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라듸오에서빅톨위고는숙명에반대하여싸우라고했다는멘트를들었습니다.
정말서양적인멘트이죠.동양은자연에순응하여복종하며사는것이덕일텐데말이죠.제가서양문명을좋아하게
된이유도바로서양사람들의부지런함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보통몸이편하게사는것을추구하고그래서아무일도하지않고사람을부리며사는것을
최고의삶이라는편견들이주로사회에팽배해있습니다.하지만서양은일하지않고사는삶을
매우혐오하는것같았어요.어쩌면그이면에일하지않고사는삶에대한동경이더클수도있다는생각도
듭니다.그래서세실리아는오늘조블이웃분들에게어떤이야기를들려드려야겠다는생각을했어요.
조금무리인지는모르지만스테판베른느라는방송인이주관하는프로를찾아보았습니다.
제목은’빅톨위고의숨겨진이야기들’입니다.빅톨위고의이야기가시작되기전에오페라’라보엠’을
공연하는이야기가잠깐나옵니다.정명훈이지휘하는오페라라고하는군요.
빅톨위고는젊어서’나는샤또브리앙과같은작가가되거나아니면아무것도안되겠다’라고선언했다고합니다.
사랑하는아델과결혼해서아이넷을낳아기른빅톨위고는아내도죽고애인도죽고아이들도다죽은후
손자들의아버지노릇까지할정도로오래살았습니다.
사실빅톨위고는아내가자신의가장친한친구와사랑에빠진것을오랫동안몰랐다고합니다.
아내가먼저배신을한거죠.
위의비데오를보시면빅톨위고를영화한장면도나오고빅톨위고박물관도나오고빅톨위고의작품이영화화된
‘쟝발잔’,’노틀담의곱추’장면도나옵니다.빅톨위고가사랑했던여인들,아델,줄리엣트그리고레오니…
그래도줄리엣트가가장나중까지동반자로남았었습니다.
스스로황제임을자처했던나폴레옹3세가쿠데타를일으켰던1850년에빅톨위고는나폴레옹3세에반대하여
영국으로망명하여20년을지냅니다.그망명기간동안’쟝발잔’도쓰여지고’노틀담의곱추’도쓰여졌다고합니다.
특별히사랑했던첫째딸레오뽈딘이남편샤를르와함께세느강에서물놀이하다빠져죽는불행을겪었고요.
언니보다6살아래였던둘째딸은아버지의사랑을얻기위해무의식적으로언니의삶을모방하고자하는성향이있었다고요.위비디오에서는빅톨위고를연구하고좋아한역사학자,작가들의입을빌려빅톨위고의생애를이야기합니다.그가20년간망명생활을했던영국의집은지금빅톨위고의박물관이되어있고요.
빠리에도마래지구에위치한쁠라스보즈에빅톨위고의박물관이있습니다.
빅톨위고는또’이세상에서가장중요한것은자유이다.자유를위하여투쟁하라!’라고외쳤다고합니다.
하고싶은것을다하고이루고싶은것을다했던사람으로보이는데빅톨위고의얼굴은매우우울하고근심이
가득합니다.아마도인간에대한사랑이많았기때문이라고생각이되고요.그의얼굴을보면
또가난한사람들을위해살다가간아베삐에르신부님의얼굴이떠오릅니다.
빅톨위고는가난한사람들의인간조건을개선하기위해많이노력한작가라고합니다.그건그의작품을
통해서잘알수있는사실들이죠.빅톨위고가말년에는스피릿티슴이라는즉죽은사람과소통하는놀이에도
관심을많이가지고죽은딸고교신을하는일을했다고하네요.마치한국의무당들이죽은이들을
불러내어서말을걸듯이말이죠.
1870년에빅톨위고의요구를들어준정부으덕분으로빠리에금의환향한빅톨위고는1876년상원의원으로뽑혀서
가난한이들을위하여많은일을하였다고합니다.비데오거의마지막부분에가면프랑스에서대법원장을지내고
사형을폐지시킨변호사분이나오셔서빅톨위고를말합니다.
빅톨위고는살아생전에자신의이름이붙은거리를선물받은유일한작가라고합니다:Avenuevictorhugo.
맨마지막장면에서는요리사가나와서빅톨위고가즐겨먹던음식레시피도선사합니다.
빅톨위고는1885년83세의나이에숨을거두었습니다.
시간이있으면더상세히번역해드려면좋았을텐데죄송하게생각합니다.
그래도볼만하비데오니잘감상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