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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26년 만에 만난 전설의 그 영화

 

26년 만에 개봉한 그 때 그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26년 만에 개봉한 그 영화.

IMDB 영화 정보 링크

영화를 본 뒤 깨달은 것.

1. 푹 자고 나올 줄 알았는데 졸 틈을 주지 않는다. 상영시간 237분. 중간 휴식 있는 영화는 진짜 오랜만.ㄷㄷㄷ

2. 봤는지 못 봤는지 헛갈렸는데 못 봤던게 확실. 키노 같은 데서 너무 읽어서 본 걸로 착각했던 모양.

3. 이 장첸(살인 소년)이 그 장첸(와호장룡 2046 자객 섭은낭)이라는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남.

4. 뒤로 갈수록 ‘헉!’ 하고 놀라게 되는 시퀀스 대행진. 카메라워크, 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됨. 카메라가 진짜 발 달고 돌아다니는듯.

5. 애들이 칼 들고 벌이는 태풍의 밤 개싸움을 이렇게 처절히 아름다운 빛과 리듬감으로 그릴 수 있다니.

6. 이 영화에선 사물과 풍경도 배우가 된다. 나뭇잎, 농구공, 촛불, 일본식 가옥의 복도가 꿈틀대며 연기를 함. 이토 준지 만화도 아닌데. ㄷㄷㄷ

7. 팜므 파탈, 팜므 파탈 하지만, 이 영화의 소녀 ‘밍’ 만큼 강력한 팜므 파탈 캐릭터는 드물듯. 


8. 마지막 살인 장면의 (이 영화에선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 롱테이크는 정말 ㄷㄷㄷ

9. 대만의 역사, 억압적 정치 상황, 전염되는 폭력, 일제의 유산, 사회의 공기, 서민의 살림살이, 가족의 의미, 소년기의 불안과 공황, 파리대왕, 실패와 좌절, 반항과 무기력, 애정과 집착, 권위주의, 희생과 용서…. 셀 수 없이 다양한 색과 결이 있는 중층적 텍스트라니.

10. 뭔가 인생 숙제 하나 끝낸 것처럼 술 땡김. ㅋ 극장의 어둠에 스스로 가둬놓고 봐야 더 깊이 느껴질 영화.

그리고, 정성일 선생이 키노에 쓴 짧은 리뷰 링크.
https://seojae.com/web/kino/kino9912-13.htm

 

“우리는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 떳떳치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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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직전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오른쪽)과 올해 대표회장 당선자 길자연 목사(왼쪽)이 1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특별총회를 통해 대표회장 인준과 한기총 개혁안을 동시 상정하겠다"는 내용의 합의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에 있어서 금권선거로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 떳떳치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딱 한 문장 뿐이었다.

1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직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와 올해 대표회장 당선자 길자연 목사가 한 자리에 앉아 ‘공동성명서’를 읽어내려갔다. 길자연 목사측은 이광선 목사측의 개혁안을 수용하고, 이광선 목사측은 길 목사에 대한 대표회장 인준안을 받아들여, 특별총회(30일 개최 예정)에 같이 상정하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한기총을 반년 넘게 혼수상태에 빠뜨렸던 ‘금권선거 관행’에 대한 반성으로 읽을 수 이있는 부분은딱 한 문장 뿐이었다. 그러고 난 뒤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했다.

2월초 “나도 돈선거로 당선됐었다”는 이광선 목사의 폭로 이후, 양측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난타전을 벌여왔다. “물신숭배로 인한 타락”,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모델 하우스”, “연합기관의 수치” 등 누워서 침뱉기식 공격이 일상적으로 오갔다. 결국 교회의 일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갔고, 법원은 평신도 변호사를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교회연합기관의 대표회장 직무대행에 선임했다.

한 일간지에는 “한기총 대표 자리는 가톨릭 추기경이나 불교 총무원장 자리와 다를 바 없다. 평신도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수장 자리에 앉아 1200만 성도를 다스릴 수 있느냐”며 목사들이 법원과 직무대행 변호사를 비난하는 광고까지 실렸다.

한기총의 명예는 나락에 떨어졌다. 교인들은 존경해온 목회자들의 싸움박질을 보며 다치고, 세상의 욕설과 손가락질에 상처입었다. ‘한기총 해체를 위한 네트워크’ 같은 단체는 “반성서적 정치 참여로 순수한 복음 전파라는 설립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한기총은 더 이상 교회를 욕보이지 말고 스스로 해체하는 게 옳다”고까지 했다.

가입 교단과 단체들의 탈퇴도 이어졌다. 구호단체 월드비전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한기총을 탈퇴했다. 총신대 신학생들이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의 경북노회를 시작으로 예장 고신 교단의 수도남노회, 남서울노회, 예장 합신 교단의 경기북노회, 충청노회 등이 ‘한기총 탈퇴 헌의’를 결의했다. 각 교단은 지역 노회가 올린 한기총 탈퇴 헌의안을 오는 9월 교단 총회에서 공식 논의하게 된다.

금권선거 관행에 대해, 혹자는 ‘나이 많은 목사들 사이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관행’이라고도 한다. ‘내가 당선된 선거는 과거 어느 때보다 깨끗했다’는 강변도 나왔다. 관행이라고, 남들도 다 그랬다고, 한국교회 전체에 치욕을 안긴 ‘돈 선거’라는 종양을 다시 뱃속에 집어넣고 봉합해서는 안 된다. 아픈 상처일 수록 더 깊이 메스를 들이대 도려내고, 재발하지 않도록 이중삼중의 제도와 예방책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유행가 가사다. 한국교회를 대표하겠다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그들 때문에 상처받고 세상에 모욕당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할 말은 아니다.

