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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정말 망할까 : ‘두바이 쇼크’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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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한 호텔 로비의 對십자군 이슬람 전쟁 영웅 살라딘 像. 14세기 아랍의 역사철학자

이븐 할둔은 “사막의 유목 부족들은 끊임없이 무정하고 냉혹한 자기 변신의 순환을 거듭하기

때문에 도시의 엘리트들을 점령하고 지배한다”고 말했었다. 두바이가 이븐 할둔의 예언을

현대에 재현해갈 것인가, 혹은 사막의 신기루에 그칠 것인가.

두바이 신화의 주역이었던 투자지주회사 ‘두바이 월드’가 25일 채권자들에게 채무상환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두바이 월드 채무가 두바이 전체 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넘기 때문에 사실상 두바이 정부의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른바 ‘두바이 쇼크’다.
두바이의 신용부도스와프(CDS·국채 부도 가능성에 대비해 들어두는 일종의 보험 성격을 띄는 금융파생상품) 금리가 폭등했고,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주변국들까지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았다. 터키, 그리스, 러시아 등 경제규모에 비해 빚이 많은 나라들도 타격을 입었다. 빚더미 국가들의 국채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제2 금융위기설까지 솔솔 새어나온다. 두바이 쇼크는 실제로 있었다. 여기까지는 현상(現象)에 관한 팩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1/27/2009112700140.html

세계가 경악한 건 급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두바이가 아부다비의 돈을 빌리고 국채를 발행할 때 디폴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디폴트 바로 전날까지도 대세는"아부다비가 도와줄 거라 괜찮다", "부동산경기가 풀리고 공급초과 문제가 해소되는 2011년 초쯤부터 급속히 회복될 것"이라는 쪽이었다.

그렇다면 두바이가 정말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서서히 해결책을 찾아갈 가능성 쪽에 무게가 실린다.

위기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장할 필요도 없다. 두바이가 망할 거라고 섣불리 단정하거나 정치적 취향에 맞춰 단죄하려 들기 전에, 먼저 사태의 배경과 경과를 찬찬히 살펴 보는 것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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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일까. 두바이의 새 랜드마크가 될 부르즈 두바이는 내년 1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두바이가 맘에 들지 않는 주변 아랍국들

두바이에 물려 있는 돈은 상당 부분이 걸프국가들 돈으로 알려졌다. 두바이가 무너지면 손해보는 건 걸프국가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아부다비를 비롯한 주변 투자자들은 두바이의 디폴트 위기를 외면했을까.

두바이 면적은 제주도의 두 배 정도 밖에 안 된다. 인구는 12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데, 그 중 두바이 원주민은 20만명 정도다. 주변 걸프국가들처럼 짱짱한 석유 매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불에 육박한다. 인도네시아부터 북아프리카까지, 이민자들에게 두바이는 꿈이 이뤄지는 땅이다.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손톱만한 나라 지도자가 주변의 쟁쟁한 대국들을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것이다. 거기다 말도 잘 듣지 않는다. 주변 대국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아랍에미리트(UAE)는 걸프국가들의 연합인 걸프협력위원회(GCC) 단일 통화 논의에서도 탈퇴했다. 가장 발언권이 센 사우디 아라비아가 GCC 중앙은행을 두바이가 아닌 자국 상업도시 제다로 가져가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최근 카타르가 언론과 교육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업과 금융 중심으로 발돋움하려 애쓰지만, 두바이의 휘황함에 가려 빛이 나질 않는다.

아부다비도 두바이가 고깝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치적, 역사적으로 두바이는 항상 맏형 토후국 아부다비의 그늘 아래 있었다. 아부다비는 UAE 국토의 80%, 석유 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두바이를 포함해 나머지 6개 토후국은 다 고만고만하다. UAE는 아부다비 통치자가 대통령, 두바이 통치자가 총리를 맡는 구조로 유지된다. 연방국가라기보다는 셰이크(Sheik·족장)가 지배하는 부족국가(sheikdom) 연맹체에 가깝다. 국방과 외교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 분야는 거의 각각의 독립국에 가깝다.그 중에서도 두바이는 10여년 전까지 별도의 군대를 유지할 만큼 독립성을 유지하려 애써왔다. 두바이를 다스리는 알 마크툼 가문과 아부다비를 다스리는 알 나얀 가문은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경쟁하며 협력해왔다. 두 가문의 경쟁심은 낙타미인대회에까지 미칠 정도다. 우수한 낙타를 누가 더 통크게 많이 사느냐를 놓고도 백성들 사이엔 ‘올핸 누가 어쨌다더라’는 쑥덕공론이 이어진다.

두바이는 상상력과 비전 만으로 현재의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 다른 산유국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두바이 기업 법인의 40%가 사실상 이란인 소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방의 경제 제재에 목이 죄여 있는 이란도 두바이를 통해 숨을 쉬어왔다. 9·11 테러 이후엔 미국이 마뜩찮았던 걸프지역 투자자들이 두바이에 고유가로 얻은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들 역시 사막 한 가운데서 스키를 즐기고, 에어컨 빵빵한 쇼핑몰에서 루이비통 가방을 사들이며 보수적 본국 사회를 벗어나 숨을 쉴 공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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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쇼핑몰. 검은 차도르 차림여성들이 루이비통 가방과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르고 누빈다.

게다가 두바이는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걸프 국가들 중에 가장 서구 문물을 빨리 흡수했다. 이집트를 제외하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성들이 히잡이나 니캅을 쓰지 않고도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여성 5만명이 일자리를 갖고 있고, 그 중 30%는 정부 기관이나 국영기업에서 일한다. 호텔에선 맥주도 팔고, 밤이면 나이트클럽이 불야성을 이룬다. 이럴 때 마침 미국발 금융위기가 들이닥쳤다.

세간에는 “이번 기회에 걸프 지역 투자자들이 두바이의 버릇을 고쳐놓으려 한다”는 얘기가 연초부터 돌았다. “내 돈 빌려가 폼 잡았으니 한 번 당해봐라”는 것이다. 게다가 두바이의 위기는 국부펀드의 막대한 달러를 깔고 앉아 있는 걸프국가들에겐 공들여 지어 올린 자산을 손쉽게 꿀꺽할 기회다.

과거 아부다비 정부는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부다비의 UAE국영 항공사인 이티하드 항공을 타 보면,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에 깜짝 놀란다.사막 혹은 황금을 상징하듯 모든게 반짝반짝한다.이슬람여성의 머리장식을 형상화한 스튜어디스의 복장은 아마 세계 항공사를 통틀어 가장화려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부다비의 이티하드 항공은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넘어서지 못했다. 내가 만들 수 없다면, 뺏는 것이 사막의 생존 법칙. 이번 두바이 월드의 사실상 디폴트 선언 뒤에는 퀸엘리자베스 2호 호텔이나 턴베리 골프장 등 아부다비가 눈독을 들이는 두바이 자산의 구체적 목록까지 오르내린다.

