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뻐스 운전사

IMG_20190525_180529                                                                            뻐스 앞좌석에서 본 운전석

 

기온이   갑작스럽게 상승했다. 빠리는 기온 변화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변화 무쌍하지만 늘 알면서도 늘 속는 기분이다. 가끔 나는 빠리의 뻐스 운전수들을 하릴없이 관찰하곤 하는데 오늘의 운전수는 밖의 누군가를 향해 아주 다정하고 여유 있는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료운전수인 것같았다. 늘 같은 여정을 왕복해야 하는 뻐스 운전수들에게는 어쩌면 동료 운전수에게 보내는 손짓 하나가 의미를 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지난 번 바스티유에서 오페라까지 가는 뻐스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 올랐었다. 당시에  `길 잃은 뻐스 운전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해 놓곤 시간을 내지 못했었다.  그 뻐스 운전수는 그날 그 뻐스의 여정을 처음으로 운전하게끔 배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뻐스가 가는 여정에 공사 현장이 있어서 다른 길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는데 처음 길이다보니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빠리의 교통 공사의 열정은 길을 모르는 운전수들을 모르는 길에 배치하는 것이다`이었다.  그 뻐스에 타고 있던 빠리지엔들이 그에게 어디를 통해서 가야 하는지 훈수를 주고 있었다. 길을 헤매는 그 운전수 덕분에 나는 보즈 광장의 아름다운 정원이며 빅톨위고의 박물관 그리고 그 옆으로 옹기 종기 있는 갤러리들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길 잃은 운전수때문에 약속 장소에 늦어질 수도 있었겠건만 아주 친절하고 여유있게 운전수에게 길을 가르쳐  주어가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빠리지엔 승객들도 나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길을 잃고도 유머를 잃지 않고 빠리 교통공사의 열정 운운하는 운전수의 뱃짱이 나를 또 감동시켰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같으면 나에게 맡겨진 업무를 잘해내지 못했을때 심한 자괴감으로 절절 매곤하는데 이 사회에서는 자기 업무를 소홀히 해 놓고도 핑계를 여유있게 찾아내어 자신을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능력을 솔직하게 말해서 관중에게 도움을 받거나 이해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여유가 많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게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선진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을 심하게 훈련시켜서까지 무엇인가 이루려는 노력들을 하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들을 하기때문인지 스트레스가 되는 일들은 권하지도 하지도 않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활절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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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아 몽마르트에 올랐다. 빠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 예수님의 심장을 의미하는 sacré coeur( 성스러운 마음: 가슴으로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성당에 온 것이다 .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의 가장 높은 계층을 돈의 많고 적음으로 분류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된 것같다. 아마도 미국의 영향일 것이다. 프랑스 학자들의 대담에서 한 학자가 자기는 사회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사람은’시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또 다른 학자는 ‘성인’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성인’은  어른이라는 뜻이 아니고 성스러울 ‘聖人’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聖人’ 이 우리나라 의 ‘양반’과 같은 계열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에 진정한 양반은 가톨릭에서의 ‘성인’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조선이 망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양반들이 사라졌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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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씨가 화창하니 몽마르트 언덕에 관광객이 넘쳐난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에도 불구하고 빠리는 질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야무진 빠리 시장들의 관리 능력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빠리를 넓히는 계획으로 빠리시가 분주하다. 높은 건물을 허가하지 않으면서도 세계 최다의 관광객을 수용하는 빠리시를 이렇게 유지하는 것은 빠리지엔들의 지혜덕분일것이다. 나도 여기에 와서 어느 정도 빠리지엔들의 지혜를 몸으로 경험 하고 익힐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들에게 감사한다.

