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뻐스 운전사

IMG_20190525_180529                                                                            뻐스 앞좌석에서 본 운전석

 

기온이   갑작스럽게 상승했다. 빠리는 기온 변화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변화 무쌍하지만 늘 알면서도 늘 속는 기분이다. 가끔 나는 빠리의 뻐스 운전수들을 하릴없이 관찰하곤 하는데 오늘의 운전수는 밖의 누군가를 향해 아주 다정하고 여유 있는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료운전수인 것같았다. 늘 같은 여정을 왕복해야 하는 뻐스 운전수들에게는 어쩌면 동료 운전수에게 보내는 손짓 하나가 의미를 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지난 번 바스티유에서 오페라까지 가는 뻐스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 올랐었다. 당시에  `길 잃은 뻐스 운전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해 놓곤 시간을 내지 못했었다.  그 뻐스 운전수는 그날 그 뻐스의 여정을 처음으로 운전하게끔 배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뻐스가 가는 여정에 공사 현장이 있어서 다른 길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는데 처음 길이다보니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빠리의 교통 공사의 열정은 길을 모르는 운전수들을 모르는 길에 배치하는 것이다`이었다.  그 뻐스에 타고 있던 빠리지엔들이 그에게 어디를 통해서 가야 하는지 훈수를 주고 있었다. 길을 헤매는 그 운전수 덕분에 나는 보즈 광장의 아름다운 정원이며 빅톨위고의 박물관 그리고 그 옆으로 옹기 종기 있는 갤러리들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길 잃은 운전수때문에 약속 장소에 늦어질 수도 있었겠건만 아주 친절하고 여유있게 운전수에게 길을 가르쳐  주어가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빠리지엔 승객들도 나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길을 잃고도 유머를 잃지 않고 빠리 교통공사의 열정 운운하는 운전수의 뱃짱이 나를 또 감동시켰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같으면 나에게 맡겨진 업무를 잘해내지 못했을때 심한 자괴감으로 절절 매곤하는데 이 사회에서는 자기 업무를 소홀히 해 놓고도 핑계를 여유있게 찾아내어 자신을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능력을 솔직하게 말해서 관중에게 도움을 받거나 이해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여유가 많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게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선진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을 심하게 훈련시켜서까지 무엇인가 이루려는 노력들을 하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들을 하기때문인지 스트레스가 되는 일들은 권하지도 하지도 않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떤 父子

봄날씨가 화창하다. 바람이 부드럽게 볼을 스치고마음이 상쾌해지는  날이다. 뻐스에 오르는 발걸음도 가볍다.  프랑스의 버스는 구조가 좀 다르다.  두명씩 앉는 좌석이 두세트있고 그 다음에 뻐스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앉는 좌석이 두개 있고 그 옆으로는 옆으로 앉는 좌석이 3개 있다. 옆으로 앚는 좌석 맞은편으로는 또 4명이 서로 마주보며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고 그 다음으로 또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옆으로 앉는 좌석에 자리를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맞은편으로 명랑하게 떠드는 프랑스 여자와 프랑스 남자 그리고 키는 멀쩡하게 큰 아들같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먼저 수다스런 프랑스 여자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내렸다. 몇정거장 더 간다음에  아버지와 아들같은 두 프랑스 남자가 좌석에 일어나 내리려는 것같았는데 나도 내릴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커다란  아들같은 남자가 내리다 말고 내 좌석 밑으로 구부리고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찾는 것같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그가 무언가를 떨어뜨렸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같은 남자가 그 아들 같은 남자 등을 밀쳐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그 아이가 일종의 tic 또는 toc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뻐스에서 내리니 저 앞으로  그두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나는 하릴 없이 그들을 관찰하며 문제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는 평생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만큼 가던 아들이 또 옆 풀밭으로 뛰어들어 무엇인가를 주우려고 하고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거칠게 잡아채어 밀어댄다. ` 아휴, 아버지 노릇하려면 힘도 세야하겠네` 혼잣말을 되뇌며 뒤를 따라가는데 갑자기 키큰 아들이 그 긴다리로 무릅을 꿇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아들을  둔 부모는 평생을 걱정으로 살아야 겠구나. 따라다니며 돌보자니 힘들고 안따라다니면 늘 마음이 불안할 것같다.  다행이 그들은 내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고 멀어져 간다.  아파트 단지 내 잔듸 밭 위로 봄을 반기는 새들의 합창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싫지 않은 댓글들

20170801_164709 (1)

요즘 들어 내가 써논 글에 대한 댓글이 매일 달리고  있어 기분이 상승하는 느낌이다. 역시 칭찬은 좋은 것인가보다.

