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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만에 340만 관객 돌파 ‘암살’, 7월말 개봉 택한 이유

     개봉 3일째 100만, 개봉 4일째 200만, 개봉 5일째 300만. ‘암살’의 흥행 속도는 최동훈 감독의 전작 ‘도둑들’뿐 아니라, ‘괴물’ ‘설국열차’보다 하루 빠르다. 이 영화는 왜 7월 22일 수요일에 개봉했을까.

   심심풀이로 보는 영화 개봉 타이밍의 비밀. 지난 3월에 썼던 기사, 지면용으로 줄이기 전의 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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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황정민) 친구 달구(오달수)는 말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이지.”

      실은, 영화도 타이밍이다. 규모와 성격에 따라 개봉하는 때가 따로 있다.<그래픽> 경쟁작 눈치도 살펴 최적의 시점을 고른다. 대작은 1년, 중규모 영화는 반년,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도 서너달 전에는 날짜가 잡힌다. 날을 잘 잡아 잘 된 영화도 있고, 잘 못 잡아 망한 영화도 있다. 5일 현재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인 외화 ‘킹스맨’은 매출 2538만달러(한화 약 278억원)를 올렸다. 영화 제작국인 영국도 추월해 미국 다음 세계 흥행 2위다. 영화도 물론 재밌지만 설 연휴 경쟁작 ‘조선명탐정’과 ‘쎄시봉’이 기대에 못 미쳐 ‘어부지리(漁父之利) 승자’가 된 측면도 크다. 타이밍이 좋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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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한 메이저 배급사 관계자는 “사실 개봉 날짜를 정하는 절차는 따로 없다. 배급사들과 극장들이 제작 일정과 라인업을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협의하면서 ‘눈치 작전’을 펼쳐 서로 영화가 가장 잘 될 날을 자연스럽게 골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인 원칙은 있다. 그 해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최고 기대작들이 연중 박스오피스 규모가 가장 큰 7월 마지막주로 간다. 자영업자들도 모두 휴가를 가고 관객이 극장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때다.올해 7월 마지막주는 ‘도둑들’로 1000만 감독이 된 최동훈의 ‘암살’과 외화 ‘미션 임파서블’ 속편이 1년 전부터 이미 ‘찜’했다. 작년엔 ‘군도’, ‘명량’, ‘해적’이 7월말부터 8월초까지 1주씩 시차를 두고 개봉했다. ‘설국열차’나 ‘미스터 고’같은 작품도 7월말 아니면 8월초였다.

   “그 해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최고 기대작들이 연중 박스오피스 규모가 가장 큰 7월 마지막주로 간다. 자영업자들도 모두 휴가를 가고 관객이 극장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때다.올해 7월 마지막주는 ‘도둑들’로 1000만 감독이 된 최동훈의 ‘암살’과 외화 ‘미션 임파서블’ 속편이 1년 전부터 이미 ‘찜’했다.”

