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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nier train pour Busan ( 부산행 마지막 열차) – 영화

093948.jpg-r_1280_720-f_jpg-q_x-xxyxx한국 영화 ‘부산행 마지막 열차’가 빠리에 왔다.

사실 먼저번에 영화관에 갔을때 이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지만 너무 무서울 것같아서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프랑스 친구가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정으로 그 제안에 응했다. 의외로 영화관이 꽉 찼다. 보통때 영화를 보러가면 영화관이 거의 비어 있는 상태인데  한국 영화 상영에 프랑스인 관객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객석을 꽉 채우고 말았다.

이혼한 아빠가 엄마가 보고싶어서 부산으로 가겠다는 아이를 동행하고 가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인데 꿈에 볼까 두렵기까지한 괴물들의 등장에 나는 영화를 보는 시간이 내내 불편했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영화를 지켜보는 것같았는데 그것은 단지 외면적으로 등장하는 흉한 몰골의 사람들에 압도된 것뿐이다. 저러한 규모의 인력을 동원해서 연기 시킬려면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을 거라는 점에서 감독의 용기를 조금 높이 살 수 있을 것같았다.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현세태를 전염병으로 은유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영화의 분장실력이 뛰어나게 발달했다는 점이 인정이 되었다. 나는 시종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영화를 관람했는데 옆의 프랑스 친구는 웃으면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그 친구 하는 말이 ‘이런 영화인줄 몰랐다’였다. 아마 영화가 한국 영화라는 사실만 알고 가자고 했던가보다. 내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관객들이 많이 몰렸다는 사실에 뿌듯했었다.

하지만 이런식의 영화들이 해외에 많이 나오면 늘 한국은 폭력이나 아주 비극적인 드라마의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인식되어 처음부터 한국을 얕보게되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영화를  해외로 수출할때는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깊이 있는 사건들을 인간의 정신력으로 승화시키는 이야기들을 시나리오로 하고  영화 촬영소품들은 최고의 품질을 가진, 그리고 한국적인 미를 가진 소품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들이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상을 탔다고 하는 한국 영화 작품들은 외국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비극들이 많았다. 아니 비극이라 표현할때는 조금 문학적 느낌이라도 있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내가 느낀 바는 철저한 무지로부터 시작되는 불행들이었기때문에 그 작품들이 상을 탔다고 해도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은 매우 예의바르기때문에 남의 약점을 꼭 찝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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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페미니즘, 서양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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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빠리지엔’이라는 신문을 보았어. 튀니지의 여류작가가 ‘페미니즘’에 대하여 썼더군. 참 진부한 주제라는 생각을 했어. 벌써 1990년대 내가   빠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국인 친구들과 에꼴 노르말이라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계시던 유명한 철학자, 데리다의 강의를 들으러 다니곤 하던 시절에 벌써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고 부엌으로 귀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거든. 그 튀니지의 여류 작가는 ‘동양의 페미니즘’ ‘서양의 페미니즘’이라고 타이틀 써놓고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들에 반대하는 여성운동이라고 토를 달았더군.

튀니지는 아랍문화권이지. 최근에 프랑스 바닷가에서  아랍여성들이 옷을 입은채로 물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여 이곳 국무총리인 발스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마리안느의 노출한 젖가슴을 운운하며 아랍여성들의 행위를 비난해서 또 논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있지만 말이야.

페미니즘으로 돌아가서 요즘은 왠지 페미니즘이라 하면 마치 미개국가에서 벌어지는 여성 운동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원래 페미니즘의 원조는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푸리에라고 하는데 보편적인 조화를 주장하는 철학자였던 그는 남자와 여자의 카테고리를 810개로 분류했었다고 하는군.

핵심만 보자면 페미니즘이란 여자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권한을 달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녀들인 진심으로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갖기를 원하는지는 많이 의심스러워. 내 경험에 의한 것인데 사회나 가정에서 여자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것은 결국 여자들이더라고. 그러니까 그녀들의 운동에 순진하게 잘못 가담했다가는 순진한 사람만 멍이 든다는게 내 생각이야.

프랑스 사회도 마찬가지야. 대부분의 생각들이 남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생각을 지지해주는 것도 여자들이지. 다른 여자가 다른 주장을 하면 여자들이 나서서 그 다른 주장을 하는 여자를 박살내고 있거든.

위의 사진에서 표어로 내걸고 있는 불어가 뜻하는 말은 여자들이 초라하게 잡일을 하고 있을때 남자들은 거만하게 잘난척하고 있다는 뜻인데 …

난, 거기도 여자들이 남자들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고 여자들이 여자들의 위치를 분명히 낮추고 있을거라는 짐작이야. 왜냐하면 내가 빠리에서 아랍권 여자들을 조금 만나 보았는데 정말 그녀들은 한국의 어머니들만큼이나 남자를 높이 생각하고 있었거든.