왼쪽뇌 절반잃은 베트남 청년을 위해 스님들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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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경북 구미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쉼터에서 혜문스님, 토안, 진오스님. ⓒ진오스님

차 사고로 왼쪽 뇌의 절반을 잃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베트남 청년을 위해 스님들이 달린다.

구미 대둔사 주지 진오(眞悟)스님과 대구 상락선원 주지 혜문(慧門)스님은 오는 23일 서울 경기지역 사찰 일원을 뛰는 ‘2011 불교 108 울트라 마라톤’의 108㎞ 코스에 도전한다. 108명의 후원자로부터 1km당 100원씩, 총 116만6400원을 모금하겠다는 소박한 목표다. 지난 2007년 한국에 온 베트남 청년 마이 반 토안(27)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 두 스님을 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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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월 1차 수술 후 병원에서(사고전 사진을 들고) ⓒ진오스님

토안 씨에게 한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2년간 2억여만 동(약 2000만원)을 써서 근로자 비자를 얻었고, 입국한 뒤엔 부지런히 일을 해 베트남의 집으로 돈을 보냈다. 불행은 2010년 7월 경북 칠곡에 새 직장을 얻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불법유턴하는 차량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토안은 왼쪽 뇌와 두개골을 절반 가량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세 차례 대수술에도 아직 후유증이 심각하다. 언어능력은 70% 정도만 돌아왔다는게 의료진의 판단이다. 평생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통장에 지금 남은 돈은 5만4000원. 꿈을 잃은 청년에게 세상법은 매몰찼다.

“베트남 기준에 따라 한 달 최저임금 5만6000원으로 계산해서, 60세까지 남은 기간 곱하면 2000만원 정도래요. 그것도 무면허에 헬멧을 안 썼다고 20%씩 40%를 제하고 준다는 거예요. 토안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죠?”

사고를 낸 사람은 형사 합의금으로 720만 원을 줬다고 한다. 아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온 토안 씨의 아버지에게 ‘합의 못하면 감옥간다’고 사정했고, 아버지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험한 꼴을 당하게 할 순 없다’며 덜컥 합의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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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첫 수술을 마친 뒤 아버지가 떠 주는 밥을 먹고 있는 토안씨. ⓒ진오스님

스님들은 두개골이 뭉텅 잘려나간 토안의 사진을 등에 붙이고 뛸 생각이다. 두 스님 모두 워낙 운동을 좋아하지만, 108㎞ 도전은 처음이다. 진오 스님은 요즘 평일엔 10㎞, 주말에는 40여㎞를 뛰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진오 스님은 2000년부터 구미에서 이주노동자지원센터와 쉼터를 10년째 지금도 운영 중이고, 2008년 2월부터 김천시가 직지사 복지재단에 위탁 운영 중인 김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도 맡고 있다. 다치고 상처받은 채 쉼터에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돌보는 스님은 토안 씨 같은 사례가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스님은 “목표대로 116만원이 모인다 해도 큰 돈은 아니지만, 이번 목표를 성취하면 외국인 근로자들 돕는 일은 하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일종의 ‘소모품’으로 보는 것 같아요. 토안이 당한 아픔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제도 보완의 필요성이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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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경북 구미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쉼터에서 컵 연등을 만들고 있는 토안과 아버지, 진오 스님. 토안과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며 컵 연등을 만들어 밝힌다. ⓒ진오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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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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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사제수품 50주년 金慶祝 미사에 갔었습니다. ^^

정진석 추기경 수품 50년 축하 미사… "50년 前 사제품 받은 그 감격, 오늘도…"

강우일 주교님이 "추기경님 유일한 취미는 ‘방콕’이세요" 할 때

근엄한 추기경님과 주교님들이 웃음을 참느라 애쓰셨습니다.

성당 안 사제들 신자들이야 뭐, 웃음바다였고요. ^^

강 주교님 말씀대로 "이런 경건하고 부지런한 어른 가지게 된 것, 천주교회에 다시 없을 축복"이지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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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창조하고 즐길 권리’ 지키되 ‘지나친 탐욕’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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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고 즐길 권리’ 지키되 ‘지나친 탐욕’은 막아라

2010년 화제의 해외 저작권 소식들

조선일보 국제부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네이키드 카우보이, 헐크와 판타스틱 포, 캣웨이의 패션디자이너, 영화·음악산업의 거물들, 언론 황제 루퍼트 머독과 대영 도서관, 구글·SAP·오라클 같은 다국적기업….

올해도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스스로의 창조물인 지적재산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일부는 가십거리로 타블로이드 신문에 오르내렸고, 일부는 진지하게 수십억달러의 거액이 오가는 싸움이었다. 올 한 해 저작권과 관련한 해외 소식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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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스퀘어의 유명인사 네이키드 카우보이. 광고에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했던 M&M 초코볼로 유명한 식품 대기업 마스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해 유명세를 탔다.

