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글 보관함: 그리고 남은 이야기

멀리 있는 낡고 그리운 방

해변의 하루키… 일까나. ^^

해변의 카프카

당신이 세계가 끝나는 그곳에 있을 때
나는 사화산의 분화구에 있고
방문 뒤에 서 있는 것은
문자를 잃어버린 말.

잠이 들면 그림자를 달이 비추고
하늘에선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내리고
창밖에는 굳게 마음을 가다듬은
병사들이 서 있네.

후렴
해변의 의자에 카프카는 앉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흔들이 추를 생각하네.
마음의 둥근 원이 닫힐 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스핑크스의
그림자가 칼처럼 변해서
그대의 꿈을 꿰뚫었네.

물에 빠진 소녀의 손가락은
입구의 돌을 찾아 헤매네.
푸른 옷자락을 쳐들고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있네.

하루키의 구작(舊作 ^^;;)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가상의 노래의 가사입니다.

지나치게 ‘메타포’로 가득차 있나요? ^^

# 움푹 패인 은밀한 곳, 고무라 도서관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이 작은 방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장소임을 깨닫는다. 나는 바로 이런 세계의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은밀한 장소를 찾고 있던 것이다. -상권 p58

도서관 좋아하세요?

오래된 책에서 나는 곰팡내, 누렇게 색바랜 책장, 햇볕이 표지까지 하얗게 탈색된 채 드는 서가에 꽂혀있던 책들.

‘다무라’라는 성(姓)만 남기고, 자신의 이름을 ‘카프카’로 바꾼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군이 찾아낸 곳도, 지방도시의 조그만 개인 도서관이었군요. 카프카군이 도서관의 일부가 되는 것을 허락해준 사람은, 겉 모습은 쿨한 남성이지만여성의 성기를 가진 ‘특수한 사람’ 오시마 상이었습니다. 여기에 과거 어느 순간으로부터 현실로 점프한 듯한 우아한 도서관장 사에키상이 있고, 머리가 좀 모자라지만 고양이와 이야기하거나 물고기를 비처럼 내리게 할 수 있는 할아버지 나카타 상이 얽혀듭니다.

# 그 많던 방들은 어디에 다 숨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같은 것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얼굴을 든다.

"멀리 있는 낡고 그리운 방?"

"맞았어"하고 오시마 상은 말한다. 그리고 포크를 공중에 세운다. "물론 메타포지만."

-하권 P133

<해변의 카프카>는,사람들이 뒤에 하나쯤 두고온, 멀리 있는 낡고 그리운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방에 절반 쯤 그림자를 남기고온 할아버지도 있고,30년전의 소녀 시절 모습으로 생령(生靈)처럼 그 방을 떠도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을 찾아 집을 나온 소년은,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피를 마시며 한 꺼풀 허물을 벗습니다.

# 복잡한 메타포는 뒤로 하고

"어쨌든 다무라 군은, 다무라 군의 가설은 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서 돌을 던지고 있어. 그것은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떡인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포를 통하면 그 거리는 훨씬 짧아집니다."

"그렇지만 나도 다무라 군도 메타포는 아니잖아?"

"물론이죠" 하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메타포를 통해 저와 사에키 상 사이에 있는 것을 꽤 많이 생략해 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올려다본 채, 다시 살짝 미소 짓는다. "그건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구애의 말이네." -하권 p127

카프카군 곁 어딘가에 항상 머물고 있는 까마귀 소년, 검고 커다란 개를 보내 나카타상을 불러낸 뒤 생포한 고양이의 배를 갈라 심장을 씹어먹는 조니워커상, 오시마 상이 데려다 준 숲 속 깊숙이에 있는 작은 오두막과 2차대전 일본군의 복장을 한 두 병사… 살해당한 카프카군의 아버지와 조니워커 상의 관계는? 사에키 상은 정말 카프카군의 엄마였을까요? 버스에서 만났고, 하룻밤 카프카군을 보듬어줬으며, 꿈 속에서 관계를 가졌던 그녀는 정말 카프카군의 누나였을까요.