      설과 추석도 연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제법 큰 시장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영화가 대세였다. 주로 조폭 코미디들이 이 시즌을 노리다 관객들이 싫증을 내자, 최근엔 사극 코드를 가미하는 경우가 늘었다. 올해 설 연휴의 ‘조선명탐정’이 전형적인 설 시즌용 영화였다.      그 다음 큰 시장은 크리스마스 시즌. 보통 가족영화나 휴먼드라마가 대세고, 연인들을 위한 로맨스물이 뒤를 받친다. 작년엔 크리스마스 시즌보다 두 주 먼저 개봉한 ‘국제시장’이 경쟁작 ‘기술자들’, ‘상의원’이 생각보다 힘을 쓰지 못하면서 성탄·연말 시즌을 순항해 1000만 관객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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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시점에 따라 울고 웃는 영화들도 나온다. CJ의 경우 2012년 재난공포물 ‘연가시’를 ‘스파이더맨’이 개봉하는 6월 마지막주에 올리는 모험을 걸었다. 스파이더맨은 기본 500만 관객 영화라 다들 피했지만, ‘한국영화가 별로 없고 쇼킹한 소재라 여름에 먹힐 것’이라는 역발상으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150만 예상했던 영화가 450만까지 갔다. 쇼박스는 지난해 5월 마지막주에 ‘끝까지 간다’를 올려 재미를 봤다. 6월초 연휴에 ‘우는 남자’ ‘하이힐’ 등 대작들이 있었지만 모두 기대에 못 미쳤고,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경쟁작이 외화냐 한국영화냐, 관객의 서로 다른 취향을 만족시켜줄 수 있느냐 여부가 흥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최초의 1000만 영화인 디즈니 ‘겨울왕국’도 개봉 타이밍이 결정적이었다. 외국에선 12월에 개봉했지만 한국에선 실사 대작들이 몰리는 연말을 피하고 만화영화 경쟁작도 적은 1월로 개봉을 늦춰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렸다. 디즈니는 올해 ‘빅 히어로’에도 같은 전략을 썼다.

   “필름으로 틀던 시절엔 기대작이 망하는 걸 보면서도 다른 영화의 상영용 필름을 새로 제작해 보내올 때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틀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배급시대라 흥행 순환 속도가 빠르다. 될 영화는 쭉 가고, 안 될 영화는 빨리 내려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배급사 관계자들은 “날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영화의 품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필름으로 틀던 시절엔 기대작이 망하는 걸 보면서도 다른 영화의 필름을 찍어낼 때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틀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배급시대라 흥행 순환 속도가 빠르다. 될 영화는 쭉 가고, 안 될 영화는 빨리 내려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 배급 담당자는 “최악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해 1000만 영화가 된 ‘인터스텔라’ 사례에서 보듯, 요즘 극장가에선 재밌고 될 만한 영화는 어느 시즌이라도 된다는 생각이 대세”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펀잡 주지사 암살]자유의 태양, 이슬라마바드의 지평선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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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파키스탄에서 핍박받는 여성·소수민족 보호에 꿋꿋하게 앞장섰던 살만 타시르(66) 펀자브 주지사가 4일 경찰특수부대 소속 경호원의 흉탄에 암살당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펀자브 주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막아온 유력 정치인이다.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최고 핵심이고,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기도 하다. PPP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폭탄테러로 잃은지 3년여 만에 최악의 정치적 손실을 입었다.

이날 타시르 주지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번화가 코샤르 시장에서 식사를 마친 뒤 관용차에 타려다 경호원 말릭 뭄타즈 후세안 카드리(26)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카드리는 암살 직후 체포됐으며, 현지 두냐TV에 “나는 예언자(무함마드)의 종이며,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은 죽음 뿐”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주지사의 몸에는 총탄이 24발 박혀 있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현장의 경호원들은 아무도 카드리를 말리지 않았다”며 다른 경호원들과 공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레만 말릭 내무장관은 “배후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타시르 주지사는 악명높은 ‘신성모독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급진 이슬람 성직자에 의해 살해 명령과 6000달러의 포상금이 내걸리는 등 수많은 위협과 압박을 받아왔다. 1980년대 이슬람주의 군부 독재 시절 만들어진 신성모독법은 이슬람, 쿠란, 예언자 모함마드에 대한 어떤 모욕도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악법. 타시르 주지사는 지난해 11월 한 기독교도 여성이 이슬람에 대한 모욕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이 여성의 사면과 신성모독법 폐지 운동을 공개적으로 주도한 사실상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트위터를 통해 “인간은 또 국가는 강자(强者)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약자(弱者)에 대한 보호 여부로 판단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정부는 사흘간 공식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사흘내 야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각 불신임도 불사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던 최대 야당 ‘파키스탄 무슬림리그-N(PML-N)’은 애도를 마치는 40일 뒤로 최후통첩 기간을 연장했다.