그러니 걸프국가들이 두바이 국영 투자지주회사 두바이 월드가 채무 이행 유예를 요청토록 코너로 몰아넣은 것은 다목적이다. 버릇도 고쳐 놓고, 알짜 자산도 손에 넣을 일석이조의 기회다. 이에 맞서 두바이는 “채무 이행 유예요청은 채무 구조조정을 위해 면밀히 계획한 일”이라며 자산 매각보다 채권 발행을 통한 현금 확보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피땀흘려 쌓은 자산을 헐값에 잃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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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냉동고, 두바이의 실내 스키장. 그 자체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어트랙션이다.

유럽 금융시장이 홍역을 치른 이유

물론 이번 ‘두바이 쇼크’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분에 넘치는 외자 차입 경영이었다. 제조업 기반도 없는 나라가 매년 11% 경제 성장률을 목표로 잡았다. 산업연구원(KIET) 주동주 박사는 국내 학자들 중에 눈에 띄게 두바이 성장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학자다. 그는 “두바이는 GDP의 열 배 가까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사업을 너무 많이 벌렸다”며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없이 무작위적 공급 위주 정책으로 벌려 놓으면 수요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분명한 실책”이라고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두바이의 GDP 대비 부채 규모는 103% 정도로 추산된다. 800억 달러 조금 넘는다. 두바이가 벌려놓은 개발프로젝트 총액은 3000~4000억 달러인 걸로 추정된다. 그런데 두바이의 정부 및 민간부문 자산의 가치는 3000억 달러에 가까운 걸로 알려져 있다. 호경기일 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동성의 흐름이 널을 뛰는 불경기엔 삐끗하면 카운터를 맞기 쉬운 체질이었다.

그런데 이번 ‘두바이 쇼크’를 대하는 서방의 태도를 살펴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표를 보자.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두바이에 물린 채권액을 보고, ‘두바이 쇼크’ 이후의 태도와 비교하면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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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민감한 반응을보인 건영국 언론들이었다. 당연하다. 금융위기로 죽을 쑤고 있는 영국이 가장 많은 돈을 물렸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바이 채무상환 유예요청 충격’이라고 제목을 뽑고, 내달 14일 만기가 도래하는 나킬(두바이 월드 자회사로, 팜 아일랜드 등 대규모 사업을 주도한 부동산 개발사)의 수쿠크(이슬람 채권) 문제도 정면으로 제기했다. 게다가 영국은 1960년대까지 아랍에미리트 지역을 실질 지배했다. 세계를 지배한 제국의 옛 습관일까. 영국 입장에서는 ‘거긴 원래 내 땅’이라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두바이 채권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물려 있는 유럽 금융시장도 함께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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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랜드마크, 칠성급 호텔 부르즈 알 아랍. 해변에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반면 미국 언론들의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25일 디폴트 발표가 나온 뒤에도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의 메인 화면에선 두바이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역시 매우 단순한 이유로 보인다. 미국이 물린 돈은 경제규모에 비해얼마 안 되고, 자국의 금융위기에 비하면 작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미국 언론들이 주말부터는 “제2 금융위기”(블룸버그), “채무국 국채 도미노 부도 우려”(WSJ) 등의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당장의 금융시장 타격보다 “두바이 사태가 더 큰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보고서는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사태로 일반화된 용어인 ‘테일 리스크(tail risk)’를 끄집어 냈다. “두바이가 국가 부도를 낼 경우 신흥시장에 대한 자금유입이 급속히 멈춰 경기 회복을 크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두바이 사태는 공공부채율 높은 나라들의 잇따른 부도사태 예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보도는 오히려선진국 투자자들에게 ‘리스크를컨트롤할 수 있다면, 지금이 신흥시장에 투자할 때’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설득력있는 상황 분석을 보자. 런던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알리아 무바예드는 “두바이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긴 하지만, 재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아부다비의 도움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또 ‘뱅커 매거진’의 에디터 브라이언 캐플런은 “두바이가 채무 불이행을 한다고 해도 그 충격파는 1조 달러 디폴트가 걸렸던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 비하면 미미하다. 새로운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할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셰이크 모하메드, 위기 극복의 리더십도 증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두바이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두바이의 기념비적 성공이 셰이크 모하메드의 지도력에 크게 의존했듯, 앞으로 두바이의 위기 극복도 그의 행보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나도 미친(crazy) 사람 취급을 받았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2007년 4월 당시 이명박 시장을 만나 “청계천을 추진할 때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어리석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어려운 생활환경이고 서방에 비해 뒤쳐져 있었지만 우리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남들이 의심해도 멈추지 않고, 경험과 비전을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 중동에서 더 나은 국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셰이크 모하메드 : 상상력과 비전의 리더십』,최진영).

두바이는 여전히 지도자의 혜안(慧眼)이 한 나라의 미래를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여기엔 단순히 국영지주회사의 한 차례 디폴트 선언 때문에 도매금으로 팔아넘길 수 없는 피땀과 고민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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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크리크. 넓은 인공수로에는 아직도 오래된 동력어선들과 돛배들이 가득하고, 수상택시가 강변을 오간다.

두바이는 작은 나라다. 원래 진주를 캐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일본에서 진주 양식에 성공하자 자연산 진주 가격이 폭락했고, 살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두바이를 통치해온 알 마크툼 가문은 일찍부터 먼 바다로 눈을 돌렸다. 현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아버지 셰이크 라시드는 ‘사막의 맨해튼’이라는 두바이의 명성에 기틀을 놓았다. 무모하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견디며 어촌 마을에 걸프 물동량을 빨아들일 최초의 항구 라시드 항을 완공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완공된 뒤 해상 운송수요가 몰리며 오히려 너무 작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세계 최대 인공 항구인 자벨 알리 항을 건설했다. 맏형격 에미리트(토후국)인 아부다비나 대국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1960년대에 발견된 소량의 석유는 두바이의 야심에 밑불이 됐다.

두바이를 통치하게 된 셰이크 모하메드의 눈은 선왕(先王)들보다 더 먼 미래에 가 있었다. 2006년에 왕위를 계승했지만, 10여년 전부터 사실상 두바이를 통치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가젤은 사자보다 느리면 잡혀 먹힌다. 사자는 가젤보다 느리면 굶어 죽는다. 당신아 가젤이건 사자건, 동이 튼 뒤에도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고 반복해 말했다. 2020년이면 고갈될 석유, 검은 황금이 사라진 미래에 어떻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초원에서 가장 빠른 사자처럼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할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은 항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시간과 싸우는 경주에서 우리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경주는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경주를 준비해야 한다. 더 큰 장애물과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2007년 2월 두바이 전략계획 2015를 발표하며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렇게 말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2000년 전략계획 2010을 발표하며 2010년까지 국민소득 2만3000달러, GDP 3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2005년 두바이의 GDP는 이미 37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만1000달러였다. 놀라운 초고속 압축 성장이다. 2000년 당시 10%였던 GDP 중 석유 매출 비중을 6%로 낮추겠다고 발표했고, 2005년말 3%까지 낮췄다. 1970년대 두바이 GDP에서 석유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5년 만에 10년 목표를 초과 달성한 뒤 새로운 10년의 목표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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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마천루 숲과 녹색 잔디밭. 사막의 맨해튼은 입으로 만든 게 아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시를 사랑하는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두 아들 라시드와 함단이 영국 왕립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도 축하시를 보냈다.

