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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사람들 만나 나눈 이야기. 대부분 감독 혹은 배우.

[이와이 슌지 감독 인터뷰] “기억하는 한, 존재도 사라지지 않는 것”

 

“죽은 사람에 관한 기억을 얘기한 영화 ‘러브레터’를 만들었지만 실은 ‘내가 정말 죽음을 몰랐던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생존자들은 죽은 사람들을 여전히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딘가 있을 수도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이 지속된다면 죽어도 진짜 죽은 게 아닐 수 있겠다 싶었지요. 나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면 존재 의미도 사라지는 것 아닐까, 단순히 살아 있음보다 기억이 더 소중한 것 아닐까….”

 

お元気ですか?

   이와이 슌지(岩井俊二·52) 감독을 만나면오겡키데스카(お元気ですか·잘 지내세요)?”라고 먼저 묻고 싶었다. 설산을 향해 메아리치던 한 여인의 간절한 외침으로 기억되는 영화러브레터가 만들어진지 올해로 20년이다. 오는 4일까지 서울 CGV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마리끌레르 영화제 참석차 내한한 이와이 감독을 지난 28일 만났다. 영화제는 이와이 슌지 특별전을 통해뱀파이어’(2011), ‘하나와 앨리스’(2004),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을 상영하고 있다. 그는 질문을 받으면, 그렇군요…한 뒤 한참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두꺼운 뿔테 안경 속의 두 눈을 몇 번 깜빡인 뒤엔 길게 정성을 다해 답했다.

-‘러브레터를 본 많은 사람들이 종종 당신을 멜로에 특화된 감독이라 생각한다.

  “실은 나는 러브스토리나 멜로물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러브레터도 사실 시간과 기억에 관한 독백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세계를 다채롭게 드러낼 수 있는, 화려하지 않은 골목길이라 하더라도 가슴에 남는 순간을 포착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은 어릴 때 많지만 자라면서 점점 사라진다. 단순한 추억보다 좀 더 기억이 가지고 있는 아련함을 표현하려 했던 영화다. 내 영화 중 어떤 것은 젊은 층, 어떤 것은 어른들을 위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늘 똑같은 안경을 쓰고 영화를 찾고 만들어 왔다.”

-러브레터에서 나카야마 미호의오겡키데스카를 아직 많은 한국 팬들이 기억한다. 죽은 사람과 이어지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느껴진 장면이다. 어떤 느낌을 담으려 했다.

  “일단 러브레터를 만들던 시절 나는 너무나 젊었다. 그 때는 정말 무작정 닥치는대로 생각하고 무작정 열심히 찍었다는 기억 밖에 없다. 이 대사가 왜 이것이어야 했는지 왜 그랬는지는 기억하지 못 한다. 고민하며 찍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사와 장면이었다. 실은 러브레터에서 중요한 것은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것 자체 보다 외치기 전까지의 과정이었다. 그 전까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줘야 먼 산을 보고 눈밭에서 간절히 외치는 것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했다.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여자 혼자 그 산에까지 가게 되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막 넘어지고 그런 것도 실제 그림 콘티를 많이 그려서 시뮬레이션을 해 가며 나온 장면들이다. 근데 막상 현장에서 촬영하려고 보니 시간도 모자라고 생각처럼 꼭 찍어지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정말 열심히 고민해서 만든 영화이고 그런 장면이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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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련성 객원기자

-‘피크닉의 담 위로 걷기나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문신처럼 당신은 영화에 풍부한 상징을 사용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을 만나는뱀파이어는 소품이나 도구로서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상징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변한 것일까.

  “영화를 찍기 전에 늘 글을 먼저 쓰고, 쓸 때 굉장히 많은 번뇌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화는 내가 생각한대로 되지는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작품이 짧으면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살리기가 쉽고. 작품이 길고 커지면 원하는 이미지가 결과적으로 많이 변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쓸 때 마다 생각과 느낌이 많이 달라지고 글과 영화 자체도 많이 달라진다. 오늘도 어제도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오늘은 이 영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하루 자고 일어나면, 괜찮지 않아? 이런 건 어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매번 작품을 쓸 때 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이와이 감독의 영화 ‘피크닉’ OST – ‘Close To You’

-감독이 일본 3·11대지진 피해 지역인 센다이 출신이고, 대지진 이후 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을 만들었다. 영화와 인생에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을 것 같다.

