삼 빠리를 정의하는 색갈은 회색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Mary 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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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시간이 나서 영화관을 찾았다가 좋은 영화를 만났다. 영국 영화여서 듣기 좋은 영국식 영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Mary wollstonecraft Godwin 이 그녀의 처녀시절 이름이다. Shelley라는 이름은 영국의 유명 시인인 Shelley와 결혼했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태어난지 11일째 되던 날에 어머니를 잃었다. 무정부주의자이며 정치 철학가였던 아버지가 책방을 운영하며 딸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가르쳐 주었다.그녀의 어머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어머니를 일찍 읽은 마리가 새어머니와의 불화때문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친척집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당시 유명하던 시인 쉘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리의 나이 16세였다. 쉘리의 나이는 20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때문인지 마리는 어머니의 묘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이런 배경이 나중에  프랑켄 슈타인이라는 책을 쓰게 되는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쉘리와도  주로 묘지에서 만나곤 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마리에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복동생이 아파서 죽어간다는 소식이 오고 마리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사실은 이복동생이 마리가 보고싶어서 꾸민 연극이었다.  런던에 있는 마리를 보기 위해 쉘리가 런던으로 달려오고… 쉘리는 마리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당시 정치 철학가였던 마리의 아버지를 숭배하고 있었다. 쉘리는 알고보니 결혼한 남자였다. 쉘리의 처가 찾아와서 마리에게 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쉘리와 동거를 시작하고 아기를 낳는다. 쉘리가 마련한 저택에서 이복동생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한다.쉘리는 낭비벽이 좀 심한 남자였다. 빚때문에 마리와 갓난아이 그리고 마리의 이복동생을 데리고 도망가던 날 비가 몹시 왔다. 갓난아이가 죽었다. 그 이후 마리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시인 바이런의 저택에 초대 되어 가서 전기충격을 통해 죽었던 개구리의 뒷다리가 움직이게 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을 구상했던 것같다. 마리의 이작품은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로 치부된다. 영화에서는 마리가 이 소설을 쓰고나서 그 소설을 출판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이 부각된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남편 쉘리에 의해서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다. 남편이 유명 시인이었기에 처음에 사람들은 혹시 쉘리의 작품이 아닌가하고 의심 하기도 한다. 동거하고 있던 마리는 쉘리의 처가 자살하자 쉘리와 결혼하게 되어 쉘리의 이름을 갖게된다.영화에서는 마리가 ‘프랑켄슈타인’작품이 자기 것임을 알리게 되는 부분까지만 다루지만  사실 쉘리는 1822년에 요트를 타다 풍랑을 만나서 죽고 마리는 1851년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그녀의 나이 53세였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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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났다. 아니, 그녀가 내가 가는 성당으로 왔다. 늦은 미사를 끝내고 그녀는 식사를 하고 싶어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의 호위병 이야기에 그녀는 열을 올린다. 왜? 마크롱 대통령은 아랍사람을 대통령 궁에서 근무하게 하느냐는 이야기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많은 아랍사람들과 아프리카인들을 수용해 왔었고 그로인해 끊이지 않는 사회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아랍사람을 쓰는 것응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친구는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간에 만족을 못하는 친구이다. 내 생각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랏일을 잘 보라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은 다르다. 대통령이 어떤 인물에게 어떤 특혜를 주는가를 일일이 따지고 있다. 적어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정도면 그만큼의 무엇이 있기때문이고 때문에 어느 정도의 특혜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들의 생각법은 다르다. 그녀는 프랑스 대통령들의 잘못을 하나 하나 이야기 하면서 프랑스도 왕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이다. 그러니까 모든 대통령을 못마땅해 한다. 그녀는 사실 엄청난 민족 주의자여서 프랑스 내에서 모든 외국인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옆좌석 사람들이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볼 정도로 열띠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1시가 되었다. 지하철을 놓칠까봐 부랴 부랴 전철역으로 갔는데 역시나 전철이 끊겼다. 할수없이 택시를 탔다. 둘이 택시를 타고 그녀가 먼저 내리고 나는 집이 그녀보다 멀어서  그 택시를 계속 타고 가는데  택시 운전수가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이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을 땄는데 프랑스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이야기 하면서 북한의 김정은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김정은은 독재자인데 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김정은이 미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참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아랍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전인수격으로 생각하는 방식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랍지역 사람들은 이라크에 미국이 개입해 일어난 전쟁의 피해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증오가 심한 듯 싶다. 사람들은 늘 자기자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고 남이 잘못한 것만 기억하곤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분쟁이 끝나지 않는 것같다.총체적으로 어떤 비극적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면 자꾸 무고한 희생자를 내는 비극은 조금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현대의 사람들은 무조건 어떤 빌미만 있으면 폭력적으로 희생자를 만들려고 작심하고 덤비는 것같다. 그래서 마음이 씁슬하다.