“라시드와 함단, 내일의 밝은 꿈들아
나는 그 꿈들을 그려왔다.
요람에서부터 나는 그 꿈들을 보았고,
포수에 희생되지 않을 사자와 매로 키웠다.”

그의 목표는 오직, 자신의 백성들이 강성한 주변 걸프국가나 서방국가에 휘둘리거나 희생되지 않도록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과 가문의 치재에 집중하고, 특권계층에 재부를 나눠주는 지대국가로 국체를 유지하는 다른 산유국들과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랬듯 현재 두바이가 공사 중인 대규모 인공 조형물들도 시간이 지나면 후대를 위한 유적이 된다”고 개발자들을 격려했었다. 그는 이 말을 할 때 5000년 뒤의 미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두바이의 마천루들은 5000년이 아닌 50년도 되기 전에 유적이 돼 버릴 수도 있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셰이크 모하메드에게, 이제 위기극복에도 호경기 때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정리해보면…

1. 두바이를 (사실상) 디폴트로 몰아넣은 직접적 원인은 도를 넘은 외자 차입경영이었다.

하지만 두바이 개발 모델 특성상 언젠가 한 번은 겪고 넘어서야 할 시련이기도 하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미 개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최측근 엘리트들을 가지치기하며 국영 기업 네트워크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고 있다. 채무 구조조정 뿐 아니라 조직과 사업에 피비린내나는 쇄신이 시작됐다. 여기서 셰이크 모하메드의 위기 극복 리더십이 검증될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1/28/2009112800124.html?srchCol=news&srchUrl=news2

2. 주변국들의 시샘과 두바이 자산에 대한욕심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상황 변화에따라 유동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두바이를 쓰러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주변국들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 서방국가들의 ‘호들갑’에 가까운 반응은 실제적 위험보다 감성에 휘둘린 측면이 적지 않다.

원래 금융시장이란 지나친 공포와 환호 사이를 오가는 법이다. 게다가 두바이 디폴트는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급도 아니다. 투자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겠지만,금융시장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는 쪽이 설득력 있다.

4. 두바이의 위기를 ‘두바이 모델의 종언’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바이 모델은 모래사막과 바다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라가 지도자의 상상력과 비전, 놀라운 추진력만으로 일궈낸 것이다. 개발의 목표도 시작도 과정도 모두 유니크하다.국내에서 추진되는 정부 프로젝트와 연관지으려는 정치적 노력도참 볼썽사나운 아전인수다.

한국외대 서정민 교수는 "두바이는 이미 사회적 제도적으로 많은 개혁을 이뤘다.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두바이가 특별히 잘해서라기보다 다른 아랍국가들이 워낙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바이 모델이 다른 중동국가에서 복제 가능한가의 질문은 미뤄두자. 현재 중동에는 두바이 외에 대안이 없다.

두바이는이번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것인가,그냥 주저앉아 버릴 것인가. 일시적 유동성 위기인가, 두바이 성장 모델의 근본적 위기인가. 예단은 금물이다. 일단 14일로 예정된 나킬의 수쿠크 상환, 내년 초에 도래하는 다른 두바이월드 채권 상환이 원만히 이뤄지느냐 여부가 앞으로 두바이가 얼마나 더 오래 비틀거릴 것인지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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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왼쪽)와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칼리파.

“좌뇌의 속박에서 해방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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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욕타임스

뇌졸중 경험 뒤 좌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전파하고 있는 질 테일러 박사.

좌뇌의 속박에서 해방되십시오. ‘열반(涅槃·nirvana)’ 비결이 거기에 있습니다.”

열반(涅槃·nirvana)’ 경험했을 , 볼티 테일러(Taylor)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일하는 촉망받는 신경과학자였다. 테일러의 열반 경험은 뇌졸중(stroke) 통해 왔다.

1996 12 10, 당시 37세이던 테일러 박사는 보스턴의 아파트에서 안구 뒷쪽에 극도의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녀의 혈관이 터졌다. 수분 내에 자아, 분석력, 판단력, 상황이해능력 등을 관장하는 그녀의 좌뇌가 마비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날아갈 했다. 매일 그녀를 괴롭히던 일상의 걱정거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녀의 지각능력도 달라졌다. 그녀는 그녀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들이 주변의 공간과 뒤섞이는 모습을 눈으로 있었다. 모든 세계와 피조물들은 희미하게 빛나는 장엄한 에너지 장의 일부였다. “ 지각력은 이상 피부가 공기가 갈라지는 물리적 경계라는 한계 내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경험을 통찰력을 일깨워 뇌졸중(My Stroke of Insight)’라는 수기 형태의 책으로 펴냈다.

극도의 고통 뒤에, 그녀의 몸은 정신으로부터 분리됐다. “나는 마치 유리병에서 해방된 마법사(genie) 같았어요. 영적 에너지는 마치 조용한 행복감(euphoria) 바다를 가로지르는 고래처럼 흘렀어요. 37년간의 감정적 짐을 벗어 던질 있었죠.”

"조용한 행복감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고래처럼"

그녀가 영적으로 고양되는 동안, 신체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머리 속에 골프공 만한 핏덩이가 똬리를 틀었고, 좌뇌가 작동을 멈추자 언어능력이나 숫자·문자 해독 기본적인 분석 기능도 정지됐다. 처음엔 엄마도 알아봤다. 친구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8년간 회복기를 거쳤다.

열반의 경험을 가르치려는 집념이 회복을 도왔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실 그녀는 운이 좋았다. 뇌졸중으로 좌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때때로 극도의 우울증이나 심각한 감정 기복을 겪는다. 그녀의 경우 좌뇌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복도 가능했다.

요즘 그녀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됐다. “우뇌의 의식 속으로 발을 들여 놓으며, 우뇌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고, 우뇌 자체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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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모든 일이 믿음이 아니라 과학의 문제다. 그녀는 좌뇌와 우뇌가 서로 크게 다른 인격을 갖고 있다는, 그녀가 오래 연구했던 분야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이고 깊은 이해를 갖게 됐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상황이해능력, 자아, 시간, 논리를 관장한다. 우뇌는 창의력과 감정을 관장한다. 대부분 영어를 말하는 사람의 경우엔 언어능력을 관장하는 좌뇌가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테일러 박사의 통찰은 좌뇌에 지배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메세지, 사람들이 좌뇌의 영향력에서 비켜서면 평화롭고 영적인 삶을 영위할 있다는 메세지는 너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테일러 박사는 2 혁신적 과학 아이디어 연례 포럼인 기술, 엔터테인먼트, 디자인(TED)’ 컨퍼런스에서 이런 주제로 강의했다. 그녀의 18분짜리 강의 동영상이 TED 웹사이트에 오른 그녀는 유명인사가 됐다. 강연 동영상은 200 클릭을 기록했고, 지금도 매일 2만명이 본다. 오프라 웹사이트에도 올랐고,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08 가장 영향력 있는 100에도 선정됐다.

"깊은 만족의 경험(experience of deep contentment) 사람 마음(mind) 능력의 일부"

그녀는 요즘도 매일 100여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몇몇은 좌뇌 손상 회복돼 당시의 경험을 설명할 있게 환자 사례에 매혹된 뇌과학자들이다. 일부는 그녀의 회복 사례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하는 뇌졸중 환자와 가족들이다. 하지만 많은 수는 불교신도나 명상가 영적 구도자들로, 그녀의 경험을 도달 가능한 기쁨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여긴다.

