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우산

parapluie-publicitaire-pliant-argente-noir요즘 날씨가 들쑥 날쑥이다. 빠리의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한때 프랑스인들이 날씨 닮아서 변덕스럽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햇볕이 쨍쨍나는데 굵다란 비가 후두둑 뿌리던 날, 우산을 사러갔다.  rue de rennes, 이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양한 상가들이 있어서 시간 가는줄 모른다. 어느덧 상가가 가득 들어선 길이 되고 만것이다. rue de rennes의 한쪽 끝에는 몽빠르나스 타워가 있고 또 다른 쪽 끝쪽으로는 쌩제르만 데프레의 유명한 까페들이 있다. 지성인들이 잘 드나드는 까페들이다. 우산 가게에서 우산을 고르는데 갑자기 회색우산이 눈에 확 들어온다.  언제 내가 회색을 좋아하게 되었지?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우산이 있었다. 초록색이었는데 우산대 끝에 앵무새가 조각되어 있는 우산이었다.  그 우산을 들고 다니면 앵무새 조각이 이쁘다고 말을 걸어오는 프랑스인들이 많았었다.  그 우산을 좋아했는데 먼저 번에 이사 하는 중에 잃어버렸다.  너무 안타까워서 그 우산을 샀던 가게에 가보았다. 그 가게는 소르본느 대학 앞 대로에 있었는데 그 우산가게가 없어져 버렸다. 너무나 속상했다. 그런데 오늘 우산을 고르다보니 회색빛 우산이 내 눈에 확 와서 닿는 것이다. 그랬다. 프랑스는 내게 회색을 연상시키는 나라였다. 처음 청운의 꿈을 품고 샤를르 공항에 내리던 날, 공항에서 빠리로 오는 거리는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도 회색이었고 도로도 회색이었고 그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도 대부분이 회색이었다. 아직 흑백 논리에 젖어 있다는 것도 모르던 시절, 난, 그렇게 회색주의자들의 세계에 진입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득한 젊은 날, 우물안 개구리처럼 내나라가 잘난 나라라고 잘난척 하며 프랑스 땅을 밟았던 그 젊은 날의 기억이 회색 우산이 계기가 되어 뚜렷하게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너무나 잘 정비된 회색 도로와 하늘과 도로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회색빛을 띄우던 도시, 빠리를 회색 자동차 안에서 호기심 가득찬 눈동자를 반짝이며 두리번거렸었다. 접히지 않는 우산은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기 쉬우니 작게 접어서 핸드백에 넣을 수 있는 우산을 찾았다. 우산가게 점원이 상냥하게 옆에 와서 일일이 우산을 펴서 보여준다. 접는 회색우산을 골라서 샀다. 회색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난, 프랑스화  되어 버린 한국인이 되었기때문에 회색빛 우산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난, 이제 흑백 논리가 아닌 회색 논리의 소유자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빠리의 미장원에서

21235159-Sourire-jolie-femme-avec-les-yeux-ferm-s-dans-la-jouissance-ayant-un-shampooing-au-salon-de-coiffure-Banque-d'images미장원에서 우연히 여자들의 수다를 엿들었다. 머리에 염색들을 하고 모여 앉은 여자들, 내가 들어서자 한 여자가 내게 말했다. ‘난, 너처럼 머리결이 곧았으면 좋겠어.’ 내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말을 했다. ‘ 우리는 곧은 머리를 부러워하지만 동양여자들은 우리의 곱슬머리를 부러워 해.’ 남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지 의문이 드는 여자였다. 그곳에는 네 여자가 앉아 있었다. 20대 30대 40대의 여자인듯 싶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38살이라고 밝힌 여자는 23살의 아들과 5살의 아이가 있다고 했다.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는 쌍둥이를 낳아서 더 이상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쌍둥이 엄마는 38세의 여자인, 5살 아이와 23살의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 물었다. ‘ 18살의 나이 차가 나는 그 두 아이가 같은 아빠의 아이니?’ 38세의 엄마가 대답한다. ‘ 너, 제정신이니? 18년을 한 남자와  계속 산다고? ‘…. 한국적 사고 방식으로 볼때 참 정신 없는 세계이다. 더이상 한 남자와 한평생을 같이 한다는 사실이 정상이 아닌 사회인 것이다.