모르지, 요즘 한국 tv 드라마를 보면 여성의 지위가 꽤나 향상된 것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 여성들의 내면이 향상된 지위에 맞게 성숙되어 있는지는 의심 스러워.

아랍에도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미래에 아랍권에 어떤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게 될지 흥미가 진진하기도 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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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와서 드는 생각이 그래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일거라는 생각이다. 요즘같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척박해진 인간성을 만나지 않으려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녀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가까운 까페에 매요일마다 각종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한 6개월 전에 알았었지만 무엇에 쫓겼는지 직접 가보지는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조금 시간이 되었던 것같다. 18세기 유명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그 까페 2층에 이미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고 각자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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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빨강 머리의 한 프랑스 여자가 낭송을 하고 있었는데 아는 얼굴이었다.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이 세상을 떠나자 샹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여자, 그때가 나이가 60이 넘었다고 했었다. 언제나 엄청난 양의 가방을 힘겹게 들고 다녀서 안되보였던 여자인데 오늘은 제법 화장도 하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시 낭송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와서 일본 여자냐? 중국 여자냐? 하고 묻는다. 이 여자는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 내 생각에 당신과 나는 아는 사이인 것같은데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라고 했더니 ‘ 아! 누군지 알겠어.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는다. 마침 한남자가  카세트용 라듸오를 들고 나가서 정말 프랑스적인 샹송을 아주 차분하게 노래한다. 그는 자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늘 양노원에 불려다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한 6개월전에 다른 까페에서 본 사람이다. 그때만 해도 참 젊었던 것같은데 6개월 사이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되어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의 샹송은 여전히 좋았다. 노래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감성은 젊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시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나에게 나와서 시를 하나 낭송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못할 것도 없지만 그리고 이제는 자유롭게 나아가서 불어로 시 하나쯤은 즉석에서 지을 수도 있을 것같았지만 아직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니까 다음기회에 하겠다고 사양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서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까의 그 빨강 머리 여자가 나에게 와서  이번에 출판했다는 시집을 보여준다. 나이가 70은 된것같은데 정말  끈기가 대단한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는 철학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모만 초라해졌지 그녀의 내면은 아직도 왕성하게 꿈을 키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여자가 나에게 와서 북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한다. 북한의 김정은이 미친사람이라고 한다. 북핵을 개발했어도 결코 남한을 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때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 또 요번에 티벳의 달라이야마가  프랑스에 왔는데 프랑스의 어떤 정치인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프랑스 정치인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왜?냐고 내가 묻자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프랑스 정치인들이 티벳의 달라이마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였다. 휴머니즘은 이제 한물 갔다. 한국에 전쟁이 났던 시대만 해도 휴머니즘이 존재했기때문에 유엔에서 한국 전쟁에 참전을 했었지만 이제는 한국에 무슨 일이 있다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시리아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리아 사람들이 그토록 도와 달라고 애원을 해도 유럽의 어느나라도 꿈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휴머니즘’이란 말이 의미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First Date ( 첫번째 데이트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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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는 많은 영화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관은 Les Halles에 있는 영화관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날때마다 이 영화관을 즐겨 찾는다. 어제 오후에 오랫만에 영화관을 찾았는데  ‘First Date’라는 제목의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단번에 현미국 대통령 부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웅변 능력을 모르지는 않았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요소로서 그의 웅변 능력을 미쉘 오바마가 미리 알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똑똑하고 현명한 여자, 미쉘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한 여자였다는 것이 잘 드러나는 영화이다. 혼혈아로 태어나서 두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속에서 오바마도 역시 혼혈아로 태어나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사람으로서 미국의 하버드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다고 한다.  백인인 여자와 결혼해서 오바마가 태어났지만 오바마의 아버지는 하버드를 중퇴한  이후 일정한 직장을 가져보지 못하고 46세에 요절했다. 오바마는 그아버지가 평생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었다는 열등감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었던 것같다. 미쉘은 그런 오바마의 열등감을 아주 잘 위로해주었다.  가끔 난, 아프리카 흑인들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한남자의 성공뒤에는 한여자가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서양 세계에서는 조금 달랐었다. 이 이야기를 펼치자면 너무 길고 복잡해서 이만 줄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결국 오바마가 성공하기 위하여 오바마의 아버지가 문화 충격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인종간의 갈등, 문화충격의 갈등… 그런 것들은 어쩌면 한세대만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는 위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어쨋든 미쉘 오바마가 아주 괜찮은 여자였다는 결론으로 난, 이 영화를 마무리했다. 다음 사진들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새로 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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