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집 주위 사방 1km 이내에서 이동 가능하다는 통제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곳이 있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조그맣고 까만 소녀가 긴머리를 하나로 묶고 앉아 있었다. 그 옆에 가만히 앉으니 눈 앞으로 태양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기후변화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다. 기후가 변하기 전, 빠리에서 11월은 회색빛 을씨년스러운 날씨만 볼 수 있는 달이었다. 문득 옆으로 시선을 옮기니 소녀의 갸냘픈 발목이 눈에 들어온다. 춥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녀를 유심히 관찰한다. 파키스탄이나 인도 출신의 소녀일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옆에 바랜빛깔의 커다란 분홍색 가방을 놓고 있었다. 아마도 학교에서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인듯 싶었다. 9살쯤 되었을까? 보통 어린아이들은 부모들이 동반하곤 하는데 무슨 사연이 있을 법도 하다.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또릿또릿하게 생겼다. 긴 속눈썹이 인상적이다. 바랜 분홍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다고 말을 해주려다가 갑자기 망설여졌다. 이 아이는 불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아이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말없이 손가락으로 그 아이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는 부부을 가르켰다. 아이가 센스가 있는지 얼른 알아듣고 운동화 끈을 매기 시작한다. 까만 얼굴에 바싹 마른 체형이라 내가 혹시 나이를 너무 어리게 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형색은 몹시 가난해 보였다. 가난해 보여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애틋한 감정이 일어난다. 이런 아이라면 데려다가 기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난해 보이는 것이 이런 애틋함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구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일어난다.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아이는 내 자리를 지나쳐서 뒷쪽으로 가서 앉았다. 창밖으로 울긋불긋한 가로수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시 그 아이를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를 지나쳐서 앞자리로 가 앉는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 아이는 내가 느끼는 애틋함을 알아채린 것일까? 그래서 내 눈 사정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일까?
창밖 거리 풍경에 사로잡힌 사이 버스는 종점에 다다렀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어디에서 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내리는지 보아둘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생전 처음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왜 이런 애틋한 감정이 드는 것일까? 어쩌면 그 아이도 내 이런 감정을 알아차렸기에 앞자리에 와서 앉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느끼는 동물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