그녀들은 버림 받은 아이의 심리 상태보다 더 심각한 상태는 부모로부터 거절당한 아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아이만 데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혼자 사는 여자들인 것같았다. 혼자 사는 여자들 이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있는 프랑스 사회는 여러가지 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학교 선생과 심리 상담자, 그리고 주치의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이들을 기르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정신없는 사회이다. 그녀들은 또 동양인의 머리결, 백인의 머리결, 흑인의 머리결, 혼혈아로 태어난 아이들의 머리결에 대해서 전문인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정신이 혼란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어쩌면 물질의 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고 물질의 한 상태가 되어버린 그 상태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같다는 느낌…. 세계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수준이 맞는 남자 (Un homme à la hauteur)

234297.jpg-r_1280_720-f_jpg-q_x-xxyxx

월요일,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영화관엘 갔다. 시간이 맞는 영화는 이영화 밖에 없었다.

Jean du Jardin 은  프랑스에서 잘 나가는 배우이다. 텔레비젼에 코믹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영화를 했고

미국에서 오스카 상을 획득함으로써 배우로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영화배우이다.

이 영화에서 졍 드 자르댕은 난장이로 알렉산드르로 분장한다.  알렉산드르는  난장이지만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공한 건축가이다.

정상적인  미녀 변호사, 디안의 마음을 뺏는다.

알렉산드르가 마음에 들지만 난장이라는 그의 핸디캡때문에 디안은 많이 망설인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때문에  알렉산드르를 사랑하지만 다가 가지 못하는 디안에게

변호사 사무실 비서는 진짜 불구는 디안이라고 쏘아 붙인다.

서양세계를 지배하는 생각이 이런것인가 생각을 하게도 하는 영화이다.

외모적인 불구때문에 사랑을 망설이는 사람은 마음이 불구라고 몰아붙인다.

이 영화에서 졍 드 자르댕은 본래의 키, 176cm 보다 40cm를 줄여서 나온다. 그가 난장이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뒷모습은 진짜 난장이로 대치했고 약간의 테크닉을 사용했다고 한다.

부담감 없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 간간이 난쟁이의 황당한 도전에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한다.

자신의 불구에도 불구하고 절대 기가 죽거나 고민하지 않는 영화 속의 알렉산드르는 만화적 인물같기도 하다.

403007.jpg-r_640_600-b_1_D6D6D6-f_jpg-q_x-xxyxx

427969.jpg-r_640_600-b_1_D6D6D6-f_jpg-q_x-xxyxx

419687.jpg-r_640_600-b_1_D6D6D6-f_jpg-q_x-xxyxx

퐁피두 병원

IMG_0365

빠리에서 8호선 전철을 타고 서쪽 끝 종점 Balard에서 내리면  퐁피두 병원에

다다른다. 이 병원은 특히 나이가 많으신 분들을 잘 보살피는 병원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장수하는 분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빠리에 살면서

실감하는 사실은 80에서 90 연세의 분들도 운전을 하고 삶을 즐기면서

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럼 결코 뒷방 늙은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 노인들에게 접근해서 대화를 나누었다가는

큰코 다친다. 특히 프랑스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예민한 인종이다.

단순하게 던지는 무심한 질문 한마디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말이다.

IMG_0364

지난 해 11월, 바타끌란 테러때 이 병원은 매우 효율적으로 부상자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지난 12월에는 이 병원에서 평판 있는 심장전문의가 병원 7층에서 투신 자살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 이유는 왕따를 당하여

죽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는 동료들의 증언에 의해

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IMG_0363

IMG_0362

IMG_0360

빠리에 살면서도 나에겐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삶,

여유있고 자유롭게 보이는 그들에게도 삶은 결코 녹록치 않은가 보다.

모든 풍요와 자유, 그리고 그 여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노병사의 문제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