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nt Eastwood 와 영화 Mule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poses for Newsweek International on January 24, 2004, in Los Angeles, CA. (Photo by Neil Wilder/Corbis via Getty Images)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영화 배우이며 영화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 Mule`을 보았다. 아주 진부한 주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평생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집중해온 가난한 노인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주 사랑 받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듯싶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영화는 코메디 영화인데 어떤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해서 갔었다. 90에 가까운 노인, 평생 꽃가꾸는 일을 좋아해서 집안 일을 뒤로 했다가 가족에게까지 외면 당하는 외로운 삶이다. 그가 일부러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에 빠지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가족의 사랑도 Give and Take 가 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부 앤드 테이크의 기술에 무딘 사람들에게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90이 다 된 연세에 저정도로 영화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대단한 일이다. 백세 시대라서 그런지 요즘 활동하는 노인들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옛날에는 70 노인만 되어도 자다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편견에 우려했었는데 20세기 의학 발전이 거둔 커다란 성과일 수도 있다. 영화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고 결론이 뻔해서 중간에 나오려고 우물쭈물하다 끝까지 보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마약 마피아들의 생활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즐긴다는 것만이 인생의 모두인 것같은 사람들…. 어쩌면 언젠가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 순간 동물적 직감으로 살아가는 것같은 사람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 할 수없이 적응하는 사람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인간의 존엄성이 그 무지한 세계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상황을 영화로 연출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영화지만 정말 너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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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나이 든 모습이 어떤 화려했던 사람도 결국은 늙고 힘 없이 되고 만다고 느끼면서도 난, 클린트 이스트의 지금 모습이 젊었을 때 모습보다도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람만이 아름답게 늙을 수 있는 동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clint-eastwood-a-fistful-of-dollars1964-directed-by-sergio-leone-F4PB9T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시절 모습

 

First man (달에 첫발을 디딘 암스트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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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서 매주 수요일은 새 영화들이 선을 보이는 날이다. 어제는 유난히 표파는 창구에 사람들이 긴줄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난 영화카드가 있기때문에 기계에서 카드를 통해 표를 발급 받을 수가 있는데 기계에서 표를 발급받는것도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대부분의 경우에 실패를 하고 만다. 영화 상영 시간이 급박한데 너무나 긴줄에 매달려 표를 사려면 늦어질 것같아서 기계에서 표를 발급하려고 했었으나 역시 실패하고 긴줄의 뒤에 가서 섰다. 창구에서 표를 부탁하면서 기계에서 표를 받으려다가 실패했다고 설명하면서 시간이 늦었으니 다른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했더니 창구에서 오는 대답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들어가라고 했다. 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는 예고편 영화와 광고들에 할애되어서 그렇겠구나 하면서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영화가 시작된지 꽤 되었었다. 온통 화면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우주선 실험을 하는 암스트롱의 긴장한 얼굴 표정과 흔들리는 화면이 전부였다. 영화의 80프로는  시끄러운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채워졌었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자리 하나없이 좌석이 꽉 채워졌었다. 프랑스 영화관에서 이건 아주 드문일이다. 더군다나 이영화는 개봉된지 2주 된 영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80프로가 시끄러운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1초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영화 관련 비평을 읽어보니 감독인 Damien Chazelle 이  영화 속에 사용된 우주 비행 관련 기계들을 실제와 같은 것으로 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기 그지 없었지만 영화 상영 내내  나의 사고를 놓지 않는 단어들은 죽음, 삶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것이었다. 우주 비행을  하기 위한 인간의 조건도 매우 까다로울 것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우수 인재들이 죽음을 무릅쓴  모험에 뛰어드는 요인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암스트롱은 1930년 생이다. 1966년에 처음으로 우주 비행을 했고 1969년에 달에 첫발을 디딘 지구인이 되었다.  1969년에 아폴로 호의 대장으로 선발 되기 전에 3명의 우주 비행사가 불에 까맣게 타 죽는 사고도 있었다.   지구를 벗어나서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 그것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심장이 약한 나같은 사람은 어떠한 보상을 준다 할지라도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69년 7월 21일,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딛는 순간, 전세계에서  4억의 인구가 그 모습을 지켜 보고 환호했다. 암스트롱은 딸이 하나 죽고 아들만 둘이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여행 전날, 암스트롱은 아이들이 이미 잠 들었을 거라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부인의 권유로 결국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지만 말이다. 저렇게 까지 암스트롱을 위험한 우주 여행으로 내몰고 있는 진짜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는 혹시  이 지루한 지구내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장면은 아폴로호를 타고 성공리에 달에 도착했다가 돌아온 암스트롱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타행성에서의 감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갇혀 있어야 하는 연구소에 찾아 온 부인을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장면이다.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했을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 이것은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이다.’