밖은 관광지의 분위기를 버리지 못하지만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어느덧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바뀐다. 모두들 아름답게 모셔진 성체 앞에서 고요히 묵상하고 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깔멜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맑고 고운 음성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이 고운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너무나 아름답게 창조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는 것이다. 그 불평과 불만은 결국 그 사람의 아름답지 못한 내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부활을 맞이 하여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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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내가 자주 다니던 까페이다. 오래 전에 바로 몽마르트 언덕 밑에 살던때 점심 식사를 하기도 하고 신문을 읽으러 가기도 하고 사람구경하기 위해 앉아 있기도 했던 장소인데 외면을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옛날이 더 운치가 있었는데 아쉽다. 바로 몽마르트 언덕 아래 살면서도 가끔 기도라는 핑계로 성당에 올라가 밤을 새우고 오곤 했었다. 성당 안에는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가 있는데 약간의 돈을 내면 하룻 밤을 묵고 아침 식사까지 제공되는 곳이 있다. 그 때   난, 몽마르트 언덕 바로 밑에 내 아파트가 있었는데 돈을 내고 성당에 올라 가 잠을 자고 오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난, 이 성당의 분위기를 무척 좋아한다. 멀리 이사와서 살고 있는 지금도 자꾸 찾아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 것같다.

어떤 父子

봄날씨가 화창하다. 바람이 부드럽게 볼을 스치고마음이 상쾌해지는  날이다. 뻐스에 오르는 발걸음도 가볍다.  프랑스의 버스는 구조가 좀 다르다.  두명씩 앉는 좌석이 두세트있고 그 다음에 뻐스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앉는 좌석이 두개 있고 그 옆으로는 옆으로 앉는 좌석이 3개 있다. 옆으로 앚는 좌석 맞은편으로는 또 4명이 서로 마주보며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고 그 다음으로 또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옆으로 앉는 좌석에 자리를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맞은편으로 명랑하게 떠드는 프랑스 여자와 프랑스 남자 그리고 키는 멀쩡하게 큰 아들같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먼저 수다스런 프랑스 여자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내렸다. 몇정거장 더 간다음에  아버지와 아들같은 두 프랑스 남자가 좌석에 일어나 내리려는 것같았는데 나도 내릴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커다란  아들같은 남자가 내리다 말고 내 좌석 밑으로 구부리고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찾는 것같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그가 무언가를 떨어뜨렸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같은 남자가 그 아들 같은 남자 등을 밀쳐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그 아이가 일종의 tic 또는 toc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뻐스에서 내리니 저 앞으로  그두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나는 하릴 없이 그들을 관찰하며 문제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는 평생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만큼 가던 아들이 또 옆 풀밭으로 뛰어들어 무엇인가를 주우려고 하고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거칠게 잡아채어 밀어댄다. ` 아휴, 아버지 노릇하려면 힘도 세야하겠네` 혼잣말을 되뇌며 뒤를 따라가는데 갑자기 키큰 아들이 그 긴다리로 무릅을 꿇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아들을  둔 부모는 평생을 걱정으로 살아야 겠구나. 따라다니며 돌보자니 힘들고 안따라다니면 늘 마음이 불안할 것같다.  다행이 그들은 내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고 멀어져 간다.  아파트 단지 내 잔듸 밭 위로 봄을 반기는 새들의 합창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Clint Eastwood 와 영화 Mule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poses for Newsweek International on January 24, 2004, in Los Angeles, CA. (Photo by Neil Wilder/Corbis via Getty Images)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영화 배우이며 영화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 Mule`을 보았다. 아주 진부한 주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평생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집중해온 가난한 노인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주 사랑 받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듯싶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영화는 코메디 영화인데 어떤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해서 갔었다. 90에 가까운 노인, 평생 꽃가꾸는 일을 좋아해서 집안 일을 뒤로 했다가 가족에게까지 외면 당하는 외로운 삶이다. 그가 일부러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에 빠지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가족의 사랑도 Give and Take 가 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부 앤드 테이크의 기술에 무딘 사람들에게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90이 다 된 연세에 저정도로 영화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대단한 일이다. 백세 시대라서 그런지 요즘 활동하는 노인들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옛날에는 70 노인만 되어도 자다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편견에 우려했었는데 20세기 의학 발전이 거둔 커다란 성과일 수도 있다. 영화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고 결론이 뻔해서 중간에 나오려고 우물쭈물하다 끝까지 보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마약 마피아들의 생활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즐긴다는 것만이 인생의 모두인 것같은 사람들…. 어쩌면 언젠가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 순간 동물적 직감으로 살아가는 것같은 사람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 할 수없이 적응하는 사람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인간의 존엄성이 그 무지한 세계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상황을 영화로 연출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영화지만 정말 너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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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나이 든 모습이 어떤 화려했던 사람도 결국은 늙고 힘 없이 되고 만다고 느끼면서도 난, 클린트 이스트의 지금 모습이 젊었을 때 모습보다도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람만이 아름답게 늙을 수 있는 동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clint-eastwood-a-fistful-of-dollars1964-directed-by-sergio-leone-F4PB9T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시절 모습

