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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학살사건(堤岩里虐殺事件)은
1919년4월15일오후2시경아리타도시오(有田俊夫)일본중위가이끄는일본군경이
제암리에서일어났던만세운동의주모자를찾지못하자
마을주민30여명을제암교회에모이게하고학살한사건이다.
교회출입문과창문을잠그고집중사격을했고증거인멸을위해불을살랐다.
1908년의제암리교회
지금의제암리교회
한어머니가아이만은살려달라며창밖으로내어보낸아이마저찔러죽이는
만행을저질렀다.
그때교회안에서죽은사람이23명이고민가31호를불살라더많은사상자가났다고한다.
딸의죽음으로망연자실한한어머니
학살후신자나일반인들은일경의감시로현장에접근도못했고
희생자들의시신은방치되있다가
카나다의료선교사스콜필드박사에의해유골은수습하고묻힐수있었다고한다.
일경의눈길을피해몰래찍은사진은
‘수원에서의잔악행위에대한보고서’로작성되미국에보내지고
세계에여론화되었다고한다.
제암교회는1919년7월에다시건립됐고,1938년에기와집으로다시지어졌지만
진상규명은엄두도못냈고광복후에나이루워졌다.
1970년9월일본의기독교인과사회단체들이속죄의뜻을담아보내온1천만엔으로
새교회와유족회관이건립되었고
1982년9월정부에의해대대적인유해발굴작업을하여교회옆에합동으로안장되고
다음해7월에는기념관과기념탑을세웠다.
기념탑
23명의넋을기린구조물
23인이합장된묘역입구
전시관의많은사진들중에서…
비가왔다.
가뭄끝의단비였지만
학살의현장에서맞는비는그날의참혹함을느끼기에효과적이었다.
3.1절행사가있었을깃발들이비에젔어가며바람에나부꼈다.
그깃발의자락들이우리들의마음을쳤고
주먹불끈쥐게했다.
‘용서는하되,잊지는말자.’
동방의등불
라빈드라나드타고르
(1929년)
일찍이아시아의황금시기에
빛나던등불의하나인코리아
그등불다시한번켜지는날에
너는동방의밝은빛이되리라.
마음엔두려움이없고
머리는높이쳐들린곳
지식은자유롭고
좁다란담벽으로세계가조각조각갈라지지않는곳
진실의깊은속으로말씀이솟아나는곳
끊임없는노력이완성을향해팔을벌리는곳
지성의맑은흐름이
굳어진습관의모래벌판에길잃지않는곳
무한이퍼져나가는생각과행동으로우리들의마음이인도되는곳
그러한자유의천국으로
내마음의조국코리아여깨어나소서.
1929년일본을방문중이던타고르에게우리나라도방문해달라는
동아일보기자의부탁을받고
방문하지못하는미안한마음을동아일보에기고한글입니다.
3.1운동이후실의에빠저있던우리민족에게큰감동과자긍심을
일깨워준작품으로평가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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