2016년에 빠리에 위치한 빵떼옹을 방문하고 나서 블로그에 올린 글이 며칠전부터 댓글 홍수가 났다. 한결같이 내  블로그 글에 대한 찬사가 대단하다. 모두 영어로 쓰여진 댓글들이다. 한국말로 내게 이런 찬사를 보낸 댓글은 보지 보지 못했던 것같다.  아마도 그들이 한글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어로 블로그를 만들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영어로 블로그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도 든다.

내글에 대해  높은 찬사를 보내준 모든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밀짚모자와 로맨틱한 프랑스 밀짚모자 장수

 

chapeau-de-paille-florentine-femme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평균 36도까지는 보통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는 에어콘을 장치한 장소가 별로 없다. 버스 속에서나 전철 속에서는 무더운 더위를 그대로  참아내야 한다. 토요일 날 열리는 장에 나갔다가 밀짚모자를  잔뜩 널어 놓고 파는 장수를 보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다니는 것보다 어쩌면 밀짚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이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멋진 밀짚모자들이 나열된 것을 보면서 한개 쓰고 싶다는 욕망이 돌출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밀짚모자 중에 짙은 갈색모자위에 꽃 한송이가 장식되어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모자를 집어 쓰고 앞에 놓인 거울을 보니 마치 어느 나라에서 온 공주의 형상이다. 거울 잠깐 들여다 보다가 이 모자가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10유로라고 했다. 밀짚모자를 팔고 있는 프랑스인 남자는 모자가 겹쳐져 있는 곳에서 내가 집은 모자와 디자인은 똑같으면서 색이 베이지 색인 모자를 꺼내어 놓는다. 내가 입고 있는 원피스가 베이지 색이니까  나름대로 센스를 발휘하는 듯도 싶다.

워낙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성격이니까 카드로 결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로 결재할 수 있는 기계가 없다고 말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다음 주 장에도 또 나올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투가 마치 헤어지기 전의 연인에게 아쉬움을 갖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투다. 아니 당장에 물건을 팔고 싶어서 쓰는 상투적인 수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어째 연인에게 하는 수법같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현금 인출기에 가서 현금을 뽑아 오겠다고 말하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BNP 은행 현금 인출기로 갔다. 은행 직원이 그 앞에 나와서서 은행 현금 인출기가 현재 수리중이라고 한정거장쯤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라고 안내를 해 준다. 그냥 바로 옆에 있는 societe general 은행의 현금 인출기로 갔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자를 사도 어쩌면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모자때문에 더 더울수도 있어. 머리를 하나로 매고 다니면 시원할텐데 모자를 쓰려면 머리를 매고 다닐 수도 없쟎아. 얼굴은 조금 태우면 되지 뭐. 생각이 이렇게 돌아가니까 갑자기 현금 인출기 앞에 줄을 서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이른다. 밀짚모자장수가 그 모자 하나 팔려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할수 없지 뭐. 그리고 저렇게 멋진 모자를 쓰고 다니면 또 사람들 눈에 너무 띄어서 내 자유가 방해를 받을 수도 있어. 에이, 모자 사는 일은 포기하자. 밀짚모자 장수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다음 번에 기회가 오면 다시 모자를 사러가기로 가볍게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민의 문제

