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에는 오래된 별장이 세채나…

우리는화진포가해변이아름답고모래가곱다고해서

아이들모래놀이시킬량으로갔었다.

별장이있으리라고는생각도못했다.

입징료를내라고해서,해수욕장개장도안했는데하며의아했는데

세군대별잘을다볼수있다고했다.

무슨별장?ㅎㅎㅎ

이승만대통령별장

화진포호수가내려다보이는산의중턱쯤에자리잡고있다.

나란사람,이런포숲을올릴생각이었으면건물의입구,또는

입간판이라도먼저찍어야되는데생각없이지나쳐버린다.

그래서또내부의사진만올린다.

별장위치는좋지만

이런건물을별장이라고할수나싶을정도로볼품이없다.

부정부패,부정선거로하야하고망명길을떠난대통령이어서인지

이화장에서옮겨왔다지만자료도궁색하고…

1954년건립된

자그마한단층석조건물(27평)

집무실,침실,거실이있다.

잦은일선장병방문뒤혹은취미였던낚시를하기위해서거쳐했다고한다.

1961년하야하면서방치되었다가

군에서관사로사용하기도했으며

1999년육군이재건축하여이기붕별장,김일성별장과함께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관람객을유치하고있다.

프란체스카

저물색한복이너무나눈에익다.

오스트리아태생

이승만60세,프란체스카34세에결혼

26살이나위인이국남자와결혼하고퍼스트레이디가되었고

남편의나라에묻힌여자

영원한한국인

별장에서내려다본화진포호

이기붕별장

벽에저사진

생각이많아지는사진이다.

그시절그의집냉장고에서수박이나왔었다.

그때가4월이었는데…

지금은사시사철있는수박이그때는국민들을분노케했었다.

강석이가한행동은잘한짖이었을까.

성난군중앞에부모와동생을내놓지않은것

박마리아여사가이대부총장을했다는것이제서알았다.

이사진은순전히거울속에병윤이쨔식이있어서…ㅎ

아들내외와4.19이야기를했다.

김주열이야기도하고

김주열은나하고동갑니다.그때18살

살았으면나만치늙었을텐데…

그가마산앞바다에서눈에체루탄이박힌체떠올랐을때

바로혁명의도화선에불이붙었다.

그때살아남은사람들은그정신을이어가지못했다.

김일성별장

원래는외국인휴양소가원주에있었는데

일본이1937년중일전쟁을일으키면서원산에있었던외국인휴양소를

강제로화진포로이주시켰다고한다.

그래서화진포에별장이많게되었다고한다.

김일성별장은선교사였던셔우드울부부에의해

독일의망명건축가H.Weber가건축하여교회로사용한곳이다.

해안절벽금강송숲속에우아한자태로서있어서

‘화진포의성’으로불리워졌다고한다.

해방후북한이귀빈휴양소로운영하였으며

김일성과그의처김정숙,김정일,김경희가묵고가기도해서

‘김일성별장’으로불리는곳이다.

지금건물은한국전쟁중크게훼손된것을군이철거하고옛모습으로재건축하여

장병휴양시설로쓰다가다른별장들처럼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이되었다.

이벽난로아궁이의뒷벽은동굴속에서채취한자수정암석이다.

장작불이타면서춤추는듯한불꽃이벽난로에붇어있는

자수정에현란하게반사된다고한다.

산에도해변에도소나무가많다.

금강송이라고한다.춘양목이라고도하고.

금강송군락지라고한다.

몸통이붉은색을띄고늠늠하게곧장하늘로뻗고있다.

김일성별장에서바라본화진포호수

바로앞에이기붕별장이금강송사이로보이고,

호수건너편에이승만대통령별장이보인다.

참아름다운풍경이다.

별장에서내려다본해안선

하루종일해가안보이던날이다.

맑은날이었으면저바다색이짙푸르렀을텐데…

아쉽기도했지만내려다보며

많이많이행복한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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