현지에선 “정부에서 가장 용감했던 사람”(대통령 애도 성명),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을 내건 용맹한 사자”(PPP 의원), “파키스탄의 이성(理性)이 죽음을 맞았다”(현지 익스프레스 트리뷴), “자유의 태양이 이슬라마바드의 지평선으로 졌다. 오늘은 암흑시대가 시작된 날”(현지 데일리 타임스) 등 애도와 비탄의 성명과 보도가 쏟아졌다. 이슬라마바드의 암살 현장과 병원, 라호르의 타시르 주지사 자택 앞에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 등이 암살을 규탄했다. 반면 페이스북에는 극도로 분열된 현지 여론을 반영하듯 암살자 카드리를 ‘영웅’으로 미화하는 홈페이지도 생겨났다.

미국 abc방송은 “이번 암살의 가장 큰 희생 제물은 타시르 같은 정치가가 있어 가능했던 파키스탄의 정치, 종교적 온건화 가능성”이라고 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붕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모사드, 공포와 효율의 암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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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당한 아들 마무드 알 마부의 사진을 들고 있는아버지.ⓒ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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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8월 1일 무하마드 술레이만(Suleiman) 장군은 시리아 북부의 지중해변 휴양지 타르투스의 한 빌라 뒷뜰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쪼였고, 주변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빌라 문 앞엔 무장한 경호원들이 물 샐 틈 없이 경비를 섰다. 그 때 빌라 앞 바다 위로 작은 요트 한 척이 느리게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갑자기 술레이만 장군이 쓰러졌다. 저격수의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현장 즉사였다. 누구도 총성 조차 듣지 못했다. 술레이만은 바샤르 알 아사드(Al-Assad) 시리아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이자, 북한과의 핵프로그램 협력 연락책을 맡은 시리아 권부의 핵심 인사였다. 시리아 당국은 “모사드 저격팀의 소행”이라고 했다. 아무도 이 발표를 의심하지 않았다.

#2

앞서 2008년 2월 12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핵심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Mughniyeh)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의 크파르 수세 거리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신의 은색 미츠비시 파제로 승용차에 올라탔다. 헤즈볼라는 2006년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과 전면전을 벌였던 무장조직. 무그니예는 이란 대사가 주재한 ‘이란 이슬람 혁명 29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전석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심호흡을 했을 때 쿠션 속에 심어둔 폭탄이 터졌다. 무그니예의 머리는 문자 그대로 ‘작은 핏덩어리들로 잘게 부서졌다(shattered into bloody pieces)’. 다마스커스는 시리아 정부의 비호 아래 헤즈볼라 핵심 지도자들이 망명 지도부를 세운 곳이다. 무그니예 암살 이전엔 헤즈볼라의 ‘안전지대’였다. 무그니예는 1983년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와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로 3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9·11테러로 오사마 빈 라덴이 그를 앞서기 이전엔 가장 많은 미국인을 죽인 테러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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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의 9.11 테러 이전 미국인을 가장 많이 죽인 레바논 헤즈볼라의 무장조직 지도자 이마드 알 무그니예.그는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승용차 운전석 머리 쿠션에 심어놓은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모사드의 암살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Ha’aretz