image des roumaines

아침에 나오다가  건물 현관에서  아파트 관리인 부부가 넋을 놓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집건너편 은행의 현금출납기 앞에 웬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고 더 멀리 공원쪽에서 어떤아이가 어른에게 붙잡혀 있다. 무슨 일이냐고 관리인 부부에게 물었더니 현금 출납기에서 돈을 인출하고 있던 노인을 아이 둘이 공격하여 돈을 빼앗아 달아나다가 붙잡힌 것같다고 한다. 노인이 그 아이들을 쫓아 뛰어간 것을 보면 돈을 빼앗긴것같기도 하다고 한다. 9살정도 된 루마니아 아이들인것 같다고 했다. 빠리 시내에서도 대부분의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루마니아에서온 사람들이다.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되었길래 국민들을 다른나라의 거지가 되어서 헤매도록 놓아두는 것일까? 오래전에 루마니아의 독재자가 죽은 모습을 시청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오페라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루마니아 소녀들이 나에게 위협 비슷하게 ‘너, 내가 무섭지 않아?’ 라고 말했었다. 그녀들의 행색이 너무 난폭해 보여서 난,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피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한참 이쁘고 깨끗한 것을 꿈꾸어야 할 나이에 마치 깡패같은 행색으로 행동하는 그녀들때문에 마음이 아팠었었다. 곳곳에서 만나는 피폐한 동구권 아이들… 그들은 프랑스라는 나라에 오면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오는 것일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그나라 위정자들의 책임인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에 급급하여 국민을 거지꼴로 밖으로 내모는 것이다.  프랑스 인들 입장에서는 전세계의 가난을 프랑스가 모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잘못된 위정자들에 의해서 나라밖으로 내몰리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나라가  하나, 둘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한국도 제나라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 줄줄 아는 나라가  아닌 것을 안다. 그점에서 난, 프랑스를 참 많이 부러워했었다. 나라가 국민의 세금을 받고도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을 보호해 줄 이유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보겠다고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국민들이나 남의 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다 잡히는 어린 아이들을 가진  나라들이나 참으로 가슴아프기 짝이 없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우물안 개구리식 비젼을 가지고 개인의 조그만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렇게 한심한  비극들은  계속될 것이다.

전철안의 소녀들

20170213_153405

2월 중순인데 봄햇살이 따뜻하다. 겨울은 벌써 어디만큼 달아나고 있는 것일까?

전철안에서 아주 이쁜 풍경을 발견했다. 한무리의 소녀들이 전철안으로 들어닥치니 그 해맑은 얼굴들로 인해 전철안이 화안하게 밝아진다. 몇명은 뒤쪽으로 그리고 옆쪽으로 자리들을 잡았는데 내 앞 창가에 앉은 소녀옆에 또 한 소녀가 갑자기 다가와서 귓속으로 소근댄다. 둘이서 소근대는 모습이 마치 봄볕을 맞기 위해 나선 노란 병아리들을 연상시킨다. 이뻐서 쳐다보다가 내 학생시절이 떠올랐다. 그랬다.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재잘되면 20대 또는 30대로 보이는 어른들이 괜히 싱글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곤했던 것같다. 우리는 쉴새없이 재잘대면서도 그들이 우리를 보고 짓는 표정의 의미를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젊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특권인 것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힘이 솟는 그래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다.  대수롭지도 않은 일상을 재잘되며 미래를 향해 가는 어린 소녀들이 어른들에게는 바라보는 자체로 희망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이제 깨다는 것이다. 고맙다! 애들아! 너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마음이 행복하구나! 거기 그렇게 존재해 줘서 너무 고맙다!

 

 

20170104_171725

뻐스 안에서의 사색

20170104_1717252016년을 이별하기가 서러웠던 것일까? 지독한 독감에 걸려 연말을  보냈다. 감기 바이러스가 내몸에 침범을 하여 내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가 버린 듯 싶었다.

충분히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빠리에선 드문 영하의 추위가 2017년을 환영하고 있었고  이런 저런 이유들을 핑계삼아 집에 침잠하고 있다가 오늘 , 1월 4일  첫외출을 시도했다.

먼저 뷰페 식당을 찾아 오랫만에 찾아온 식욕을 마음껏 누렸다. 녹차까지 마시고  찾아 올 물건이 있어서 멀리까지 갔었다.  돌아오는 길은 뻐스를 이용했다. 인상 좋은 할머니,  말이 할머니지 너무 이쁜 프랑스 할머니다. 인상이 좋아서 상쾌한건지 행복해보여서 상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기분 좋은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캐디를 갖고 앉았다가 까르푸를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나도 사실 까르푸에 갈일이 있었는데 이뻐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다시 다른 뻐스를 타고 갈 요량이었다. ‘할머니, 이뻐스 노선 중에 까르푸가 있어요? ‘ 반가움에 되물었다. 두칸 앞줄에 앉아 있던 젊은 아랍여자가 문득 끼여들어서 세정거장 다음에 내리면 까르푸라고 가르쳐준다. 이런 횡재가!! 이렇게 되면 난,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쁜 할머니가  내리는 곳에 따라 내려서 까르푸를 가는데 할머니도 내게 말을 걸고 싶었던가 보다.  할머니는 토스트 기계가 아침에 고장나서  그 기계를 사러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이 들어도 이렇게 상쾌한 느낌의 할머니가 되면 바람직하다. 하긴 나도 자꾸 사람들이 말을 걸려고 하는 걸 보면 괜찮은 여자에 속하는 것같기는 하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한창이고 또 한편에서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하려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고 그런가 하면 자기 목숨을 자기가 버리는사람들…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사람들… 그렇쟎아도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요즘. 텅빈 뻐스 안에서 바라보는 빠리시내의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둠이 잦아들어 사방은 어둑 어둑하고 약간의 비까지 뿌리고 있다. 어제까지 무척 추웠다는데 오늘은 부드러운 겨울이다.