카프카군은 "메타포를 통해 사람 사이의 거리를 훨씬 좁힐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해변의 카프카>의 메타포는 생각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하지만뭐 어떤가요.언젠가 어딘가에, 두고 온 낡고 그리운 방…그 방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눈감고 있을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책을 읽은 뒤 조금쯤 행복해졌습니다.

<Kafka On The Shore> Review on Book Munch

<POP MASTER> Time Asia article on Murakami and Kafka on the Shore

<하루키, 그만의 상상이 돌아왔다> 한국일보 서평

조금씩만 덜 더운 시대이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천칭자리(libra)’가…

수습기자 시절, 사회부 기동팀장(보통 ‘캡’이라고 부릅니다)께서 "이메일 주소를 전원 영문 6글자 이하로 줄이라"는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신문 지면 한 단의 길이에 제한이 있어서, 기자 이름과 함께 쓰면 6글자보다 긴 이메일 주소는 2줄을 차지하게 되기 때문. 너무나 실용적인 이 이유로 제 이메일 주소도 5글자, ‘libra’로 줄었습니다. 지금은 ‘마눌 사마’가 되신 당시 여자친구가 정했지요. 이유는 단지 생일로 따진 제 별자리이기 때문. ^^

천칭자리에 대한 속설…^^;;

천칭자리(9.23~10.21)의 천칭은 정의의 여신이 사용한 심판의 저울이라는군요.

그래서 천칭자리 사람들은 "이해심 깊고, 공정하며, 균형잡힌 생활을 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싫어하며 격정에 넘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스스로는 이런 덕목들과 좀 거리가 있습니다만…노력 중입니다. ^^

사는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블로그에는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만난 사람들, 가본 곳, 읽은 책, 봤던 영화…

제가 얼마 전 국제부로 옮겼으니 사는 얘기의 범위도 국경을 넘나들게 되겠네요.

모쪼록 행복한계절 되시길 바랍니다. ^^

=더운 여름, 서울광화문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이태훈 드림.

ps. <김훈 世說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책 머리에

세상을 향하여 말할 때, 나는 늘 나 자신의 어지러운 생명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내 말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덕지덕하였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날아가는 솔개나 헤엄치는 물고기는 늘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미물들의 삶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아무래도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말은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 나는 그 허술함의 운명을 연민한다.

여기에 묶는 글들은 내 한미한 초야에서 때때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썼던 토막글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글조각들을 박광성 사장이 챙겨나왔을 때 나는 민망하고도 무참하였다. 이 책은 그의 강권에 의하여 세상에 나간다.

다시 만경강 하구의 저녁 갯벌을 생각하고 있다.

2002년 봄 김훈 씀

시간의 흐름이 멈추는 곳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책장 귀퉁이를 접어놓았던 구절들입니다. ^^

<상권>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이 작은 방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장소임을 깨닫는다. 나는 바로 이런 세계의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은밀한 장소를 찾고 있던 것이다. -p58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로 망각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주춧돌처럼 자기 안에 남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결코 마모되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p191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예이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In dreams begin the responsibilities. 그 말대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업는 곳에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히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p256

"그것은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죽이려고 생각해 본 적도없지. 자네는 그런 일에 별로 어울리지 않네. 그러나 나카타 상, 세상에는 그런 논리가 잘 통하지 않는 곳도 있는 걸세. 어울리느냐, 어울리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아무도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도있는 거라네." -p276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그는 한숨을 쉬고 손가락으로 긴 연필을 돌린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정상인이든, 페미니스트든, 파시스트의 돼지든, 공산주의자든, 힌두교 신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p351

<하권>

"나도 열다섯 살 무렵에는 어딘가 다른 세계에 가고 싶어했지"하고 사에키 상은 미소 지으며 말한다. "어느 누구의 손도 미치지 않는 곳으로, 시간의 흐름이 없는 곳으로."

"하지만 이 세계에 그런 장소는 없습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사물이 계속 훼손돼고, 마음이 계속 변하고,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계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듯 한참 입을 다문다.

-p43

"사에키 상"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부른다. 나는 몹시 절박한 무엇인가에 떠밀려 가고 있다.

