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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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났다. 아니, 그녀가 내가 가는 성당으로 왔다. 늦은 미사를 끝내고 그녀는 식사를 하고 싶어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의 호위병 이야기에 그녀는 열을 올린다. 왜? 마크롱 대통령은 아랍사람을 대통령 궁에서 근무하게 하느냐는 이야기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많은 아랍사람들과 아프리카인들을 수용해 왔었고 그로인해 끊이지 않는 사회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아랍사람을 쓰는 것응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친구는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간에 만족을 못하는 친구이다. 내 생각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랏일을 잘 보라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은 다르다. 대통령이 어떤 인물에게 어떤 특혜를 주는가를 일일이 따지고 있다. 적어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정도면 그만큼의 무엇이 있기때문이고 때문에 어느 정도의 특혜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들의 생각법은 다르다. 그녀는 프랑스 대통령들의 잘못을 하나 하나 이야기 하면서 프랑스도 왕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이다. 그러니까 모든 대통령을 못마땅해 한다. 그녀는 사실 엄청난 민족 주의자여서 프랑스 내에서 모든 외국인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옆좌석 사람들이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볼 정도로 열띠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1시가 되었다. 지하철을 놓칠까봐 부랴 부랴 전철역으로 갔는데 역시나 전철이 끊겼다. 할수없이 택시를 탔다. 둘이 택시를 타고 그녀가 먼저 내리고 나는 집이 그녀보다 멀어서  그 택시를 계속 타고 가는데  택시 운전수가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이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을 땄는데 프랑스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이야기 하면서 북한의 김정은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김정은은 독재자인데 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김정은이 미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참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아랍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전인수격으로 생각하는 방식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랍지역 사람들은 이라크에 미국이 개입해 일어난 전쟁의 피해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증오가 심한 듯 싶다. 사람들은 늘 자기자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고 남이 잘못한 것만 기억하곤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분쟁이 끝나지 않는 것같다.총체적으로 어떤 비극적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면 자꾸 무고한 희생자를 내는 비극은 조금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현대의 사람들은 무조건 어떤 빌미만 있으면 폭력적으로 희생자를 만들려고 작심하고 덤비는 것같다. 그래서 마음이 씁슬하다.

줄리엣의 남북한 통일과 핵무기 폐기에 대한 강의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 어떤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입구에 북한에 대한 서적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고 오후 7시에 강연이 있다고 했다. 줄리엣과 또 한사람의 프랑스인이 북한과 트럼프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했다. 호기심으로 그 강의를 들었다. 프랑스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지 거의 100명의 좌석이 꽉 찼다.
강의를 하는 사람은 왜?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그렇게 관대한지 의아해 하는 눈치다. 지난 번 싱가폴에서의 회담 이후 김정은은 매우 바빠졌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이 김정은에게 만남을 신청했고 일본의 아베총리도 그에게 만나자고 했단다. 모두 이번 9월에 약속이 잡혔다고 한다.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트럼프는 2년 반안에 비핵화를 이루고자 하지만 사실 북한의 지리적 조건이 거의 80프로가 산이기때문에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으로 옮겨 놓을수도 없는 것이고 핵을 해체하는 것도 사실은 북한의 기술자들이 해야 할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이 핵을 해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일성 시대에 북한을 산으로 된 성곽을 쌓을 것이라고 공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80프로가 산인 북한에 어떤 성곽이 만들어 져 있는지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북한의 핵을 해체하는데는 15년 내지 20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에게 핵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 정당성이 없다는 이야기라고도 덧붙인다. 어느 나라에 미사일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를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이란에서 있었던 일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란은 핵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미국이 개입했던 것이고 그렇게 해서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이미 핵무기가 완성된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다고 해도 미국으로서는 골치가 아플 것이다. 핵폐기를 위한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이다. 한반도가 통일을 하지 못하고 연맹제도를 이야기 하는 배경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남한의 젊은이들이 통일 비용을 지불하기 싫어하기때문이라는 이유가 그중의 하나이라는 것이다.
이북이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미 자유의 물결이 들어섰고 그 예로 줄리엣이 몇달 전에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 북한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손님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더란 이야기이다. 음식 맛은 어땠는지 종업원의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등이라는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이 시작되었을때 난,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분단된 원인은 주위의 강대국들이 원인이다. 일단은 일본이 책임이 있고 미국과 소련도 한국 분단의 책임이 있다. 이 강대국들에 책임을 묻기 위해 통일 비용을 내라고 하면 가능할 것인가? 라고…
대답은 그 강대국들이 한국의 통일에 관심이 없기때문에 당연히 ‘노’라는 답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여러명의 프랑스인들이 나를 묻잡고 말한다. 아마도 한국이 강대국들의 희생물이었다는데 동정을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 희망의 빛이 비친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국이 왜? 한국 일에 뛰어들어서 감 놔라 배놔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통일이 요원한 것은 분단이라는 비극을 안고 살면서도 오로지 일신의 평안함과 안일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서 제대로 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사람같은 사람