20170104_172801 (1)뻐스에서 내려서 아름다운 빠리의 저녁 풍경을 사진에 담아본다. 사실,오늘 파블로 네루다의 영화가  개봉된다고 해서 영화를 보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렸다. 시리아의 내전이 끝날 것같은 조짐이 보이기도 하는데 새해에는 모든 분쟁들이 끝이 나고 아름다운 사건들만으로 한해가  가득 채워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Mr. Min

20161120_133733 우연히 집근처 슈퍼에 갔다가 기막힌 것을 발견했다.  사실은 닭 가슴살 훈제된 것과 디저트를 사려고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렸는데  일본제 컵 라면이 있는 것이었다.  일본은 라면의 원조 나라라고 알고 있다.

어린시절, 외국에서 살때 아버지 친구분들이 일본 라면을 가져다 주곤 하셨는데 나에겐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늘 라면은 나에게 맛 있는 음식이었고 빠리에서도 가끔 한국 슈퍼에 들려서 몇개씩 사다 먹곤 했다.

20161120_133747

일본은 한때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로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빠리에서도 일본식품은 비싸도 품질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많이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정직한 사람들로 알고 있어서 나는 일본 식품점에 가서 기꼬망 간장을 사는 습관이 있고 가끔은 카스테라도 사다 먹곤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일본 컵라면을 보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일본 컵라면 바로 밑칸에 korean이라고 쓰여진 컵라면이 있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 본건 아니가?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자세히 보니 분명히 korean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궁금해서 한국 컵라면이면 어떤 마크인지를 알아보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Mr.Min이라는 마크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영양가 있고 맛도 좋은 라면’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made in korea 라는 말이 쓰여져 있지 않으니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 Mr.Min 이라는 마크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20161120_133856

 

일단은 뚜껑을 열어 보았다. 한국 슈퍼에서 보았던 다른 어떤 컵라면보다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있다. 야채도 많이 들어 있는 것같았다.

 

 

20161120_135158

뜨거운 물을 부어서 3분을 기다렸다가 맛을 보았다. 아주 맛도 훌륭하다.

가끔 한국 음식이 그리울때 바로 옆에 있는 슈퍼로 가서 이 컵라면을 사다 먹어도 좋을 것같았다. 그렇게 맵지도 않고 품질도 좋은 것같으니 말이다.

빠리에는 ‘ Bon Marché’ 라는 수준 높은 백화점이 있는데  그 백화점에 가면 옆건물에 음식만 파는 백화점이 있다. 이 백화점의 음식들은 대부분 품질이 아주 좋아서 비싸기로 유명한데 그곳에 가면 일본 식품과 중국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 식품들이 보이지 않아서 가끔 소외감을 느끼곤 했었다. 아직도 일본 다음엔 중국, 그 다음이 한국이구나 하고 기가 죽기도 했었는데 Mr.Min은 이 유명 백화점에 진출해도 좋은 것같다는 생각이다.  Mr.Min이 한국마크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통역, 번역자들의 모임

20161007_203527빠리의 센느강 옆, 한카페에서 모임이 있었다. 통역하는 사람들과 번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다양한 언어들을 요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등… ‘광고에 대한  의견’이라는 책을 최근에 발행했다는 한남자가 일어서서 강연 비슷한 것을 한다.