◆네이키드 카우보이 vs. 네이키드 초코볼

‘네이키드 카우보이(naked cowboy·사진)’는 팬티 차림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통기타를 치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유명인사다.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활짝 웃는 얼굴로 관광객들과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그이지만, 올 2월엔 색다른 소식으로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다. 벌거벗고 기타를 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해 빌보드 광고를 만든 초콜렛 메이커 M&M의 모기업 마스 사(社)를 상대로 600만 달러(약 70억원) 규모의 손해 배상을 뉴욕 연방법원에 제기한 것이다. 광고 속 ‘네이키드 M&M’ 초코볼은 네이키드 카우보이 로버트 벅과 꼭 닮았다. 네티즌들은 “팬티를 입었으니 벌거벗은(naked) 게 아니어서 무효”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농담거리로 삼았다. 법원 판결이나 양자간 합의 소식은 아직 없지만, 진지하게 법정다툼을 벌이면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우세하다는 관측이 많다. 이미 수많은 영화와 TV쇼, 수퍼볼 중간 광고에까지 출연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인정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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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 코믹스 수퍼 영웅들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잭 커비의 생전 모습. /앨런 라이트 플리커 홈페이지

◆마블 코믹스 수퍼영웅 소유권 다툼

지난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 콜린 맥마흔 판사는 ‘수퍼 영웅 소유권 분쟁’의 첫 심리를 열었다. 월트 디즈니 소유인 유명 만화출판 영화 제작사 ‘마블’과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의 유명 캐릭터들을 창조한 ‘잭 커비<사진>’ 유족들간의 저작권 다툼이다. 마블 측은 "잭 커비는 마블의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이들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저작권은 고용주인 마블의 소유"라는 입장이다. 반면 유족과 변호인들은 "그런 식의 주장은 아티스트의 권리를 강탈하려는 기업들이 흔히 내놓는 궤변"이라며 맞받아친다. 유족들의 변호사는 만화 수퍼맨 캐릭터를 창조한 제리 시겔의 유족들에게 저작권을 되찾아주며 성가를 올린 저작권 전문 변호사 마크 토버프. 최종심 결과가 나오는 데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패션 디자인 저작권 보호법 성사될까

12월초 미 상원 법사위는 ‘혁신적 디자인 보호 및 저작권 침해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전미 패션디자이너 협회(CFDA)’를 선봉으로 한 미국 럭셔리 패션업계는 오리지널 디자인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해 의류업체들의 카피 상품 제조를 막기 위해 오랫동안 로비를 벌여왔다. 비슷한 입법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시도됐지만, ‘미국 섬유 및 신발산업협회(AAFA)’ 등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하지만 이번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등이 CFDA와 AAFA 등의 지지를 얻어 새로운 법안을 냈다. 그렇다고 법안 통과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패션에서 ‘카피’와 ‘영감을 얻는 것’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논리로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로스쿨 교수 캘 로스티얼라(Raustiala) 등은 “적어도 미국에서 패션 디자인 베끼기는 완전히 합법적일 뿐 아니라, 패션 산업 전체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의류 기업들은 매력적인 원조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무언가를 첨가해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무언가’로 만들어내며, 이런 것이 패션의 시작이 되고 패션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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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해적당의 로고. 유럽 각국의 해적당은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 강화,

영리 목적이 아닌 무한 파일 공유 허용 등 급진적 주장을 펴며 디지털 시대

저작권 논쟁의 선두에선 정치세력으로 급부상 중이다.

◆“무한히 카피할 권리!” 해적당 급부상

모든 창조물이 무한히 카피되는 디지털 시대 저작권 논쟁에 ‘해적당(Pirate Party·로고)’으로 불리는 정치세력이 새로 등장해 주목받았다. 원래 200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해적당 운동은 영국, 독일 등 유럽 나라들과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 보호를 더욱 강화하고, 특허법과 저작권법 체계는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올 3월 영국 총선에 도전장을 냈던 영국 해적당은 "나라에 따라 70년 안팎으로 규정된 오리지널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기간은 너무 길다. 10년 안팎으로 줄이면 오히려 더 많은 예술가들의 창조활동을 장려할 수 있고 새로운 예술과 창조물의 탄생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저작권 소유자들이 로비그룹을 통해 정치인들에게 행사하는 압력 때문에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는 논리다. 이들은 또 "돈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닌 한 인터넷 상에서 파일 공유도 무제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저작물로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은 여전히 불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전제도 단다.

◆음반산업 vs. 동네 주점들

미국과 유럽 등 강력한 저작권 보호가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동네 주점과 식당, 쇼핑몰 등에서 음악 방송을 하는 것에도 저작권료를 물린다. 이 때문에 유명 음악을 카피해 연주하는 밴드를 무대에 올리던 많은 라이브 바들이 저작권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부작용도 생겼다. 소규모 자영업자와 무명의 음악인들에 대한 핍박으로 받아들여지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영국에서는 올 3월 주목할 만한 법원 판결이 있었다. 영국 음반업계의 저작권료 수입을 대행하는 기업이 2005년 이후 저작권료를 200~400% 일괄 인상한 것을 ‘지나치다’는 취지로, “영국 맥주 펍 협회(BBPA) 및 영국 소매업 컨소시엄(BRC) 측에 4년간 과다 지불된 저작권료 2000만 파운드(약 350억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것이다. BRC의 스티븐 로버트슨 사무총장은 “매장 손님들에게 음반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적절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은 정당한 경제 활동의 필수적 요소다. 음악가와 음반사들은 정당한 저작권료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지나친 요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저작권위원회 소식지 2011년 1월호.

[펀잡 주지사 암살]자유의 태양, 이슬라마바드의 지평선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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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파키스탄에서 핍박받는 여성·소수민족 보호에 꿋꿋하게 앞장섰던 살만 타시르(66) 펀자브 주지사가 4일 경찰특수부대 소속 경호원의 흉탄에 암살당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펀자브 주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막아온 유력 정치인이다.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최고 핵심이고,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기도 하다. PPP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폭탄테러로 잃은지 3년여 만에 최악의 정치적 손실을 입었다.

