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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창조하고 즐길 권리’ 지키되 ‘지나친 탐욕’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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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고 즐길 권리’ 지키되 ‘지나친 탐욕’은 막아라

2010년 화제의 해외 저작권 소식들

조선일보 국제부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네이키드 카우보이, 헐크와 판타스틱 포, 캣웨이의 패션디자이너, 영화·음악산업의 거물들, 언론 황제 루퍼트 머독과 대영 도서관, 구글·SAP·오라클 같은 다국적기업….

올해도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스스로의 창조물인 지적재산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일부는 가십거리로 타블로이드 신문에 오르내렸고, 일부는 진지하게 수십억달러의 거액이 오가는 싸움이었다. 올 한 해 저작권과 관련한 해외 소식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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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스퀘어의 유명인사 네이키드 카우보이. 광고에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했던 M&M 초코볼로 유명한 식품 대기업 마스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해 유명세를 탔다.

◆네이키드 카우보이 vs. 네이키드 초코볼

‘네이키드 카우보이(naked cowboy·사진)’는 팬티 차림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통기타를 치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유명인사다.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활짝 웃는 얼굴로 관광객들과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그이지만, 올 2월엔 색다른 소식으로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다. 벌거벗고 기타를 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해 빌보드 광고를 만든 초콜렛 메이커 M&M의 모기업 마스 사(社)를 상대로 600만 달러(약 70억원) 규모의 손해 배상을 뉴욕 연방법원에 제기한 것이다. 광고 속 ‘네이키드 M&M’ 초코볼은 네이키드 카우보이 로버트 벅과 꼭 닮았다. 네티즌들은 “팬티를 입었으니 벌거벗은(naked) 게 아니어서 무효”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농담거리로 삼았다. 법원 판결이나 양자간 합의 소식은 아직 없지만, 진지하게 법정다툼을 벌이면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우세하다는 관측이 많다. 이미 수많은 영화와 TV쇼, 수퍼볼 중간 광고에까지 출연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인정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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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 코믹스 수퍼 영웅들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잭 커비의 생전 모습. /앨런 라이트 플리커 홈페이지

◆마블 코믹스 수퍼영웅 소유권 다툼

지난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 콜린 맥마흔 판사는 ‘수퍼 영웅 소유권 분쟁’의 첫 심리를 열었다. 월트 디즈니 소유인 유명 만화출판 영화 제작사 ‘마블’과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의 유명 캐릭터들을 창조한 ‘잭 커비<사진>’ 유족들간의 저작권 다툼이다. 마블 측은 "잭 커비는 마블의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이들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저작권은 고용주인 마블의 소유"라는 입장이다. 반면 유족과 변호인들은 "그런 식의 주장은 아티스트의 권리를 강탈하려는 기업들이 흔히 내놓는 궤변"이라며 맞받아친다. 유족들의 변호사는 만화 수퍼맨 캐릭터를 창조한 제리 시겔의 유족들에게 저작권을 되찾아주며 성가를 올린 저작권 전문 변호사 마크 토버프. 최종심 결과가 나오는 데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패션 디자인 저작권 보호법 성사될까

12월초 미 상원 법사위는 ‘혁신적 디자인 보호 및 저작권 침해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전미 패션디자이너 협회(CFDA)’를 선봉으로 한 미국 럭셔리 패션업계는 오리지널 디자인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해 의류업체들의 카피 상품 제조를 막기 위해 오랫동안 로비를 벌여왔다. 비슷한 입법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시도됐지만, ‘미국 섬유 및 신발산업협회(AAFA)’ 등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하지만 이번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등이 CFDA와 AAFA 등의 지지를 얻어 새로운 법안을 냈다. 그렇다고 법안 통과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패션에서 ‘카피’와 ‘영감을 얻는 것’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논리로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로스쿨 교수 캘 로스티얼라(Raustiala) 등은 “적어도 미국에서 패션 디자인 베끼기는 완전히 합법적일 뿐 아니라, 패션 산업 전체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의류 기업들은 매력적인 원조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무언가를 첨가해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무언가’로 만들어내며, 이런 것이 패션의 시작이 되고 패션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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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해적당의 로고. 유럽 각국의 해적당은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 강화,

영리 목적이 아닌 무한 파일 공유 허용 등 급진적 주장을 펴며 디지털 시대

저작권 논쟁의 선두에선 정치세력으로 급부상 중이다.

◆“무한히 카피할 권리!” 해적당 급부상

모든 창조물이 무한히 카피되는 디지털 시대 저작권 논쟁에 ‘해적당(Pirate Party·로고)’으로 불리는 정치세력이 새로 등장해 주목받았다. 원래 200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해적당 운동은 영국, 독일 등 유럽 나라들과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 보호를 더욱 강화하고, 특허법과 저작권법 체계는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올 3월 영국 총선에 도전장을 냈던 영국 해적당은 "나라에 따라 70년 안팎으로 규정된 오리지널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기간은 너무 길다. 10년 안팎으로 줄이면 오히려 더 많은 예술가들의 창조활동을 장려할 수 있고 새로운 예술과 창조물의 탄생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저작권 소유자들이 로비그룹을 통해 정치인들에게 행사하는 압력 때문에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는 논리다. 이들은 또 "돈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닌 한 인터넷 상에서 파일 공유도 무제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저작물로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은 여전히 불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전제도 단다.

◆음반산업 vs. 동네 주점들

미국과 유럽 등 강력한 저작권 보호가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동네 주점과 식당, 쇼핑몰 등에서 음악 방송을 하는 것에도 저작권료를 물린다. 이 때문에 유명 음악을 카피해 연주하는 밴드를 무대에 올리던 많은 라이브 바들이 저작권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부작용도 생겼다. 소규모 자영업자와 무명의 음악인들에 대한 핍박으로 받아들여지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영국에서는 올 3월 주목할 만한 법원 판결이 있었다. 영국 음반업계의 저작권료 수입을 대행하는 기업이 2005년 이후 저작권료를 200~400% 일괄 인상한 것을 ‘지나치다’는 취지로, “영국 맥주 펍 협회(BBPA) 및 영국 소매업 컨소시엄(BRC) 측에 4년간 과다 지불된 저작권료 2000만 파운드(약 350억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것이다. BRC의 스티븐 로버트슨 사무총장은 “매장 손님들에게 음반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적절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은 정당한 경제 활동의 필수적 요소다. 음악가와 음반사들은 정당한 저작권료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지나친 요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저작권위원회 소식지 201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