빠리의 음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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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은  일년 중의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1976년 프랑스의 음악 방송국에서 일하던 미국의 음악가  Joel Cohen은 기발한 생각을 해내었다. 일년 중에 밤이 가장 짧은 날인 6월 21일과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긴 12월 21일에 음악 축제를 개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미국인 음악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음악 축제 아이디어는 1982년에 와서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Jack Lang에 의해서 공식 축제로 자리를 잡게된다.

해마다 6월 21일이면 음악을 좋아하는 빠리지엔들은 밤을 새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빠리시내를흥으로 돋구곤 해왔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3일, 빠리 시내에 있는 콘서트 장 Bataclan에서

불행한 테러사건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이후, 빠리지엔들은 움츠려 들었었다.

몇년동안 레스토랑도 카페도 모두 공포의 분위기로 을씨년스러웠다.

그 공포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올해 빠리의 음악축제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 느낌이다.

미국인 음악가가 고안해 낸 음악축제는 이제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고

전세계 100여개국의 나라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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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빠리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테러의 악몽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유다.

인터넷을 통하여 빠리의 어느 지역에 어떤 음악들이 소개되는지 알 수 있다.

이날, 나는 유스타쉬 성당 근처로 나갔었다. 성당 옆의 까페에서 아랍 음악이

흘러 나오고 그 까페 앞에 모인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의 가요만큼이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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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한구석에서는 젊은 아랍인 여자가 랩을 부르고 있다. 랩은 저항음악이라고 해서

요즘 꽤 인기가 있는 음악이다. 어느 시대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있고 또 한국에서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저항하는 사람들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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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밤 9시가 넘었는데도 날은 아직 밝고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며 준비중인 까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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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halles에 최근에 완성된 건축물을 향해 간다. 언제 보아도 이 건축물은 너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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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를 거쳐 마래지구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는다. 온통 거리가 사람으로

메꾸어져 발 디딜 틈이 없고 모두들 몸을 흔들어 대고 있으니 빠져나갈 틈이 없다.

거리가 디스코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광란의 장이다.20180621_231619

괴성을 지르며 때로는 무당이 신들린듯 온몸을 흔들며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와

보즈광장에 다달았다.  예전에 이곳에선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또 민속음악까지 연주되곤했었다.

드문 드문 재즈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일뿐 아직도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사람들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것같다. 날이 어둡고 지붕이 있는 곳으로 오니 사진도 흐릿하게 나와서 사진 찍기를

