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걷기붐이 일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만 하더라도 애초 야곱이 이 길에서 순교한 이래 종교적인 이유로 걷는 사람 외에는 1천여 년 동안 이 길을 지나갔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1987년 EU가 순례길을 유럽의 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199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추가하면서 순례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걷기붐에 편승한 도보객들도 2000년대 들어서부터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 방문객이 10만 명을 넘어 20만 명을 돌파하고 있다고 전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보다는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아직 걷기붐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쓸데없이 너무 많은 길을 만들어 예산낭비라는 지적도 있지만 자연 속에 빠져들어 자신을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는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와 같이 트레일, 즉 걷기붐은 전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가운데 현재 걷는 길, 즉 트레일이 지금과 같이 자리 잡기까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는지, 어떻게 정착을 했는지, 어떤 경제적 효과를 낳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월15~17일까지 열린 제주 월드트레일컨퍼런스에 참가한 로버트 션즈(Robert Searns) 아메리칸 트레일 명예회장이 ‘트레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란 주제를 발표하면서 북미지역의 시각에서 본 7가지 역사적 순간을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트레일의 역사성과 관련해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서구에서 트레일의 역사를 파악하고자 하면 우선 ‘프리투로움(Free to Roam)’이란 개념정의를 알아야 한다. 이는 ‘일반 대중이 레크레이션 및 운동을 목적으로 특정 공유지 또는 사유지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연 상태의 어떤 곳이든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기도 한다. 일종의 만인이 자연을 즐길 권리다. 어떠한 곳에서라도 자연이 있는 곳이면 걸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산보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캠프파이어를 즐기거나 하는 등의 전통이 여기서 나왔다. 이 권리를 중세에서는 ‘통행권’이라고 불렀다. 통행권으로서 오솔길과 트레일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한국식 개념으로 전환하면 ‘옛길(Old Way)’이다. 올드웨이는 트레일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수 세기 전 이미 존재했던 개념인 것이다. 옛길을 서구에서 트레일의 시초로 보며, 첫 역사적 순간인 셈이다.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자유, 통행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한 기반을 제공하는 길이다.
두 번째 역사적 순간은 산티아고순례길을 낳은 ‘신성한 길’의 개념이다. 로버트는 “산티아고순례길이 현대 트레일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커다”고 말한다. 실제로 제주올레만 하더라도 서명숙 이사장이 “산티아고순례길을 걸은 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주도에 길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산티아고순례길은 프랑스 남서부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북부지역을 가로질러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에 있는 대성당을 향하는 길을 말한다. ‘산티아고’란 말은 야곱에서 유래했다. 야곱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영어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로, 불어는 생자크(Saint. Jacques)로,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로 불린다. 야곱이 로마제국의 속주인 스페인을 포교하고 돌아오는 길에 헤롯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유래는 시작됐다. 제자들이 야곱의 시체를 수습해 돌로 만든 배로 스페인 북서쪽까지 야곱의 흔적을 찾아 간 길이 산티아고순례길이다.
순례길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일반 도보객들은 이 길을 걸으며 영적인 힐링을 얻는다고 한다. 길을 걷는 사람은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영감(靈感)을 얻는 경험을 한다. 이 길에 대한 가이드북은 1139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에도 순례길을 가이드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로 인해 주변 마을은 경제적 번영까지 누린다. 이는 현대적 개념의 트레일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서도 세계유산 지정이유를 ‘성지순례길이 만들어지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순례길에 있는 마을을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보게 됐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의 역사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후략)’라고 밝히고 있다.
1985년에는 산티아고순례길을 완주한 2,491명이 완주확인증명서를 받아갔고, 유럽연합에 의해 최초의 유럽문화재로 선포된 이후 매년 1만 여명에 가까운 도보객이 다녀갔다. 이는 지역경제에 큰 활력이 됐다. 방문객은 점차 늘어나다 2010년에는 무려 27만여 명이 완주확인서를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폭발적 증가세가 아닐 수 없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로버트 맥플레인(Robert MacFarlane)은 그의 저서 <올드웨이(Old Way)>에서 ‘옛길을 부활시키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순례지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 사람들이 보이는 물질계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비물질화에 대한 의식이 증가함에 따라 자연이나 주변 경관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넓은 의미의 욕구로 해석된다’고 적고 있다.
여러 면에서 순례길은 현대적 의미의 트레일에 결정적이고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순례길은 많은 사람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규모가 작은 장소일수록 어떤 대단한 순례지보다 중요하다는 ‘공명의 원칙(Rule of Resonance)’과 자연에 있는 장소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항상 머물게 돼 있다는 ‘부합의 원칙(Rule of Correspondence)’과 맞아 떨어져 큰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역사적 순간은 트레일이 경제공황의 늪을 벗어나게 한 구원정책이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 미국 프랭크 루즈벨트 대통령은 청년실업을 구제할 시민구조기구(Civic Conservation Corps)를 설립했다. 이 기구에서 젊은이들을 자연으로 데리고 가서 자연복구를 하거나 트레일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300만 명 이상의 절망과 실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다. 고용된 청년들은 미국 전역에 3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고, 800개 이상의 공원을 조성했다. 또 미국 공유지에 4만7,000㎞ 이상 되는 트레일을 조성해, 큰 효과를 거뒀다고 당시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자연과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매우 유용했게 작용했다.