7628190_0a95493a-3040-11e8-87da-639a5809d05d-1_1000x625요즘 프랑스 메디아는 사람같은 사람이었던 한 경찰관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프랑스는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고 부러움의 대상인 나라이다.  하지만 오래 살다보니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안정된 느낌은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겁쟁이들이 많다는 느낌에 빠져들때가 많았다. 남자다운 남자, 남을 위해 희생하려는 남자가 많이 결핍되어 있었다. 어쩌면 풍요로운 경제력이 뜻을 위해 사는 것보다는 일신의 조그만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신문을 보다보면 가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기사화 되곤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그것도 필요 공급을 따르는 이치인지는 몰라도 정말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23일 트레브(Trèbes)라는 프랑스의 조그만 마을에서 한경찰관이 슈퍼마케트에 인질로 잡혀 있는 여자를 대신해서 인질로 자처했다가 살해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경찰관의 이름은  아르노 벨트람(Arnaud Beltrame)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자발적으로 희생했다고 언론에서 난리가 난것이다. 그의 유해는 28일 앵발리드에서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로 장례를 치루게 된다.

가슴이 뭉클하게 감동을 주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아르노씨는 33살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동정녀 마리아님께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연후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서 시청에서 결혼을 2년 전에 했고 돌아오는 6월에 성당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감정을 더하게 한다. 아르노씨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하여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아들이었기때문에 그의 이번 행동이 그다운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부인은 자기 남편이 이세상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남편감이었다고 아쉬워 한다. 4월 1일이 부활절,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던 주에 장례식을 치루는 가톨릭 신자 프랑스 경찰관, 그도 33살에 가톨릭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웬지 모르게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이 있을 것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작금의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불만을 많이 품고 계셨던 프랑스인 가톨릭 신자 할머니들은 이일로 프랑스에 가톨릭 정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희망에 들뜨고 계시는 듯도 하다.

사람다운 사람이 귀한 시대에 의연하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을 보여준 사람다운 사람, 아르노 경찰관에게  경의를 표하고 명복을 비는 바이다. 아래사진은 트레브 마을의 슈퍼마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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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록가수, 조니 헐리데이와 중국의 장수 노인 이 청운 (256살까지 살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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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가수로는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었다. 프랑스 록가수인 조니 할리데이가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지 모르지만 프랑스에서는 무척 사랑받는 가수였다. 조니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델로 삼은 가수였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여가수 중에  ‘실비 바르탕’이라는 여가수가 있었는데 그녀의 첫남편이기도 했던 조니 할리데이가 최근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였지만  그가 부른 노래 ‘ penitentier’는 곡의 웅장함때문에 내 중학교 시절에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1943년생인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의사에게 죽는 것이 두렵다고 살고싶다고 애타게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록가수로 프랑스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었고 많은 앨범을 냈고 콘서트도 많이 해서 재산이 또한 장난이 아니게 많은 사람이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보통 암환자도 생명을 잘 연장시키는데 그가 그렇게 쉽게 죽었다는 사실이 나에겐 의문이기도 하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없을 것같던 그런 가수의 외모를 한 그가 죽음이 두렵다고  … 살고 싶다고  애절하게 말했다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우연히 256살까지 산 남자라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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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살까지 살았다는 이남자는 이름이 ‘이청운’이다.위키피디아에서 찾으니 그가 죽은 날이 1933년 5월 6일이다. 태어난 날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10살때부터 약초를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원래 중국 문명은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는 자기가 256살이라고 천명했다고 한다.  약사이고 한의사라고 자기를 칭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인간이 256살을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이남자의 256살때 사진을 찾기는 했는데 이곳에 올라가지가 않는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메세지가 떴다. 엄청난 주름살이 있었고 눈동자도 다르다.  사람의 심리는 저렇게 늙어서도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조니 헐리데이, 그렇게 에너지가 많고 그렇게 혈기 왕성하던 가수가 74세의 나이에  죽음이 두렵다고  살고싶다고 애타게 말하는 영상을 보면서 문득 이글이 쓰고 싶어졌었다. 256살 남자의 얼굴을 블로그 친구분들께 보여주고도 싶었는데 인터넷에 256살된 남자라고 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신: 웹블로그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오랫만에 한글로 글을 썼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들어오겠습니다.