"지략이 많으면 백성이 평안을 누리느니"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Where no stratagem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lors there is salvation)” 공식 명칭이 ‘이스라엘 정보 및 특수작전국’인 모사드의 휘장에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실제로 모사드는 이집트나 요르단과의 수교,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 공습 등 외교나 분쟁의 무대 뒤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사드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면, ‘지략’보다는 ‘공포’나 ‘암살’ 같은 어두운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1월 19일 두바이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부 암살 사건을 계기로 세계가 다시 모사드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동에서 암살 사건이 벌어진 뒤, 모든 아랍국과 이란이 모사드가 암살의 배후라고 비난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를 증명해내는 일은 거의 드물다. 이스라엘 채널2 TV는 술레이만과 무그니예가 암살된 2008년 연말 메이어 다간(Dagan) 모사드 국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다간 국장에 대한 이스라엘 현지 여론은 대개 찬사 일색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무그니예의 장례식이 열린 날 에후드 올메르트(Olmert)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다간 국장을 은밀히 만나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고 보도했다. 하산 나스랄라(Nasrallah) 헤즈볼라 지도자는 무그니예의 장례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모사드) 너희는 국경을 넘었다. 시오니스트들, 너희들이 전면전을 원한다면, 어디서건 전면전으로 맞서 주겠다”고 경고했다.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레바논의 고위 이슬람 성직자 모하마드 후세인 파드랄라(Fadlallah)는 "저항 운동의 기둥 하나를 잃었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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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은 두바이 최고급 호텔 알 부스탄 로타나에서 반바지 차림에 테니스 라켓까지 들고 하마스 간부 알 마부의 뒤를 쫓아 투숙 객실을 확인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Dubai Police via gulfnews

"중요한 건 이스라엘이 지구상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

이스라엘은 국민 대다수가 “국가의 존재를 위해”라는 이유로 암살에 찬동하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나라다. 암살에 대한 유대인들의 ‘긍정적’ 인식을 확인시켜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뒤 7년이 지난 1955년, 저명한 평화운동가이며 철학자인 예샤야후 레이보비츠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격인 다비드 벤 구리온(Ben Gurion) 당시 총리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무고한 팔레스타인 인들이 이스라엘의 군사·정보 작전에 의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벤 구리온의 대답은 간명했다.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세상이 평화, 화해, 정의, 정직 같은 말들로 가득찬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이스라엘이 그 세상 위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보전의 세계에서 모사드는 전설적 존재다. 소련과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최고의 요원들을 동원해 맞서던 냉전 시대에도 미 중앙정보국(CIA) 조차 모사드의 정보력에 의존했다. 1956년 모사드는 니키타 후르시초프(Khrushchev)의 비밀 문건을 빼냈다. 후르시초프가 육성으로 요세프 스탈린(Stalin)의 인명 학살을 범죄라며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중동의 군사 강국들에 둘러싸여 국가 존재 자체를 위협받던 1966년, 모사드는 이라크에서 미그21 전투기를 빼돌려 이스라엘 본토로 실어왔다. 미그21은 유사시 이스라엘 본토 공습에 사용될 중동 국가들의 주력기였다. 1981년 이스라엘의 F16 전투기들이 핵개발 의혹을 받던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했을 때도, 적국 내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 길을 열어준 모사드 요원들의 활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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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올림픽에서 살해된 이스라엘 대표선수 11명의 복수를 위한 지상 최대의 암살작전 ‘신의 분노’ 작전을 그린 영화 ‘뮌헨’의 한 장면.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정부 내에’X위원회’를 조직해 직접 암살 대상자 명단을 검토하고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Universal Pictures

검은 9월단을 말살하라 : ‘신의 분노’ 작전

세계가 모사드의 이름에 공포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상 최고 효율의 살인 기계’(미국 독립라디오 방송 렌스닷컴)로 불리게 한 암살의 역사 덕이다.
가장 유명한 건 원조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Meir·1898~1978) 전 총리가 승인한 ‘신의 분노(Wrath of God) 작전’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국가대표선수 11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모사드와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최고의 정예 요원들을 뽑아 암살단을 조직했다. 학살 사건을 실행한 검은 9월단 조직원은 물론, 기획 과정에 연루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고위 관계자들이 목표물이었다. 메이어 총리는 전쟁 영웅 모셰 다얀(Dayan) 국방장관과 함께 ‘X 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정부 내에 조직해 직접 암살 대상자를 선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암살단은 이후 약 20여년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테러 관련자들을 추적해 독살, 총격, 폭살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다양한 방법으로 죽였다. 이 과정은 스티븐 스필버그(Spielberg)의 영화 ‘뮌헨(2005)’에도 그려졌다. 모사드는 앞서 1960년대에는 이집트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도와준 독일 과학자들에게 폭탄 편지를 보내 다수를 살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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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세르 아라파트의 손발과 같았던 남자, 칼릴 이브라힘 알 와지르, ‘아부 지하드’. 아라파트와 함께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인 파타당의 창설자 중 한 명이며, 초기PLO 무장투쟁의 뛰어난 지도자였다.