멈추었다.  무서운 사건들의 연속으로 빠리지엔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가 벗겨질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밤이 점점 깊어 가는데 빠리는 흥으로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줄리엣의 남북한 통일과 핵무기 폐기에 대한 강의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 어떤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입구에 북한에 대한 서적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고 오후 7시에 강연이 있다고 했다. 줄리엣과 또 한사람의 프랑스인이 북한과 트럼프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했다. 호기심으로 그 강의를 들었다. 프랑스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지 거의 100명의 좌석이 꽉 찼다.
강의를 하는 사람은 왜?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그렇게 관대한지 의아해 하는 눈치다. 지난 번 싱가폴에서의 회담 이후 김정은은 매우 바빠졌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이 김정은에게 만남을 신청했고 일본의 아베총리도 그에게 만나자고 했단다. 모두 이번 9월에 약속이 잡혔다고 한다.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트럼프는 2년 반안에 비핵화를 이루고자 하지만 사실 북한의 지리적 조건이 거의 80프로가 산이기때문에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으로 옮겨 놓을수도 없는 것이고 핵을 해체하는 것도 사실은 북한의 기술자들이 해야 할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이 핵을 해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일성 시대에 북한을 산으로 된 성곽을 쌓을 것이라고 공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80프로가 산인 북한에 어떤 성곽이 만들어 져 있는지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북한의 핵을 해체하는데는 15년 내지 20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에게 핵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 정당성이 없다는 이야기라고도 덧붙인다. 어느 나라에 미사일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를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이란에서 있었던 일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란은 핵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미국이 개입했던 것이고 그렇게 해서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이미 핵무기가 완성된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다고 해도 미국으로서는 골치가 아플 것이다. 핵폐기를 위한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이다. 한반도가 통일을 하지 못하고 연맹제도를 이야기 하는 배경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남한의 젊은이들이 통일 비용을 지불하기 싫어하기때문이라는 이유가 그중의 하나이라는 것이다.
이북이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미 자유의 물결이 들어섰고 그 예로 줄리엣이 몇달 전에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 북한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손님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더란 이야기이다. 음식 맛은 어땠는지 종업원의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등이라는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이 시작되었을때 난,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분단된 원인은 주위의 강대국들이 원인이다. 일단은 일본이 책임이 있고 미국과 소련도 한국 분단의 책임이 있다. 이 강대국들에 책임을 묻기 위해 통일 비용을 내라고 하면 가능할 것인가? 라고…
대답은 그 강대국들이 한국의 통일에 관심이 없기때문에 당연히 ‘노’라는 답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여러명의 프랑스인들이 나를 묻잡고 말한다. 아마도 한국이 강대국들의 희생물이었다는데 동정을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 희망의 빛이 비친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국이 왜? 한국 일에 뛰어들어서 감 놔라 배놔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통일이 요원한 것은 분단이라는 비극을 안고 살면서도 오로지 일신의 평안함과 안일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서 제대로 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역사적인 날