네 번째 역사적 순간은 미국에서의 ‘철길을 트레일로(Rails to Trails)’ 바꾸는 움직임으로 본다. 1950년대 미국에서 사용하지 않은 철로를 트레일로 전환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76년 미국 의회는 철길을 보호하고 공공 트레일을 새롭게 조성하기 위해 기금조성 및 정보교류, 기술지원 등을 제공하는 철길 복원 및 규제개혁법을 통과시켰다. 1968년에는 이미 미국 트레일법이 통과된 터였다. 다양한 트레일이 입법화를 통해 훨씬 다양하고 다각적으로 논의되는 분기점이 됐다. 1986년에 피터 하믹(Peter Harnik)과 데이비드 버웰(David Burwell)은 미국 전역에 버려진 철길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에 착안, 레일즈 투 트레일즈 보존협회(Rails-to-Trails Conservancy)를 창립했다. 미국 뉴욕 맨하탄 남서부에 방치된 고가의 철도를 활용해서 조성한 도심 생태공원에서는 연간 5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고 220억 달러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트레일운동은 국가별 트레일운동과 조직화로 확산되는 게 다섯 번째 역사적 순간이다. 미국 국립트레일시스템법(The US National Trails System Act)은 애팔래치안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과 같은 유명한 트레일을 국가가 직접 트레일을 설계하고 허가하는 법이다. 이 법은 국립명승트레일(National Scenic Trails), 국립역사트레일(National Historic Trails), 국립레크레이션트레일(National Recreation Trails), 측면연결트레일(Connecting or Side Trails) 등과 같은 대규모 국립트레일에 대한 허가도 포함하어 있다.
이 법이 통과된 후 수만㎞의 트레일이 국가트레일로 지정됐다. 주요 트레일 지원 기구 중의 하나인 아메리칸 트레일협회도 1988년 창립됐다. 아메리칸 트레일즈는 수많은 도보여행자를 비롯, 자전거와 스노우모바일, 오프로드 자동차, 장애인, 크로스컨추리 스키어와 카누를 타는 사람, 승마, 환경운동활동가 등 어디서든 트레일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단체 목소리를 대신한다.
여섯 번째 트레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은 그린웨이 운동을 꼽을 수 있다. 그린웨이란 개념은 원래 유럽의 산책로라는 말에서 시작되어 19세기 미국의 오름스테드(Olmstead)지역에서 공원과 연결된 공원길로 적용되면서 확대됐다. 지금은 좁고 긴 땅에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하고, 공공의 힘으로 재생을 돕고 천천히 걷는 길을 의미한다. 그 결정적 계기는 1974년 덴버에서 발생한 엄청난 홍수 때문이었다. 이 홍수로 덴버지역은 차 없는 거리로 모두 연결된 공원과 기능 지역은 물론 도시의 경계 사이를 흐르는 오랫동안 내버려졌던 사우스플랫강(South Platte River)을 따라 선형공원을 조성했다. 이것이 아마 새롭게 탄생한 도심형 통행로를 설명하기 위한 최초의 ‘그린웨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그린웨이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주요 그린웨이 프로젝트가 현재 중국의 주요 도시와 중요한 생태지역과 연계한 그린시스템인 중국 범 삼각주시스템으로 조성되고 있다. 황하강과 양쯔강에 조성되고 있는 바로 그 그린웨이다. 그린웨이는 결국 도심 인프라에 녹지대를 조성하는 운동이다. 이를 통해 환경보호, 발전, 경제적 가치를 증가시켜간다는 개념이다.
트레일에 있어 마지막 역사적 순간은 제주올레다. 제주올레는 트레일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이끌고 있고, 월드트레일네트워크(WTN) 형성에 매우 고무적인 역할을 했다. 제주올레는 지역민과 관광객을 위해 장거리 도보길을 지역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개념을 보급하는 방식을 선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트레일 관련 단체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게 된 것도 제주올레의 월드트레일컨퍼런스가 유일하다. 트레일 역사성에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관이다.
사실 제주올레는 한국의 걷는 길 조성에 불을 댕겼을 뿐만 아니라 제주 지역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길의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개념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트레일에 대한 역사적 순간을 분석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옛길과 역사적 변천과정, 현대적 의미의 길의 생성 등에 대한 역사적 순간을 트레일 전문가들이 찾아야 한다. 물론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이뤄졌다. 이 연구를 트레일역사와 관련시켜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국의 트레일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길, 통행로, 그리고 트레일이다. 현대인들이 자연과 함께 걸을 때 길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