매사추세츠주 통찰과 명상협회 창립자인 섀론 샐즈버그(Salzberg) 사람들은 테일러 박사의 이야기에 빠졌다 했다. 그녀는 테일러 박사가 정신적이며 무형의 경험을 과학의 언어를 사용해 설명해주는데 흥분했다. “테일러 박사는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고도, 깊은 만족의 경험(experience of deep contentment) 사람 마음(mind) 능력의 일부라는 보여주죠.”

뇌졸중을 겪은 이후 테일러 박사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시간 떨어진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서 어머니 글래디스(Gladys) 함께 산다.

원래 그녀는 신경해부학 전공의 생명과학 박사학위를 가진 뇌과학자였다. 그녀의 오빠가 예수와 직접 대화할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였기 때문에 전공을 했다. 인디애나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의대에서 강의도 하고,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보라색으로 칠한 현관에서 따뜻하게 포옹하며 맞는다. 결혼은 했고, 마리와 고양이 마리를 키운다.

그녀는 감리교 목사의 딸이지만, “천사의 명령이라며 그들의 라디오와 TV 방송에 출연할 것을 요구하는 종교 도취자들의 요구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는 종교란 좌뇌가 우뇌에게 명령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녀는 여전히 열반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말한다. “정말 아름다운 상태이고, 우리 모두 닿을 있다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한다.

중요한 것은 좌뇌를 스스로 길들일 있다는 믿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녀가 정말 열락을 누리고 있는건지, 그저 신체적으로 손상되고 혼돈에 빠져있을 뿐인지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논쟁에 답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열반의 상태에 다다를 있는지 팁을 제시할 뿐이다.

이혼한 부모의 , 정신병을 앓는 오빠. 역시 항상 화가 있는 보통 사람이었다.”

요즘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느낄 때면 그녀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나 행동을 떠올리며 이겨낸다. 명상은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좌뇌를 스스로 길들일 있다는 믿음이다.

그녀는 실체가 있고 눈으로 있는 대상에 열정을 발휘할 시간을 냄으로써 우뇌 사용 훈련을 잇다고 믿는다. 워터 스키, 기타 연주, 스테인드글래스 만들기 등이 그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경험에서 뇌손상 환자들의 가장 회복될 있는 방법을 포함해 캐낼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인디애나대에 그런 환자들을 자신의 이론에 기반해 치료하는 센터를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럼 세계평화는?

그녀는 어떻게 세계평화를 이룰 지는 모르지만, 우뇌가 도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TED 컨퍼런스에서 그녀는 우리가 우뇌 깊숙이에 있는 평화의 회로에 깊이 침잠하는 많은 시간을 수록, 많은 평화가 세상에 투영될 것이며, 세계는 평화로워질 이라고 말했다.

/25일자 뉴욕타임스

★한글 자막 강연 동영상
독자 분 중에 ‘nowness 박인재 님’이 기사 이전에 강연 동영상을 번역해 자막까지 입혀 놓으신 것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징글징글한 중국 역사왜곡… “징기스칸도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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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징기스칸릉에 세워진 동상. 위구르문화를 특히

사랑했던 몽골의 민족영웅에게 한나라식 갑옷을 입혀놨다.

"징기스칸은 분명히 중국인입니다."

무슨 헛소린가 싶지만, 중국에서 실제로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며칠 전 중국 내몽골 자치구 오르도스에 있는 징기스칸 릉(Mausoleum) 르포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FT조차 "중국인(당시 한나라인)을 자신의 영토 남부에 사는 소수민족으로 생각했던 징기스칸이 들었다면 기가 찰 노릇"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 한나라식 갑옷 입은 징기스칸 동상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발해사()를 삼키려 하고 있는 중국이 이제는 몽골의 민족 영웅 징기스칸까지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몽골의 제왕이 최근 가장 기묘한 변형을 겪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9일 보도했다.

내몽골자치구 오르도스(Ordos)에 있는 징기스칸릉()은 그의 옷이 묻혀 있는 몽골 민족의 성지(聖地)였다. 하지만 중국은 이곳을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수백만달러를 들여 기념관·쇼핑몰 등을 건설했다. 한나라 양식 갑옷을 입은 징기스칸 동상<사진>이 들어섰고, 건물도 한나라 양식으로 꾸며졌다.

  • "징기스칸은 중국 소수민족문화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인물"

궈워롱 특구 운영부장은 징기스칸은 분명히 중국인이라며 중국은 징기스칸을 몽골 출신의 중국 위인(偉人)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공인 역사책도 혈안이 됐다. 닝샤대에서 나온 한 역사책은 징기스칸에 대해 중국 소수민족 문화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라고 썼다. FT는 중국인을 남쪽 영토의 소수민족으로 여겼던 징기스칸이 들었다면 경악했을 주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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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담축제에서 몽골 전통씨름 복장으로 전통춤을 선보이는 몽골 청년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몽골 전통축제에 중국 국기·국가까지

중국은 오랫동안 금지했던 몽골 전통 축제 나담(Naadam)도 최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나담은 원래 몽골인들이 활쏘기, 말타기, 몽골씨름 등을 즐기는 축제. 하지만 올 여름 나담 때는 중국 국기를 든 경찰 의장대가 주인공이었고, 곳곳에 중국 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 지역 관리는 “축제가 공산화·중국화됐다. 그건 더 이상 나담 축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이민가서 미국산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미국사람 되나?"

이런 시도는 내몽골자치구 뿐 아니라 독립국 몽골 내에서도 중국의 장기적 의도에 대한 의심과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징기스칸을 야만적 침략자로 여겨온 많은 중국인들도 이런 역사왜곡을 불편해 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 네티즌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까지 미국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참… 징기스칸이 무덤 속에서 웃을 일입니다. -_-***

=31일 드림.

두 여인, 정말 방글라데시의 재앙일까

어릴적 방글라데시는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였습니다.초등학교 때 방글라데시와 에티오피아 가운데 어느 나라가 더 가난한가를 놓고 친구들과 얘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의브로켄 남작과 아수라 백작 중 누가 더 나쁜 놈이냐 수준의 논쟁이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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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지도 <CIA World Fact Book>

  • 다시 두 여자의 싸움 속으로

신문쟁이 입장에서바라보는 방글라데시는 또 느낌이 다릅니다. 북한보다 조금 큰 면적(14만4000㎢)에 1억4700만명이 모여 사는 가난한 나라. 이 나라가 정치사회적 불안정과 경제적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갑갑한’ 소식을 또 접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 15년간 나라를 쥐락펴락한 두 여성 정치인이 내년 1월 총선에서 또 맞붙게 되면서 또 다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10월 이후 선거운동 과정에서 양측 지지자간 충돌로벌써 34명이 숨졌습니다. 얼마나 더 죽어나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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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지난 10월까지 총리는 민족당(BNP) 의장베굼(Begum·귀부인) 칼레다 지아(Zia·61) 여사였습니다.(방글라데시는 총선 전 3개월 동안 선거관리용 과도 정부가 들어섭니다.)라이벌인 셰이크(Sheikh·현자) 하시나(Hasina·59) 총재는 야당 아와미연맹(AL)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름 앞에 붙은 ‘경칭’이 두 사람의 사회적 입지를 설명해 줍니다. 둘은 방글라데시가 군부 독재를 벗어난 1991년부터 지아하시나지아 순으로 5년씩 총리 임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선거만 치르면 바로 전 집권당·총리가 권좌로 돌아오는 회전문 정부(revolving door premiership)’입니.