 

First man (달에 첫발을 디딘 암스트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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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서 매주 수요일은 새 영화들이 선을 보이는 날이다. 어제는 유난히 표파는 창구에 사람들이 긴줄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난 영화카드가 있기때문에 기계에서 카드를 통해 표를 발급 받을 수가 있는데 기계에서 표를 발급받는것도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대부분의 경우에 실패를 하고 만다. 영화 상영 시간이 급박한데 너무나 긴줄에 매달려 표를 사려면 늦어질 것같아서 기계에서 표를 발급하려고 했었으나 역시 실패하고 긴줄의 뒤에 가서 섰다. 창구에서 표를 부탁하면서 기계에서 표를 받으려다가 실패했다고 설명하면서 시간이 늦었으니 다른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했더니 창구에서 오는 대답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들어가라고 했다. 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는 예고편 영화와 광고들에 할애되어서 그렇겠구나 하면서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영화가 시작된지 꽤 되었었다. 온통 화면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우주선 실험을 하는 암스트롱의 긴장한 얼굴 표정과 흔들리는 화면이 전부였다. 영화의 80프로는  시끄러운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채워졌었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자리 하나없이 좌석이 꽉 채워졌었다. 프랑스 영화관에서 이건 아주 드문일이다. 더군다나 이영화는 개봉된지 2주 된 영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80프로가 시끄러운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1초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영화 관련 비평을 읽어보니 감독인 Damien Chazelle 이  영화 속에 사용된 우주 비행 관련 기계들을 실제와 같은 것으로 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기 그지 없었지만 영화 상영 내내  나의 사고를 놓지 않는 단어들은 죽음, 삶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것이었다. 우주 비행을  하기 위한 인간의 조건도 매우 까다로울 것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우수 인재들이 죽음을 무릅쓴  모험에 뛰어드는 요인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암스트롱은 1930년 생이다. 1966년에 처음으로 우주 비행을 했고 1969년에 달에 첫발을 디딘 지구인이 되었다.  1969년에 아폴로 호의 대장으로 선발 되기 전에 3명의 우주 비행사가 불에 까맣게 타 죽는 사고도 있었다.   지구를 벗어나서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 그것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심장이 약한 나같은 사람은 어떠한 보상을 준다 할지라도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69년 7월 21일,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딛는 순간, 전세계에서  4억의 인구가 그 모습을 지켜 보고 환호했다. 암스트롱은 딸이 하나 죽고 아들만 둘이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여행 전날, 암스트롱은 아이들이 이미 잠 들었을 거라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부인의 권유로 결국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지만 말이다. 저렇게 까지 암스트롱을 위험한 우주 여행으로 내몰고 있는 진짜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는 혹시  이 지루한 지구내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장면은 아폴로호를 타고 성공리에 달에 도착했다가 돌아온 암스트롱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타행성에서의 감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갇혀 있어야 하는 연구소에 찾아 온 부인을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장면이다.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했을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 이것은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이다.’

비 속의 바스티유 거리

20181030_102919겨울을 알리는 보슬비가 내린다.  빠리는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겨울엔 비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겨울에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어린시절 일본에 갔을때 알았다. 겨울에 빠리에서는  햇빛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 그리고 회색빛 거리가 빠리의 겨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장소에 갔는데 너무 일찍 갔다. 잠시 까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다. 카운터에 앉아서 신문을  읽으며 모닝커피를 마시던 프랑스인들이  호기심 섞인 시선을 보낸다. 한때는 이 풍경을 몹시 좋아했었다. 아침의 자유라고 할까?

