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고양이

눈이시리도록푸르른하늘아래로사막이펼쳐져있었고그광대한사막한가운데를

끝도모를아스팔트길이똑바로내달리고있었다.
그아스팔트길위에자동차안에서우리는40도를넘나드는더위로
아스팔트위로아지랑이처럼모락모락피어오르고있는열기를
바라보며언제닿을지모르는목적지를향한호기심으로가슴을콩닥거리며
지루함을달래고있었다.

중국인들이운영하고있는농장이라는곳에도착했을때는이미해가져서

어둠이곳곳에스며들고있었다.사막에물을끌어다농사를짓고있다는중국인
젊은이들덕분에우리는이역만리타국땅에서하얀쌀밥과김치를궁하지않게
구해먹을수있었다.농장안엔오로지남자들만살고있었다.남자들이농사도짓고
밥도하고빨래도하고마치군대같이남자들로만이루어진삶을형성하고있었던것이다.
농장안의식탁엔세계적으로알아준다는중국요리들이식탁다리가부러져라할정도로
잘차려져있었다.단지식탁다리밑으로윤기가찰찰흐르는까만털을지닌고양이
몇마리가그림자처럼지나다니고있었다.

고양이에게도파란눈이있고회색눈또는초록색눈이있다는것을깨달은것은
바로이시기였다.당시한국영화속에나오는고양이들은요물로변하는경우가
많았었기때문에고양이에대한두려움을갖고있던나,그고양이들이
참으로아름다운동물들이라는것을깨닫기시작했다.
붉은빛대지,작열하는태양열,무공해의자연…그래도그속에서우리는
뜨거운감옥속에갇힌페니턴시에에불과했던것인지도모른다.

아프리카 콩고난민 가족 이야기를 시청하고나서

우연히인간극장을시청했는데아프리카콩고에서난민으로한국에온가족이야기이다.
내가유럽에살아보아서느낀바이지만인종차별을받을때처럼부당하다는생각으로은근히스트레스를
크게받는경우가없다는생각이다.다른한편으로는셋집사는사람이주인집눈치보는것처럼
어쩔수없이참아내야하는일이라고도생각하지만때로는그들이눈치를주지않아도내내면깊은곳에서부터
그들이동양인보다우월한인종이라고인정하고있다는사실이기막히다는생각이들때가있다.

그건어쩌면한국에서살때눈치보지않아도살수있는환경에익숙해진나의알량한자존심이
나로하여금스트레스를느끼게하는것인지도모른다.

그런데가끔이곳에사는흑인들의사는방식을보면서참의아해질때가많았다.
그들은사람들의괄시를화내지않고받아들인다는것이다.
어떻게생각하면참으로겸손한사람들인것이다.말을할때너무시끄럽게한다거나
느린말투,때로는염치없음,그리고내버려두면절제없는행동이불쾌하다고느낀적이많았는데
아니,정신이없는행동방식들이라고무시했었는지도모르겠다.

그리고생각의한계,어떻게보면너무나단순한생각체계가싫었던것인지도모른다.

어린시절보았던아프리카인들…
자기나라를다빼앗기고도태평한사람들…

그들은사실어디가나멸시와천대의대상으로살아왔는지도모른다.

더군다나한국인들의인종차별은더잔인하다할정도다.

그런가운데서도살아가는콩고인가족들을보며서한국인들도생각을넓혀서
인식을달리해야한다는생각을해본다.

그러면서도그흑인가족을오랫동안도와왔다는’모아’라는한국처녀,일주일에한번씩
그집을찾아가서아이들에게공부를가르쳐주는그처녀는이제한국사회에서
괜찮은집안에시집가기는다틀렸구나라고생각이들었다.

그건과거에흑인에대한내편견때문인지모르겠지만어쨋든한국인들에게
그처녀가좋게받아들여지지않을것이란생각이다.

하지만편견이심한한국사회에서그냉대를다받으며살아야할콩고인가족을
돕는그일은얼마나아름다운일인가!

그따뜻한마음을가진처녀를아마도한국사회는이해해주지못할것이란생각이다.

어린시절을아프리카에서잠깐살아본나도흑인에대한편견이심한데
그런경험을해보지못한사람들은오죽하겠는가!

오랫동안유럽생활을하다보니요즘에와서야난,비로서그흑인들을같은인간으로
볼수있는시선이생겼다.물론모든인간적인결점을알고서도말이다.

그들은내가차별하지않는다하더라고이미자신들이우리보다못한인종이라고생각하고있었다.
유전적으로이성적이지못해서문제를많이만들어낸다는결점을가지고있다하더라도
미래를준비하는자세가결핍되어있다고하더라도이미문화와언어가다른사회에서적응이힘든
그들에게조금만양보하여따뜻한시선과마음을주는그런한국인들이많아졌으면하는바램이다.

에디오피아의 오지

프랑스텔레비젼방송중에유명연예인들이세계의오지를방문하는프로그램이있다.

이번에는아드리에나라는스웨덴출신유명모델이에디오피아에있는오지를방문하여

원주민들과생활하는과정을담았다.세계에서가장가난한나라중에하나라는

에디오피아에서도오지인산중에살면서아직도딸아이를10살에결혼시키는풍속이

있는나라의이야기이다.5살에약혼을하고10살에시집을갔다는이야기.