  “대지진 이후에 무척 큰 충격을 받았다. 주위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나는 실제로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 러브레터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하지만 몇 번 현지를 가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내가 죽음을 진정으로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쪽에 가면 3·11 재해로 가족과 친구를 많이 잃은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 사람들에겐 돌아가신 분들이 그냥 죽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었던 사람, 지금 못 만나지만 어딘가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게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큰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죽었다기보다 살아있기 바라는 착각과 바램을 갖고 있다는 걸 너무나 크게 느꼈다. 죽음이란 어쩌면 우리가 기억한다면 진짜 죽은게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개인으로 한명씩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나에 대해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잊어버린다면 존재는 의미가 사라진다. 살아있음보다 기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큰 변화이고 깨달음이었다. 러브레터에서도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는 죽었지만 기억하기 때문에 여전히 존재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일본에서 개봉한 이와이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트레일러. 아오이 유우를 스타로 만든 영화 ‘하나와 앨리스’의 프리퀄로, 실제 ‘하나와 앨리스’의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기억의 문제는 감독의 영화세계를 관통하는 테마다. 감독에겐 기억이라 주제가 마치 수도승의 깨달음처럼 간절해 보인다. 왜일까.

  “영화 감독은 사실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기억해내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직업이다. 기억을 지금까지 나는 나의 작업을 위해 사용했다. 그런데 대지진 이후 나를 위해 사용하는 기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기억을 생각하게 됐다. 이들에게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본래 배려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 배려라는 것이 일종의 매너로서 존재한다. 곤란한 사람을 돕자라는 것도 진정한 마음이 아니라 매너로 하는 사회다. 기억과 상상력을 남을 위해 쓰자고 생각했다. 그것은 남의 행동과 남의 입장을 내가 상상해보는 데서 시작하고, 그것이 배려의 시작인 것 같다. 요즘은 필요한 것 있으면 돈만 내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도 앉아서 돈만 내면 갖다 준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커피를 내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도 고안한 사람, 만든 사람 등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요즘은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 고생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많이 한다. 요즘 사회는 기본적으로 돈이 기준이 돼 있고 돈 있으면 대부분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돈 없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결국, 우리가 상상력으로 남을 이해해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모든 것이 물건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사회는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남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남이 하는 일 남의 행동을 잘 관찰해야 하고 그것이 내 일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고마워하는 마음 배려심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이 나이 먹고 생각하게 됐다.”

-대지진 다큐도 그런 맥락에서 만든 것인가.

  “그렇다. 다큐는 좀 더 많은 젊은 감독들이 참여해 2편도 만들었고 일본의 TV를 통해 방영됐다.”

-감독의 관심이 점점 사회적인 주제, 무거운 쪽으로 옮겨 가는 것 같다. 감독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고 다큐는 듣는 작업이다. 대지진 이야기도 다큐가 아니라 극영화라면 어땠을까.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3·11이후와 관련된 극영화다. 내가 앞으로 만들게 될 영화 중에도 3·11 이전부터 기획하고 글 썼던 작품도 있고. 그 뒤에 책을 써서 만들게 된 것도 있는데, 마침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이 그 뒤에 쓴 책이다. 다음달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3·11 이후 내가 이걸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의문 가질 수도 있다. 나는 사실 이 영화에 3·11대지진에 대한 나름의 답을 넣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방사능이나 후쿠시마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대지진에서 내가 생각한 것과 깨달은 것을 넣으려 하다 보니 웬지 모르게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극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강한 메시지를 넣는 것보다 무언가가 숙성돼서 깊은 맛을 내게 하는 식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도 자료를 가방에 싸 와서 계속 써나가고 있다. 아직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와이 감독의 영화 ‘뱀파이어'(2011) 예고편

-영화제 등을 통해 상영된뱀파이어는 자살하려는 여자들의 피를 마시는 남자 이야기다. 제목은 뱀파이어지만 흡혈 행위는 집착이나 욕망의 은유처럼 읽힌다.

  “사실 뱀파이어는 소설이 먼저 있었다. 소설에선 주인공의 내면을 굉장히 정밀하게 표현했고,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주인공이 자문자답을 반복하며 답이 펼쳐져가는 식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처럼 만들 수는 없다. 계속 그 자문자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영화만 두고 보자면 혈액에 굉장히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됐다. 그리고 피를 통해서 생명을 접하고 느끼게 되는 그런 남자의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혈액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지 모르나, 혈액에 집착했기 때문에 인간 생명과 가장 깊이 관계할 수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것처럼 내 작품 중에 가장 무거운 작품이고, 철학적 주제를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뱀파이어 사내가 탐하는혈액이 감독님에겐기억이라는 테마인 것 같다. 마치 대구(對句)처럼.