웹블로그 블로거님들, 성탄절을 즐겁게 맞이 하시고 돌아오는 새해 福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지경 세상,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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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대의 발명품 중에 하나가 컴퓨터라고 했다.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의 발달로 요즘은 모두들 인터넷 세상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혼자 있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에서 12000km나 떨어져 있는 이곳 프랑스 빠리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알 수 있고 한국에 있는 지인과 바로 옆집에서 전화하는 것처럼 통화도 할 수 있고 전세계가 바로 1일 생활권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요즘 나를 당혹하게 하는 일은 2016년 10월 10일에 내가 블로그에 올렸던 기사에 대해  많은 댓글이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영어로 댓글을 달았는데 내블로그 글에 대해 높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때로는 일본어로 댓글을 단 이도 있고 아랍어로 댓글을 단 이도 있는데 한결같이 내블로그 글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인가? 호기심으로 그들이 남긴 주소 위로 클릭을 해보았다. 외국인들의 광고 사이트가 많았다. 묘한 호기심이 작동을 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내글을 읽기나 하고 이런 댓글을 쓴것인지 아니면??? 도무지 이들의 댓글의 목적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댓글을 단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인데 심심해서 댓글을 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외국인들의 댓글 찬사에 싫지만은 않으면서도 무언지 모르게 께름칙한 것이 요즘 내심정이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러브스토리, 마크롱과 브리짓드

Brigitte et Emmanuel Macron au Touquet, le 22 avril 2017?

여성이 남성과 동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러브스토리가 프랑스에서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이미 2007 년에 24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마크롱 대통령의 러브스토리이다. 20세기까지만해도 연하의 남자를 사랑한 여자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았었다.  발자크의 작품 ‘ 골짜기의 백합’이 그랬었고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카레리나’ 가 그랬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남자들의 심술로 씌여진 소설의 내용들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이 20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묵인되고 여자들이 20살 연하의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기심에 의해 만들어진 온갖 루머에도 불구하고 마크롱과 브리짓드 커플은 늘 행복해 보이는 커플이다. 적어도 마크롱 대통령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브리짓드와 함께 하면서 늘 행복해 보였다.

나이 많은 여자와 산다고 비꼬는 말들을 일삼는 이들 앞에서 마크롱은 서슴없이 말했다. 당신들은 20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한 남자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 왜? 20살 연상의 여자와 사는 남자에 대해 말들이 많은가?

자식이 없다고 비꼬는 무리들에 대해서도 그는 서슴지 않고 말했다. ‘왜? 내가 자식이 없어요. 나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 3명과 가슴으로 낳은 손자들이 8명이 있어요.’

