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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 중국 ‘짝퉁 구글’, “거대 기업 압력에 굴복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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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기업에 굴복 않겠다?”적반하장중국 ‘짝퉁 구글’

중국과 미국 정부는 연초부터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 기업 구글 문제를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구글에 대한 해킹과 검열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글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 초기화면 로고가 구글을 을 쏙 빼닮은 ‘짝퉁 구글’, 구제(Goojje·谷姐·사진)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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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구제 사이트의 로고. 구글과 바이두를 반반쯤 빼닮은 형태였다.


◆저작권 위반 지적에 “권리 보호받겠다”

“외국 거대 기업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
샤오셴(小炫)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는 구제 사이트 창업자는 지난 2월 9일자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타임스는 인민일보 자매지로 국제뉴스를 전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문판. 샤오센의 말은 구글이 2월 7일 구제 사이트 앞으로 운영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하는 ‘정지 명령(cease and desist)’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구글은 “구제가 구글의 트레이드마크를 모방해 사용자들이 두 사이트가 관련이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서 구글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누가 봐도 상식에 부합하는 지적이다. 하지만 샤오센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는 “구글의 지적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사이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필요하다면 법정 싸움을 해서라도 우리의 권리를 보호받겠다”고도 했다. 샤오센은 대학에서 언론과 출판을 전공하고 2008년 졸업한 청년이다.
‘구제(Goojje)’라는 이름은 중국어와 영어의 유사한 발음을 이용해 구글의 ‘글(gle)’을 ‘제(jje)’로 바꾼 일종의 말장난이다. ‘제’는 누나 또는 언니를 뜻하는 ‘姐(jie)’와 발음이 흡사하고, ‘글’은 오빠 또는 형을 뜻하는 ‘哥(ge)’와 발음이 비슷하다. 구글은 ‘구 형님’, 구제는 ‘구 누나’쯤 되는 셈이다. 좋게 보면 구글과 형제 자매처럼 친밀한 관계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구글을 모방한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장난’으로 탄생한 구글 카피 ‘구제(Goojje.com)’

실제로 ‘구제’는 지난 12일 구글이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과 해킹을 이유로 중국 시장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인 14일 처음 개설됐다. 처음 ‘구제’ 사이트 초기 화면에는 ‘형이 떠나면 누나는 그리워할 거야’라는 중국어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구글이 중국 시장에 계속 남기로 한 뒤에는 ‘형이 누나를 위해 남기로 했어’라는 취지의 중국어 메시지가 떴다. 로고는 구글과 중국 내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의 초기 화면을 조금씩 따내 합성한 형태다. 베이징대 등 중국 명문대 졸업생 8명이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 이용통계를 내는 알렉사닷컴에 따르면, 2월초 구제닷컴은 세계적으로 1만1073위, 중국 내에서 496위의 인터넷 사이트였다. 등록 이용자 숫자도 6만명에 달했다. 이용자 숫자는 특히 샤오셴이 “2월 4일부터 사흘 넘게 외부 해커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고,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고 발표한 뒤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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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만들어진 ‘짝퉁’ 아이폰<왼쪽>과 진짜 아이폰. 이젠 정말 놀랍지도 않다.

◆“세계적 기업이 신생 사이트 하나 못 참아주나”

샤오는 “구제 사이트는 페이스북같은 일종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로, 검색만을 목적으로 하는 구글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간단한 자체 검색 기능과 함께 중국 내 인터넷 사이트를 안내하는 디렉터리 서비스와 다양한 주제의 게시판 및 인터넷 투표 기능도 갖췄다. 사업 영역도 꽤 겹치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국쪽 반응은 ‘젊은 학생들이 참 장하다’는 식이다. 글로벌 타임스는 구제 사이트가 처음 개설됐을 당시 보도에서 “모방이 최고의 상찬(賞讚)이라면 구글은 하루 백만 클릭을 기록하는 카피 사이트 ‘구제 닷 컴’을 만들어낸 청년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은 셈”이라고 썼다. 구제 사이트에 대해 논평을 요구받은 구글 측이 “우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한 문장만 발표한 데 대해서도 “구제 사이트 이용자들은 ‘디지털 큰 형님’인 구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 뿐인데 구글이 뭐 걱정할 게 있겠느냐”고 했다. 구제 사이트에는 “큰 형이 누나를 괴롭히고 있다”거나 “구글의 반응은 오버액션이다. 세계적 검색엔진 기업이 검색 전문도 아닌 신생 사이트 하나 참아주지 못하느냐”는 식의 게시글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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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카피로 화제를 모은 중국 걸그룹 아이돌 걸스(idol girls).

◆짝퉁에 관대한 중국의 ‘산자이(山寨) 문화’

사실 중국 정부·언론과 대중들이 ‘짝퉁’에 관대한 것은 중국 특유의 ‘산자이(山寨) 문화’에 뿌리가 있다. 우리 말로 ‘산채’에 해당하는 산자이는 수호지의 양산박같은 산적 소굴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중국에선 세계 유명 상품을 빠르게 모방해 해적판으로 만들어내는 지하 공장, 혹은 그 생산품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문제는 중국에서 산자이 문화가 긍정적 맥락으로 수용되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다는 점이다. 기존 제품에 중국 고유의 아이디어를 덧붙인 뒤 더 싼 가격으로 내놓는 게 뭐 나쁘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빈부 격차가 큰 중국 사회에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위무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장려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정보통신(IT)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구제’ 이전에도 구글과 야후 뿐 아니라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百度)까지 카피한 바이고(Baigou), 바이구후(Baiguhu), 바이후구(Baihugu) 같은 사이트들이 등장했었다.
샤오는 “구제 사이트를 기반으로 세계적 규모의 인터넷 기업을 일구겠다”고 말한다. 그는 “사이트 개설 뒤 민간기업으로부터 100만 위안 어치 광고 제안을 받았고, 제안받은 투자 액수를 합하면 1000만 위안에 달했다”며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너무 성급하게 사이트를 상업화하지 않을 생각”이라고도 했다. 함께 사이트를 만든 사람들이 모두 급여없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어 운영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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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음력설에 바뀐 구제의 로고. 색깔이나 디자인에 변화를 줬지만, ‘모방’의 혐의는 벗지 못한다.

◆중국 내에서도 생존 가능성에 회의적


구글을 베껴 출발한 ‘구제’가 새로운 인터넷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중국 내 반응조차 회의적이다. 중국의 저명한 1세대 인터넷 논객으로 블로그포털과 웹리서치 컨설팅 기업의 창업자인 팡싱동(方興桐)은 “구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대학생들도 아마 재미로 만들어봤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정말 심각하게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라면, 웹사이트를 유지 개선하기 위해 많은 현금과 고급 기술을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국제부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2월 초에 작성해 저작권위원회 소식지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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