 

20181030_103349카페를 나와 약속 장소까지 걷는다.  걷는 것이  늘 상쾌하고 재미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개성 있는 상품들이 즐비한 곳, 가게의 이름도 독특하고 개성 있다. 지나가다 특이한 색갈의 운동화가 눈에 띈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프랑스인들은 아이디어가 출중하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도 디자인에서 색갈까지 재미있으면서도 뛰어나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런 재능들이 유럽에서도 유난히 사랑받고 부러움받는 민족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가끔 상점에 놓인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인들이 있다.  그들의 물건을 모방하는 아시아 인들을 몹시 경멸하는 눈치이다.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쨋든 나의 경우는 그 물건을 모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 본 다음에 사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냥 살짝 미소를 지어 마무리 한다.

20181030_103114바로 며칠 전만 해도 오후가 되면 더워서 땀이 났었는데 불과 며칠만에 겨울이 되었다. 올여름은 길었다. 뜨거운 열기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었고 그 더위가 싫지 않았었다. 2000년에만 해도 여름이 덥지 않아서 때로는 한여름에 코트를 걸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도무지 여름 옷을 걸쳐 볼 기회가 오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었다.  최근 들어서 여름에 더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여름이 길어진 것이 싫지 않다. 빠리에는 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 겨울을 예고하는  비를 맞으며 새삼 빠리를 정의하는 색갈은 회색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Mary 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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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시간이 나서 영화관을 찾았다가 좋은 영화를 만났다. 영국 영화여서 듣기 좋은 영국식 영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Mary wollstonecraft Godwin 이 그녀의 처녀시절 이름이다. Shelley라는 이름은 영국의 유명 시인인 Shelley와 결혼했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태어난지 11일째 되던 날에 어머니를 잃었다. 무정부주의자이며 정치 철학가였던 아버지가 책방을 운영하며 딸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가르쳐 주었다.그녀의 어머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어머니를 일찍 읽은 마리가 새어머니와의 불화때문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친척집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당시 유명하던 시인 쉘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리의 나이 16세였다. 쉘리의 나이는 20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때문인지 마리는 어머니의 묘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이런 배경이 나중에  프랑켄 슈타인이라는 책을 쓰게 되는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쉘리와도  주로 묘지에서 만나곤 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마리에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복동생이 아파서 죽어간다는 소식이 오고 마리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사실은 이복동생이 마리가 보고싶어서 꾸민 연극이었다.  런던에 있는 마리를 보기 위해 쉘리가 런던으로 달려오고… 쉘리는 마리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당시 정치 철학가였던 마리의 아버지를 숭배하고 있었다. 쉘리는 알고보니 결혼한 남자였다. 쉘리의 처가 찾아와서 마리에게 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쉘리와 동거를 시작하고 아기를 낳는다. 쉘리가 마련한 저택에서 이복동생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한다.쉘리는 낭비벽이 좀 심한 남자였다. 빚때문에 마리와 갓난아이 그리고 마리의 이복동생을 데리고 도망가던 날 비가 몹시 왔다. 갓난아이가 죽었다. 그 이후 마리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시인 바이런의 저택에 초대 되어 가서 전기충격을 통해 죽었던 개구리의 뒷다리가 움직이게 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을 구상했던 것같다. 마리의 이작품은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로 치부된다. 영화에서는 마리가 이 소설을 쓰고나서 그 소설을 출판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이 부각된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남편 쉘리에 의해서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다. 남편이 유명 시인이었기에 처음에 사람들은 혹시 쉘리의 작품이 아닌가하고 의심 하기도 한다. 동거하고 있던 마리는 쉘리의 처가 자살하자 쉘리와 결혼하게 되어 쉘리의 이름을 갖게된다.영화에서는 마리가 ‘프랑켄슈타인’작품이 자기 것임을 알리게 되는 부분까지만 다루지만  사실 쉘리는 1822년에 요트를 타다 풍랑을 만나서 죽고 마리는 1851년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그녀의 나이 53세였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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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났다. 아니, 그녀가 내가 가는 성당으로 왔다. 늦은 미사를 끝내고 그녀는 식사를 하고 싶어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의 호위병 이야기에 그녀는 열을 올린다. 왜? 마크롱 대통령은 아랍사람을 대통령 궁에서 근무하게 하느냐는 이야기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많은 아랍사람들과 아프리카인들을 수용해 왔었고 그로인해 끊이지 않는 사회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아랍사람을 쓰는 것응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친구는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간에 만족을 못하는 친구이다. 내 생각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랏일을 잘 보라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은 다르다. 대통령이 어떤 인물에게 어떤 특혜를 주는가를 일일이 따지고 있다. 적어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정도면 그만큼의 무엇이 있기때문이고 때문에 어느 정도의 특혜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들의 생각법은 다르다. 그녀는 프랑스 대통령들의 잘못을 하나 하나 이야기 하면서 프랑스도 왕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이다. 그러니까 모든 대통령을 못마땅해 한다. 그녀는 사실 엄청난 민족 주의자여서 프랑스 내에서 모든 외국인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옆좌석 사람들이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볼 정도로 열띠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1시가 되었다. 지하철을 놓칠까봐 부랴 부랴 전철역으로 갔는데 역시나 전철이 끊겼다. 할수없이 택시를 탔다. 둘이 택시를 타고 그녀가 먼저 내리고 나는 집이 그녀보다 멀어서  그 택시를 계속 타고 가는데  택시 운전수가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이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을 땄는데 프랑스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이야기 하면서 북한의 김정은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김정은은 독재자인데 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김정은이 미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참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아랍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전인수격으로 생각하는 방식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랍지역 사람들은 이라크에 미국이 개입해 일어난 전쟁의 피해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증오가 심한 듯 싶다. 사람들은 늘 자기자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고 남이 잘못한 것만 기억하곤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분쟁이 끝나지 않는 것같다.총체적으로 어떤 비극적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면 자꾸 무고한 희생자를 내는 비극은 조금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현대의 사람들은 무조건 어떤 빌미만 있으면 폭력적으로 희생자를 만들려고 작심하고 덤비는 것같다. 그래서 마음이 씁슬하다.