1987년 튀니지에서 발생한 PLO 지도자 칼릴 알 와지르(Wazir) 암살 사건은 모사드가 실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암살 사건 중에서도 가장 스펙터클했던 것으로 꼽힌다. 알 와지르는 ‘아부 지하드(이슬람 성전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PLO 핵심 중 핵심이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당시 30여명의 모사드 요원은 작은 보트에 나눠 타고 튀니지 해안을 통해 침투했다. 몇몇은 관광객으로 가장해 아부 지하드의 집에 접근했다. 몇 명은 튀니지 군복을 입고 거리를 봉쇄했고, 하늘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보잉707 전자전기가 떠서 지상의 모든 통신을 방해했다. 암살단은 아부 지하드의 집에 침투한 뒤 아내와 아이들의 눈 앞에서 그의 몸에 70여발의 총알을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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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경찰이 공개한 용의자들의 암살사건 전후 두바이 입출국 흐름도. ⓒDubai Police via The National

아내와 자식들 눈 앞에서 총알 70발 ‘벌집’으로

1995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파티 시카키(Shikaki)는 지중해 휴양지 몰타에서 암살됐다. 모사드로 추정되는 암살자들은 두달 전 미리 훔쳐둔 현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시카키의 머리에 정확히 세 발의 총탄을 쐈다. 암살자들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1996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하마스 폭탄 전문가 예히예 아이야시(Ayyash) 암살 사건은 최초로 휴대전화 폭탄이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이야시는 자기 휴대전화에 심어진 폭탄이 폭발해 죽었다. 당시 그의 먼 친척이라는 19살 청년이 아이야시의 집을 방문했고, 집에 전화하겠다며 휴대전화를 빌린 뒤 폭탄을 심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하마스 지도자 이즈 엘딘 수비 셰이크 칼릴(Khalil)이 차량 폭탄으로 암살됐다.

“테러 공격을 기획한 자들을 죽이면 테러를 막을 수 있다.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이 마냥 유쾌한 일은 아니다. 체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통제 밖 영토에 있고,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죽여버리는 것을 선호한다.”
메이어 다간(Dagan) 모사드 국장은 암살 정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유대인·이스라엘 전문 미디어 JTA 통신은 보도했다. 슈피겔은 두바이 암살사건에 대해 “모사드가 실행한 것이 맞다면, 그들은 국제법 위반, 온건한 아랍국과의 관계 악화, 핵심 요원들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을 모두 무릅쓴 것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으로 이스라엘의 안보가 어느 때보다 위험에 처한 가운데, 모사드는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더 과감해질 수 있음을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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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을 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조직원들이 지난 2월 17일 가자지구 베이트 라히야에서 두바이에서 암살된 무장조직 ‘이즈 알 딘 알 카삼 여단’ 창설자 마무드 알 마부의 추도식을 열고 이스라엘 국기를 밟으며 헌화하고 있다.ⓒAP

※ 주간조선 2095호(3월 6일자)에 게재한 글입니다.

