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부산행 마지막 열차’가 빠리에 왔다.
사실 먼저번에 영화관에 갔을때 이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지만 너무 무서울 것같아서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프랑스 친구가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정으로 그 제안에 응했다. 의외로 영화관이 꽉 찼다. 보통때 영화를 보러가면 영화관이 거의 비어 있는 상태인데 한국 영화 상영에 프랑스인 관객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객석을 꽉 채우고 말았다.
이혼한 아빠가 엄마가 보고싶어서 부산으로 가겠다는 아이를 동행하고 가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인데 꿈에 볼까 두렵기까지한 괴물들의 등장에 나는 영화를 보는 시간이 내내 불편했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영화를 지켜보는 것같았는데 그것은 단지 외면적으로 등장하는 흉한 몰골의 사람들에 압도된 것뿐이다. 저러한 규모의 인력을 동원해서 연기 시킬려면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을 거라는 점에서 감독의 용기를 조금 높이 살 수 있을 것같았다.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현세태를 전염병으로 은유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영화의 분장실력이 뛰어나게 발달했다는 점이 인정이 되었다. 나는 시종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영화를 관람했는데 옆의 프랑스 친구는 웃으면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그 친구 하는 말이 ‘이런 영화인줄 몰랐다’였다. 아마 영화가 한국 영화라는 사실만 알고 가자고 했던가보다. 내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관객들이 많이 몰렸다는 사실에 뿌듯했었다.
하지만 이런식의 영화들이 해외에 많이 나오면 늘 한국은 폭력이나 아주 비극적인 드라마의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인식되어 처음부터 한국을 얕보게되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영화를 해외로 수출할때는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깊이 있는 사건들을 인간의 정신력으로 승화시키는 이야기들을 시나리오로 하고 영화 촬영소품들은 최고의 품질을 가진, 그리고 한국적인 미를 가진 소품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들이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상을 탔다고 하는 한국 영화 작품들은 외국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비극들이 많았다. 아니 비극이라 표현할때는 조금 문학적 느낌이라도 있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내가 느낀 바는 철저한 무지로부터 시작되는 불행들이었기때문에 그 작품들이 상을 탔다고 해도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은 매우 예의바르기때문에 남의 약점을 꼭 찝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