  • 불구대천의 원수

문제는 두 사람이 사상·정책 차이에 따른 건설적인 라이벌이 아니라 증오로 똘똘 뭉친 앙숙 관계라는 데 있습니다. 군부독재시절 학생운동가로 명성을얻은 하시나 총재는 1975년 쿠데타로 피살된 무지브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딸입니다. 그의 가족도 이 때 몰살당했지요. 이후 하시나 여사는 BNP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반면 지아 전 총리는하시나 총재 가족이 몰살당했던 바로 그유혈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가, 1981년 암살된 지아우르 라만 대통령의 부인입니다. 남편 사후 AL의 지도자가 됐지요. 당연히 두 여성은 서로 아버지와 남편의 암살 배후에 상대방이 개입했다고 의심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불구대천의 원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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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셰이크 하시나의 집 밖에서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지지자들. 아와미 연맹은 내년 1월22일 총선 보이코트

입장을 접고 선거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로이터

기반이 취약하니권력을 잡은 쪽은 지지 세력에게 공직과 이권을 나눠주느라 바쁘고, 반대 쪽은 5년간 파업과 시위로 국정을 뒤흔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한 번 파업이 벌어지면 외화 수입의 75%를 차지하는 의류 공장까지 전부 문을 닫습니다. 정치·경제가 안정될 틈이 없는 거지요. 사업가 오바이둘 카데르(42)씨는 외국에선 두 여성 때문에 방글라데시를 온건 이슬람국가로 보지만, 둘 사이의 증오는 절대 온건하지 않다고 했다.

  • 문맹과 가난을 넘어

방글라데시 상황을 보면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가 일상사였다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폐허를 딛고 지금의 경제발전과 국민교육을 이루지 못했다면, 외국의 누군가가 우리의 상황을 보며 똑같은 ‘갑갑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방글라데시의 비생산적 정치구조는 이른 시일 내에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소수의 중산층은 양대 정당 중 한 쪽에 줄을 대야 살 수 있는 상황이고, 가난하고 문맹인 빈곤층은 정치적 책략에 휘말려 새 인물을 뽑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도 다카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아불 이슬람(51)씨는 매년 홍수, 태풍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방글라데시지만, 지아와 하시나 두 여성이야말로 최악의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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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인 25일 다카의 람나 대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방글라데시 여성.

싸움판 정치와낙후된 경제에 시달리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내년은 좋은 소

식이 가득한 한 해이길 바랍니다. ⓒAP

얼마 전 한국에 온 노벨평화상 수상자 유누스 박사를 만났을 때 내년 1월 총선을 대비해 ‘깨끗한 후보 뽑기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패와 줄서기에 찌들지 않은 새 얼굴을 뽑아야, 깨끗한 의회, 깨끗한 내각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방글라데시 정치인들은 유누스 박사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선거준비 과도정부의 대통령직을 제안했습니다만, 유누스 박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노력이 내년 총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길 바랍니다.

어떤 나라에서나 가난과 문맹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입니다. 이 두 가지 장애를 넘지 못하는 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권력자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일은 멀고, 또 멀어 보입니다.

=25일 저녁에 드림.

‘럭셔리 제재’로 김정일 괴롭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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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의 최강 럭셔리 아이템. 윗쪽부터 아이팟, PDP-TV, 세그웨이 스쿠터. (인터넷 합성사진에 또 합성 ^^)

미국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겨냥해 애플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과 PDP TV, 세그웨이 전자스쿠터 등의 수출을 금지하는 ‘럭셔리 제재(luxury sanction)’, 사치품 금수를 추진한답니다. AP통신의 29일 보도입니다.

경제 제재 전문가들은 비(非) 군사 분야에서, 단 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tailored to annoy)’금수(禁輸)조치는 사상 최초(first ever)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AP가 입수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금수 목록에는 프랑스산 코냑, 롤렉스 시계, 고급 담배, 예술품, 고급승용차,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제트 스키, 요트, 아이팟, PDP TV 등이 포함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스포츠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도, 미 NBA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사인볼을 선물했다지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앞서 지난 10월9일 군수물자 및무기의 대북 선적금지와 함께 사치품 수출도 금지했고, 일본이 소고기, 캐비어, 고급참치, 보석, 만년필, 모터사이클 등 사치품 24종을 수출 금지했습니다. 미국도 이제 그 대열에 뛰어든 셈입니다. 작년 한 해 일본의 대북 수출액 중 927만달러(16%) 상당이 김 위원장과 측근들만을 위한 사치품이었다는군요.

AP는 미 정보 관계자들을 인용, 김 위원장의 ‘럭셔리 취향’도 공개했습니다.

자동차는 메르세데스, BMW, 캐딜락, 모터사이클은 할리데이비슨, 코냑은 헤네시 XO, 위스키는 조니 워커, 전자제품은 소니를 좋아한다는 겁니다.김 위원장은 영화또 1만편이 넘는 소장 영화 중 007시리즈와 고질라,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선에서’를 특히 아낀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김 위원장의 요리사였다는 일본인의 수기를 통해서도 한 차례 알져진 바 있습니다.

‘럭셔리 제재’는 김 위원장이 극소수 측근에게만 사치품을 선물한다는 점도 겨냥하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 위원장의 통제 수단 하나를 빼앗을 수 있다면 그만큼 내부 결속과 리더십도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 무역제재를 담당했던 윌리엄 라인쉬는 “창의적인 제재지만 밀수출까지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팟이나PDP TV 같은 물품은 세계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대북 ‘럭셔리 제재’의 한 축이 돼야 할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금수 목록을 검토 중입니다.

김 위원장을 겨냥한 미국의 럭셔리 제재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요? 아직은 불확실합니다.

=29일 드림.

‘빈자들의 은행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유누스 박사

[원문] 노벨평화상에 빈곤퇴치 운동 무하마드 유누스·그라민 은행 공동수상(천칭자리 *^^* )

● 노벨평화상 유누스는

美서 박사… 대기근 겪은후 ‘빈곤과 싸움’
담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대출해줘

“머지않아 ‘가난’이라는 말이 의미를 잃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박물관을 찾은 아이들은 어째서 그토록 끔찍한 참상이 오랫동안 방치됐는지 도리어 물을 것입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방글라데시의 모하마드 유누스(66)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선이 아니라 평등한 기회”라고 말한다. 그가 그라민 은행을 통해 실천한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인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극빈층에 인간답게 살 권리를 되찾아 준 ‘금융혁명’으로 평가받는다.

