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ce Ravel 의 집

MauriceRavel은’슬픔의볼레로’로한국에알려진작곡가이다.1875년스페인에서태어났다.현명한어머니의덕분으로일찌기음악적재능을발견하고파리의음악학교를다니면서재능을인정받았다.라벨의음악은그서정성과마법적느낌으로정평이나있으며그시대의언어를부드럽게하고풍부하게하고있다.

오래전에나는박물관이되어버린그의집을방문했었는데침실의작은침대가아직도깊은인상으로남아있다.그는키가아주작았다고한다.그래서그런지침대가마치장난감같았다.집의내부에는일본그림들이걸려있었는데아마도그가살던시대에프랑스는일본의문화가유행이었던것같다.

1927년뇌빈혈진단을받았고자동차사고로인해점차뇌의기능을잃어가던그는1937년뇌수술이후에사망하게된다.

평생을독신으로지냈을뿐만아니라감정이없는사람이라는평을들을정도로스캔달조차없었던사람이그토록서정적이고아름다운음악을만들어냈다는것은놀라운일이다.아니면자존심이너무강하고완벽주의자였기때문에그내면의감정을철저히감추었던것은아닌가상상도해보게된다.

다음사진들은라벨의집모양과정원베란다의사진들이다.

멋 있는 왕자님께 말해주세요!

LIO,그녀는1962년생이다.포르투갈에서태어났지만독재를피해서벨기에로망명한부모와함께어린시절을벨기에에서지내고반항아적인기질을숨기지않는그녀는17세에이미’Bananasplit’을불러스타가되었다.

최근에’Ditesauprincecharmant’이라는타이틀로낸이음반은백마탄왕자에대한환상은깨었으나그꿈은포기하지않는다는주제를노래하고있다.

그녀는아이가여섯명이있는데각각아버지가다르다.이쯤이면그녀가어느정도백마탄왕자에대해의견을피력할수준에있다고할수있겠다.방송프로그램에나와거침없이솔직한의견을피력하는데주저하지않는태도로사람들을놀라게하는그녀는어떻게보면무언가모자라는것이아닐까생각이들때도있다.하지만그녀는매우냉철한이성과분별력을소지한용기있는여성임음을알수있다.끈임없이자기자신을시험대위에올려놓고진리를찾아노력한다.

얼마전텔레비젼인터뷰에서는Lio의아이들을위해먹여살리는재단에기부를해달라는농담도서슴없이내놓는다.

자신의아름다운몸매를과시하기에도망설이지않는가수이며또한배우이다.그녀는아이를임신했을때과감하게부른배를하고무대에올라임신한여인의부른배가얼마나아름다운가를보여준앞서가는여인이기도하다.

어쩌면LIO는자유와평등이라는조건아래서만들어진사회적현상일수도있다.머지않아한국사회에도이렇게에너지가넘쳐나는현상이생기지않을까생각해본다.

영화’Mariage’에서

아프리카에서(6)

우리가살고있는집은초현대식시설을갖춘집이었다.오른쪽으로는프랑스인의사의집이었는데아들만여섯이다.왼쪽으로는유엔에서일하는벨기에사람이살고있었는데딸만하나있었다.나이가나와동갑이었다.그녀의이름은카리인이라고했다.큰키에스스럼없이큰유방의일부가드러나보이는원피스를입고나댄다.어떤때는잠옷차림으로아침에지붕에올라가있는그녀를발견하기도했다.그녀의아버지는그녀를Garçonmanqué라고불렀다.남자아이같이행동하는여자아이에게붙이는별명이란다.그녀의집에는때때로파티가열린다.그만그만한나이의남녀학생들이모여서어른들의흉내를낸다.유엔에서일한다는그녀의아버지는집에있는날이많았다.

대부분의프랑스인들의집에는차가2대씩있었다.그눈이부시도록하얀피부빛깔과잘생긴이목구비,그리고거리낌없이내치는자신있는행동거지들…그속에서동양의이름없는나라의어린나는그저말없이구경하는구경꾼일뿐이었다.

몽마르트 언덕

나는여름날의몽마르트언덕을좋아한다.이성당에서는밤을새워기도하러오는사람들이잠을잘수있는시설이있다.하루전에예약을해야한다.

새벽바람을가르며오른몽마르트에서파리를바라보느라면온통파리가내것이다.이새벽에몽마르트에오르면초록색청소차를만나게된다.

세계도처에서온사람들로인산인해를이루는곳이다.일류예술가를꿈꾸고왔던사람들이현실의벽에부딪쳐밥벌이를하는곳.

미스이집트로뽑혀서영화배우를꿈꾸었지만가수가되어프랑스사람들을매혹시킨달리다의초상도만날수있다.

프랑스사람들은일단좋아하기시작하면변함이없다.모든화려함을가졌었지만행복할수없었던여인…

이곳에서기도를하면소원이이루어진답니다.