 

20161007_203348원고도 없이 하는 연설이 길기도 하다. 1900년 초부터 있던 광고의 역사가 구구절절 언급되어 나온다. 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다. 옆에 앉아 있는 여자, 남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유학 와서 통역학교를 졸업하고 남아프리카어를 불어로 통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여자에게 물었다. ‘ 왜 ? 이자리에서 저런 강의를 하지?’ 그녀가 말했다.’ 이모임에서 있는 일례행사야. 왠지는 나도 몰라.’

20161007_211922연설이 끝나자 웨이터들이 요리를 가져다 놓는다. 사실, 난 생선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주문을 받는 웨이터가 오늘 생선 요리가 부족하다고 했다. 다른이들은 미리 예약을 했는데  예약하지 않고 갔기때문에 난, 부르기뇽 요리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20161007_211955난, 오늘도 유일한 아시아 여자였다. 한구석에서’ 일본사람들은 프랑스를 너무 좋아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모두들 웃음을 짓는다. 그 말투가 마치 일본인들이 프랑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잘 알수는 없는데 어쨋든 기분 좋다는 투로 들린다. 앞에 앉아 있는  젊은 프랑스 남자애가 어느나라 언어를 통역하느냐고 묻는다.  ‘한국어-프랑스어’라고 답했다. 그가 말한다. ‘물론 남한이겠지?’  옆의 여자가 물었다. ‘ 한국에서는 중국문자를 쓰나요?’  난, 할수없이 한글의 역사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을 해야했다. 그들이 열심히 듣는다. 마지막에 내가 말했다. 최근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한글이 세계 최고로 과학적인 언어래요. 내 주위에서 내말을 듣던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 그렇겠죠’.라고 한다. 아이고 또 내 열등감이 지나치게 작용했나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20160914_160331 (1)

요즘와서 드는 생각이 그래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일거라는 생각이다. 요즘같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척박해진 인간성을 만나지 않으려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녀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가까운 까페에 매요일마다 각종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한 6개월 전에 알았었지만 무엇에 쫓겼는지 직접 가보지는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조금 시간이 되었던 것같다. 18세기 유명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그 까페 2층에 이미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고 각자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20160914_161039

마침 빨강 머리의 한 프랑스 여자가 낭송을 하고 있었는데 아는 얼굴이었다.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이 세상을 떠나자 샹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여자, 그때가 나이가 60이 넘었다고 했었다. 언제나 엄청난 양의 가방을 힘겹게 들고 다녀서 안되보였던 여자인데 오늘은 제법 화장도 하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시 낭송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와서 일본 여자냐? 중국 여자냐? 하고 묻는다. 이 여자는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 내 생각에 당신과 나는 아는 사이인 것같은데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라고 했더니 ‘ 아! 누군지 알겠어.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는다. 마침 한남자가  카세트용 라듸오를 들고 나가서 정말 프랑스적인 샹송을 아주 차분하게 노래한다. 그는 자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늘 양노원에 불려다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한 6개월전에 다른 까페에서 본 사람이다. 그때만 해도 참 젊었던 것같은데 6개월 사이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되어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의 샹송은 여전히 좋았다. 노래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감성은 젊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시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나에게 나와서 시를 하나 낭송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못할 것도 없지만 그리고 이제는 자유롭게 나아가서 불어로 시 하나쯤은 즉석에서 지을 수도 있을 것같았지만 아직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니까 다음기회에 하겠다고 사양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서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까의 그 빨강 머리 여자가 나에게 와서  이번에 출판했다는 시집을 보여준다. 나이가 70은 된것같은데 정말  끈기가 대단한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는 철학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모만 초라해졌지 그녀의 내면은 아직도 왕성하게 꿈을 키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여자가 나에게 와서 북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한다. 북한의 김정은이 미친사람이라고 한다. 북핵을 개발했어도 결코 남한을 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때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 또 요번에 티벳의 달라이야마가  프랑스에 왔는데 프랑스의 어떤 정치인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프랑스 정치인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왜?냐고 내가 묻자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프랑스 정치인들이 티벳의 달라이마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였다. 휴머니즘은 이제 한물 갔다. 한국에 전쟁이 났던 시대만 해도 휴머니즘이 존재했기때문에 유엔에서 한국 전쟁에 참전을 했었지만 이제는 한국에 무슨 일이 있다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시리아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리아 사람들이 그토록 도와 달라고 애원을 해도 유럽의 어느나라도 꿈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휴머니즘’이란 말이 의미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