빠리의 음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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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은  일년 중의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1976년 프랑스의 음악 방송국에서 일하던 미국의 음악가  Joel Cohen은 기발한 생각을 해내었다. 일년 중에 밤이 가장 짧은 날인 6월 21일과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긴 12월 21일에 음악 축제를 개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미국인 음악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음악 축제 아이디어는 1982년에 와서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Jack Lang에 의해서 공식 축제로 자리를 잡게된다.

해마다 6월 21일이면 음악을 좋아하는 빠리지엔들은 밤을 새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빠리시내를흥으로 돋구곤 해왔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3일, 빠리 시내에 있는 콘서트 장 Bataclan에서

불행한 테러사건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이후, 빠리지엔들은 움츠려 들었었다.

몇년동안 레스토랑도 카페도 모두 공포의 분위기로 을씨년스러웠다.

그 공포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올해 빠리의 음악축제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 느낌이다.

미국인 음악가가 고안해 낸 음악축제는 이제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고

전세계 100여개국의 나라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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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빠리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테러의 악몽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유다.

인터넷을 통하여 빠리의 어느 지역에 어떤 음악들이 소개되는지 알 수 있다.

이날, 나는 유스타쉬 성당 근처로 나갔었다. 성당 옆의 까페에서 아랍 음악이

흘러 나오고 그 까페 앞에 모인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의 가요만큼이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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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한구석에서는 젊은 아랍인 여자가 랩을 부르고 있다. 랩은 저항음악이라고 해서

요즘 꽤 인기가 있는 음악이다. 어느 시대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있고 또 한국에서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저항하는 사람들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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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밤 9시가 넘었는데도 날은 아직 밝고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며 준비중인 까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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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halles에 최근에 완성된 건축물을 향해 간다. 언제 보아도 이 건축물은 너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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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를 거쳐 마래지구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는다. 온통 거리가 사람으로

메꾸어져 발 디딜 틈이 없고 모두들 몸을 흔들어 대고 있으니 빠져나갈 틈이 없다.

거리가 디스코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광란의 장이다.20180621_231619

괴성을 지르며 때로는 무당이 신들린듯 온몸을 흔들며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와

보즈광장에 다달았다.  예전에 이곳에선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또 민속음악까지 연주되곤했었다.

드문 드문 재즈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일뿐 아직도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사람들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것같다. 날이 어둡고 지붕이 있는 곳으로 오니 사진도 흐릿하게 나와서 사진 찍기를

멈추었다.  무서운 사건들의 연속으로 빠리지엔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가 벗겨질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밤이 점점 깊어 가는데 빠리는 흥으로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