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에 340만 관객 돌파 ‘암살’, 7월말 개봉 택한 이유

     개봉 3일째 100만, 개봉 4일째 200만, 개봉 5일째 300만. ‘암살’의 흥행 속도는 최동훈 감독의 전작 ‘도둑들’뿐 아니라, ‘괴물’ ‘설국열차’보다 하루 빠르다. 이 영화는 왜 7월 22일 수요일에 개봉했을까.

   심심풀이로 보는 영화 개봉 타이밍의 비밀. 지난 3월에 썼던 기사, 지면용으로 줄이기 전의 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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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황정민) 친구 달구(오달수)는 말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이지.”

      실은, 영화도 타이밍이다. 규모와 성격에 따라 개봉하는 때가 따로 있다.<그래픽> 경쟁작 눈치도 살펴 최적의 시점을 고른다. 대작은 1년, 중규모 영화는 반년,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도 서너달 전에는 날짜가 잡힌다. 날을 잘 잡아 잘 된 영화도 있고, 잘 못 잡아 망한 영화도 있다. 5일 현재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인 외화 ‘킹스맨’은 매출 2538만달러(한화 약 278억원)를 올렸다. 영화 제작국인 영국도 추월해 미국 다음 세계 흥행 2위다. 영화도 물론 재밌지만 설 연휴 경쟁작 ‘조선명탐정’과 ‘쎄시봉’이 기대에 못 미쳐 ‘어부지리(漁父之利) 승자’가 된 측면도 크다. 타이밍이 좋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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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한 메이저 배급사 관계자는 “사실 개봉 날짜를 정하는 절차는 따로 없다. 배급사들과 극장들이 제작 일정과 라인업을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협의하면서 ‘눈치 작전’을 펼쳐 서로 영화가 가장 잘 될 날을 자연스럽게 골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인 원칙은 있다. 그 해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최고 기대작들이 연중 박스오피스 규모가 가장 큰 7월 마지막주로 간다. 자영업자들도 모두 휴가를 가고 관객이 극장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때다.올해 7월 마지막주는 ‘도둑들’로 1000만 감독이 된 최동훈의 ‘암살’과 외화 ‘미션 임파서블’ 속편이 1년 전부터 이미 ‘찜’했다. 작년엔 ‘군도’, ‘명량’, ‘해적’이 7월말부터 8월초까지 1주씩 시차를 두고 개봉했다. ‘설국열차’나 ‘미스터 고’같은 작품도 7월말 아니면 8월초였다.

   “그 해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최고 기대작들이 연중 박스오피스 규모가 가장 큰 7월 마지막주로 간다. 자영업자들도 모두 휴가를 가고 관객이 극장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때다.올해 7월 마지막주는 ‘도둑들’로 1000만 감독이 된 최동훈의 ‘암살’과 외화 ‘미션 임파서블’ 속편이 1년 전부터 이미 ‘찜’했다.”

      설과 추석도 연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제법 큰 시장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영화가 대세였다. 주로 조폭 코미디들이 이 시즌을 노리다 관객들이 싫증을 내자, 최근엔 사극 코드를 가미하는 경우가 늘었다. 올해 설 연휴의 ‘조선명탐정’이 전형적인 설 시즌용 영화였다.      그 다음 큰 시장은 크리스마스 시즌. 보통 가족영화나 휴먼드라마가 대세고, 연인들을 위한 로맨스물이 뒤를 받친다. 작년엔 크리스마스 시즌보다 두 주 먼저 개봉한 ‘국제시장’이 경쟁작 ‘기술자들’, ‘상의원’이 생각보다 힘을 쓰지 못하면서 성탄·연말 시즌을 순항해 1000만 관객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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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시점에 따라 울고 웃는 영화들도 나온다. CJ의 경우 2012년 재난공포물 ‘연가시’를 ‘스파이더맨’이 개봉하는 6월 마지막주에 올리는 모험을 걸었다. 스파이더맨은 기본 500만 관객 영화라 다들 피했지만, ‘한국영화가 별로 없고 쇼킹한 소재라 여름에 먹힐 것’이라는 역발상으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150만 예상했던 영화가 450만까지 갔다. 쇼박스는 지난해 5월 마지막주에 ‘끝까지 간다’를 올려 재미를 봤다. 6월초 연휴에 ‘우는 남자’ ‘하이힐’ 등 대작들이 있었지만 모두 기대에 못 미쳤고,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경쟁작이 외화냐 한국영화냐, 관객의 서로 다른 취향을 만족시켜줄 수 있느냐 여부가 흥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최초의 1000만 영화인 디즈니 ‘겨울왕국’도 개봉 타이밍이 결정적이었다. 외국에선 12월에 개봉했지만 한국에선 실사 대작들이 몰리는 연말을 피하고 만화영화 경쟁작도 적은 1월로 개봉을 늦춰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렸다. 디즈니는 올해 ‘빅 히어로’에도 같은 전략을 썼다.

   “필름으로 틀던 시절엔 기대작이 망하는 걸 보면서도 다른 영화의 상영용 필름을 새로 제작해 보내올 때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틀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배급시대라 흥행 순환 속도가 빠르다. 될 영화는 쭉 가고, 안 될 영화는 빨리 내려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배급사 관계자들은 “날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영화의 품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필름으로 틀던 시절엔 기대작이 망하는 걸 보면서도 다른 영화의 필름을 찍어낼 때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틀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배급시대라 흥행 순환 속도가 빠르다. 될 영화는 쭉 가고, 안 될 영화는 빨리 내려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 배급 담당자는 “최악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해 1000만 영화가 된 ‘인터스텔라’ 사례에서 보듯, 요즘 극장가에선 재밌고 될 만한 영화는 어느 시즌이라도 된다는 생각이 대세”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