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알리는 보슬비가 내린다. 빠리는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겨울엔 비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겨울에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어린시절 일본에 갔을때 알았다. 겨울에 빠리에서는 햇빛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 그리고 회색빛 거리가 빠리의 겨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장소에 갔는데 너무 일찍 갔다. 잠시 까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다. 카운터에 앉아서 신문을 읽으며 모닝커피를 마시던 프랑스인들이 호기심 섞인 시선을 보낸다. 한때는 이 풍경을 몹시 좋아했었다. 아침의 자유라고 할까?
카페를 나와 약속 장소까지 걷는다. 걷는 것이 늘 상쾌하고 재미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개성 있는 상품들이 즐비한 곳, 가게의 이름도 독특하고 개성 있다. 지나가다 특이한 색갈의 운동화가 눈에 띈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프랑스인들은 아이디어가 출중하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도 디자인에서 색갈까지 재미있으면서도 뛰어나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런 재능들이 유럽에서도 유난히 사랑받고 부러움받는 민족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가끔 상점에 놓인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인들이 있다. 그들의 물건을 모방하는 아시아 인들을 몹시 경멸하는 눈치이다.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쨋든 나의 경우는 그 물건을 모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 본 다음에 사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냥 살짝 미소를 지어 마무리 한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오후가 되면 더워서 땀이 났었는데 불과 며칠만에 겨울이 되었다. 올여름은 길었다. 뜨거운 열기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었고 그 더위가 싫지 않았었다. 2000년에만 해도 여름이 덥지 않아서 때로는 한여름에 코트를 걸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도무지 여름 옷을 걸쳐 볼 기회가 오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었다. 최근 들어서 여름에 더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여름이 길어진 것이 싫지 않다. 빠리에는 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 겨울을 예고하는 비를 맞으며 새삼 빠리를 정의하는 색갈은 회색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