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지진 그리고 분노

2048x1536-fit_un-homme-constate-les-degats-du-seisme-qui-s-est-produit-en-italie-le-23-08-16-filippo-monteforte지난 수요일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거의  250명의 인명이 사라졌고 365명의 부상자가 생겼다고 한다. 이 지진은 이탈리아의 여러 마을을 초토화 시켰다고 그래서 이태리 사람들의 분노가 폭증하고 있다고 했다.  분노? 누구에 대한 분노? 기자는 그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목적어를 잃어버린건지 누구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치미르는 분노를 말한건지… 이런 경우에 분노를 느끼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수요일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진은 목요일인 어제에도 강도 3에서 3.8까지 흔들렸었다고 한다. 그렇게 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현대에 와서도 그 지진을 미리 감지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보다. 하지만 자연의 이러한 행패 앞에서 과연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어제 찌는 더위 앞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희미해지는 경험을 하며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더위를 견디고 있을지 생각해 보았었다. 잠깐  뉴스를  같이 시청한  프랑스인들이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왜? 자꾸 이런 재앙이 터지는지 의문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 아포칼립스가 오는 것은 아닌지…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세요? 제가 동양 여자이기때문인가요? 그래서 혹시라도 동양인의 지혜로 더 확실한 해답이라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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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90로댕 박물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모자 쓴 아가씨’의 조각상이다. 로댕의 작품과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을 살펴보다보면 그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소재가 돌이기때문에 조각하는 것이 어려웠을텐데도 어떤 조각 작품은 입고 있는 드레스의 레이스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조각하고 있다. 맨 아래층에는 로댕이 살아 있을 당시의 비데오가 상영되고 있는데 화면이 좋지는 않지만 그의 풍채를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지만 로댕도 무언지 모르지만 무척 불행했던 남자같은 인상이다.  그 불행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인생은 불행해야 예술이 되고 흥미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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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상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가  없다. 거울을 통해서 보는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아 있을때 이렇게 자기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서 자신을 한번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아도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면서 얼핏 본 조각상이지만 너무나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 혹시 조각을 만들고 난 이후에 그의 영혼이 저 조각상 속으로 숨어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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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조각상도 얼굴표정의 섬세함을 너무나 잘 표현해 놓았다.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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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각상들은 발자크의 얼굴표정과 서 있는 자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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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조각품은 ‘ IRIS’라는 타이틀로 ‘신의 메시지’를 뜻한다고 하는데

여자의 음부를 조각해 놓아서 당시 상당한 스캔달을 일으켰었고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그만큼 끌어 모으기도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보면

꾸르베의 ‘origine du monde’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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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718월 중순, 본격적인 여름날씨가 시작될거라는 일기예보 진행자의 말대로 토요일 오후는 쨍쨍한 햇살 아래 무더위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댕박물관으로 들어선다. 평상시같으면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몰리겠지만 최근에 일어난 테러사태로 인해 박물관 안은 한산했다. 여름의 뜨거운 햇빛만이 정원 쨍쨍하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중고등 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숱하게 들어온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24살이나 연상인 로댕을 사랑했던 까미유 끌로델… 그와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로댕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아래 사진들은 로댕 박물관 정원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내부의 사진들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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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왕, 아키토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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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프랑스 방송에선 일본 국왕, 아키토가 사임을 시사하는 말을 했다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아키토 국왕은 자신이 맡은바 임무를 다 하지 못할것이 두렵다고 공표했다. 이말은 왕위를 자손에게 물려 준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 방송인들은 일본인 국왕의 이같은 발표를 미래에 여성이 왕위를 물려받을 것인지까지 비약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국왕의 이같은 심사를 신중하게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 국왕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본 기억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같은 발표를 통해서 아키토 일본왕은 참으로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사는 사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양심적인 어른들이 있어야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한국을 식민지 통치했다는 사실때문에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 않았지만 해외에 나와서 일본인들을 상대해 본 경험으로 볼때 그들은 내동포인 한국인들보다 훨씬 양심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일본인들을 좋아한다. 뿐만아니라 일본인들때문에 유럽에서 아시아인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나는 그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한다. 한국 신문을 들여다보다가 형편없는 막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이나 사람들을 볼때도 한국 사회는 언제쯤 일본을 따라잡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도 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아마 일제시대때 친일파가 되었던 사람들도 어쩌면 일본인들의 정직성과 예의바름에 반했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더 나은 사람을 모방하고 선망하고 교류하고 싶어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단순하게 친일파라고 단죄하지말고 그들이 처했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해서 넓고 깊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양심적인 국왕이 있어서 일본은 아직도 희망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19세기의 페미니스트 조르즈 상드( George Sand)

