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을 꼬박 광풍이 불었다.
태풍급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소리가 마치 귀곡성 처럼 날카롭고 찢어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래도 출근은 하고 학교도 가고 유치원에도 간다.
나는 어린 지유를 유모차에 태우고 해윤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피아노 학원에도
보내야 한다.
며느리 카드로 병윤이 해윤이 두녀석 피아노 학원비를 내고 돌아 오는 길
동네 마트 옆쯤 왔을때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빵집 자동문이 저 혼자 열렸다 닫혔다. 한다.
가로수가 절반은 휘어지는것 같다.
지유를 태운 유모차가 바람에 밀려 저절로 간다.
유모차 붇잡고 해윤이 손도 잡고 ‘빨리 가자! 빨리 가자!’
아들네가 사는 아파트는 복도식인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화문’을
하나 더 지나야 된다.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인데 바람이 불어서인지 닫혀있다.
그런데 열리지를 않는다. 손잡이를 있는 힘을 다해서 돌려도 꼼짝도 안 한다.
해윤이년은 회장실이 급하다고 방방 뛰고…
관리실에 전화를 할려고 전화를 찾으니 없다.
순간 내 머리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유모차를 끓고 해윤이 손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리실로…
관리인이 쫓아와서 손잡이를 돌리니 싱겁게 열렸다. 이게 뭐야!
집에 들어와 집 전화로 내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만해도 유모차 어디에 내 전화기가 있는데 내가 못 찾는것으로 알았다.
전화 소리가 안 들렸다. 잊어 버렸구나. 그 마트 옆일거야.
해윤이 혼자 놔 두고 유모차 끌고 다시 내려가 본다.
돌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텅 비고 고요하기만 했다.
다시 집에 와서 며느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카드 중지 시키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 내 번호에 전화를 한다.
몇번만에 저 쪽에서 ‘여보세요!’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전화기를 잃어 버렸는데 제 전화가를 습득하신 분이시죠?’
마트에 갔다가 길에 떨어진것을 가지고 왔다며 와서 찾아 가랜다.
위치를 알려 주는데 식당 이름 같았다.
내가 이곳 지리를 잘 몰라서 자꾸만 물었드니 짜증을 냈다.
다시 유모차 끌고 해윤이 손잡고 찾아 나선다. 여전히 바람은 불었다.
처음엔 엉뚱한데로 갔다.
그 남자가 신당역 쪽으로 ‘곧장 와라!’ 그랬기 때문에 내가 늘 다니는
6호선쪽으로 갔는데
그 남자가 오라는 쪽은 2호선 쪽이었다.
다시 방향을 돌려 거의 달리다 싶히 했다.
드디어 찾았는데 문이 닫혀 있다. 문에 ‘7시에 open’이란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일본 술을 파는 작은 술집이다.
순간 힘이 팍 빠지면서 그 남자가 거짖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유모차 끌고 해윤이 손잡고 느리게 걸어 다시 집으로…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고 소파에 누워버렸다.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느는듯 했다.
얼마후에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하면서 자기가 찾으러 가겠노라고, 이야기는 안 하지만 며느리도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듯 싶다.
술집이라는 것에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가령 늙은 시에미가 전화기를 찾으러 갔다가 당하지 않을까? 하는
세상이 하수선 하니…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혹 돈을 요구할지도 몰라, 라든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딱 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내 나름대로 몇가지의 대처 방법도 생각해 놓고 있었다.
나는 도리어 젊은 며느리가 찾으러 가서 일이 더 꼬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도 했다.
며느리가 저녁에 그냥 왔다.
술집이 골목에 있어서 차를 세울곳이 없어서…
아들이 퇴근하면 함께 갈까 했는데 오늘따라 늦는다네요.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내가 간다. 무식한 할매인척(사실 무식 하지만…ㅎㅎㅎ) 사정하면 되겠지!’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 갔다.
구약에 보면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메소포타미아로 보내며 며느리감을 구해오라는
내용이 있다. 늙은 종은 먼 길을 떠나며 주인의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순적히 만나게 해주십시요.’
나도 비는 그쳤지만 아직도 바람이 불고 있는 거리를 걸어 가며 비슷한 기도를 했다.
’순적히 찾게 해주세요.’ 드디어 그 술집 앞이다.
상이 네개 밖에 안 되는 작은 술집이다. 두 상에 손님이 있다.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들어 가며
’안녕하세요!’
작은 카운터에 알맞게 건장하고 알맞게 나이 먹은 남자가 있다.
일본 요리사들이 입는 검은색에 등판에 빨간색으로 상호를 수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김정은을 만나러 니북이 갔었다는 일본 요리사 처럼 천수건을 쓰고 있었다.
그 남자는 너그러운 바라톤으로 ‘전화기 찾으러 오셨지요.’ 어떨결에 ‘녜!’
내 전화기가 카운터에 놓여 있었다.
’어떻하다 잃어버렸어요?’
’아! 아이들과 정신 없어서…
그 남자가 확인도 안 해 보고 얼른 전화기를 내어 준다.
와! 너무 싱겁게 끝났잖아!
나는 직각으로 머리를 숙여 ‘감사합니다.’ 하며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와 내가 상상했던 그런 이야기를…
주춤거리고 있는 내게 ‘어서 가 보세요.’
나는 한번 더 직각인사를 하고 문을 나와서도 한 번 더 했다.
거리로 나오니 바람이 시원하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
세상아! 미안하다!
너를 오해 해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