마크롱은 어려서부터 모든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가 15살에 24살 연상의 여자에 빠진 것은 그만큼 순수했던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30년째 그 사랑을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남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부 그를 질투하는 남자들이 여러가지 소문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나는 정말 그가 맑고도 똑똑한 남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프랑스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의 의지, 그의 맑음, 그의 에너지를 믿는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평이 많은 프랑스인들을 잘 다스려서 더 강한 프랑스, 더 휴머니스트인 프랑스 그래서 전세계의 모범이 되는 프랑스를 이루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프랑스에서 사하라 사막 아래의 아프리카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의 만남

20170423_163059일요일 오후, 친구 이사벨이 아랍 문화원에서 하는 토론회에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제목이 ‘ 프랑스에서 사하라 사막 아래의 아프리카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토론회였다.  며칠 전에 샹젤리제에서 경찰 한명과 민간인 두명이 살해되는 테러가 있었기때문에 사실 이런 자리는 매우 민감한 자리이다. 하지만 용감하게 이사벨을 따라 나섰다. 그녀는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인 아줌마이지만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좋은 아줌마이다. 토론에 초대된 사람들은 옆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이다. 주로 직업이 작가, 기자 그리고 교수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 위치한 나라들의 사람들과 아랍사람들의 만남이 주제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프랑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유창한 불어를 구사하는 그들은 말이 아프리카인일뿐이지 실상은 프랑스인들이다. 교육을 프랑스에서 받았고 프랑스어도 완벽하다.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종간의 갈등, 성차별등을 주로 다루었다. 늘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이들이 이 사회에서 이런 정도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많이 개방된 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유학을 왔을때 난, 프랑스인들이 외국인에 대하여 너무나 너그럽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살았던 한국은 아마도 굉장한 자본주의 이론에 물들은 사회였던가 보다.  내것은 나만이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내 믿음에 충격을 주는 사건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리고 내 이기적인 눈에도 나만이 잘사는 것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가 좋아보였던 것같다. 지금에 와서보면 오히려 한국인들이 타인을 많이 배려하는 것같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은데  어쩌면 그건 나와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어제의 그 토론에서는 너무나 자유롭게 자기 주장을 내놓는 아프리카  출신 프랑스인들을 보면서 만약에 저들이 자신들의 나라 아프리카에 머물어 살았더라도  지금의 자유와 지금의 직위를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었다. 아니,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이나 주장들이 얼마나 모순이 많은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기도 하다.

20170423_172843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식민의 역사, 포스트 식민지, 새로운 식민지, 힘의 관계, 인종의 문제와 정체성 등… 결국 그들은 인종의 갈등, 문화의 갈등과 같은 것들은 문학을 통해 타자의 현실에 나를 동일화 시킬 수 있는 문학의 힘을 통하는 것이 평화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프랑스의 전대통령 니꼴라 사꼬지가 아프리카에 와서 한 연설에서 세계 역사 속에 들어 온 흑인 너무 적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계의 역사 속에 들어간 동야인은 많았던가?  흑인보다도 더 적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저들은 동양인은 아예 제쳐 놓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었다면 저들처럼 앞뒤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었을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프랑스는 역시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토론회였다.

 

이민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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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나오다가  건물 현관에서  아파트 관리인 부부가 넋을 놓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집건너편 은행의 현금출납기 앞에 웬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고 더 멀리 공원쪽에서 어떤아이가 어른에게 붙잡혀 있다. 무슨 일이냐고 관리인 부부에게 물었더니 현금 출납기에서 돈을 인출하고 있던 노인을 아이 둘이 공격하여 돈을 빼앗아 달아나다가 붙잡힌 것같다고 한다. 노인이 그 아이들을 쫓아 뛰어간 것을 보면 돈을 빼앗긴것같기도 하다고 한다. 9살정도 된 루마니아 아이들인것 같다고 했다. 빠리 시내에서도 대부분의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루마니아에서온 사람들이다.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되었길래 국민들을 다른나라의 거지가 되어서 헤매도록 놓아두는 것일까? 오래전에 루마니아의 독재자가 죽은 모습을 시청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오페라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루마니아 소녀들이 나에게 위협 비슷하게 ‘너, 내가 무섭지 않아?’ 라고 말했었다. 그녀들의 행색이 너무 난폭해 보여서 난,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피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한참 이쁘고 깨끗한 것을 꿈꾸어야 할 나이에 마치 깡패같은 행색으로 행동하는 그녀들때문에 마음이 아팠었었다. 곳곳에서 만나는 피폐한 동구권 아이들… 그들은 프랑스라는 나라에 오면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오는 것일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그나라 위정자들의 책임인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에 급급하여 국민을 거지꼴로 밖으로 내모는 것이다.  프랑스 인들 입장에서는 전세계의 가난을 프랑스가 모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잘못된 위정자들에 의해서 나라밖으로 내몰리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나라가  하나, 둘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한국도 제나라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 줄줄 아는 나라가  아닌 것을 안다. 그점에서 난, 프랑스를 참 많이 부러워했었다. 나라가 국민의 세금을 받고도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을 보호해 줄 이유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보겠다고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국민들이나 남의 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다 잡히는 어린 아이들을 가진  나라들이나 참으로 가슴아프기 짝이 없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우물안 개구리식 비젼을 가지고 개인의 조그만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렇게 한심한  비극들은  계속될 것이다.