George_Sand_by_De_MussetGeorge Sand하면 우리는 쇼팽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르즈 상드와 먼저 사랑에 빠졌던 남자는 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뮤세였다. 왼쪽 그림은 뮤세가 그린 조르즈 상드의 초상화이다. 프랑스 여자들이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이 1955년도 였다. 그만큼  자유의 나라라고 하는 프랑스에서도 여자에겐 많은 것이 금지 되어 있었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이혼할 권리도 없었다. 그런데 조르즈 상드는 1804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다산 작가로 통한다. 70여개의 소설을 발표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는 휴머니스트적인 작가였다고 한다. 조르즈 상드는 1833년에 알프레드 뮤세를 만나서 애인이 되었다. 뮤세는 당시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었는데 지금의 의학이 말하는 스키죠프렌이라는 병이었다. 뮤세의 소개로 조르즈 상드는 피아니스트인 리스트를 알게 되었었고 그 다음에 쇼팽을 알게되었다.

조르즈 상드는 어렸을때 이름이 Amantine Aurore Lucile Dupin이었다. 자유롭게 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서 나중에 남자이름인 George Sand로 이름을 바꾸고 남자 옷을 입고 다니곤 했었다고 한다.

 

800px-Indiana,_George_Sand_(Calmann-Lévy)조르즈 상드의 첫번째 소설은 Indiana이다. 그녀는 문학 살롱을 통해 당시의 유명한 작가들과 교류를 했다. 발작, 플로베르. 빅톨 위고… 등 특이하게도 빅톨위고와는 오로지 편지로만 교류를 했고 한번도 직접 만난적은 없다고 한다. 나중에 유명한 프랑스 화가 유제니 들라크루와도 교류를 한다.  결혼을 하여 아이가 둘이나 있었음에도 아주 자유로운 여자였다. 역사가들은 조르주 상드가 이쁜 여자는 아니였다고 한다. 매력이 많았고 아주 여성적인 느낌을 많이 주는 여자였다고 한다. 조르즈 상드는 프랑스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여류작가로 역사가 인정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1876년 8월 6일  Château de Nohant-vic에서 눈을 감았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일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산 상속자로 알려졌던 Grande Mademoiselle, Anne marie louise d’orléan

anne_marie_louise_dorlean-2요즘 신문을 보면 ‘금수저’니 ‘흙수저’니 논란이 많다. 17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산 상속자로 태어나서 무릇 유럽 각국의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안느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의 일화가 어제 프랑스 방송에서 소개되었다.

안느 마리는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많은 유산을 상속 받는 상속자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유산이 남편보다도 자녀에게 상속되었던가보다. 안느 마리는 루이14세의 부모에게서 길러진다. 신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루이 14세의 엄마는 루이 14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안느 마리에게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아이와 결혼하라고 조언한다. 안느 마리는 그런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루이 14세와 결혼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은 그녀의 소원을 이루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가 43살이 되었을때 자신보다 6살 연하의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재산을 탐낸 주위 사람들의 방해로 곤란을 겪었고 루이 14세는 그 연하의 남자를 성에 가둔다. 안느 마리는 자신의 재산 일부를 루이 14세의 아들에게 주는 조건으로 그 남자를 구해내고 비밀리에 결혼도 했다고 하지만 오래가지 않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1693년에 자궁관계 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안느 마리 루이즈는 외모가 이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엄청난 재산이 무릇 왕자들이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했던 이유였던 것이다. 20세기에 노벨 문학상을 탔던 프랑스아 모리악의 소설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많은 재산을 상속할 상속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남편을 독살하려고 시도했다가 들키지만 친정 아버지가 돈으로 마무리하고 시집 식구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영화화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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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룩셈부르크 공원에 있는 안느 마리 루이즈의 동상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던데…