Mary 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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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시간이 나서 영화관을 찾았다가 좋은 영화를 만났다. 영국 영화여서 듣기 좋은 영국식 영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Mary wollstonecraft Godwin 이 그녀의 처녀시절 이름이다. Shelley라는 이름은 영국의 유명 시인인 Shelley와 결혼했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태어난지 11일째 되던 날에 어머니를 잃었다. 무정부주의자이며 정치 철학가였던 아버지가 책방을 운영하며 딸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가르쳐 주었다.그녀의 어머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어머니를 일찍 읽은 마리가 새어머니와의 불화때문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친척집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당시 유명하던 시인 쉘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리의 나이 16세였다. 쉘리의 나이는 20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때문인지 마리는 어머니의 묘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이런 배경이 나중에  프랑켄 슈타인이라는 책을 쓰게 되는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쉘리와도  주로 묘지에서 만나곤 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마리에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복동생이 아파서 죽어간다는 소식이 오고 마리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사실은 이복동생이 마리가 보고싶어서 꾸민 연극이었다.  런던에 있는 마리를 보기 위해 쉘리가 런던으로 달려오고… 쉘리는 마리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당시 정치 철학가였던 마리의 아버지를 숭배하고 있었다. 쉘리는 알고보니 결혼한 남자였다. 쉘리의 처가 찾아와서 마리에게 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쉘리와 동거를 시작하고 아기를 낳는다. 쉘리가 마련한 저택에서 이복동생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한다.쉘리는 낭비벽이 좀 심한 남자였다. 빚때문에 마리와 갓난아이 그리고 마리의 이복동생을 데리고 도망가던 날 비가 몹시 왔다. 갓난아이가 죽었다. 그 이후 마리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시인 바이런의 저택에 초대 되어 가서 전기충격을 통해 죽었던 개구리의 뒷다리가 움직이게 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을 구상했던 것같다. 마리의 이작품은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로 치부된다. 영화에서는 마리가 이 소설을 쓰고나서 그 소설을 출판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이 부각된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남편 쉘리에 의해서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다. 남편이 유명 시인이었기에 처음에 사람들은 혹시 쉘리의 작품이 아닌가하고 의심 하기도 한다. 동거하고 있던 마리는 쉘리의 처가 자살하자 쉘리와 결혼하게 되어 쉘리의 이름을 갖게된다.영화에서는 마리가 ‘프랑켄슈타인’작품이 자기 것임을 알리게 되는 부분까지만 다루지만  사실 쉘리는 1822년에 요트를 타다 풍랑을 만나서 죽고 마리는 1851년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그녀의 나이 53세였다.

 

빠리의 음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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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은  일년 중의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1976년 프랑스의 음악 방송국에서 일하던 미국의 음악가  Joel Cohen은 기발한 생각을 해내었다. 일년 중에 밤이 가장 짧은 날인 6월 21일과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긴 12월 21일에 음악 축제를 개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미국인 음악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음악 축제 아이디어는 1982년에 와서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Jack Lang에 의해서 공식 축제로 자리를 잡게된다.

해마다 6월 21일이면 음악을 좋아하는 빠리지엔들은 밤을 새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빠리시내를흥으로 돋구곤 해왔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3일, 빠리 시내에 있는 콘서트 장 Bataclan에서

불행한 테러사건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이후, 빠리지엔들은 움츠려 들었었다.

몇년동안 레스토랑도 카페도 모두 공포의 분위기로 을씨년스러웠다.

그 공포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올해 빠리의 음악축제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 느낌이다.

미국인 음악가가 고안해 낸 음악축제는 이제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고

전세계 100여개국의 나라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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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빠리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테러의 악몽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유다.

인터넷을 통하여 빠리의 어느 지역에 어떤 음악들이 소개되는지 알 수 있다.

이날, 나는 유스타쉬 성당 근처로 나갔었다. 성당 옆의 까페에서 아랍 음악이

흘러 나오고 그 까페 앞에 모인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의 가요만큼이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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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한구석에서는 젊은 아랍인 여자가 랩을 부르고 있다. 랩은 저항음악이라고 해서

요즘 꽤 인기가 있는 음악이다. 어느 시대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있고 또 한국에서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저항하는 사람들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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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밤 9시가 넘었는데도 날은 아직 밝고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며 준비중인 까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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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halles에 최근에 완성된 건축물을 향해 간다. 언제 보아도 이 건축물은 너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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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를 거쳐 마래지구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는다. 온통 거리가 사람으로

메꾸어져 발 디딜 틈이 없고 모두들 몸을 흔들어 대고 있으니 빠져나갈 틈이 없다.

