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만난 한국인 학생들

아침시간,한무리의한국인중고등학생들을만났다.목사님의인도로2주간유럽여행을왔다고했다.

간간히,미안하다는말대신에Sorry!를남발하고심지어인도하는여자교사조차도영어로대화를한다.

한아이에게물었다.영어로공부하는학교에서왔니?

그아이는내말뜻을미국에서왔느냐고알아들었는지’아니요,한국에서왔어요.’라고

상냥하게대답한다.’아니,모두들영어로대화하는것같아서물어보았어.’

라고말하자.’어쩔수없어요.’라는대답이떨어졌다.

‘어쩔수없어요.’무엇을어쩔수없다는말일까?어쩔수없이영어를배워야한다는말일까?

‘그래도한국어공부를더많이해야돼,한국어를잘해야영어도잘할수있거든?’이렇게말해주고

돌아서는데알수없는슬픈기운이나를감싼다.

어린아이들조차도어쩔수없이영어를공부해야한다고현실을받아들이는것일까?

영어공부에힘쓰기보다한국인의정신을아이들에게가르치게되면한국은망하게될까?

물질적으로편안하게사는것이더중요한것일까?

때로한국의가치가서양문화를무조건미워하는것이라고생각하고있는사람들을만난다.

특히남자분들중에그런생각을가진사람들이많다.

남자의자존심이라고믿고있는어떤오기가그렇게한국남자들을이끌고가고있는지도모른다.

한국어른들이올바른지식을가져야그밑에서성장하는아이들이올바른가치관을가질수있을것이다.

물질에밀려서가치가땅에떨어진세계를우리는지금살고있다.

프랑스도마찬가지다.최근에’soumission’이라는책을내어서논란을일으키고있는

작가,Michelhouellebecq은말한다.

‘사람들은더이상무신론자로서의삶을참아내지못합니다.무신론자로서의삶은무척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사람들은종교로귀의하고있습니다.’

이렇게서양세계는원래의가톨릭문화를찾아회귀하고있는것이다.

한철학자는이렇게말했다.’인간은인간으로태어나는것이아니고인간으로교육되어지는것이다.’

우리나라에서사람의모습을지녔다고모두사람이아니라고전해져내려오던말과같은것이다.

가치부재의세계는모든사람을불행하게만드는것일것이다.

가치를생각하지않고사는사람은짐승이라고일컫을수있을것이다.

내나라가조상들이쌓아놓은훌륭한가치들을찾아내어서흔들리지않는한국의위상을

세우는데노력을기울이기를바란다.

빠리의 음악 축제

파리에서매년6월21일은음악축제의날입니다.

이음악축제는JackLang이문화부장관으로있을때

MauriceFleuret의생각을현실화한것이라고하는데요.

그때가1982년이었습니다.

멀지않은미래에한국에도이와같은음악축제의날이생겨서

국민의정서를함양하는데기여할날이오기를기대하면서

생생한음악축제의현장을소개하고자합니다.

6월21일이되면파리는온통음악의아수라장이됩니다.

클래식음악으로부터재즈,디스코,랩힙합까지모든종류의음악이

어우러져파리지엔들을흥분케합니다.

여기는파리의중심부에위치한saint-sulpice광장입니다.무대보이시죠?여자가수가노래하는중입니다.

조금더가까이가서찍어보았습니다.저여가수는혼자만의흥에도취한듯보였습니다.

심술이라도부리는듯빗발이잠깐뿌렸었는데비옷까지준비하고아이스케키를무료로배부하고있는자원봉사자들

이날은무명의음악인들이자신의음악을마음껏대중앞에내보이는날이기도합니다.

바로위두사진은조금흔들렸는데요.저뒤에구부린자세의여자분이엄마이고딸셋입니다.

집앞에다평소에딸들이연주하는전자피아노,기타그리고플롯을내놓고연주준비가한창입니다.

지나다보니아시아여자가노래를부르고있더라고요.아마도일본여자인듯싶었는데샹송을잘부르더군요.

한국의여가수한영애스타일인듯싶었습니다.

이곳은성당앞인데무대를설치하고저렇게성가를합창하고있었어요.

아이들손을잡고음악에맞춰흔들고있는엄마,아빠의모습입니다.