거실지독한 독감에 침범 당했다. 사실 7월 14일 프랑스 국경일에 샹젤리제로 나아가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싶었는데 감기때문에 하루종일 텔레비젼 앞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밤 12시가 가까웠을때 내방 창문 앞으로 자동차들이 즐비하고 불꽃이 터지는 소리, 사람들의 함성이 시끌벅적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바바리 코트를 걸쳐입고 잠깐 에펠탑 구경이나 할까 나갔는데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어 기침이 자꾸 콜록콜록 나오는 것이었다. 에펠탑을 보지도 못하고 다시 아파트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심  에펠탑 아래에 있는 샴드 막스에서 음악회가 열린다는데 혹시나 테러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생겼었고 마음으로 빠리의 안전을 위해 기도를 드렸었다.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음때문에 잠들지 못하다가

인터넷 뉴스 조선닷컴에 들어갔는데 니스에서 테러가 있었다는 뉴스가 떠있는 것이다. 아니? 한국 신문에 뉴스가 나도록 내가 왜? 몰랐지? 하고 생각을 해보니 tv도 켜놓지 않았었고 라듸오도 켜놓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 바깥 바람을 씐것이 탈이 났는지 기침이 심하게 나서 약을 먹고 수면을 취했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보았다. 니스에서 바캉스 족들이 모인 곳에 커다란 트럭이 2킬로가량 막무가내로 질주를 해서 80여명 가량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많다고 했다. 트럭을 운전했던 범인은31세의 튀니지 출신 프랑스 국적의 남자라고 했다. 그는 즉시에 경찰들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들 테러조직에 의한 것이라고 가정을 하고 수사를 시작하기 시작했고 일부  프랑스인들은 감히 프랑스 국경일에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분노가 대단했다. 오늘까지도 사실 프랑스에서는 테러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조문하는 날이다. 그런데 난, 31세의 젊은 남자, 그것도 세아이의 아버지라는 이가 어떤 심리구조를 가졌기에 죄없는 이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을 한것일까?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도 그의 아이들이 남아서  살아갈 일도 그리고 모르는 이들의 생명을 해치는 일도 어떤 의미라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일까? 어떤 생각으로 그 엄청난 일을 계획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일주일 전에 트럭을 임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충동으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같지는 않다. 사람의 가치가 물질의 가치보다 낮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인간이 어리섞은 것은 분명하다. 애초에 사람들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돈이라는 것을 발명해 내었는데 이제는 그 돈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을 부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다른 많은 생명들을 해치는 일까지 서슴치 않을 수 있기 위해서 그에게 어떤 명분이 어떤 이유가 어떤 사명감이 있어야 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번 테러를 수사하는 분들이 이점을 주목하여 수사하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 캠페인이라도 벌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물질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도록 가르치지 말고 모든 생명이 중요하고 자신의 생명도 중요하니까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힘든 난관을 극복해 내는 것이 아름다운 일임을 가르친다면 테러에 가담해서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남의 인생을 망치는 불쌍한  인간들을 생성해내는 일은 좀 적어지지 않을까 말이다. 오늘 일주일쯤 나를 괴롭혀 온 감기가 이제 조금 나를 놓아주고 있는 기분이다. 이 세상이 생명의 경이로움을 인식하고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련다.  이곳에 실린 사진은 글과 상관없이 제 거실을 이렇게 꾸며보아야지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 논 사진입니다.

대통령과 미용사

da87b5d6c52abfe48f915ee4a86e09f3370d9e22diaporama480x3197월 14일인 오늘은 프랑스의 국경일입니다.  해마다 이날은 개선문을 뒤로한 샹젤리제 거리에서 프랑스 각처에서 지역 또는 집단을 대표해서 온 사람들이 길게 행진을 합니다. 하늘에서는 최신 비행기들이 비행쇼를 보여주고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대통령을 위시한 고위 관리들 앞에서 멋진 행진이 이어지는 날입니다. 정말 볼만한 구경거리들입니다.  또 프랑스는 과연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행사이기도 하죠. 두시간 정도에 걸쳐서 샹젤리제 그리고 꽁꼬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행사가 끝나면 의례적으로 기자들이  엘리제 궁을 방문하여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곤 합니다. 특해 내년 5월이면 대통령 선거가 있기때문에 현대통령, 프랑스와 올란드가 내년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것인지 아닌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또 며칠 전에  대통령의 미용사 월급이 9895유로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이 질문공세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 관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사람이고 또 대통령이 머리를 써서 국가의 질서를 신경쓰고 있으니까 어느정도의 혜택은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인색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려주는 분들이 있기때문에 국민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05182182d83dc678a97e269534daf103fc601434diaporama480x320보통 국민들은 자신이 먹고 살것만 걱정하고 살아도 되지만 나라 관리들은 모든 국민들의 문제를 신경 써야 하니까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대통령이 통치를 완벽하게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민의 안위와 안녕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스와 올란드의 미용사는 대통령의 미용사로 임명된 후에 자신의 미용실을 모두 문닫고 오로지 대통령만을 위해서 24시간 대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 미용사의 월급은 보통 장관들의 월급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따지고 하는 국민들을 위한 대통령 노릇, 그것도 참 힘들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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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2016의 승자와 패자