이날 타시르 주지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번화가 코샤르 시장에서 식사를 마친 뒤 관용차에 타려다 경호원 말릭 뭄타즈 후세안 카드리(26)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카드리는 암살 직후 체포됐으며, 현지 두냐TV에 “나는 예언자(무함마드)의 종이며,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은 죽음 뿐”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주지사의 몸에는 총탄이 24발 박혀 있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현장의 경호원들은 아무도 카드리를 말리지 않았다”며 다른 경호원들과 공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레만 말릭 내무장관은 “배후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타시르 주지사는 악명높은 ‘신성모독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급진 이슬람 성직자에 의해 살해 명령과 6000달러의 포상금이 내걸리는 등 수많은 위협과 압박을 받아왔다. 1980년대 이슬람주의 군부 독재 시절 만들어진 신성모독법은 이슬람, 쿠란, 예언자 모함마드에 대한 어떤 모욕도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악법. 타시르 주지사는 지난해 11월 한 기독교도 여성이 이슬람에 대한 모욕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이 여성의 사면과 신성모독법 폐지 운동을 공개적으로 주도한 사실상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트위터를 통해 “인간은 또 국가는 강자(强者)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약자(弱者)에 대한 보호 여부로 판단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정부는 사흘간 공식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사흘내 야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각 불신임도 불사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던 최대 야당 ‘파키스탄 무슬림리그-N(PML-N)’은 애도를 마치는 40일 뒤로 최후통첩 기간을 연장했다.

현지에선 “정부에서 가장 용감했던 사람”(대통령 애도 성명),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을 내건 용맹한 사자”(PPP 의원), “파키스탄의 이성(理性)이 죽음을 맞았다”(현지 익스프레스 트리뷴), “자유의 태양이 이슬라마바드의 지평선으로 졌다. 오늘은 암흑시대가 시작된 날”(현지 데일리 타임스) 등 애도와 비탄의 성명과 보도가 쏟아졌다. 이슬라마바드의 암살 현장과 병원, 라호르의 타시르 주지사 자택 앞에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 등이 암살을 규탄했다. 반면 페이스북에는 극도로 분열된 현지 여론을 반영하듯 암살자 카드리를 ‘영웅’으로 미화하는 홈페이지도 생겨났다.

미국 abc방송은 “이번 암살의 가장 큰 희생 제물은 타시르 같은 정치가가 있어 가능했던 파키스탄의 정치, 종교적 온건화 가능성”이라고 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붕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남녀불문 파멸로 이끄는 ‘달콤한 연인의 덫(Honey Trap)’

1986년 이스라엘의 디모나 핵시설에서 일했던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Vanunu)는 이스라엘의 비밀 핵 개발에 관한 증거사진과 자료를 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런던 편집국을 찾아갔다. 기자들은 바누누를 근교의 안가에 은신토록 하고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조바심이 난 바누누는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신디라는 이름의 미국인 여성을 만났다. 바누누가 “신디와 함께 일주일간 로마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더 타임스 기자들이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바누누는 로마에 도착한 뒤 이스라엘 해외정보국 모사드 요원들에 붙잡힌 뒤 약물 중독 상태로 이스라엘로 보내졌고, 18년형을 살았다. 그 중 11년은 독방 신세였다. 신디는 셰릴 본 토브(Tov)라는 이름의 모사드 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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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Ronald H. Miller.
2004년 4월 21일, 반역죄로 18년 수감 생활을 마감한 뒤 예루살렘 성 조지 성당 뜰에 선 모르데차이 바누누. 그는 이스라엘의 비밀 핵개발을 폭로하려다 모사드 여성 요원에게 유혹당해 이스라엘로 압송된 뒤, 18년 감옥생활 동안 11년을 독방에서 보냈다. 현재도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로, 외국인과의 접촉이 전면 금지돼 있다.

◆파멸로 이끄는 달콤한 ‘연인의 덫(Honey Trap)

작년 영국 정보국 MI5는 영국내 은행·기업·금융기관 등에 ‘중국 스파이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14쪽짜리 보고서를 보냈다. 여기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등이 성적(性的)으로 핵심 인사들을 유혹해 “장기적 관계”를 맺으려는 다수의 사례들이 포착됐다고 경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첩보전의 세계는 성(性)을 무기로 써온 역사가 깊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온라인판은 최근 ‘연인의 덫(honey trap)’으로 불리는 첩보활동 방식을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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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프로푸모 스캔들’의 주인공 크리스틴 킬러. 킬러는 옥스퍼드대를 나온 전쟁영웅 출신의 스타 정치인 존 프로푸모 전쟁장관과,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잘생긴 해군 무관 예브게이 이바노프 두 사람 모두의 정부였다. 이바노프는 이후 소련으로 돌아간 뒤 영국 언론의 호들갑을 조롱하며 "당신 같으면 ‘오, 내사랑, 그런데 이번에 핵무기는 독일 어디에 배치되는 거예요?’하고 묻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크리스틴의 조사기록에는 그녀가 일반 대중에게 익숙치 않은 핵이나 안보 관련 용어를 예사롭게 사용하는 등 의혹의 여지가 컸던 것으로 나온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나 논픽션으로도 다수 만들어졌다.