거리가 디스코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광란의 장이다.20180621_231619

괴성을 지르며 때로는 무당이 신들린듯 온몸을 흔들며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와

보즈광장에 다달았다.  예전에 이곳에선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또 민속음악까지 연주되곤했었다.

드문 드문 재즈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일뿐 아직도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사람들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것같다. 날이 어둡고 지붕이 있는 곳으로 오니 사진도 흐릿하게 나와서 사진 찍기를

멈추었다.  무서운 사건들의 연속으로 빠리지엔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가 벗겨질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밤이 점점 깊어 가는데 빠리는 흥으로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기원전의 유물들 그리고 이슬람 문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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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사진은 루브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피라미드 창을 통해 루브르 건물을 찍은 사진입니다.

한국 신문을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 정신없어서 조용하게 고대 문화를 감상할 생각으로 루브르에 왔습니다.20180304_162357

오늘은 웬일인지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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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200년에서 2600년까지 만들어졌다는

크레트 섬의 미노스 문명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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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예술작품들처럼 세련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오래된 시절에 사람들이 만든 작품들이라는 점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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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담던 항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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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빚어 놓은 이 상들은 마치 조선시대 양반들이 갓을 쓰기전 상태

의 머리 모양을 연상시킵니다. 이작품들은 모두 그리스의 것입니다.

고대에 민주주의를 탄생시키고 소크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들을

배출 시킨 그리스가 요즘은 가난한 나라로 탈바꿈해 있죠.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참으로 명언입니다. 과거에 권력 있던 나라들이 쇠퇴하고 새로운 나라들이 권력을 잡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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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부분들은 이슬람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전시장입니다.

이슬람 문화도 중세기에는 화려하게 빛났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전시장 시설이 운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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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블로그가 빨리 재정비 되어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기를 기도합니다.

Rattrapage (따라잡기)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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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아주 젊은 고등학생들의 BAC( 예비고사와 같은 것)에 얽힌 에피소드를 영화화 한 영화를 보았다.  프랑스에서 일종의 대학입시 예비고사인 바칼로레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칼로레아 시험 발표가 있는 날, 기욤은 자신의 점수가 모자라서 바칼로레아에 떨어졌음을 안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친구들이 벨기에 전자 음악 축제에 가는 차를 운전해주기로 약속한 상태이다. 바칼로레아 시험 발표날은 금요일이었고 음악축제는 토,일요일이다. 월요일날 재시험을 볼 기회가 있다. 재시험에서 모자란 점수를 따라잡으면 바칼로레아에 합격할 수 있다. 유일하게 운전 면허증이 있어서 친구들을 음악 축제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기욤이다.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기 위해서 음악축제에 가지 않겠다는 기욤을 친구들이 꼬여낸다. 같은 학교에서 바칼로레아에 수석 합격한 브란돈을 데리고 음악축제에 가서 기욤이 재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도를 부탁해 주겠다고  꼬여낸다. 기욤을  음악축제에 데려가기 위해 친구들은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기욤이 재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집에 남아 있어봤자 가족들에게 구박이 당할 것이 뻔하고 공부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봤자 공부는 되지 않고 포르노물을 구경하다가 가족들에게 들켜서 더 망신만 당할 것이라는 상상이었다. 기욤은 그 말을 듣고보니 그럴듯하기도 해서 음악축제에 따라가서 수석합격자의 지도를 받기로 결정한다. 아버지에게는 얼떨결에 바칼로레아에 합격했다고 말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특별선물로 아버지의 새로 산 자동차를 빌릴 수 있게된다. 그리하여 떠나게 된 벨기에 전자 음악 축제, 거칠것 없는 젊음들의 향연은 빠르고 거칠게 이루어진다. 기욤이 점수를 못받은 과목은 철학과 영어이다. 그는 플라톤의 ‘공화국’을 축제 현장에 들고 가서 브란돈의 지도를 받는다. 축제 현장에서 마약 밀수입자이며 약간은 사이비 교주같은 사람을 만나 초대되어 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연루되어 경찰서까지 가고 평소에 마음에 두었던 여학생과의 데이트도 하고 일연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은 이론으로만 배웠던 철학적 사실들을 몸으로 깨닫는다. 음악축제 현장에서 철학책을 공부할 시간은 갖지 못했었지만 몸으로 사건을 살며 깨달은 생각을 철학선생 앞에서 이야기 하고 기욤은 재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 동굴에서 나와 인생의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평소 한국인과 다른 프랑스인들의 행동방식이 결국은 고등학교의 이와같은 철학적 사고로 부터 기인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착각으로 벗어나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바램이라면 한국인들의 바램은 자기가 원하는 착각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A SERIOUS GAME (영화)

