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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남녀’ 캐머런과 비글로의 오스카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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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전 남편과 부인이 올해 미 아카데미 영화상의 주요 부문 수상을 다툰다.

전 남편은 전세계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운 3D 영화 ‘아바타(Avatar)’의 제임스 캐머런(Cameron·56) 감독. 전 부인은 이라크 주둔 미군 폭발물처리요원의 고뇌를 다룬 영화 ‘허트 로커(The Hurt Locker)’의 캐서린 비글로(Bigelow·59) 감독이다. 이혼남녀가 수상 경쟁을 벌이는 것은 80년 넘은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다. 두 영화는 이번 82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에서 각각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작품·감독·촬영·편집·음악·음향·믹싱 등 7개 부문에는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캐머런과 비글로 두 사람은 1989년 결혼했으나 캐머런이 영화 ‘터미네이터’를 찍으며 정이 든 여배우 린다 해밀턴(Hamilton)과 바람이 나면서 1991년 이혼했다. 캐머런과 해밀턴은 1993년 결혼하기도 전에 캐머런의 딸을 낳았고, 1997년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캐머런은 해밀턴과의 결혼생활도 2년여 밖에 지속하지 못했다. 캐머런은 통틀어 5번을 결혼했고, 지금 부인과 가장 오래(9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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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신문은 캐머런이 "내 아내였던 비글로가 감독상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캐머런은 한 성격 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이 대표작 중 하나인 ‘어비스'(개인적으로 캐머런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임 ^^)의 소설화 작업을 함께 진행했던 작가 오슨 스캇 카드(Card)는 "캐머런은 주변 사람을 모두 비참하게 만드는 인간이다. 그의 불친절은 작품을 개선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더 잘 일하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아니다"고 혹평했다. ‘타이타닉’의 주연이었던 케이트 윈슬렛은 "진짜 거액을 주지 않는 한 다시는 캐머런과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시고니 위버는 "그는 우리들에게 한 장면을 위해 목숨과 갈비뼈를 걸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은 없다"고 했다. 아바타의 주연 배우 샘 워딩턴은 제이 리노 쇼에 나와 "캐머런은 촬영 중에 스태프의 휴대전화 벨소리라도 울리는 날엔 당장 빼앗아 네일 건(대못을 발사하듯 박는 총)으로 비상구 위에 박아 버리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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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한 장면.

뭐 어쨌든 아카데미 수상 경쟁에 관한 한, 일단 지금까지는 ‘장군멍군’이다.

캐머런은 지난달 17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채갔다. 비글로는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데 만족해야 했다. 골든 글로브상은 통상 아카데미 수상의 예고편으로 여겨진다.

비글로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지난달 31일엔 비글로가 전미 영화감독조합(DGA) 감독상을 받으며 역시 후보로 경쟁했던 캐머런을 제쳤다. 게다가 비글로의 ‘허트 로커’는 진지하고(serious) 남성적이며(manly) 주제(이라크전)도 무게감 있다(worthy topic). 선이 굵은 서사 드라마를 원하는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의 입맛에는 딱이다. 게다가 비글로가 감독상을 받으면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감독상을 받는 여성 감독이 된다. 그동안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 감독조차 빌 머레이의 무심한 매력을 끌어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의 소피아 코폴라가 유일하다. 여성 감독들에게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아온 아카데미위원회 입장에선 그간의 비난을 단박에 털어낼 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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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로커의 한 장면.

그렇다고 비글로의 우세를 점쳤다면 여기서 잠깐. 근래의 아카데미가 돈 많이 번 영화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라는 걸 고려해야겠다. ‘돈 번 실적’만 본다면 당연히 아바타의 완승이다. 지금까지 ‘아바타’의 흥행 성적은 20억 달러, 영화 역사상 최고다. 천문학적 제작비를 쏟아부었고 개봉관 숫자도 물량 공세 수준이었다. 반면 ‘허트 로커’의 흥행은 단 1600만 달러다. 처음 개봉관 숫자도 적었고, 평론가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으며 입소문을 타고 한푼 두푼 실적을 쌓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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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 해저 지적 생명체의 컨셉 스케치.

사실 두 사람의 영화 스타일은 딴판이다.

캐머런은 “절반은 과학자, 절반은 예술가”라는 평을 듣는다. 화학, 물리학,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도 출신답게, 그의 영화는 엄밀한 과학적 설정, 매 영화마다 새로운 기술적 시도로 유명하다. 얼핏 통속적으로 보이는 서사 아래 강한 러브 라인을 밑밥으로 깔아두는 영리한 구조도 가졌다. 에이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세라 코너(린다 해밀턴)처럼 남자보다 강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반면 비글로의 영화는 남성이 만든 것보다 더 남성적이다. 차갑고 푸른 거대한 총신이 인상적이었던 블루 스틸 외에도, 꽃미남 서퍼들의 걸죽하고 비장한 이야기인 폭풍 속으로(포인트 브레이크), 스트레인지 데이스처럼 선 굵고 거친 서사물을 찍었다. 평론가들의 격찬을 받는 ‘허트 로커’ 역시 여성 역할은 눈꼽 만큼이다. 어쩌면 이런 영화적 스타일 차이가 두 사람을 서로 끌리게 만들었을지도.

어쨌든, 할리우드의 호사가들은 연일 입방아를 찧느라 분주하다. 반면 정작 본인들은 태연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서로의 영화를 제작해주는 등 친밀한 동료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AP 등은 보도했다.

과연 두 이혼남녀는 올해 아카데미가 열리는 코닥 극장에서 날카로운 눈초리를 교환하며 싸늘한 신경전을 벌여줄 것인가.ㅋㅋㅋ 올 아카데미의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었다. 관객된 입장에선 즐거울 뿐이다.

20100204, 새벽 광화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