두바이 암살의 총지휘자?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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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Where no stratagem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lors there is salvation.)" 모사드의 휘장에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북부 교외의 야트막한 언덕에 가면,현지에서 ‘미드라샤(Midrasha˙유대학교)’라 불리는이스라엘 정보 및 특수작전국, ‘모사드’의 건물이 있다.메이어 다간(Dagan·65) 모사드 국장 방에는 나치 친위대(SS) 장교의 장총에 머리가 겨눠진 채 도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유대인 노인의 사진이 있다. 다간의 할아버지다. “이스라엘은 강해져야 한다. 머리를 써야 한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다시는 홀로코스트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간 국장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다간,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정보전사(戰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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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두바이 암살 사건의 배후에는 모사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모사드의 수장(首長)이 다간이다. 영국 출신으로 외교관 파티에서 오래 수다떠는 걸로 유명해 ‘칵테일 할레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던온건파 전임자 이프라임 할레비(Halevy)와는 딴판인 강경파다.

다간은 이스라엘방위군(IDF) 공수여단 소속으로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당시 골란고원 전투에 참여한 군인 출신이다. 1970~80년대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을 상대로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에서 활동했다. 특히 인권 유린과 학살 사건으로 지탄받은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때는 레바논 내부 정보활동을 전담한 특수부대를 지휘했다. 레바논전의 야전 지휘관이었던 아리엘 샤론(Sharon)과의 인연도 이 때 부터다.

◆인명희생 무릅쓰고 적을 분열시켜라… 작전명 ‘정의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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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샤론 총리(오른쪽)와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

퇴역 이후 정부의 테러 대응업무를 맡았던 다간은 2000년 매파 정치인 아리엘 샤론 진영에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참여한다. 이 때 입안한 것이유명한 ‘다간 계획(Dagan Plan), 작전명 ‘정의의 복수(Justifed Vengence)’다. 이스라엘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라노트, 유력지 마리브, 프랑스 르몽드 등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계획은 2차 인티파다 당시 줄을 잇던 자살폭탄테러에 대응해 유대인 수백명, 팔레스타인인 수천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압도적 물리력으로 보복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야세르 아라파트(Arafat) PA 수반의 정치적 혹은 물리적 ‘제거’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다간의 구상대로, 팔레스타인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분리·고립됐다.두 세력은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서 총격전까지 벌이며 피를 흘렸다. 적전분열이다.다간은 또 샤론 총리와 함께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정착민 7000여명을 완전 철수시키는 작업도 밀어붙였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전부 소개된 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가자지구는 지금하늘 아래 가장 거대한 ‘감옥’이다. 작년초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를 낸이스라엘의 일방적 가자지구 공세, ‘캐스트 리드’ 작전도 다간과 샤론이 정착민을 미리 철수시켰기에 가능했다.

◆"이스라엘은 여러분을 믿고 있소. 행운을 빌겠네."

지난 1월초, 두 대의 검은색 아우디 A6 리무진이 모사드 본부 건물 정문을 통과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베냐민 네타냐후(Netanyahu) 총리. 영접 나온 다간 국장은 총리를 브리핑룸으로 안내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모사드 내부 소식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브리핑룸 안에는 ‘두바이의 11인’으로 불리는 암살단 멤버 중 일부도 함께 자리했다. 네타냐후는 가자지구로 무기를 밀수하는 일을 맡은 하마스 간부 마무드 알 마부에 대한 암살 작전 내용을 브리핑 받았다. 암살단 멤버들은 이미 텔아비브의 한 호텔을 활용해 두바이 호텔 암살의 예행 연습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여러분을 믿고 있소. 행운을 빌겠소." 총리의 승인이 떨어진 것이다.

◆총리 셋 바뀔 동안 굳건히 자리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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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간은 총리 3명이 바뀐 지난 8년간 흔들림없이 모사드의 수장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하마스 지도급 인사들은안전할 것으로 여겼던 시리아의 심장부인 다마스커스에서까지 암살당했다. 이스라엘은 확인도 부인도 않고 있지만(NCND·No Confirm No Deny), 배후에는 모사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간은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 두바이 사건으로 국내외의 사퇴 압력이 거세지만, 하레츠 등 현지 언론은 “다간은 여전히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보도했다. 정해진 임기는 올 연말까지다.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정보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정보기관 특성상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연스런 인사 이동이 필요하다"며 연말 교체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