◆유혹은 남녀불문

1960년대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모스크바 특파원 제레미 울펀든(Wolfenden)은 남자에게 유혹당한 경우다. 소련 정보국 KGB는 울펀든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외무부 이발사를 그에게 접근시켰다. 증거사진을 확보한 뒤엔 모스크바의 미국·유럽인들 사이에서 첩자 노릇을 하도록 협박했다. 이를 눈치챈 영국 비밀정보국(SIS)는 그를 이중간첩으로 활용했다. 울펀든은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알콜중독 상태에서 낙상(落傷)해 사망했다.

◆구 동독, 국가차원에서 ‘연인의 덫’

구 동독 정보국 슈타지의 수장이었던 마르쿠스 볼프(Wolf)는 국가 차원에서 ‘연인의 덫’을 쳤다. 그가 훈련시킨 여성 첩보원들은 나토의 핵무기 배치 정보를 빼오고, 헬무트 슈미트 당시 독일 총리 사무실에 직원으로 취직할 정도로 독일 사회 깊숙이 침투했다.
FP는 이밖에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고용된 여성 첩보원으로 프랑스의 기밀을 팔아넘겼던 마타 하리(Mata Hari), 1960년대 초 영국 전쟁장관과 러시아 대사관 해군 무관 양쪽의 정부(情婦)였던 크리스틴 킬러(Keeler) 등의 사례도 소개했다.

적반하장 중국 ‘짝퉁 구글’, “거대 기업 압력에 굴복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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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기업에 굴복 않겠다?”적반하장중국 ‘짝퉁 구글’

중국과 미국 정부는 연초부터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 기업 구글 문제를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구글에 대한 해킹과 검열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글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 초기화면 로고가 구글을 을 쏙 빼닮은 ‘짝퉁 구글’, 구제(Goojje·谷姐·사진)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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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구제 사이트의 로고. 구글과 바이두를 반반쯤 빼닮은 형태였다.


◆저작권 위반 지적에 “권리 보호받겠다”

“외국 거대 기업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
샤오셴(小炫)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는 구제 사이트 창업자는 지난 2월 9일자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타임스는 인민일보 자매지로 국제뉴스를 전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문판. 샤오센의 말은 구글이 2월 7일 구제 사이트 앞으로 운영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하는 ‘정지 명령(cease and desist)’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구글은 “구제가 구글의 트레이드마크를 모방해 사용자들이 두 사이트가 관련이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서 구글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누가 봐도 상식에 부합하는 지적이다. 하지만 샤오센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는 “구글의 지적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사이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필요하다면 법정 싸움을 해서라도 우리의 권리를 보호받겠다”고도 했다. 샤오센은 대학에서 언론과 출판을 전공하고 2008년 졸업한 청년이다.
‘구제(Goojje)’라는 이름은 중국어와 영어의 유사한 발음을 이용해 구글의 ‘글(gle)’을 ‘제(jje)’로 바꾼 일종의 말장난이다. ‘제’는 누나 또는 언니를 뜻하는 ‘姐(jie)’와 발음이 흡사하고, ‘글’은 오빠 또는 형을 뜻하는 ‘哥(ge)’와 발음이 비슷하다. 구글은 ‘구 형님’, 구제는 ‘구 누나’쯤 되는 셈이다. 좋게 보면 구글과 형제 자매처럼 친밀한 관계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구글을 모방한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장난’으로 탄생한 구글 카피 ‘구제(Goojje.com)’

실제로 ‘구제’는 지난 12일 구글이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과 해킹을 이유로 중국 시장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인 14일 처음 개설됐다. 처음 ‘구제’ 사이트 초기 화면에는 ‘형이 떠나면 누나는 그리워할 거야’라는 중국어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구글이 중국 시장에 계속 남기로 한 뒤에는 ‘형이 누나를 위해 남기로 했어’라는 취지의 중국어 메시지가 떴다. 로고는 구글과 중국 내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의 초기 화면을 조금씩 따내 합성한 형태다. 베이징대 등 중국 명문대 졸업생 8명이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 이용통계를 내는 알렉사닷컴에 따르면, 2월초 구제닷컴은 세계적으로 1만1073위, 중국 내에서 496위의 인터넷 사이트였다. 등록 이용자 숫자도 6만명에 달했다. 이용자 숫자는 특히 샤오셴이 “2월 4일부터 사흘 넘게 외부 해커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고,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고 발표한 뒤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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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만들어진 ‘짝퉁’ 아이폰<왼쪽>과 진짜 아이폰. 이젠 정말 놀랍지도 않다.

◆“세계적 기업이 신생 사이트 하나 못 참아주나”

샤오는 “구제 사이트는 페이스북같은 일종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로, 검색만을 목적으로 하는 구글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간단한 자체 검색 기능과 함께 중국 내 인터넷 사이트를 안내하는 디렉터리 서비스와 다양한 주제의 게시판 및 인터넷 투표 기능도 갖췄다. 사업 영역도 꽤 겹치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국쪽 반응은 ‘젊은 학생들이 참 장하다’는 식이다. 글로벌 타임스는 구제 사이트가 처음 개설됐을 당시 보도에서 “모방이 최고의 상찬(賞讚)이라면 구글은 하루 백만 클릭을 기록하는 카피 사이트 ‘구제 닷 컴’을 만들어낸 청년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은 셈”이라고 썼다. 구제 사이트에 대해 논평을 요구받은 구글 측이 “우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한 문장만 발표한 데 대해서도 “구제 사이트 이용자들은 ‘디지털 큰 형님’인 구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 뿐인데 구글이 뭐 걱정할 게 있겠느냐”고 했다. 구제 사이트에는 “큰 형이 누나를 괴롭히고 있다”거나 “구글의 반응은 오버액션이다. 세계적 검색엔진 기업이 검색 전문도 아닌 신생 사이트 하나 참아주지 못하느냐”는 식의 게시글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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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카피로 화제를 모은 중국 걸그룹 아이돌 걸스(idol girls).