  “그렇다. 일리있는 이야기다.”

-실은이와이 월드를 말할 때, 현실 속에 있지만 현실 속에 있지 않을 것 같은 예쁘장한 공간과 사람이라는 의미로 써왔다. 어쩌면 그런 말 싫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런 귀엽고 예쁜 이미지를 내가 열심히 만들어낸 부분도 분명히 있다. 기본적으로 귀엽고 예쁜 아이들 캐스팅해서 영화 찍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캐스팅해 영화를 찍으면 물론 힘든 부분도 많이 있지만 무언가를 했을 때 연기를 했을 때 매우 사랑스러운 모험으로 표현된다. 근데 같은 행동을 어른이 하면 웃을 수도 견딜 수도 없는 일이 돼 버린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면 귀엽고 예뻐지고. 어른을 주인공으로 하면 어둡고 심각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이인가 어른인가.

  “일본에서 지난주에 개봉한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아이들 이야기이고, 지금 준비하는 실사영화는 어른들 이야기다. 어른이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하하.”

Love Letter OST ‘Sweet Memories’

-계속 기억에 관해 이야기 했다. 실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후에도 원전을 놓지 못하는 인류도, 세계 대전을 겪고도 계속 재무장을 시도하는 일본도 거대한 기억상실에 걸린 건 아닐까.

  “맞는 말이다. 요즘 인터넷에선 사람들 대화 잘하고 친하게 지내지만 정작 옆 집 사는 사람과는 말 안 한다. 같은 전철을 타도 대화 없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인사 않는다. 사람들이 직접 사람 대 사람을 접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많고 대화를 안 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주위가 시끄러우면시끄럽네이런 내뱉는 말은 할 지 몰라도,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한 사회가 돼 버렸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어버린 나만의 경계가 뭔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주위에 선을 긋고 있다. 그 선이 이기적인 선이 되면 나와 이웃의 관계가 그렇게 될 것이고, 결국 국가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반영될 것이다. 개인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타인과 이웃을 생각한다면, 다른 국가의 국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무언가를 함으로써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상력 발휘하고 산다면 말씀하신 그런 세상의 기억상실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가 타인의 관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산다면 존 레논이이메진에서 노래했던 세계가 좀 더 빨리 가까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할 내가 수 있는 일은 계속 영화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의 러브레터를 통해 일본영화를 처음 접한 한국 사람이 많고, 아직도 팬들이 많다. 한국의 팬들에게.

  “한국 많은 팬들이 내 작품을 봐주시는 것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늘 크게 감동 하고 있다. 일본인 중에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팬들에게 감사한다. 한국과의 교류 통해 굉장히 많은 것 깨달아왔다. 아마 한국 팬들이 없었으면 저는 한국이나 서울에 올 일 없이 살았을 수도, 또 한국 친구들 못 만났을 수도 있다. 일본엔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해외에 대한 관심이나 해외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줄었다. 그만큼 삶의 상상력이 줄어든 것이다. 한국 팬들과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좋은 관계 이어갔으면 좋겠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태훈 기자

[인터뷰] 진심은 단순한 그릇에 담길 때 더 빛난다: 다르덴 형제 감독

 

진심은 단순한 그릇에 담을 때 더욱 빛난다. 투박한 다완에 담긴 차향이 더욱 깊듯. 벨기에 출신의 리얼리즘 거장 다르덴 형제 인터뷰. 

탐심을 부르는 재화가 돼버린 일자리, 소외된 노동, 불안과 두려움 속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성에 관한 세련되고 정교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올해 첫 아트버스터라 할 만하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 받은 이 형제 감독은 “연대야말로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하는 가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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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64)와 뤽 다르덴(61) 형제.

 

“타인과 손 잡을 때 우린 또 한발 나아가죠”
이태훈 기자

[새해 첫 아트버스터 ‘내일을 위한 시간’ 감독 다르덴 형제 인터뷰]

리얼리즘의 巨匠 다르덴 형제… 소규모 개봉, 벌써 3만관객 모아
“가만히 있으면 ‘연대’ 안생겨… 내가 변해야 주변도 변하죠”