355915.jpg-r_1280_720-f_jpg-q_x-xxyxx사진 속의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영화의 국적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였다. 유럽에서도 복지가 가장 잘 되어있는 나라들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역시 사랑이 테마이다. 늘 문학과 영화에서 말해지는 주제이지만  싫증나지 않는 주제이다. 북유럽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빠리의 Les Halle 영화관에는 영화관이 30개가 넘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아주 작은 방에 배치되어 있었고 관객수도 20명정도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01년이었다. 어차피 현대는 물질만능의 시대로 접어들어서 돈이 신이 된 것을 기정 사실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1901년대부터 북구 유럽은 돈이 신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영화의 스토리가 증명해주는 것같았다. 북구 유럽 사람들은 솔직하고 신사적으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도 사랑때문에 자살도 하고 인생을 망치기도 하는 것이다.

 

172639.jpg-r_1280_720-f_jpg-q_x-xxyxx1901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오페라 비평을 주로 쓰는 젊은 아르비드는 화가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그 화가의 딸, 리디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아르비드는 리디아를 만나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기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한마디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리디아는 돈많고 나이 든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얻은 리디아는 다시 스톡홀름을 찾아서 아르비드를 유혹한다. 아르비드도 돈많은 집 딸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도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446298.jpg-r_1280_720-f_jpg-q_x-xxyxx한번 아르비드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리디아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허락을 얻어내고 스톡홀름에서 혼자 생활하며 아르비드를 기다린다.

아르비드는 자신은 이미 결혼했다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리디아에게 밝히지만 본심은 리디아를 사랑하고 있다. 리디아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자살을 하고…

당신같이 부드럽고 교양있는 남편과 결코 이혼할 수 없다는 부인에게 아르비드는 결국 우리의 결혼은 거짓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서 가방을 꾸린다.

 

443017.jpg-r_1280_720-f_jpg-q_x-xxyxx기차역에서 가방을 싸서 부인곁은 떠나온 아르비드와 딸을 결코 너같이 방탕한 여자(리디아)에게 줄 수 없다는 전남편으로부터 간신히 허락을 얻어 데리고 나온 딸을 동반한 리디아가 마주치는데 리디아는 아르비드의 시선을 피하면서 딸을 데리고 발길을 재촉한다.

진부한 주제이지만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했어야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사랑이 행복일까? 행복이 사랑일까?

엇갈린 선택 속에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인 듯도 싶었다.

 

신선한 바이올리니스트, Laure Schappler

20170609_211458먼저 살던 동네의 도서관에서는 늘 콘서트라든지 그림 전시회와 같은 문화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메일로 초청장을 보내주니 문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편리하기도 하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도 듣고 대화도 한다는 멘트를 보고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도 기대가 되었었다. 도서관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데 정원 저쪽에 사람들과 섞여 있는 한 여성이 나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못보던 사람인데 도서관에 새로운 직원이 채용되었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바이올린 연주를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아까의 그 여직원이 앞으로 나와서 창문에 드리운 햇빛조절 장치를 이렇게 할까요?저렇게 할까요? 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온다.  붉고 짧은 쇼트머리에 깃을 세운 하얀 와이샤츠 그리고 청바지위의 굵은 벨트가 아주 세련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연주가 시작될즈음에 비로서 직원처럼 보였던 그여인이 바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의 이름은  Laure Schappler 였다.

20170609_204640그녀는 세종류의 바이올린을 들고왔다. 작은 노트북에 스피커를 들고와서 피아노 반주대신 사용하고 자신이 들고온 18세기에 만들어진 바이올린과 전자 바이올린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면서 어떻게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그녀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때였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악기를 하나쯤 다루게되는데 그녀는 하프와 바이올린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들고 다니기에는 하프보다 바이올린이 쉽다고 생각해서 바이올린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주관하는 단체 음악 여행을 갔었는데 그 여행은 9살에서 14살까지의 아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그 여행에서 만난 14살 여학생이 트롬펫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14살이 되니까 트롬펫 연주하는 것이 지겹다고 트롬펫 배우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당시 9살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는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께 만약에 그녀가 14살이 되어서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17살까지 바이올린을 계속하도록 부모님이 용기를 주시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14살이 되던해 그녀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었는데 17살까지 계속하라고 부모님이 주장하셔서 바이올린을 계속하게 되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은 바이올린을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 지금 그녀가 속해 있는 연주단체에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20170609_204619보통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긴드레스를 입고 격식을 차리고 대중과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 연주를 하는데 마치 도서실 직원같은 차림으로 허드렛일을 도우면서 연주장에 들어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그녀는 클래식에서 랩음악까지종횡무진으로 연주를 하면서 관중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었다. 전자 바이올린의 경우엔 컴퓨터와 연결하여 스피커 장치를 하지 않으면 음이 어떤식으로 들리는지까지 솔직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말이다. 솔직한 이야기, 솔직한 연주 그리고 솔직함으로부터 나오는 맑고 상쾌한 에너지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매우 유쾌하고 신선한 연주회였다.