비둘기 아줌마들

겨울의강가는한적하다.단지하얀날개가아름다운철새들이북적일따름이다.나무들이나신으로마른몸채를뽐내는듯이줄을잇고있는길을따라가노라면오리도만나고백조도만나고비둘기,참새떼들도만나게된다.

근처의강둑에서매일,비가오나눈이오나거르지않고비둘기들에게빵을나누어주는두여인이있다.동부유럽사람들이란다.프랑스사람들은그비둘기들이병균을옮겨올위험이있다고이곳에서빵을주는행위를하지못하게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그녀들은마치무슨사명이라도띈듯이그일을멈추지않는다.

슈퍼에서그녀들을마주친적이있다.식빵을무더기로사서자루에넣는그녀들을보고아!비둘기들에게주기위해서구나!생각했다.그리고어느날은벤츠승용차안에서운전하고있는그녀들을목격했다.아마도비둘기에게먹이를주기위해멀리서차를타고이곳까지오는모양이다.그것도매일매일….대단한사람들이다.

직관의 철학자, Henry Bergson

‘베르그송의날’에모인학생들

"아무것도아닌것에뜻을부여하고그뜻을키우는노력을해야한다.인간만이이런종류의노력을가능하게할수있다."-HenryBergson.

HenryBergson(1857-1941)

PaulValery는베르그송이세상을떠나자그를우리시대최고의철학자로칭송했다.

베르그송은인간의내면을진실로탐구한철학자이며지성의힘을상대화시키므로써생각의혁명을불러일으켰다.그는인간이자신과삶을깨닫는새로운방법으로서직관을제시한다.

지성이물질적이고실제적인일상과관련이있다면직관은인간의정신,감정과관련이있다.

종교적묵상이나예술적행위로얻어지는감정이직관을발전시킨다.

베르그송은’생의도약’을말한철학자로한국에널리알려져있을것이다.그는1927년노벨문학상을받은철학자이다.

아프리카에서(5)

중학교가있었다.중학교1학년,6èmeclasse프랑스여학생15명과아프리카여학생15명으로한반이형성되어있다.대부분의아프리카학생은기숙사에서무료로자고먹고공부도하는것이다.중국대사의딸도나와한반이다.얼굴이유난히하얀그녀는말이서툰나를하나에서열까지도와주었다.하루4시간수업.수업이끝나면프랑스아이들은학교앞에서부모가데리려오는것을기다린다.나도마찬가지…

더운교실에는천정에대형선풍기가돌아가고있다.선생님들은모두프랑스사람들.수학선생님은영화배우처럼생긴총각선생님,여학생들에게가장인기가있었다.프랑스어선생님은약간은통통하지만마음씨좋게생긴아줌마,남편이까만사람이었다.음악선생님,갸날프고이쁘게생긴프랑스처녀,내가흑인아이들에게봉변을당할때도와주었다.

아침에학교에도착하면으레이이들은악수를하거나얼굴을맞대는인사를한다.보자기를둘러입은듯한흑인아이들도주르르따라와서악수를청한다.내가원하지않는악수를할때아마도나는무의식적으로화장실에들어가서손을닦곤했던것같다.그들은아마도그것을유심히기억했던듯싶다.어느날인가휴식시간에한흑인아이가나에게와서자기가먹고있던망고(아프리카에서나는열매)를나에게먹으라고주었다.그것도입에들어가있던것을빼어서말이다.나는점잖게거절을했지만그녀의기세는기여이나에게그망고를먹일참이다.나는급기야울음을터뜨리고말았다.결국음악선생님의중개로해결은되었지만말이다.내어린시절에나는그렇게인종을차별했던것같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한때는나도사르트르를세기의지성으로생각했던적이있다.지금은생각이달라졌지만말이다.

강의실앞에주르르서서앞강의가끝나기를기다리는학생들…

어디나여학생들은수다가강하고특히이곳프랑스는담배를피는양도여학생들이강하다.그래서혹시여성상위의나라가아닌가생각될지도모른다.하지만….

아프리카에서 (4)

사막은끝이없이수평으로펼쳐져있었다.그곳에는중국사람들의농장이있었다.한국대사관이없던시절,중국대사가아버지와나를자주초대해주셨다.중국대사관저에서처음으로둥글고돌아가는식탁에서식사를해보았다.요리사가만든중국만두는그모양새도우아했지만맛또한일품이었다.중국의사가없었기때문에중국말을할줄아는아버지는대사의절친한친구이기도했다.

끝나지않는수평선을바라보며몇시간을달려도착한곳은중국농장이었다.여자라곤눈을씻고볼래야보이지않고남자들의집단이었다.남자들이밥도하고반찬도하고그래서중국남자들은요리를잘한다고소문이난것일까?

워낙수줍음이많았던나는그자리가무척불편했었던기억이있다.그들은굉장한사람들이란다.물도없는사막에서농사를짓고쌀과배추와마늘들을생산해내었다.일년내내우리가먹을쌀과야채는그들이조댤해주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