황금종려상 두 번, 심사위원대상 한 번, 각본상 한 번, 주연상 두 번. 영화감독 장 뤽 다르덴(64)과 피에르 다르덴(61) 형제가 현재 세계 영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려면, 좀 남우세스러워도 이들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받은 상의 목록을 훑는 것이 가장 빠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비토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리얼리즘 거장들의 전통 위에 서 있다. 불법 이민, 범죄, 빈민 문제 등 현대사회의 아프고 약한 부분을 세련되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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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국내 개봉한 형제 감독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상영관 수가 얼마 되지 않지만, 3만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새해 첫 ‘아트버스터’가 됐다. 영화는 직장 동료들이 보너스를 포기해줘야 복직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여성이 투표를 앞둔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호소를 이어가는 이야기. 주연 마리옹 코티아르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라비앙로즈'(2007)의 에디트 피아프로 한 차례 오스카를 거머쥔 그 여배우다. 다르덴 형제는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것,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손을 맞잡을 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뷰는 본지가 보낸 질문에 따라 부산국제영화제 이수원 프로그래머(유럽·아프리카 담당)가 프랑스어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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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아트버스터’가 된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내일을 위한 시간’의 주연배우 마리옹 코티아르(가운데)는 이번 영화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노린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 참석한 장피에르 다르덴(오른쪽)과 뤽 다르덴(왼쪽) 감독이 코티아르에게 키스하는 모습. /AP뉴시스

―스타 배우 출연이 드물었는데 마리옹 코티아르를 기용했다.

“코티아르는 지극히 예민한 배우다. 그 눈을 보면 그곳에 있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그곳에 있지 않은, 미묘한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그녀의 영화 속 역할인 산드라가 바로 그렇다. 그 눈을 들여다보다 그 속에 빠져들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하.”

―상업영화의 홍수 속에 ‘사회적 연대(連帶)’를 강조하는 당신의 영화는 낯설다. 그런 가치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 아닌가?

“연대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 안에 매몰된 채 가만히 있으면 모두 괜찮아지리라 여기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통해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 요즘은 일자리가 줄어들며 모두가 탐내는 대상이 됐다. 심약한 그녀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하는 과정은 무척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씩 변하며 주변 사람들도 변화한다.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연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결말은 이민자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유럽은 사실 저임금 이민 근로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영화 속 인물들은 남성,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같은 특정 계층을 대변하지 않는다. 많은 인물이 본업 외에 부업을 한다. 공장에서 퇴근한 뒤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도로 공사판에서 일하거나, 야채를 나른다. 즉, 모두가 사회·경제적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런 불안 속에선 누구나 내 이익을 앞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의견을 바꾸는 이들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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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를 위해 당신의 보너스를 포기해달라’는 산드라의 호소가 결국 감독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가?

“관객도 ‘내 입장이 되어봐 달라’는 산드라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묻길 바란다. 산드라의 입장이 돼보고 산드라가 만나는 동료들도 돼보고, 자신은 연대할 것인지 생각해보길. 그리고 끝날 무렵에는 영화 속 산드라의 동료들처럼 생각을 바꾸게 되길 희망한다.”

 

[인터뷰] ‘국제시장 막순이’ 스텔라 최 “진짜 입양아냐고요? No, 덕수같은 아버지 있어요”

영화 국제시장의 클라이맥스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천만 관객을 울린 막순이, 재미교포 2세 배우 스텔라 최를 인터뷰하다. 다들 제일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인터뷰 못했던 이. ^^
제작사도 컨택을 잃어버려서, 혼자 수소문해 찾아내느라 힘들었다. ㅋ

외조부모가 평양 출신에, 베트남에 돈 벌러 갔다가 사이공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 전화로 인터뷰하면서 깜짝 깜짝 놀랐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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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입양아냐고요? NO, ‘덕수’ 같은 아버지 계세요”

[영화 ‘국제시장’ 막순이役, 스텔라 최 인터뷰]

돈 벌러간 월남서 만난 부모,평양 출신인 외조부모 등… 가족사, 영화 내용과 비슷

UCLA 졸업 후 댄서로 활동 “영화 출연, 엄마 환호하셨죠”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근데 우리 부모님 멀쩡히 살아계시다니까요, 하하하.”