유누스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72년부터 치타공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1974년 대홍수와 10만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으로 무력감을 느낀 그는 고통받는 동포의 삶 속에 직접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빈곤과의 싸움은 치타공 대학 인근 조브라 마을에서 싹텄다. 주민들은 온종일 대나무 의자를 짜면서도 재료비 때문에 고리(高利)대금업자에게 시달렸다. 은행은 담보가 없는 이들에게 대출을 거부했다. 그는 마을 사람 42명에게 27달러만 대출해 준다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돈이 생기면 갚으라’는 조건으로 주머닛돈을 꺼내 줬다. ‘그라민(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이라는 뜻)은행’의 시작이었다.

유누스가 1979년까지 자신이 보증을 서 빌린 돈으로 500가구를 가난에서 탈출시키자, 중앙은행도 그를 돕기 시작했다. 10년 뒤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았고, 지금은 대출액이 57억 달러(5조4000억원)에 달한다.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담보도 없을 만큼 가난해야 한다. 못 갚아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도 상환 비율은 98%를 넘는다.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뤄 공동 책임으로 대출금을 쓰면서 함께 신용 관리를 하도록 한 것이 비결이다. 그라민 은행은 풍토병 예방 교육과 문맹 퇴치 운동도 벌인다. 이를 통해 660만명 대출자의 58%가 세끼 식사와 자녀등교 등 은행이 정한 ‘빈곤 탈출’ 목표를 달성했다. 또 전체 대출의 97%를 여성에게 부여하면서, 남성 위주의 방글라데시 문화도 많이 변했다.

유누스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쁘다. 나의 조국이 자랑스럽다"며 "그라민은행을 이용한 사람들도 이 소식에 함께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libra@chosun.com
입력 : 2006.10.14 00:13 36′

[본문스크랩]    노벨평화상에 빈곤퇴치 운동 무하마드 유누스·그라민 은행 공동수상

노벨평화상에 빈곤퇴치 운동 무하마드 유누스·그라민 은행 공동수상

극빈층 구제에 앞장


▲ 무하마드 유누스·그라민 은행 공동수상

‘빈민들의 은행가’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66·사진) 박사와 그가 만든 그라민(Grameen)은행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3일 “혁신적 경제프로그램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경제·사회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로크레디트’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소액의 종잣돈을 빌려줘 창업 등 자립을 돕는 대안금융제도. 유누스는 “빈곤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립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구조 때문이며, 신용대출은 곧 인권”이라는 신념으로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이 제도를 실천하는 그라민은행을 만들었다.

이후 660만명이 혜택을 받았고, 한국을 포함 전세계 약 40개국에서 실천되고 있다. 유누스는 올해 서울평화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은 1000만스웨덴크로네(약 13억원)의 상금도 받는다.

이태훈기자 libra@chosun.com
입력 : 2006.10.13 18:06 08′ / 수정 : 2006.10.14 02:40 44′

누가 북한의 핵 실험에 환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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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유엔에서 ‘P5’+일본 회의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대사. ⓒAFP

북한 핵 실험(이라고 추정되는) 사태에 대해 세계 각국은 한 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물론 속내야 이해 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위치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세계가 이렇게 똘똘 뭉친 걸 보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중국마저 북한은 징벌적(punitive) 조치를 당해봐야 한다며 유엔주재 자국 대사의 입을 빌어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뉴스위크는 미 고위 당국자가 적어도 북한에 대해서는 마침내 하나의 전선이 형성된 셈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다른 목소리를 낸 곳도 있습니다. 동정부터 박수까지 반응도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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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정글에서 신입대원 모집을 위한 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택동주의 공산반군. ⓒReuters

  • 필리핀 공산당 "세계 평화에 기여"

가장 적극적으로 북 핵실험에 환호를 보낸 집단은 필리핀 공산당(CPP)였습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필리핀 공산당은 1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북 핵실험을 국가 주권의 군사적인 주장이며, 스스로 강력한 방위능력을 키우는 것은 독립국가의 권리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가락입니다. 또 핵무기 개발로 북한은 미국의 공격을 억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세계의 본질적 평화를 위한 노력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CPP는 30년 넘게 필리핀에서 모택동주의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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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엘함 정부 대변인(왼쪽)과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AFP

  • 이란"근본 원인은 미국"

그리고 또 다른 핵개발 의혹국 이란이 있습니다. 이란은 비난의 화살을 북한 대신 미국에 돌렸습니다. 이란 정부 대변인 골람 호세인 엘함은 10일 이란은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 개발에 반대한다면서도 북한을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북 핵 실험의) 근본 원인은 미국 위정자들의 정책과 태도, 방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영라디오도 북한 핵 실험을 미국의 위협과 모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란 신문들도 북한에 동정적이었습니다. 이란 신문 레살라트는 사설에서 미국이 팽창주의 정책으로 세계를 위험하게 만드는 동안 다른 나라들이 전쟁억지 수단으로 핵과 같은 무기를 개발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중도신문 에테마드 에 멜리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핵 프로그램을 이유로 오랫동안 이란에 제재를 가해 온 미국에게 좋은 교훈이 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번째는 한국의 일부 단체들입니다. 기왕에 있는 핵무기, 핵실험을 발표한 것이라면 이참에 미제의 숨통을 끊어 놔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을 미제로부터 구하는 길(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www.onecorea.org)이라거나 미국의 위협에 대한 북한의 응당한 자위력 강화(한총련 hcy.jinbo.net) 등의 반응입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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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후진타오. ⓒAFP

  • 위험한 상상 하나 : 중국과 러시아의 속내는?

사실 이런 동정, 환호, 박수는 별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다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요. 오히려 무서운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장기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의 핵 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일 것입니다. 아직은 ‘위험한 상상’입니다만.

먼저 김정일 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로까지 불린다는 조총련계 재일교포 김명철 박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홍콩경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북의 행보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 자신이 핵전쟁도 두려워 않는 영웅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며, ‘협상 카드가 아니라 주권(혹은 정권) 유지 수단으로 핵을 보유하려 한다는 것’ 등이 김 박사가 밝힌 북한의 논리의 일단입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주장은 북은 핵 보유가 결국 중국과 러시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대목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중국과 러시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게 김 위원장의

세번째 의도다. 중국과 러시아는 언젠가미국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점

을 알고 있고, 이 경우 핵무장한 북한은 이들의 동맹국으로 미국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이 겉으로는 핵실험을 비난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양안문제로 인한 미국의 군사적 압력과 충돌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속내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연합뉴스, <김정일의 핵계산법>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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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 대통령과 싱 인도 총리. 무슨 얘길 그렇게 다정하게? ⓒAP

  • 미국,핵확산 방지 실패(?)의선례

미국은 지난해 7월 인도와 전면적인 핵기술 협력을 약속하며 사실상 인도의 핵 보유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결정은 자국 내에서조차 핵 비확산 원칙을 어겼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에너지 문제 등 여러가지가 원인으로 꼽힐 수 있겠으나, 가장 유력한 분석은 미국이 인도를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핵을 사실상 용인하며 중동국가들을 견제하는 것과 일견 유사한 메카니즘입니다.

