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도난 끝에 제 발로(?) 돌아온 뭉크의 ‘마돈나’.
2년전 세계를 뒤흔든 명화 도난사건이 있었습니다.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서 아무리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봤음직한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1892)와 ‘마돈나'(1894)가 도난당했다는 소식이었죠. 복면을 쓴 두 명의 범인이, 박물관 직원 1명을 위협하고, 관람객들이 뻔히 지켜보는 가운데 벽에서 그림을 뜯어내, 훔친 차를 타고 도망갔다는 겁니다. 두 점 합쳐 1130여억원짜리 그림이 도난당하는 걸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
1일, 외신들이 일제히 "표현주의 마스터피스 ‘절규’가 뭉크 박물관에 안전하게 돌아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참,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그림이 그 유명한 ‘절규(The Scream)’ 입니다. ^^
- 돌아오긴 돌아왔는데
오슬로 경찰당국은 "어떻게 이 그림을 되찾았는지에 대해 어떤 정보도 줄 수 없다. We’re keeping our cards pretty closeat the moment."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 말로 옮기기가 진짜 애매하죠? ^^;;;
경찰은 그림의 ‘몸값’을 지불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도난사건과 관련해 체포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확인해 주는 것은 오직 "노르웨이에서 되찾았다"는 것 뿐입니다. 이러니 의문은 꼬리를 물 수 밖에요.
이 그림을 누가 갖고 있었을까요? 어디에 보관했을까요? 어떻게 돌려받았을까요? 경찰에게 뭔가 비밀 정보가 있었을까요? 누가 돌려받는 댓가로 돈을 지불했을까요?
- 은행강도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도난사건 당시 뭉크 박물관 앞. 폴리스라인이 선명합니다.
사실 이 그림들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대놓고 시장에 내놔 팔기는 어렵다는군요. 팔아서 돈 벌려고 훔친 게 아니라는 거죠. 노르웨이 지역 신문들은 이와 관련 오랫동안 2004년 8월의 뭉크 그림 도난사건에 대해 "스타뱅거 마을에서 경찰 1명이 살해된 노카스 은행 강도 사건으로부터 경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지하세계 범죄자들이 꾸민 일"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해 왔습니다. 어떤 신문은 이 은행강도 교사범으로 수감 중인 데이비드 토스카가, 4일 공판에서 수감조건을 호전시키기 위해 뭉크의 그림들이 어디 감춰져 있었는지 털어놓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습니다. 이 은행강도 교사범은먼저 죽은동료 범죄자가 뭉크 도난사건을 사주했다고 말하고 있다는군요. 경찰 수사 진용을 흐트러뜨리기 위해서였다는거죠.
- 뭉크 도난사건 용의자 집에서 은행에서 도둑맞은 돈 발견!
작년엔 이 은행에서 도둑맞은 돈이, 뭉크 도난사건 용의자의 집에서 발견되기도 했답니다. 경찰도 일찌기 두 사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었구요. DailyVG라는 신문은 "두 사건 모두 손에 상처가 나 피를 흘리는 일이생기지 않도록 고안된, 똑같은 특수장갑이 사용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뭉크 그림 도난사건 불과 나흘 뒤, 수사팀 책임자도 "확실치는 않지만, 노카스 은행강도 사건과 그림 도난사건에서 사용된 장갑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었다는군요. 노르웨이 경찰은 이미 뭉크 도난사건과 관련 3명을 감방에 집어넣었습니다. 도난 때 차량운전을 맡은 피터 타랄드센은 8년형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범죄 주모자 중 1명으로 꼽히는뵈른 호엔은 7년형,공모자인 페테르 로센빙게는 4년형을 받았다는군요. 뭔가 ‘거래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 그림을 무사히 돌려받는 조건으로 형을 감경시켜줬다던가 하는…
젊은 뭉크와, 75세의 뭉크. 자신의 작품이 돌아온 걸 기뻐하고 있을까요? ^^
- 곧 복원돼 재전시한답니다
어쨌든 1조달러가 넘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 그림들은 현재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 무사히 보관 중입니다. 경찰은 "놀라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입니다. "’마돈나’에 작은 구멍과 긁힌 자국 등 훼손이 있긴 하지만, 박물관 측은 곧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죠. ‘절규’는 거의 훼손이 없답니다. 일간 아프텐포스텐은 박물관 관계자들이 "절규는 어딘가 부딪힌 듯 한 구석이 구겨져 있다"고 전했습니다. 어쨌든 박물관은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ASAP) 다시 전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힐 뿐, 정확히 언제부터 이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야, 벨라스케스도 물론 훌륭했지만 제겐 엘 그레코의 그림들이 정말 ‘존재론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림 속에 빨려드는 듯한, 아찔한 현기증같은 느낌이었습니다.프라도에선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고야의 ‘마야’나 엘 그레코의 ‘성 삼위일체’,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도록 내버려두더군요. 오오… 엘 그레코… ^^
뭉크의 ‘절규’도 엄청난 쇼크일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오슬로에 가 본 적이 없는 저는, 뭉크의 절규와 마돈나가 다시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는 언젠가, 직접 그 그림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생기고 있습니다.
=2일 새벽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