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사진 속의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영화의 국적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였다. 유럽에서도 복지가 가장 잘 되어있는 나라들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역시 사랑이 테마이다. 늘 문학과 영화에서 말해지는 주제이지만 싫증나지 않는 주제이다. 북유럽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빠리의 Les Halle 영화관에는 영화관이 30개가 넘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아주 작은 방에 배치되어 있었고 관객수도 20명정도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01년이었다. 어차피 현대는 물질만능의 시대로 접어들어서 돈이 신이 된 것을 기정 사실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1901년대부터 북구 유럽은 돈이 신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영화의 스토리가 증명해주는 것같았다. 북구 유럽 사람들은 솔직하고 신사적으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도 사랑때문에 자살도 하고 인생을 망치기도 하는 것이다.
1901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오페라 비평을 주로 쓰는 젊은 아르비드는 화가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그 화가의 딸, 리디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아르비드는 리디아를 만나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기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한마디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리디아는 돈많고 나이 든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얻은 리디아는 다시 스톡홀름을 찾아서 아르비드를 유혹한다. 아르비드도 돈많은 집 딸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도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한번 아르비드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리디아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허락을 얻어내고 스톡홀름에서 혼자 생활하며 아르비드를 기다린다.
아르비드는 자신은 이미 결혼했다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리디아에게 밝히지만 본심은 리디아를 사랑하고 있다. 리디아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자살을 하고…
당신같이 부드럽고 교양있는 남편과 결코 이혼할 수 없다는 부인에게 아르비드는 결국 우리의 결혼은 거짓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서 가방을 꾸린다.
기차역에서 가방을 싸서 부인곁은 떠나온 아르비드와 딸을 결코 너같이 방탕한 여자(리디아)에게 줄 수 없다는 전남편으로부터 간신히 허락을 얻어 데리고 나온 딸을 동반한 리디아가 마주치는데 리디아는 아르비드의 시선을 피하면서 딸을 데리고 발길을 재촉한다.
진부한 주제이지만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했어야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사랑이 행복일까? 행복이 사랑일까?
엇갈린 선택 속에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인 듯도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