1890161-39799060-2560-1440Euro 2016의 마지막 밤의 열기가 뜨겁게 달구어졌었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환희와 희망으로 샹젤리제 거리가 뜨거웠었고 밤새 빠리는 들썩거렸었다. 2016년 유로의 마지막 결승전은 프랑스대 포르투갈이었고 방송에서는 유로가 존재한 이후로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대결한 승부가 4번이었는데 4번 모두 프랑스가 승리했었다고 알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프랑스 축구팀, 블루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했었다. 경기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아주 객관적인 자세로 경기의 결과를 지켜보던 나는, 포루투갈이 한골을 넣어서 승리하자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는 포루투갈인들, 졌다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프랑스인들을 보며 잠깐 사색에 잠겼다. 함께 최선을 다해서 싸웠는데 물론 경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승자가 되면 기쁘고 패자가 되면 슬프다는 것에 이론이 생기는 것이었다. 프랑스 텔레비젼 방송에서 Tristesse라는 말로 프랑스의 패함을 표현하는데 뭔지 옳지 않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슬픔은 아주 비극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닌가? 슬픔은 어쩌면 애정으로부터 비롯되는 감정이 아닌가? 스포츠 정신이란 패어 플레이 정신을 말하고 있다.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이기면 기분 좋지만 비록 졌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 물론 진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픔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니면 참 슬플일도 없다 경기에 졌다고 슬프다니.. 이렇게 생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쨋거나 유로 2016을 주관한 프랑스의 기관장들은 지금같이 테러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시기에 유로2016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진짜 슬픈 것은 테러로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의 목숨이 주어지는데 그 목숨을 해친다는 것, 그런것이  슬프다는 표현에 맞는 사건들인 것이다. 무사하게 이루어졌던 유로2016년을 축하하면서 다시는 빠리에서 테러같이 슬픈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는 것

IN3F7747프랑스에서는 늘 밤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텔레비젼 방송들이 괜찮은 편이다. 어제 밤, 우연히 텔레비젼을 켰는데 음악과 문학을 어울려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천재 피아니스 François rené Duchâble가 초대되었다. 그는 1952년생이다. 단 한권의 책으로 유명해졌다는 금발의 여류작가와 연예인이 같이 초대되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서곡’부터 연주되면서 시작되었다. 피아노 선반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의 손놀림, 그리고 제목만 대면 즉시로 악보도 없이 연주하는 그를 보면서 저만큼 연주하기 위하여 어쩌면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피아노 연주에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13살에 프랑스의 콘세르바뚜아르에서 최고의 연주상을 획득했고 2003년에 은퇴를 선언했던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빈틈없이 움직이는 건반위의 그의 손놀림과는 다르게 그는 눈에 엄청난 슬픔을 담고 있어 눈물이 금새라도 넘쳐내릴것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감성이 사춘기 아이처럼 풍부한 것일까?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몇곡 연주한뒤에 초대된 여류 작가가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면  늘 카오(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쇼팽을 연주해 달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피아니스트는 쇼팽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2003년에 은퇴한다고 했는데 그는 왜? 다시 나온 것일까? 천재이기때문일까? 서양인들의 복잡한 생각을 다 가늠할 수 없는 아시아인인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천재의 삶도 결코 평탄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재능을 타고난만큼 내면으로 느끼는 고통은 더 강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결국은 평범한 삶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생각이 미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저렇게 함께 공감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럽기는 하다. 생각해보니 한국에는 뽕짝을 들으면서 함께 공감하는 문화가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볼때 우리 한국인은 분명히 이성보다는 흥이 발달한… 그래서 신나는 민족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