영화 ‘국제시장’에서 미국에 입양됐다 이산가족 프로그램을 통해 오빠 덕수와 상봉하는 막순이를 연기했던 재미교포 2세 스텔라 최(41)는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진짜 입양아 출신이냐고 묻는다”고 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덕수와 막순이의 상봉 장면은 누구나 인정하는 영화 국제시장의 클라이맥스. 이 장면에 마치 다큐멘터리같은 감동을 불어넣은 것이 최씨의 눈물 연기였다. 15일 새벽(현지시각 14일 오전 9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집에서 전화를 받은 최씨는 “한국 영화에 참여할 드문 기회를 얻게 되고, 출연한 영화가 이렇게 큰 히트작이 되고. 마치 동화 속 이야기같다. 지금도 믿어지질 않는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란 최씨는 한국말을 못 한다. 최씨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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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미국 LA 한 극장에서 영화‘국제시장’을 본 스텔라 최. 최씨는“우리 가족도 1980년대 초 이산가족 찾기 TV 프로그램을 LA에서 보며 눈물지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Ode to My Father(아버지를 위한 송가)’. /스텔라 최 제공

 

“UCLA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지만 대학 졸업 뒤 오래 꿈꿨던 댄서 일을 시작했어요. 폴 메카트니 투어의 댄스팀으로 2년쯤 함께 하기도 했죠. 광고모델로 월마트, 웰스파고 등의 CF에 출연했고, 치어리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고. 하지만 정극 연기를 한 지는 오래됐어요.” 스텔라는 지난해 친구들과 재미로 찍은 ‘당신 무슨 아시안이야?’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 내 편견을 코믹하게 조롱하는 내용. 꽤 인기를 끌었던 이 동영상을 국제시장의 제작사인 JK필름이 보고 작년 3월 막순이 역을 뽑기 위한 미국 오디션에 최씨를 불러냈다. “입양된 여동생이 오빠를 TV로 만나는 연기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큰 영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알았다면 엄청 긴장했을텐데요.” 세번쯤 서로 다른 톤으로 눈물 연기를 해 보인 뒤 잊고 지냈는데 다섯달쯤 뒤 JK필름이 ‘배역을 맡아달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진짜 엄청나게 흥분했죠. 어머니께 ‘한국 영화에 출연하러 한국에 간다’고 했더니 평생 내게 일어난 어떤 일보다 더 기뻐하셨어요.”


막순이를 뽑는 오디션에는 200여명의 미국 교포 배우들이 참여했다. ‘왜 당신이 캐스팅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 최씨는 “영화 내용이 우리 가족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몰입할 수 있었고, 그런 내 순수한 감정 표현을 잘 봐주신 것 같다”고 했다. “외조부모가 평양 출신이신데 1941년 중국으로 건너가 일하던 중 어머니를 낳았다고 들었어요. 해방 뒤엔 외할아버지가 서울에서 영화 제작을 했는데 잘 안됐던 모양이예요. 베트남전이 일어났을 때 어머니가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일하셨데요. 군인들이나 상사 주재원들처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가신 거죠. 그리고 사이공에서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 60년대말 미국으로 이민오신 것으로 알아요.” 최씨는 “주변에 미국에 입양된 친구들이 꽤 있어서 상황을 더 쉽게 이해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입양 뒤 겪은 일들은 서로 다르지만, 대부분 낳아준 한국 부모를 찾고 싶어해요.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늘 궁금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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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에서 미국에 입양된 막순이가 TV 화면으로 오빠 덕수를 만나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국제시장 속 덕수의 삶,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부모 세대의 모습은 미국 교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아버지(81)는 영어도 잘 못 하는 상황에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잇는 모든 일을 했다. “주유소에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주 6일 일했다. 일요일 하루 쉬는 날도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주유소를 마련했고 딸 셋을 키우셨어요. 지금도 어렸을 땐 아빠 얼굴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최씨는 이달 초 미국 극장에서 국제시장이 개봉된 뒤 LA코리아타운의 극장으로 어머니와 두 언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이 눈물바다였어요.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다들 하도 울어서 눈이 빨갛게 된 거예요. 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관객들이 저를 알아 보고 몰려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막 난리가 났었죠.” 최씨는 “한 할머니는 ‘내가 바로 흥남철수 때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탔던 피란민’이라며 제 손을 잡고 한참을 우셨다”고도 했다.

최씨는 “한국에서 이 영화를 1000만명이 봤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우리는 지금 모든게 풍부한 시대를 살잖아요. 한국은 지금 세계 무대에서 힘있는 나라가 됐고. 그런 작은 나라가 여기까지 오려면 어떤 일을 겪었을까.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그런 부분에 대해 나이 든 세대는 자기들 이야기를 보고 싶고,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의 경험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젊은 세대에게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깊은 감사의 표현이기도 할 거예요.”
최씨는 “영화를 본 뒤 어머니가 내게 굳이 하지 않았던 이야기, 내가 물으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게 돼 가장 기쁘다”고 했다. “아버지가 몸이 좀 불편해서 극장에 못 가세요. DVD가 나오면 꼭 가족이 다 모여서 한 번 더 영화를 볼거예요. 그러면 부모님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