이곳에한참머물렀었는데요.이남자가수분은노래책까지모여있는분들에게나누어준다음

다함께노래를하도록유도하고있었습니다.물론노래책은다시회수해갈것이라고하더군요.

조금있으니까청년들이부둥켜안고노래에맞추어춤을추기시작합니다.

에디뜨삐아프의"Jeneregretterien"을노래하기시작할무렵저는아쉬운발걸음을옮겼습니다.

이곳은나팔을불고있었는데요.자전거를타고지나가던어느나이지긋한부부가갑자기멈추어서더니

손을맞잡고음악에맞추어춤을추더라고요.백발이성성한노부부였지만얼마나아름답게보였는지…

세느강가를따라서도이렇게드럼하는사람들끼리모여서연주하더군요.

이곳은시청앞인데요.커다란피아노앞에서노신사가장중한클래식음악을연주하고있었습니다.

저오늘많이걸었거든요.이때가밤10시30분쯤되었었는데

저쪽골목에출렁거리는인파와함께파리의밤이점점깊어가고있었습니다.

chanson-soleil

Let it be – Beatles

프랑스에서는1월에있었던테러사건이후로갑자기비틀즈가살아나기시작했다.
‘Help!’라는노래는비틀즈가팬들의등쌀에서살려달라는의미로만들어진곡이라는데
나는’Letitbe’를더좋아하기때문에이곳에이노래를실었다.
최근에한국에서있었던어떤항공사의회항사건에대해서영국친구와대화를
했는데엄청나게열을내면서그사건의당사자에게1년이란징역을내린것은
너무부당하다고2년은징역형을내려야한다고그리고너희한국이란나라에사는
부자들의수준은그것밖에안되느냐고하기에할말을잃었었다.
의외로남의일에관심이많다고생각하면서또진짜로선진국국민으로서정의감이
많은것일까?하고한편으로생각했었다.
진정한의미의義人은존재하지않는다고생각이굳혀가고있는시점에서
나에겐신선한충격이었다.

안개에 가려진 에펠탑을 바라보며…

얼굴과목소리가완전히일치하는것같은프랑스여자가수엘자

뇌과학과인간의고통에대한강의를들으러갔었어.

커다란창을통해에펠탑이보이는데윗부분이안개에가려져있었어.

무척아름답다는생각을했지.

내옆에는프랑스할머니가앉아있었는데손주가여러명이라고자랑은하면서도

결코자신이할머니임을인정하지못하는듯늘화려한보석을걸치고미니스커트를입고다니는

프랑스여자였어.의사였대나?국경없는의사회에서도일했다는데

그녀가가지고있는자부심에비해서그녀가가지고있는의학상식은

별로믿을만하지못하다는생각이드는여자였어.

남편과아이를네명이나두었었는데가장친한여자친구와남편이바람이났었대나.

그래서아이넷과남편을몽땅그여자친구에게맡겨버렸었대.

그래서여름방학때마다그여자친구가아이넷을보살피는게이렇게힘든줄알았으면

그녀의남편과시작도하지않았을거라고푸념을하곤했었대나.

그리곤하는말이자기보다정말그여자친구가자기남편을사랑하는것같았대나.

한국적정서와너무나다른사람들이지?

그녀에게내가말했지.저기에펲탑좀봐요.너무나멋지지않아요?

아주무표정한얼굴로나를떨떠름하게쳐다보는그녀를보며난,실망하고말았지.

이세계에서는나같은생각을하는사람이비정상인가?하고말이지.

다른쪽옆에앉아있는프랑스사람들에게또말했지.

저기에펠탑좀봐요.안개속의에펠탑이너무아름답지않아요?

그들은또무덤덤하게나를쳐다보더라고.

그래서덩달아나도????이런표정을하고말았지.

프랑스가 사랑하는 여가수 Barbara

Barbara(1930-1997)

프랑스에는이세상을떠난이후에도계속사랑을받고있는가수들이적지않게있습니다.

Barbara도그중에한가수입니다.그녀는작사.작곡도하고노래를불렀습니다.

그녀를기리는공연이있다고해서가보았습니다.

금발의여배우가천천히등장해서거울을보면서머리에밤색머리가발을쓰는장면에서시작됩니다.

Barbara는밤색머리를가진여자였거든요.