◆짝퉁에 관대한 중국의 ‘산자이(山寨) 문화’

사실 중국 정부·언론과 대중들이 ‘짝퉁’에 관대한 것은 중국 특유의 ‘산자이(山寨) 문화’에 뿌리가 있다. 우리 말로 ‘산채’에 해당하는 산자이는 수호지의 양산박같은 산적 소굴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중국에선 세계 유명 상품을 빠르게 모방해 해적판으로 만들어내는 지하 공장, 혹은 그 생산품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문제는 중국에서 산자이 문화가 긍정적 맥락으로 수용되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다는 점이다. 기존 제품에 중국 고유의 아이디어를 덧붙인 뒤 더 싼 가격으로 내놓는 게 뭐 나쁘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빈부 격차가 큰 중국 사회에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위무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장려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정보통신(IT)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구제’ 이전에도 구글과 야후 뿐 아니라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百度)까지 카피한 바이고(Baigou), 바이구후(Baiguhu), 바이후구(Baihugu) 같은 사이트들이 등장했었다.
샤오는 “구제 사이트를 기반으로 세계적 규모의 인터넷 기업을 일구겠다”고 말한다. 그는 “사이트 개설 뒤 민간기업으로부터 100만 위안 어치 광고 제안을 받았고, 제안받은 투자 액수를 합하면 1000만 위안에 달했다”며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너무 성급하게 사이트를 상업화하지 않을 생각”이라고도 했다. 함께 사이트를 만든 사람들이 모두 급여없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어 운영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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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음력설에 바뀐 구제의 로고. 색깔이나 디자인에 변화를 줬지만, ‘모방’의 혐의는 벗지 못한다.

◆중국 내에서도 생존 가능성에 회의적


구글을 베껴 출발한 ‘구제’가 새로운 인터넷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중국 내 반응조차 회의적이다. 중국의 저명한 1세대 인터넷 논객으로 블로그포털과 웹리서치 컨설팅 기업의 창업자인 팡싱동(方興桐)은 “구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대학생들도 아마 재미로 만들어봤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정말 심각하게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라면, 웹사이트를 유지 개선하기 위해 많은 현금과 고급 기술을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국제부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2월 초에 작성해 저작권위원회 소식지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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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의 反영웅, 카라바조가 다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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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Vincit Omnia. 1602-1603. Gemäldegalerie, Berlin. Caravaggio shows Cupid prevailing over all human endeavors: war, music, science, government.

이탈리아 공항 면세점에서 잘 팔리는 스카프, 거대한 롤러코스터를 장식한 골리앗의 머리, 신종 전염병을 다루는 의학 학술지의 표지, 런던 성인용품점의 광고판.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의 작품이 쓰인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카라바조가 재조명받으며 지난 500년간 이탈리아 고전 예술의 왕좌에 앉았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Buonarroti·1475~1564)의 인기를 제칠 기세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 보도했다.

◆50년간 작품 사용빈도 조사해보니

미술사가인 캐나다 토론토대 필립 솜(Sohm) 교수는 지난달 시카고미술협회 강연에서 이런 주장에 근거를 제시했다. 솜 교수는 지난 50년간 책이나 학술 논문을 비롯한 인쇄물에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의 작품이 쓰이는 빈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카라바지오가 꾸준히 미켈란젤로를 추격해 마침내 따라잡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관람객 숫자 등을 헤아리는 전통적 방법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카라바조의 삶은 구설수와 폭력의 연속이었다. 고관대작들의 스캔들에 연루되는가 하면, 여자 뿐 아니라 남자의 뒷꽁무니도 끊임없이 쫓아다녔다. 운동 경기의 경쟁자를 단검으로 찌르고 도망다니는가 하면, 습격을 받아 얼굴에 칼자국까지 얻었다. 복잡한 개인 생활과는 별도로 그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강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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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ine Chapel ceiling by Michelangelo, hand of God giving life to Adam.

◆르네상스적 완벽함보다 사실주의적 화풍에 친근감

솜 교수에 따르면, 카라바지오가 재조명받은 것은 그의 그림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나 조각 속에서 사람의 신체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완벽한 기하학적 균형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수사법에 근거한 이 아름다움이 보통 사람들에겐 웬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들 훌륭하다고 칭찬하니 그런 줄 알 뿐, 곁에 두고 즐기기 쉽지 않은 고전(古典)이 돼 버린 것이다.
반면 카라바지오의 그림 속 소년은 두툼한 입술에 커다란 갈색 눈, 방금 잠자던 침대에서 눈을 비비며 걸어나온 듯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고, 팔과 얼굴은 강조된 원근감 때문에 초현실적인 느낌까지 든다. 사랑의 신 큐피드조차 카라바지오의 그림 속에선 희고 아름다운 날개가 아니라 닭털을 이어붙인 듯한 가짜 날개를 달고 있다. 천국에서 내려온 듯한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통통한 볼살의 소년과 노인이 카라바조 그림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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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8-1599.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NYT "구설 몰고 다닌 카라바조는 근대적 의미의 反영웅(anti-hero)"

