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의 反영웅, 카라바조가 다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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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Vincit Omnia. 1602-1603. Gemäldegalerie, Berlin. Caravaggio shows Cupid prevailing over all human endeavors: war, music, science, government.

이탈리아 공항 면세점에서 잘 팔리는 스카프, 거대한 롤러코스터를 장식한 골리앗의 머리, 신종 전염병을 다루는 의학 학술지의 표지, 런던 성인용품점의 광고판.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의 작품이 쓰인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카라바조가 재조명받으며 지난 500년간 이탈리아 고전 예술의 왕좌에 앉았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Buonarroti·1475~1564)의 인기를 제칠 기세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 보도했다.

◆50년간 작품 사용빈도 조사해보니

미술사가인 캐나다 토론토대 필립 솜(Sohm) 교수는 지난달 시카고미술협회 강연에서 이런 주장에 근거를 제시했다. 솜 교수는 지난 50년간 책이나 학술 논문을 비롯한 인쇄물에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의 작품이 쓰이는 빈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카라바지오가 꾸준히 미켈란젤로를 추격해 마침내 따라잡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관람객 숫자 등을 헤아리는 전통적 방법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카라바조의 삶은 구설수와 폭력의 연속이었다. 고관대작들의 스캔들에 연루되는가 하면, 여자 뿐 아니라 남자의 뒷꽁무니도 끊임없이 쫓아다녔다. 운동 경기의 경쟁자를 단검으로 찌르고 도망다니는가 하면, 습격을 받아 얼굴에 칼자국까지 얻었다. 복잡한 개인 생활과는 별도로 그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강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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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ine Chapel ceiling by Michelangelo, hand of God giving life to Adam.

◆르네상스적 완벽함보다 사실주의적 화풍에 친근감

솜 교수에 따르면, 카라바지오가 재조명받은 것은 그의 그림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나 조각 속에서 사람의 신체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완벽한 기하학적 균형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수사법에 근거한 이 아름다움이 보통 사람들에겐 웬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들 훌륭하다고 칭찬하니 그런 줄 알 뿐, 곁에 두고 즐기기 쉽지 않은 고전(古典)이 돼 버린 것이다.
반면 카라바지오의 그림 속 소년은 두툼한 입술에 커다란 갈색 눈, 방금 잠자던 침대에서 눈을 비비며 걸어나온 듯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고, 팔과 얼굴은 강조된 원근감 때문에 초현실적인 느낌까지 든다. 사랑의 신 큐피드조차 카라바지오의 그림 속에선 희고 아름다운 날개가 아니라 닭털을 이어붙인 듯한 가짜 날개를 달고 있다. 천국에서 내려온 듯한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통통한 볼살의 소년과 노인이 카라바조 그림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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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8-1599.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NYT "구설 몰고 다닌 카라바조는 근대적 의미의 反영웅(anti-hero)"

NYT는 “카라바조는 현대적인 반영웅(ant-ihero)이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극사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특히 전후 세대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카라바지오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대중소설가와 영화제작자들도 카라바지오의 삶에 탐닉한다. 미술 전시회 기획자들도 흥행을 위해 카라바지오와 베이컨, 카라바지오와 렘브란트를 잇는 식의 기획을 내놓는다. 이런 인기가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벽화의 가치를 낮춰 볼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생활과 더 많이 융합한 화가는 미켈란젤로보다 카라바조 쪽이라는 것이다.
최근 카라바조에 관한 책을 쓴 작가 마이클 프리드(Fried) “카라바조 그림의 가치는 ‘흡수력’에 있다.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처럼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우리 곁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NYT에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바조의 본명(미켈란젤로 메리시)은 그 자신이 자리를 넘보는 미켈란젤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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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chus, 1595, oil on canvas, Uffizi, Florence

“바로크의 反영웅, 카라바조가 다시 빛난다”에 대한 2개의 생각

  1. 치요짱 땜에 리플을 안달 수가 없네요…

    거룩한 그림보다는 너무 일상적이지만 극적인 그림을 그려서인가…
    정말 미켈란젤로를 능가할까요?
       

  2. 미겔리또 님/
    앗! 치요짱을 알아봐주시는군요. 캄사합니다. ^^
    예술적 평가란 게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바로크 이전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시대의 그림들은 너무 완벽해서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게 사실인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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