친구가강제로시집간다는이야기를듣고그녀에게알려서도망가게했던친구의이야기.

자식을6명둘때까지글을모르다가40이넘어서야글을깨우쳐책을읽게되었다는

가장의이야기,가축과사람이한지붕아래에서잠을자는사람들.

두시간을걸어서학교를가고두시간을걸어서집에온다는아이들이야기.

제몸보다큰물동이를매일지고나른다는여자이야기.

풀뿌리라도말려서땔감으로쓴다는사람들이야기.

농사를매년지어서고갈된땅이야기.

아직도원시적인형태의삶을살고있지만그렇게불행해보이지않는에디오피아인들.

몸은고될지언정오히려정신적스트레스는없어보이는

그들의원시적삶이사실은더바람직한것은아닐지하는생각을해보았다.

유명모델과아드리에나와매번이프로를진행하는가이드

에디오피아밀밭에서소녀와대화하고있는아드리에나

4000명이밀집한다는시장을향해서가고있는사람들

산벽을오르고있는사자원숭이들

문명에싫증난사람들은원시적인삶을찾아헤매이고

원시의삶속의사람들은문명을찾아떠나려고준비를한다.

사람의바램마저도결국은돌고도는것인가보다.

추억 속의 노래

세상은돌고돌기때문에최고가되고싶은사람은한가지삶의방식을

택해서50년이상고수하다보면최고가되는시기가있을것이라는믿음이다.

아프리카라는대륙에처음발을딛었던어린시절,난흑인종이라든지워시림,토굴속에서의

생활같은상상을했었다.그리고도착한아프리카의한호텔에서붉은벽돌들,붉은땅들

그리고호텔전체를흔들고지나가는커피내음들에은근히놀랐었던것같다.

친절하게유난히하얀이들을들어내고웃음짓는흑인보이들…

지금생각하니어느오후학교앞에서아버지차를기다리다가

붉은흙먼지를일으키며달려가는트럭속에앉아있는흑인미소년을보고

따라가본경험이있었다.멀리는아니지만대리석조각을깍아놓은것같은아름다움에

취해버렸던것이다.

아침마다커다란나무밑에자리를깔고바게트빵을팔고있는흑인들…

한낮에나무밑에아무렇게나자리를잡고대자로낮잠을자고있는흑인들…

어려서부터의문을품었었던것같다.

인종간의차이를이해하고자했던것도아마이시절부터였던것같다.

그런데흑인들이많이모여있는곳엘가면그들에게서나는냄새는골치가아플정도였다.

흑인들사이에서는백인아이의머리를쓰다듬기만해도행운이온다는말이돌정도로

백인을숭상하는경향도있다.

이제는60이넘은나이로텔레비젼에나와경쾌하게노래를부르는Sylvievartan을

보고내생각이그시절을달려가고있었다.

칠흑의어둠,때묻지않은풀냄새,웬지모를아련한그리움으로내마음속에

깊이자리한아프리카의그시절이’LaMaritza’노래와함께

행복한느낌속으로나를마구데리고가는느낌이다.

le penitencier

이노래는프랑스의가수,JohnnyHollyday가오래전에불렀던노래이다.

이노래를제목도모르면서오랬동안좋아했었다.그것은어쩌면내게아름다운추억을불러일으키는노래였기

때문인것같다.

태양이작열하는붉은대지,40도를오르내리는열기를뚫고내게다가왔던노래이기때문이지도모른다.

아니,서울의친구들이너무그리워알프스의하이디처럼몽유병이라도걸리기를바라고있을때

내게친구가되어준그녀,갸르인의추억때문인지도모른다.

갸르인은옆집에살던나와동갑의벨기에소녀였다.

아버지가유엔에서근무하기때문에아프리카에나와살던소녀였다.

그녀의집에서는늘전축을틀어놓고음악을듣곤했었는데그때이노래도자주들려오던노래중의

하나이다.

아직말도모르던시절,그녀는늘친절하게노트와펜을들고나를찾아와그림까지그려주며

불어단어에대해설명을해주곤했었다.

그녀의집에는자주또래의남자아이들도많이드나들었었다.

그중에빨간머리에주근깨가많은남자아이는풍선껌을커다랗게부풀려서터뜨리거나

혀를쑥내미는장난을치기도했었다.

더위때문에12시에서오후4시까지가공식적으로낮잠자는시간으로지정된그곳은어떤의미에서

시간이정지된느낌을주기도하던곳이었다.

한낮이면나무그늘밑에서태평하게오수를즐기는아프리카인들을발견할수있었다.

그때어쩌면난,혼자서강할수있는힘을익혔는지도모르겠다.

서울처럼정신없이돌아가는생활속에서는결코느낄수없는자연을,원시의자연을향유하는

행운을나는누렸던것이다.

나중에알게된이노래의제목은lepenitencier,즉발목에쇠사슬을찬죄수를이르는말이다.

그러고보니그때갸르인은붉은대지속에갇힌신세라고이노래를늘듣고있었던것은아닐까라는

생각도든다.

답답하다고도느꼈던그시절이지금생각하면내삶의한가운데오아시스처럼자리하고있는것이다.

요즘은그때의내친구갸르인을찾아보고싶은생각도든다.

벨기에어디쯤에살고있을지도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