NYT는 “카라바조는 현대적인 반영웅(ant-ihero)이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극사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특히 전후 세대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카라바지오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대중소설가와 영화제작자들도 카라바지오의 삶에 탐닉한다. 미술 전시회 기획자들도 흥행을 위해 카라바지오와 베이컨, 카라바지오와 렘브란트를 잇는 식의 기획을 내놓는다. 이런 인기가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벽화의 가치를 낮춰 볼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생활과 더 많이 융합한 화가는 미켈란젤로보다 카라바조 쪽이라는 것이다.
최근 카라바조에 관한 책을 쓴 작가 마이클 프리드(Fried) “카라바조 그림의 가치는 ‘흡수력’에 있다.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처럼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우리 곁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NYT에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바조의 본명(미켈란젤로 메리시)은 그 자신이 자리를 넘보는 미켈란젤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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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chus, 1595, oil on canvas, Uffizi, Florence

모사드, 공포와 효율의 암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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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당한 아들 마무드 알 마부의 사진을 들고 있는아버지.ⓒ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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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8월 1일 무하마드 술레이만(Suleiman) 장군은 시리아 북부의 지중해변 휴양지 타르투스의 한 빌라 뒷뜰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쪼였고, 주변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빌라 문 앞엔 무장한 경호원들이 물 샐 틈 없이 경비를 섰다. 그 때 빌라 앞 바다 위로 작은 요트 한 척이 느리게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갑자기 술레이만 장군이 쓰러졌다. 저격수의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현장 즉사였다. 누구도 총성 조차 듣지 못했다. 술레이만은 바샤르 알 아사드(Al-Assad) 시리아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이자, 북한과의 핵프로그램 협력 연락책을 맡은 시리아 권부의 핵심 인사였다. 시리아 당국은 “모사드 저격팀의 소행”이라고 했다. 아무도 이 발표를 의심하지 않았다.

#2

앞서 2008년 2월 12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핵심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Mughniyeh)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의 크파르 수세 거리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신의 은색 미츠비시 파제로 승용차에 올라탔다. 헤즈볼라는 2006년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과 전면전을 벌였던 무장조직. 무그니예는 이란 대사가 주재한 ‘이란 이슬람 혁명 29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전석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심호흡을 했을 때 쿠션 속에 심어둔 폭탄이 터졌다. 무그니예의 머리는 문자 그대로 ‘작은 핏덩어리들로 잘게 부서졌다(shattered into bloody pieces)’. 다마스커스는 시리아 정부의 비호 아래 헤즈볼라 핵심 지도자들이 망명 지도부를 세운 곳이다. 무그니예 암살 이전엔 헤즈볼라의 ‘안전지대’였다. 무그니예는 1983년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와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로 3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9·11테러로 오사마 빈 라덴이 그를 앞서기 이전엔 가장 많은 미국인을 죽인 테러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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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의 9.11 테러 이전 미국인을 가장 많이 죽인 레바논 헤즈볼라의 무장조직 지도자 이마드 알 무그니예.그는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승용차 운전석 머리 쿠션에 심어놓은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모사드의 암살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Ha’aretz

"지략이 많으면 백성이 평안을 누리느니"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Where no stratagem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lors there is salvation)” 공식 명칭이 ‘이스라엘 정보 및 특수작전국’인 모사드의 휘장에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실제로 모사드는 이집트나 요르단과의 수교,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 공습 등 외교나 분쟁의 무대 뒤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사드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면, ‘지략’보다는 ‘공포’나 ‘암살’ 같은 어두운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1월 19일 두바이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부 암살 사건을 계기로 세계가 다시 모사드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동에서 암살 사건이 벌어진 뒤, 모든 아랍국과 이란이 모사드가 암살의 배후라고 비난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를 증명해내는 일은 거의 드물다. 이스라엘 채널2 TV는 술레이만과 무그니예가 암살된 2008년 연말 메이어 다간(Dagan) 모사드 국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다간 국장에 대한 이스라엘 현지 여론은 대개 찬사 일색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무그니예의 장례식이 열린 날 에후드 올메르트(Olmert)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다간 국장을 은밀히 만나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고 보도했다. 하산 나스랄라(Nasrallah) 헤즈볼라 지도자는 무그니예의 장례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모사드) 너희는 국경을 넘었다. 시오니스트들, 너희들이 전면전을 원한다면, 어디서건 전면전으로 맞서 주겠다”고 경고했다.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레바논의 고위 이슬람 성직자 모하마드 후세인 파드랄라(Fadlallah)는 "저항 운동의 기둥 하나를 잃었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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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은 두바이 최고급 호텔 알 부스탄 로타나에서 반바지 차림에 테니스 라켓까지 들고 하마스 간부 알 마부의 뒤를 쫓아 투숙 객실을 확인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Dubai Police via gulfnews