너무나삐쩍마른여배우의몸매를보면서세실리아는웬지모를비극적인느낌으로슬퍼졌었습니다.

그리고그녀는천천히연극속에서Barbara가되어이야기와노래를시작합니다.

7살때부터이야기를시작해서노래를하기위해빠리로가기위해길가에서차를세워타고가는이야기도합니다.

한국같으면처녀가그런모험을하지는않겠죠.

처음에는그렇고그런연극배우려니그렇고그런샹송가수려니하고생각했었는데차츰차츰세실리아를

감동으로몰아갑니다.처음엔캬바레에서잡일을도우면서그녀는서서히입에서입으로알려지는

유명가수가됩니다.이름이알려져서유럽의여러나라에불려다닐때도그녀는늘피아노의질을중요시

했다고합니다.좋은피아노를내놓지않으면노래하기를거부해서늘좋은피아노를갖추게되었던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사랑한남자들도무척많았고나중에는15살연하의남자애인들을마치강아지이름부르듯이

불렀었다고하는장면에서참재미있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연하의애인에게스트레스를받았던것이아닐까

하는의심이들었습니다.

거의두시간을혼자서잠시도쉬지않고이야기와노래로꾸려갔는데1초도지루하지않았습니다.

그녀는대단한배우이며가수였습니다.이름이베로니크라고했습니다.

공연이감동적이니까우뢰와같은박수가그칠줄모르고계속되었고그녀는비극적인여배우가아니고

대단한감동을주는훌륭한여배우였습니다.

러시아 말

비가조금씩뿌리고있는날이었다.관공서에서류때문에갔다가버스정류장에서버스를기다리고있었다.

관공서가있는곳이빠리를벗어나있었기때문에낯선지리를익히느라두리번거리고있었다.

옆에서들려오는낯선언어가신비하게느껴져서옆을돌아보았다.요정처럼하얀얼굴에금발머리의

가느다란소녀가조금은퉁퉁한여자와말을하고있었는데러시아말이었다.

참지적으로생긴얼굴이라고생각을하면서저들은어떤이유로프랑스에와있을까조금은궁금해지기도했다.

마침러시아의소치에서동계올림픽이열리고있었고방송에서는연일우크라이나에서생긴데모와대통령선거

그리고러시아의푸친과유럽연합사이에서우크라이나가가지고이해관계등에대해토론이분분히일어나고있는시점이었다.한때난,러시아어를배우고싶었었다.그건톨스토이나도스토예프스키의작품을원어로읽고싶다는

욕심때문이었다.빠리를벗어난어느조그만마을에서만난러시아소녀들,그들의입에서쏟아져나오는

언어,러시아어가신비스럽게들려왔다.

우리 동네에서 열린 carla bruni의 콘서트

우리동네시청에서관리하는연극장에서까를라부르니의콘서트가열렸습니다.

티켓값이좀비싸긴했지만전대통령의부인이었고그녀의노래를좋아하던터라연극장엘갔습니다.

그녀의포스터입니다.

이곳은겉옷을맡겨두는곳입니다.

아랫층에깔끔하게카페도있습니다.

늦게표를사는바람에가장자리에좌석을얻을수있었습니다.

이상한안개같은것이자욱한가운데꽤많은관람객이모였습니다.

드디어그녀가등장했습니다.빨간자켙에까만가죽바지를입었습니다.

오랫동안연주활동을하지않아서노래가매끈하지않다고본인이사과를하더군요.

영부인자리에서내려온이후세번째콘서트라고합니다.

마치어린아이같이천진난만한그녀의품성이느껴졌습니다.

아직마담이라고불리기는싫다고요.아직은아이였으면좋겠다나요?

나이에도불구하고늘요정같은까를라부르니였습니다.

시간이많이늦어서집으로돌아가는교통수단을물었더니시청에서젊고잘생긴두청년에게봉고차를운전해서

집까지데려다주도록조처를취했습니다.돌아오는찻속에같이탔던프랑스할머니몇분이까를라부르니가무척돈이많은가정에서태어났고그녀의언니가촬영한영화도보았는데두자매가모두매우수줍음이많다고이야기들을했습니다.많은프랑스인들이이태리출신인그녀의가정을주제로이야기를한다는것을알수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