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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차르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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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태국 정부가 불법 복제 콘텐츠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백만개에 달하는 저작권 침해 물품을 수거해 파기하는 모습. 적발된 물품의 환산 총액은 총 4500만달러에 달했다. ⓒAFP

‘저작권 차르(Czar)’의 습격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한 ‘저작권 전쟁’ 선두에 새 선봉장을 내세웠다.
대학, 행정부, 시민단체에서 골고루 지적재산권 관련 경험을 쌓은 빅토리아 에스피넬(Espinel·사진)이다. 공식 직함은 ‘지적재산 집행조정관(IPEC)’. 미국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직위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녀를 ‘IP(지적 재산) 차르’, 혹은 ‘저작권(copyright) 차르’라고 부르고 있다. 차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제정 러시아 황제를 이르는 말이다. 상원 법안에서 사라지긴 했지만, 하원의 경우엔 ‘지적재산권 진흥법(Pro-IP Act)’ 법안에 공식적으로 ‘차르(Czar)’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미국 ‘저작권 전쟁’에 새 선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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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에스피넬 신임 미 지적재산 집행조정관(IPEC)’

에스피넬은 조지메이슨대 로스쿨에서 지적재산권과 국제무역을 가르쳤고, 미 상하원 관련 위원회에서 자문관으로 일해왔다. 2005년에는 미 무역대표부(USTR)에서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을 총괄하는 대표보(補)로 일했다. 정보 격차 문제를 다룬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특히 불법 파일 공유를 통한 지재권 침해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할리우드, 음반산업, 소프트웨어 등의 업계 거대기업들이 쌍수를 들어 에스피넬의 임명을 환영하고 있다. 미국 음악가 연맹(AFM), 저작권 연대, 전미 음반 제작자협회, 국제 상표권 협회, 미국 영화협회 등이 상원에 에스피넬의 임명 인준을 지지하는 서한을 보냈다.

에스피넬 임명으로 미국의 지적재산권 관련 대응은 더 날카롭고 강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IP 차르’ 에스피넬의 역할과 지위는 1982년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할 때 임명됐던 ‘마약 차르’에 비견된다. ‘마약 차르’는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주무르고 연방수사국부터 국경경비대와 주방위군까지 관련 기관들을 호령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었다.

미 공영라디오(NPR) 방송은 “IP 차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침해 행위에 대한 대응을 관장할 권한과, 대통령과 의회에 직보할 의무를 갖는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으론 정부내 유관 부처의 지재권 관련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이지만 지위는 이들 부처와 기관 머리 위에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 내에 별도 조직을 만들어 인원과 장비를 동원해 대규모 지재권 침해 적발 작전을 벌일 수도 있다. 혐의가 확정되기 전에라도 저작권 침해가 의심되는 타인의 자산을 압수할 수 있는 법적 권한도 부여됐다.

미국 상공회의소 마크 에스퍼(Esper) 부회장은 “이제야 지재권 진흥법을 전면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재계는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가 빅토리아 에스피넬 조정관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토록 필요한 모든 자원과 권위를 지원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백악관 회의는 전쟁 출정식 방불

전쟁을 치르고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의 영향력과 함께 경제도 쇠약해졌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은 신뢰를 잃었고 한 때 세계를 주름잡던 자동차산업도 제 살 길 찾느라 바쁘다.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지적재산 관련 분야는 미국 경제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줄 가운데 하나다.

Roundtable on Piracy with Gov. Officials and Entertainment Execs.

< 출처 : 유튜브 >
Vice President Joe Biden led a round table meeting of high ranking government officials and entertainment industry executives at the White House conference center Dec. 15, Roundtable on Piracy with Gov. Officials and Entertainment Execs.

그래서 지난해 12월 15일 백악관에서 열린 ‘지적재산권 침해 대책회의’는 새로 임명된 IP 차르의 ‘지재권 전쟁 출정식’ 같았다. 직접 회의를 주재한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저 바깥에 도둑질을 하는 자들이 있다. 난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DC의 정치·정책전문 주간지 내셔널저널은 전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저작권 도둑질이) 지나치게 많이 일어나는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도 툭 터놓고 맞서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바이든 장관 곁에는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장관, 게리 로크 상무장관,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국장, 마크 설리번 비밀경호국장, 데이빗 캐퍼스 특허상표청장 등도 앉아 있었다. 소니 그룹의 마이클 린튼 CEO, 비지니스 소프트웨어 연맹의 로버트 홀리먼 회장, 음반산업협회 미치 베인월 회장, NBC 유니버설 제프리 주커 CEO 등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 업계 거물들도 함께였다. 이 자리에서 당장 3000만 달러의 예산이 ‘저작권 차르’ 활동을 위해 할당됐다.


미 상공회의소 추산에 따르면, 음악·영화·제약·패션·소프트웨어 등 미국 내 지적재산권 관련 산업 근로자는 1800만 명에 달하며, 미국 국내총생산(GDP) 중 5조 달러가 여기서 나온다. 미국 수출품의 절반 이상도 지적재산권 관련 상품과 서비스다. 미국 영화협회(MPAA) 댄 글릭먼 회장은 “지적재산 연관 산업은 미국 경제의 주요한 엔진이다. 최근 영화와 음악에 대한 해적행위는 갈수록 더 정교해지고, 범세계 규모로 범죄조직화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NPR에 말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외국 정부들이 반(反)지재권 정책을 지속한다면 미국은 2020년까지 100만개의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도 저작권 차르의 습격에대비할 때

‘저작권 차르’ 에스피넬의 향후 행보는 한국 입장에서도 요주의 대상이다. 패트릭 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은 혁신적이며 창조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양과 질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미국이 지적 재산을 생산하는데 있어 계속 세계를 리드해가려 한다면, 미국의 지적 재산권을 스스로 지켜나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에스피넬이 ‘저작권 차르’로 임명됐을 때 별도 성명을 내 “저작권 침해 행위로 기업의 매출, 근로자의 일자리, 국민의 세금이 막대한 손실을 겪고 있다. 에스피넬 조정관이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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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무역대표부(USTR) 2008년 세계 무역장벽 보고서

한국 항목 바로 가기


그가 행정 경험을 쌓은 무역대표부(USTR)는 2008년 세계 무역장벽 분석 보고서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한국의 저작권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 대학가에서 책을 무허가로 복사하는 행위 ▲길거리에서 디지털 동영상 DVD를 판매하는 행위 ▲가짜 브랜드 상품 제조 ▲의약품과 특허권 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 협조 부족 등이다. USTR은 “한국은 빠르게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저작물의 무허가 복제를 조장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1월 24일 아시아 음악업계 박람회를 주관하는 ‘뮤직 매터스(Music Matters)’ 재스퍼 도넷(Donat) 회장은 프랑스 칸에서 시작된 ‘미뎀 국제음악박람회(MIDEM) 2010’에서 “지난해 세계적으로 불법 음원 내려받기 1위가 중국, 2위는 한국”이라고 말했다. 13개국 8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정부가 불법 저작물을 추적 관리하면서 불법 음원 유통이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에스피넬은 USTR에 재직하던 2005년 미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홍콩,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4개국을 방문해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를 협의한 적이 있다. 그녀는 당시 “모조품과 불법복제물은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개인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전쟁은 시작됐고 적장도 정해졌다. 방심하다 당하지 않으려면 한국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최선의 준비를 할 때다.

20100221, 광화문에서

※1월 중순에 작성, 한국저작권위원회 소식지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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