"중요한 건 이스라엘이 지구상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

이스라엘은 국민 대다수가 “국가의 존재를 위해”라는 이유로 암살에 찬동하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나라다. 암살에 대한 유대인들의 ‘긍정적’ 인식을 확인시켜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뒤 7년이 지난 1955년, 저명한 평화운동가이며 철학자인 예샤야후 레이보비츠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격인 다비드 벤 구리온(Ben Gurion) 당시 총리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무고한 팔레스타인 인들이 이스라엘의 군사·정보 작전에 의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벤 구리온의 대답은 간명했다.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세상이 평화, 화해, 정의, 정직 같은 말들로 가득찬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이스라엘이 그 세상 위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보전의 세계에서 모사드는 전설적 존재다. 소련과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최고의 요원들을 동원해 맞서던 냉전 시대에도 미 중앙정보국(CIA) 조차 모사드의 정보력에 의존했다. 1956년 모사드는 니키타 후르시초프(Khrushchev)의 비밀 문건을 빼냈다. 후르시초프가 육성으로 요세프 스탈린(Stalin)의 인명 학살을 범죄라며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중동의 군사 강국들에 둘러싸여 국가 존재 자체를 위협받던 1966년, 모사드는 이라크에서 미그21 전투기를 빼돌려 이스라엘 본토로 실어왔다. 미그21은 유사시 이스라엘 본토 공습에 사용될 중동 국가들의 주력기였다. 1981년 이스라엘의 F16 전투기들이 핵개발 의혹을 받던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했을 때도, 적국 내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 길을 열어준 모사드 요원들의 활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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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올림픽에서 살해된 이스라엘 대표선수 11명의 복수를 위한 지상 최대의 암살작전 ‘신의 분노’ 작전을 그린 영화 ‘뮌헨’의 한 장면.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정부 내에’X위원회’를 조직해 직접 암살 대상자 명단을 검토하고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Universal Pictures

검은 9월단을 말살하라 : ‘신의 분노’ 작전

세계가 모사드의 이름에 공포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상 최고 효율의 살인 기계’(미국 독립라디오 방송 렌스닷컴)로 불리게 한 암살의 역사 덕이다.
가장 유명한 건 원조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Meir·1898~1978) 전 총리가 승인한 ‘신의 분노(Wrath of God) 작전’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국가대표선수 11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모사드와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최고의 정예 요원들을 뽑아 암살단을 조직했다. 학살 사건을 실행한 검은 9월단 조직원은 물론, 기획 과정에 연루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고위 관계자들이 목표물이었다. 메이어 총리는 전쟁 영웅 모셰 다얀(Dayan) 국방장관과 함께 ‘X 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정부 내에 조직해 직접 암살 대상자를 선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암살단은 이후 약 20여년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테러 관련자들을 추적해 독살, 총격, 폭살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다양한 방법으로 죽였다. 이 과정은 스티븐 스필버그(Spielberg)의 영화 ‘뮌헨(2005)’에도 그려졌다. 모사드는 앞서 1960년대에는 이집트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도와준 독일 과학자들에게 폭탄 편지를 보내 다수를 살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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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세르 아라파트의 손발과 같았던 남자, 칼릴 이브라힘 알 와지르, ‘아부 지하드’. 아라파트와 함께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인 파타당의 창설자 중 한 명이며, 초기PLO 무장투쟁의 뛰어난 지도자였다.

1987년 튀니지에서 발생한 PLO 지도자 칼릴 알 와지르(Wazir) 암살 사건은 모사드가 실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암살 사건 중에서도 가장 스펙터클했던 것으로 꼽힌다. 알 와지르는 ‘아부 지하드(이슬람 성전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PLO 핵심 중 핵심이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당시 30여명의 모사드 요원은 작은 보트에 나눠 타고 튀니지 해안을 통해 침투했다. 몇몇은 관광객으로 가장해 아부 지하드의 집에 접근했다. 몇 명은 튀니지 군복을 입고 거리를 봉쇄했고, 하늘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보잉707 전자전기가 떠서 지상의 모든 통신을 방해했다. 암살단은 아부 지하드의 집에 침투한 뒤 아내와 아이들의 눈 앞에서 그의 몸에 70여발의 총알을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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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경찰이 공개한 용의자들의 암살사건 전후 두바이 입출국 흐름도. ⓒDubai Police via The National

아내와 자식들 눈 앞에서 총알 70발 ‘벌집’으로

1995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파티 시카키(Shikaki)는 지중해 휴양지 몰타에서 암살됐다. 모사드로 추정되는 암살자들은 두달 전 미리 훔쳐둔 현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시카키의 머리에 정확히 세 발의 총탄을 쐈다. 암살자들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1996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하마스 폭탄 전문가 예히예 아이야시(Ayyash) 암살 사건은 최초로 휴대전화 폭탄이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이야시는 자기 휴대전화에 심어진 폭탄이 폭발해 죽었다. 당시 그의 먼 친척이라는 19살 청년이 아이야시의 집을 방문했고, 집에 전화하겠다며 휴대전화를 빌린 뒤 폭탄을 심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하마스 지도자 이즈 엘딘 수비 셰이크 칼릴(Khalil)이 차량 폭탄으로 암살됐다.

“테러 공격을 기획한 자들을 죽이면 테러를 막을 수 있다.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이 마냥 유쾌한 일은 아니다. 체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통제 밖 영토에 있고,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죽여버리는 것을 선호한다.”
메이어 다간(Dagan) 모사드 국장은 암살 정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유대인·이스라엘 전문 미디어 JTA 통신은 보도했다. 슈피겔은 두바이 암살사건에 대해 “모사드가 실행한 것이 맞다면, 그들은 국제법 위반, 온건한 아랍국과의 관계 악화, 핵심 요원들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을 모두 무릅쓴 것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으로 이스라엘의 안보가 어느 때보다 위험에 처한 가운데, 모사드는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더 과감해질 수 있음을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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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을 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조직원들이 지난 2월 17일 가자지구 베이트 라히야에서 두바이에서 암살된 무장조직 ‘이즈 알 딘 알 카삼 여단’ 창설자 마무드 알 마부의 추도식을 열고 이스라엘 국기를 밟으며 헌화하고 있다.ⓒAP

※ 주간조선 2095호(3월 6일자)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