일본은 북 핵 실험 뒤 요즘 말로 아주 ‘필’ 받았습니다. 납치문제로 재미를 봤던 아베 총리에겐 정치적 호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0일 저녁에도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 규탄을 결의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별도로 북한 국적자는모조리 일본 입국을 불허하는 단독 제재방안도 고려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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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 ⓒReuters

  • 러시아 "북은 사실상(de facto) 핵 보유국"

그리고 11일 새벽, 러시아에서 우려스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핵 장치(device·폭탄이나 무기를 완곡하게 표현할 때 흔히 쓰는 표현)에 대한 시험이 이뤄졌으며 북한이 사실상(de facto) 9번째 핵보유국이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먼 훗날에라도)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에 대해 북한은 파키스탄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던 미국 반응(크리스토퍼 힐 국무부차관보)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바노프 장관은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북한이 사실상 핵클럽에 가입했다는 점을 부인하려 한다핵폭발의 강도와 성격에 대해 각국 평가가 다른 데는 정치적·기술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미국이 유럽 지역에서 폴란드에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고 그루지야의 NATO가입을 배후조종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있다며 잔뜩 골이 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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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니메이션 ‘팀 아메리카’ 속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파라마운트영화사

  • 누가 북의 핵 실험에 환호하는가

물론 이바노프 장관의 언급은 북한의 실험 규모가 적게는 2kt(킬로톤)에 불과하다는 다른 나라들의 견해에 대해 5~15kt에 달한다는 러시아의 계산을 옹호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성격이 강합니다.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 핵 실험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제재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협력하고 있다는 것도 현재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파워게임에는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런 교훈을 배우고 또 배워왔습니다. 항상적인 핵의 위협 앞에 목숨을 내어 놓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있어선 안됩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침해할 수 없는 원칙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강대국의 파워게임 한 가운데 놓인 작은 나라에게, 주어진 옵션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강대국의 얼굴 뒤 어딘가에서,서로 다른 셈을 하며 박수를 치거나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사꾼들이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릅니다.

‘위구르 인권운동의 상징’ 노벨평화상 탈까

분량이 제한돼 있는 신문의 국제면에선유독 홀대 받는 안타까운 뉴스들이 많습니다.

최근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폭탄테러, 사상자 발생 소식이 그렇습니다. 꾸준히 하루에 수십명씩 죽어나가지만, 웬만큼사망자가 많지 않고선기사화되기 어렵지요. 너무 오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며뉴스의 신선도가 떨어진 탓입니다.

또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의 힘없고 가난한 나라 얘기도 국제면에 자리를 잡기 어렵습니다. 짐바브웨에선 10여년 내전 기간 300만명이 사망했고, 수단에선 여전히 다국적군 투입 논란 속에 총격이 오가지만,지구를 한바퀴쯤 돌아 한국에도착하면 ‘너무 먼 나라 뉴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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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쟝 위구르 자치구의 주도 우루무치로 가는 기차 안의 위구르 원주민들. 위구르인은 2000년 전

부터 낙타로, 말로, 최근엔 철마로 실크 로드를 오고 갑니다. ⓒAP

그런 ‘구문(舊問)’ 중 하나가 중국 신쟝·위구르 자치구의 분리독립 문제입니다. 2000년 전 부터 위구르제국으로 찬란한 문화적 성취를 이뤘고, 한 때 당나라 왕조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위구르에선, 1900여만명 국민의 절반이 넘는 무슬림 원주민들이 줄기차게 분리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원래 이 지역의 원주민 민족이 ‘위구르 족’이고, ‘신쟝(疆·새로운 강역)‘이란 19세기말 러시아의 팽창을 막으려는 영국은행의 지원을 받은 청나라가이 지역을 점령한 뒤 붙인 이름입니다. 1940년대 잠시 동(東) 투르키스탄으로 독립했다가 1949년 이후 다시 중국의 지배하에 놓인 곳이죠. 중국에 치이고, 영국에 배신당하고 러시아에 사기당한 땅.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데다, 최근 중국 최대의 천연가스전이 발견되는 등, 에너지자원 측면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성공한 여성 사업가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위구르 독립운동의 상징이 돼버린 러비야 카디르(58)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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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러비야 카디르씨, 오른쪽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Human Rights Without Frontier

  • "이제 나는 온전히 위구르의 것이다"

나를 잔인한 현실로부터 구해내고, 미치지 않도록 지켜준 것은 위구르 동포들의 기도였습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동포들의 병을 고치는 치료약이 될 것이며, 그들의 눈물을 닦을 손수건이 될 것이고, 그들이 비를 피할 우산이 될 것입니다.

피 말리는 5년여, 언제 쥐도새도 모르게 처형될까 떨어야 하는비인간적 비밀 감옥에서의 투옥 생활 끝에 석방돼 미국에 도착한 카디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국경 없는 인권운동26일 안넬리에 에노흐슨 스웨덴 국회의원이 카디르를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그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위구르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크게 증폭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카디르의 삶은 피점령과 독립을 반복했던 조국의 역사만큼 험한 굴곡을 겪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떨치고 자치구 주도 우루무치에서 백화점과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3300만달러(1999년 당시)의 재산을 모은 입지전적 인물. 여성 취업·창업을 지원하는 1000 어머니 운동을 이끌며 가난에 찌든 이 지역에선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 됐습니다. 중국 중앙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CPPCC) 위원에 임명하고, 1995년엔 UN 국제여성회의에 중국 대표단 일원으로 뉴욕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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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비야 카디르.

  • 백만장자에서 정치범으로

1996년 반체제 운동가였던 남편 시디크 하디 루지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중국 정부의 카디르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카디르 가족에겐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1997년 카디르의 여권을 압수했고, 1998년엔 정협 위원 재임명을 막고 사실상 가택연금합니다.그리고 1999년 8월, 카디르는 우루무치의 한 호텔에 미국 의회 관계자들과 인권 문제를 논의하러 가던 중 마침내 체포되고 맙니다. 혐의는 국가 기밀 해외 유출. 그러나 카디르가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달한 기밀이란 지역 신문 스크랩일 뿐이었다고 자유라디오아시아(RFA)는 전하고 있습니다.

카디르는 2000년 3월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5년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넉달 쯤 앞두고 5년여 수감 끝에 석방됩니다. 당시 미국은 카디르 석방에 호응해 대중(對中) 인권 결의안 유엔 제출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 중국은 카디르를 내주고 EU와의 인권 협상에서도 숨통을 틔웠습니다.하지만 자유의 몸이 된어머니와 달리,위구르에 있던 아들 2명은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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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ically Turkic Muslims, mainly live in Xinjiang
*Made bid for independent state in 1940s
*Sporadic violence in Xinjiang since 1991
*Uighurs worried about Chinese immigration
and erosion of traditional culture ⓒBBC

  • 위구르의 ‘달라이 라마’가 될 수 있을까

카디르는 노벨상 후보 추천 소식을 들은 뒤 위구르의 억압받는 현실을 국제사회가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다. 위구르의 딸들은 중국 대도시의 창녀로, 아들들은 도둑·소매치기로 내몰리고 있다. 나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위구르 인권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론 크래너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2005년 카디르 석방 뒤이제 그가 위구르 인들을 위해 티베트 인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라는 ‘얼굴’로 인해국제사회의 더큰 관심을 받고 있는티베트처럼, 상대적으로 홀대받던 위구르 족도카디르를 계기로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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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비야 카디르 ⓒRafto Foundation, Norway

카디르는 2004년 노벨상 지름길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라프토(Rafto) 인권상을 받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라프토 상 수상자 중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1990),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 호세 라모스 오르타(1993), 김대중 전 대통령(2000), 이란의 시린 에바디 변호사(2001) 등 4명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10월 13일 발표될 예정입니다. 위구르 인권과 민주주의, 분리독립 문제가티베트 문제처럼 세계적 관심사가 될 수 있을지, 올해 노벨평화상 발표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28일 새벽에 드림.