소녀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입으로 가져간다. ‘아무 말도 하지 마’ 하고 말하듯이.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녀가 하려는 말일까? 그 눈동자를 바로 옆에서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 일련의 동작으로 나한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암시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의미는 새벽 세 시 전의 무거운 어둠에 꽁꽁 묶여버린 것 같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나는 눈을 감는다. 가슴속에 단단한 공기 덩어리 같은 것이 있다. 마치 비구름을 그대로 삼켜버린 것처럼. 몇 초 뒤에 눈을 떴을 때, 소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소녀가 떠난 자리에는 아무도 없는 의자가 남겨져 있을 뿐이다. 구름의 그림자가 숨을 죽이고 책상 위를 가로질러 간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강에 대해 생각하고, 조수에 대해 생각한다. 숲에 대해 생각하고, 용솟음치는 물에 대해 생각한다. 비에 대해 생각하고, 벼락에 대해 생각한다. 바위에 대해 생각하고 그림자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들은 모두 내 안에 있다.

-p69

"새 한 마리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 봐요"하고 사에키 상이 말한다. "그 가지가 바람에 크게 흔들리면, 그 가지의 흔들림에 따라서 새의 시야도 크게 흔들리게 되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때 새는 어떤 방법으로 눈을 안정시켜 잘 볼 수 있게 하는지 알아?"

나는 고개를 흔든다. "모르겠는데요."

"가지의 흔들림에 맞춰서, 머리를 아래위로 피뜩피뜩 가볍게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거야. 굉장히 고달플 것 같지 않아?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가 흔들리는 데 맞춰서 일일이 고개를 흔들며 살아가는 인생이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어. 그러니까 생각하는 것만큼 고달프지는 않은 거야. 하지만 나는 인간이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몹시 피곤해져."

-p79

"하지만 기분 최고였어."

"얼마나?"

"과거도 미래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한 현재라는 건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기 어려운 진행이다. 사실은,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

청년은 얼굴을 들고 입을 반쯤 벌린 채 여자 얼굴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앙리 베르그송이 한 말이야"하고 그녀는 귀두에 입술을 대고 남은 정액을 핥으면서 말했다. "무지과 기어."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물질과 기억>이라는 책 읽은 적 없어?"

-p87

"어쨌든 다무라 군은, 다무라 군의 가설은 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서 돌을 던지고 있어. 그것은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떡인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포를 통하면 그 거리는 훨씬 짧아집니다."

"그렇지만 나도 다무라 군도 메타포는 아니잖아?"

"물론이죠" 하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메타포를 통해 저와 사에키 상 사이에 있는 것을 꽤 많이 생략해 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올려다본 채, 다시 살짝 미소 짓는다. "그건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구애의 말이네."

-p127

"저, 오시마 상. 혼자 있을 때 상대를 생각하며 서글픈 마음이 된 적이 있어요?"

"물론."하고 그는 말한다. "이따금 있지. 특히 달이 창백하게 보이는 계절에는. 특히 새들이 남쪽으로 건너가는 계절에는. 특히…"

"어째서 물론이죠?하고 나는 묻는다.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같은 것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얼굴을 든다.

"멀리 있는 낡고 그리운 방?"

"맞았어"하고 오시마 상은 말한다. 그리고 포크를 공중에 세운다. "물론 메타포지만."

-p133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는데, 음악에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말하자면 어떤 때, 어떤 음악을 듣고, 그 때문에 자기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크게 확 변해 버리는, 그런 일 말입니다."

오시마 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죠"하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있습니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화학작용 같은 것이지요. (…) 연애와 마찬가지입니다."

(…)

"그런 일이 전혀 없다면, 우리 인생은 아마도 무미건조한 것이 되겠지요. 베를리오즈는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햄릿>을 읽지 않은 채 인생을 마친다면, 당신은 탄광의 깊숙한 막장 속에서 일생을 보낸 것과 같다’라고 말입니다."

"탄광 속에서……?"

"하긴 19세기적인 극단론입니다만."