Jackie (영화)

 

086055.jpg-r_1280_720-f_jpg-q_x-xxyxx잭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불렸던 것같다.

왜인지도 모르지만 유명했던 케네디 대통령, 그의 부인이었던  잭키, 프랑스에 와서 보니 그녀는 빠리에 와서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는 여자였다. 다부지게 생긴 얼굴에 까만 눈썹이 돋보였던 여자, 갸날픈 몸매…

그런데 알고보니 잭키는 그 우아함으로 이미 프랑스 사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녀가 빠리지엔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임이 이번 영화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약간의 이슬비가 뿌리는 평일 오후, 오데옹에 있는 영화관을 찾았는데 영화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나처럼 모두 Jackie 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처음에 제목을 보고 이 영화가 온전하게 잭키의 일대기인가 생각했었다. 그녀의 태생, 그녀의 성격 그리고 그녀의 일생을 그린 영화려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빗나갔다. 영화는 케네디가 저격당한 후에 3일간을 담고 있었다. 진실을 밝혀야 겠다고 찾아온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과정을 통해 피투성이가 된 케네디를 안고 느껴야 했던 잭키의 트라우마, 그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영화관 안은 관객들이 가득 찼었다. 나는 영화가 참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인들도 지루하게 느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지적인 사람들이니까 다르게 영화를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영화에서 보면 잭키가 백악관에 입성해서 링컨대통령의 방을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문득 혹시나 그래서 케네디도 링컨처럼 저격 당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슬프고 지루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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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a déjà tes yeux. ( 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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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발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우연하게도 입양할 아이를 기다리던 흑인 부부에게 백인 아기가 오게되었다.

보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백인 부부들이 가난해서 아기를 기를 능력이 없는 흑인 아이들을 입양하곤 했는데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 벤자민이라는 6개월된 백인 아이가 오게 된 것이다.

462644.jpg-r_1280_720-f_jpg-q_x-xxyxx오른쪽 사진은 백인 아이를 입양하게 된 딸이 부모님에게 아이를 선 보이기 위해서 부모님집에 왔는데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흑인 부모님이다. 딸이 아이를 입양했다고 하니 콩고사람들은 말썽이 많은 사람들이니 콩고 아이만 아니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엄마, 그녀는 자기 딸이 백인 아이를 입양했을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465300.jpg-r_1280_720-f_jpg-q_x-xxyxx프랑스에서는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적당한 부모에게 위탁한 다음에 일정기간 그 부모가 아이를 잘 기르는지 확인을 하는데 왼쪽 사진은 그 임무를 맡은 프랑스인이다. 흑인 부모에게 맡긴 백인 아이가 걱정되어서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여자다.

아프리카의 가봉지역에서는 백인 아이의 머리만 만져도 행운이 온다고 믿는 흑인들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고 백인 아이를 가운데 놓고 돌보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흑인 여인네들의 말씨와 행동이 코믹해서 영화 상영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465769.jpg-r_1280_720-f_jpg-q_x-xxyxx백인 아이를 입양해놓고 좋아하는 흑인 아빠, 이들의 이민사도 거론된다. 아이를 입양한 흑인여자의 엄마는 프랑스에 와서 가사 도우미로 평생을 일했고 아빠는 청소부로 평생을 살아서 아이를 입양한 부부는 꽃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467019.jpg-r_1280_720-f_jpg-q_x-xxyxx파란눈의 백인아이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는 흑인부부이다. 흑인 할머니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했더니 경찰에게 아이 납치범으로 몰려 아이를 반환해야 될 위기에 몰리게 된다.  아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576353.jpg-r_1280_720-f_jpg-q_x-xxyxx백인과 흑인의 상황을 역전시켜 아주 코믹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파란눈의 아기에게 어떻게 연기를 시켰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6개월된 아이라면 흑인부부를 보고 두려움을 표현했을 수도 있는데 … 어쨋든 파란눈 아기의 연기도 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