성인, Saint vincent de Paul 그리고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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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세브르가에 가면 조그만 성당이 있는데 그성당 안에는 Saint Vincent Paul의 유해가 위의 사진에서처럼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성인의 앞에 서서 보면  비록 눈은 감고 계시지만 얼굴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담고 있어서 성인으로 살아오신 분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난, 마음이 많이 불편할때면 Saint Vincent Paul의 앞에 가서 마음을 진정시키곤 한다.

어쩌면 프랑스가 이렇게 굳건한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에 성인이 많이 나왔기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때이다.  빠리의 곳곳에 성당이 있고 그 성당들은 국보처럼 나라에서 관리를 잘 하고 있다. 늘 프랑스인들의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부러워해 왔다. 한국은 언제쯤이면 이런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누릴 수 있게 될까?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DNA를 개조하기 전에는 어쩌면 그런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누리게 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한사람만 잘났다고 온 나라가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데서는 지지자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쩌면 모든 국민이 성인으로 거듭 나야 할 것같다. 우리 말에 ‘꼴뚜기 한마리가 어물전 망신을 시킨다’. 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한국민은 혹시 모두 꼴뚜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심한 자괴감이 인다.

그래도 한가지 사실에 희망을 걸어 본다. 한국인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성경 말씀에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혼돈과 실망이 만연하는 이 시점을 그래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잊지 말고 가장 현명한 대책을 찾아내기를 마음 속 깊이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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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엘리트가 본 Bob Dylan의 노벨 문학상

555639.jpg-r_1280_720-f_jpg-q_x-xxyxx내가 고리타분한 사람인 탓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가수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의아해했었다. 문학이 타격을 받았다고 논평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노벨 문학상조차도 이제는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이런 생각조차도 들었었다. 여러사람이 좋아하는 가수를 문학수상자로 뽑았다니 말이다. 중.고교시절 좋아하는 대중가요들이 있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대중가수를 숭배해 본 기억이 나에겐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도 엘톤 존도 존 레논도… 물론 존레논의 노래는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은 있었다. 조금 전 유튜브로 프랑스인 기자였으며 작가이기도 하고 현 TV5Monde의 사장인 Yve BIGOT씨의 증언을 들었다.

Bob DYLAN은 사실 15년 전부터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거론이 되곤 했었다고 한다. 이브씨는 딜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자기일처럼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딜란의 샹송가사가 교재로 쓰여지고 있다고 한다. 이브씨에 의하면 딜란의 샹송은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게 해주는 노래들이라고 한다. 그는 심지어 딜란을 피카소, 마르셀 푸르스트 그리고 까뮈에까지 비교하면서 그에게 열광한다. 딜란의 상송가사가  두꺼운 책으로 출판된 것도 있다면서 그의 책을 읽어보면 딜란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딜란이 60년대 70년대 노래를 부를때는 마치 미친 사람같던때도 있었지만 요즘에 와서 표현방식이 많이 바꾸어졌다고 하면서 딜란이 미국의 국보급 사람이라고 아니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국보급 사람으로서 20세기에 태어난 가장 뛰어난 천재중의 한사람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나도 어렸을때 송창식의 노래 가사가 얼마나 사람의 심정을 잘 표현하는지 놀래고 놀랬던 적은 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송창식의 노래가사는 한국적 정서에서만 이해 가능하다는 결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의 노래가사는 가장 한국적이라는 점을 두각시켜보면 어떻게 될까? 아! 또’ 강남스타일’은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