요즘 눈뜨면 들리는 소식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프랑스 방송에서 불어로 전달하는 소식들이다. 어떨때는 한국 방송매체보다 더 빠르게 북한과 미국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난, 프랑스인 기자들의 민첩성에 감탄할때도 있다. 나에게도 프랑스의 어떤 신문이 한국의 소식을 번역해 주면 신문에 실겠다는 뜻을 전해 온 적이 있다. 그런데 난, 구태의연한 태도인지는 몰라도 내나라에 대해 자랑스럽다는 느끼는 소식들만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과 오랜 교류를 통해서 한국 신문에 나는 소식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어떤 생각이 들게 할지를 알게 된 이후로는 함부로 아무 일이나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다른 세계, 너무나 다른 사고 방식들을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김정은을 뛰어나게 똑똑한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학창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냈다고 했다. 그가 의식 있는 남자라면 스위스에서 서양인들과 교류하면서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지금 트럼프와 이런 만남을 이루어 낸 배경에도 그가 스위스에서 공부하면서 배웠던 경험들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북한의 고루하고 좁은 사고 방식을 가진 세대를 제거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이 좁고 편협한 사람들이 답답하게 우길때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프랑스 방송매체들은 전세계의 모든 문화들을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전달하여 프랑스인들을 지식인으로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이 넓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중에 지나치게 우월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동양의 어떤 나라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전부터 프랑스 방송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역사적 만남’이라고 불러왔다. 나는 왜 그들이 ‘역사적 만남’이라고 일컫는지 조금은 의문이 들었었다. 결국은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 집단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깨닫는다. 구석에 몰린 쥐도 더 이상 갈데가 없으면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그런 점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방송에선가는 한국민을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는 민족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맞다!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는 민족이 무슨일은 저지르지 못할 것인가!
살고 있는 세계가 좁은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다.
아무리 넓고 좋은 생각이 있어도 생각이 좁고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는 집단이 우세하면 넓고 훌륭한 생각이 빛을 볼 수 없다.
나는 한국 사람들도 눈을 뜨고 넓게 보기를 원한다. 지금 바로 프랑스 방송에서 말하기를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북미 회담의 결과는 결국 김정은이 이겼다고 말한다. 김정은은 시간을 벌고 그리고 남한이 미국에서 멀어져 북한쪽으로 가까워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회담에서 장거리 미사일, 그러니까 미국을 위협한 장거리 미사일은 거두고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은 유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어쨋든 지금과 같은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몰려 있는 상황, 그도 무언가 획기적인 일을 성사시켜 몰려 있는 상황을 빠져나와야 했을 것이다. 방금 트럼프가 하는 말을 방송에서 들었다. ‘저는 평생을 협상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전문적 정치인들은 협상을 할줄 모릅니다.’ 세계에서 가장 대화하기 어려운 북한의 최고 권력자와 협상에 이른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번의 역사적 사건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막는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도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때문에 늘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했던 북한의 비극, 이 역사적 만남을 기점으로 완전히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마음이 설레는 날

A huge screen shows live video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nd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at a press center for the inter-Korean summit in Goyang, South Korea, Friday, April 27, 2018. North Korean leader Kim made history by crossing over the world's most heavily armed border to greet South Korean President Moon for talks on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P Photo/Lee Jin-man)
A huge screen shows live video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nd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at a press center for the inter-Korean summit in Goyang, South Korea, Friday, April 27, 2018. North Korean leader Kim made history by crossing over the world’s most heavily armed border to greet South Korean President Moon for talks on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P Photo/Lee Jin-man)

 

작년내내 혹시라도 한국에 전쟁이 날까봐 전전긍긍했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것같은 신문기사들을 접하면서 혹시라도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서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 나라를 다시 엉망으로 만들면 어쩌나… 나라가 전쟁에 들어가면 시리아처럼 국민들이 다른나라로 떠돌면서 거지 신세를 면하지 못할텐데.. 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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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위 사진에서처럼 프랑스의 시사잡지조차도 김정은의 사진을 싣고 거의 매일 아침마다 방송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신경전을 논하곤 했기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의 사진을  싣고 ‘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남자’라는 타이틀로 프랑스의 주요 시사지인 ‘ Le point 에서도 그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던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국 뉴스를 보니 온통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르몽드 인터넷 기사에서도 1면에 한국의 판문점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었다. 르몽드지는 거기에 덧붙여 극동의 조그만 한반도가 어떻게 분단이 되었고 어떻게 전쟁이 일어났고 어떻게 지금의 시점에 이르게 되었는지까지 상세하게 비데오로 설명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뜨는 댓글들에 ‘ 마음이 떨려요, 마음이 설레요’ 등등 국민들이 감격하고 있는  상황이 생생하게 보인다. 그래요. 우리는 한민족이기때문에 모두들 가슴이 뭉클해지는 거에요. 얼마나 오랜기간 같은 핏줄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부끄러운 세상을 살아왔나요.? 지금 가슴이 뛰고 설레고 뭉클해진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모두 한핏줄이기때문이에요. 남한과 북한 국민들이 간절히 통일을 원하면 서방 강대국들이나 미국도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도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이 통일을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같은 이런 설레임이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그리하여 평화를 좋아하여 백의 민족이라 불리던 한국 민족이 21세기를 善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시대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