-p288

[헬보이] 리즈, 사랑의 불꽃

좀 뒷북 같지만… 헬보이 이야기. ^^*
# "나 지금 건들면 터져"
왼손에서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 뒤에 나오던 연기와 비슷한 색깔의 불꽃을 피워내고 있는 이 아가씨의 극중 이름은 엘리자베스 셔먼 입니다. 감정적으로급격히 흥분한 상태를 흔히 ‘터진다’, ‘폭발한다’고들 하죠? 이 슬라브 스타일의 와일드한 눈매를 가진 아가씨는 레토릭이 아니라 정말로 ‘폭발’합니다.
영화에서는 자세한 정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어쨌든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도 자신이 피워낸 불꽃 때문에 몰살당했다는군요. 어렸을 때는 시도때도없이 자신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불꽃 때문에 ‘왕따’를 당했구요. 아이들은 우리가 흔히 그렇듯,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며 구석에 몰아넣고 흙과 벽돌을 집어던집니다. 그리고 다시, "꽝~~~!"
# 가시 하나쯤 품지 않은 사람 있으랴
살면서 속에 가시 하나 박히지 않은 사람 있겠습니까. 박힌 가시는 때론 바깥을 향해 날을 세우고, 곁에 오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때론 밖에서 꽂아넣지 않은 가시가, 안으로부터 자라오기도 합니다. 그런 가시는 더 뿌리가 깊고 날카로워, 거기에 찔린 누군가의 속에서 더 큰 가시로 자라버리기도 하구요.
차라리 릴케의 손톱 밑에 박혔던 장미의 가시는 낭만적이기라도 했지요. 대개의 가시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는게 더 큰 문제일테고.
그렇지만, 헛참, 불꽃이라니. 그것도 가스폭발처럼 푸른 색의, 반경 10미터 쯤은 족히 날려버릴만한 현실적 위력의 불꽃이라니요.

셸마블레어, <버피 더 뱀파이어킬러>의사라 미셸 겔러를 앞세운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과, 21세기형 백치미 선두주자 리즈 위더스푼의 <금발은 너무해>에도 등장했던 그 배우.

# 사랑에 빠질땐 죽음도 두렵지 않아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비범(?)했던 리즈, 그 리즈를 곁에서 지켜보고 아껴주고, 밤새워 파지로 방을 가득채우며 사랑의 편지를 고쳐쓰고 또 고쳐썼던 헬보이입니다. 영화의 라스트에서, 라스푸틴에게 혼을 흡수당한 탓에, 이미죽음의 경계를 넘어버린 리즈의 귀에 대고 헬보이가소근소근 속삭입니다.
그리고 정말 마법처럼, 리즈는 아침잠에서 깨어나듯 의식을 되찾습니다.
아직 잠이 덜깬 듯한 리즈의 질문. "뭐라고 한거야?"
"어이, 거기 그 쪽에 있는 놈.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내가 찾으러 간다. 일단 내가 그쪽으로 가면 절대 그냥 조용히 돌아오진 않을거야."
죽음을 관장하는 그 누군가 조차도, 사랑에 빠진 헬보이의 협박은 두려웠던 모양이죠. ^^;;
# 사랑에 대해선 누구나 파이어프루프(Fire-Proof)
죽음 저편으로부터 돌아온 리즈와 헬보이의 키스는 뜨겁습니다. 감정적으로 뜨거울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엄청 뜨겁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잘 단련시킨 구리같은 붉은색 피부의 헬보이는, 태어날 때부터 "방화(Fire-Proof)"성이었습니다. 리즈의 푸른 불꽃과헬보이의 붉은색은 묘한 보색의 하모니를 이룹니다.
오늘저녁엔 집에 가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꼭 껴안고, 지옥까지라도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감정적으로 물리적으로 뜨겁게 ‘어른들의 뽀뽀’라도 해줘야겠습니다.
조금은 가시가 박힌 듯 어떻습니까, 사랑이란 언제나 그런 가시와 함께 옵니다.
불꽃과 폭발이 일어난들 어떻습니까, 사랑에 대해선, 우리 모두가 ‘Fire-Proof’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