배다리 책방골목, 아벨 서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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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국철 1호선 동인천역에 내립니다. 비스듬히 골목을 나서 악기점들이 늘어선큰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굴다리가 나오고, 대각선 건너편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책방들이 옹기종기 붙어 앉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 중 눈에 띄는 간판이 보입니다. 아벨서점(032-766-9523), 최초의 의인의 이름을 붙인 30년 묵은 헌 책방입니다. 한 때 수십곳이던 헌 책방들이어느새 하나둘 문을 닫았지만, 아벨서점 주인 아주머니는 "책방은 죽지 않습니다. 책방 주인이 죽을 뿐이죠"(한겨레, 2006.2.6)라고 말씀하십니다.

  • 아벨 서점

우리 나이로 올해 쉰여섯이시라니, 아벨 서점 사장님은 제겐 막내 이모 연배쯤 되실 듯 합니다.’아벨 전시관’이라는 헌책 전시공간도 만들어두셨다고 들었는데, 볼 수 없었습니다. 오리아나 팔라치의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우리나라 책 제목은 ‘태아에게 주는 편지’, 동천사, 1992) 같은 절판된 책들을 전시해 두셨다던데… 사장님께 "전시관을 서점 옆으로 옮기신다더니 어떻게 되셨느냐" 여쭤 보니 "아직 정리를 못 했다"고 하십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자꾸 집안에 일이 생겨서요. 몇 달째 정리할 엄두를 못내고 있네요." 아쉽지만 다음에 전화로 한 번 여쭤 보고 다시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헌책방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서가와 서가 사이가 좁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된 세상 속에 쏙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아벨서점의 서가들도 천장까지 빼곡히 책이 그득그득하고, 그도 모자라 바닥에도 무릎높이까지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행여 책 무더기를 무너뜨릴까, 조심조심서가 사이를 누비며 책 제목들을 읽어 봅니다. 참 그리운 이름들이 많습니다. 옛날 군대가기 전 친구에게 ‘제대하면 돌려받기로 하고’ 줬다가끝내돌아오지 못한 책도 있고, 대학 도서관에서 서너번 빌리고도 끝까지 못 읽은 책도 있습니다. 10여년 전대형서점 서가 앞에서 몇 번이나 꺼냈다 꽂았다를 반복하다 끝내 주머니 사정 탓하며 사지 못했던 책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마음 먹으면 살 수 있겠지만, 관심 분야도 달라졌고 맘 턱 놓고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 는 것이 제 핑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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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laddin.co.kr

  • 다음엔 꼭… ^^;;;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1, 2권과, 책세상에서 나왔던 니체 전집 중 ‘이 사람을 보라’, ‘바그너의 경우’ 같은 책들에 자꾸만 손이 갑니다. 이런이런… 그런데 이번에도 또 꺼냈다 꽂았다만 반복하다 끝내 사지 못했습니다. "내가 가져 가면 또 책장 한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쓸테니, 누군가 소중하게 꼼꼼히 읽을 사람이 가져가도록 그냥 두자"는 생각으로… 음… 변명일 뿐이겠지만요. 결국 저는 스페인어 강독 책 한 권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이날 ‘땡 잡은’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저희 집 마님이었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가 그린 그림책 ‘자연의 아이들’ 4권 전질과 독일어 동화책 몇 권을 건졌거든요. 치히로는 ‘창가의 토토’로 유명한 분입니다. 윗 그림만 보셔도 아하, 하실 겁니다. ‘자연의 아이들’은 ‘봄 아이’, ‘여름 아이’, ‘가을 아이’, ‘겨울 아이’ 이렇게 4권 한 질입니다. 사장님이 4권 한꺼번에 시집보내야겠다고 하셔서 좀 깎아서 샀습니다. ^^ 저희 집 마님은 도쿄에 갔을 때 치히로 박물관에 들렀을 정도로 이 분의 책과 그림을 좋아합니다. 저야 이름만 아는 정도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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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laddin.co.kr

  • 헌 책방의 기억

초등학교, 중학교땐 학년이 올라가면 한 짐씩 늘어나는 전과며 참고서를 동네 헌 책방에서 샀더랬습니다. 새 책 못잖게 깨끗할 뿐 아니라(ㅎㅎㅎ), 가격도 반값입니다. 운 좋으면 학생용엔 없는 설명과 문제가있는 교사용 참고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 살던 동네 헌책방에서는 주문하면 새 책도 10%쯤 깎아줬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서점에서새 책도 대부분 5~10%씩 깎아주지만(저는 여기에 거품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로는 파격가였죠.

고등학교 땐 쉽게 구하기 힘든 참고서를 사기 위해 헌책방에 들렀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의 헌 책방사장님들이 제가 가면 반가워했더랬습니다. ^^얼마 전 다시 가 보니 헌책방은 간 곳 없고 학원 뿐이더군요. ‘잘 가르친다’고 소문났던 국영수 선생님 몇 분은 아예 학원을 차려 나오셨구요. 만화가게에서 빌리기 힘든 무협지도 헌 책방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대학교 앞엔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헌 책방이 있었습니다. 독일 작가 페터 빅셀의 단편집 제목을 그대로 따 붙인이름이었죠. 전공서적 몇 권 사고 나면 주머니엔 먼지만 풀풀, 소주 1병 마실래도 선배들을 뜯어먹어야만 했던 시절이라, 헌 책방은 도서관과 함께 끝없는 책 욕심을 채워주는 통로였습니다.(끝까지 읽지도 못 할 책을 ‘수집’하는 버릇은 이 때 부터 생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특히 이 서점엔 너무 낡거나 오래되서 팔 수 없는 책을 누구든 집어 갈 수 있도록 문 앞에 내놓곤 했습니다.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같은 레닌의 소책자부터, 선우휘 선생의 ‘불꽃’ 같은 한자 그득그득한 깨알 글씨의 문고판까지 누렇게 빛바랜 채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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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다시 아벨서점에 들릴 기회가 생기면, 꼭 사고 싶은 책을 모두 사고야 말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하지만 또 서가 앞에 서면 고민에 빠지고, 빼냈다 꽂았다를 반복하게 되겠지요. 이 책 저 책조금씩 읽으며 몇 시간이고 흘려 보내게 되겠지요. 자꾸 책장을 넘겨 보고, 여백에 쓰여진 메모를 읽어 보고, 뒷편에 쓰여진 "생일 축하해" "강철처럼 강한 사람이 되라" 같은 누군가의 개인적 사연들을 발견하고 혼자 큭큭 웃게 되겠지요. 헌책방은 그래서 좋습니다.

=25일 새벽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