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 Diouf

PapeDiouf,그는1951년생이다.태어나긴차드에서태어났는데국적은세네갈.

tv에서그를인터뷰하는장면을보고많은생각이스쳤다.

프랑스에온지35년,아프리카태생임을자랑스럽게생각하는사람이다.

그는마르세이의올림픽회장이란타이틀이있는데정확히번역하면아마

마르세이의올림픽축구위원회회장일것같다.

‘lebutenblanc’이라는책을써서출간을했다는데이사람의인터뷰를보고

읽어볼만한책일것이라는생각이들었다.

무시무시하게생긴외모와다르게무척고급불어를사용하는것이나를놀라게했다.

그리고보니그는젊어서스포츠지기자였음에도불구하고문학을공부했다는것이다.

그리고생각도깨달은사람의그것이라는느낌이짙게왔다.

프랑스의남쪽에있는마르세이에서그를마르세이의오바마라고칭송이자자했다.

정말고급불어를적절하게잘사용하는그가멋있다는생각에까지이르렀다.

무릇젊은이들에게그는’어떤어려움과콤플렉스에도결코좌절하지않으면

이루게된다’는메세지를주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인종에대한이야기가나오면그의눈이슬픔으로가득차는것을

보았다.그는처음에프랑스에와서백인들도청소부나이발사등그런사소한직업들을

가질수있다는사실에놀라워했다는고백을했다.

아프리카사람들은백인아이들의머리만만져보아도행운이굴러들어온다는생각을갖고

있다는이야기를어느프랑스인에게서들은적이있다.

구체적으로언급을하진않았어도그가첫번째결혼은프랑스여자와했고

두번째결혼은같은흑인여자와했다는것이감지되었다.

그에게삶의활력을준다는어린딸아이이야기를들으며

그는또한자상한아버지이기도할것이라는생각이들었다.

가끔은백인여자기자의짖궂은질문에불쾌함을감추려고노력하는기세도엿보인다.

그는참으로교양있는아프리카인이었다.

문학 카페에서

라라의테마

영화’닥터지바고’에나왔던테마음악이다.

이웃분들이들을수있었으면하고다시올려보았다.

이음악만들으면난,시베리아의설원이눈앞에시원하게펼쳐진다.

감기때문에망설이다가문학카페에갔다.

그날의주인공은동성연애자의소설이었다.

벌써그의태도에서약간동성연애자의냄새를맡긴했었다.

|"….난,너무내이야기만하는것같다.

아마도난,…"

젊은시절바르셀로바에살때만났던청년에대한사랑을소설로썼다고했다.

남자가남자를사랑한다는사실이끔찍하게느껴졌던시절이내게있었다.

마치몹쓸사람들의이야기인양인상이저절로찌푸려지던…

그런데이제아무런느낌없이그들의이야기를듣고있는나를보면이제제법세련되어진것같기도하고

선진국국민이된것같기도하고..ㅎㅎ

그런데왜동성연애자들은한결같이여자같은인상을주는지모르겠다.

말투며몸짓이며..

1960년대가그에게는황금같은시기였다고했다.

그래도동성애가인정되기시작한것은최근들어서이니까

지금이더황금같은시기가아닐까하고누군가물었다.

지금은세상이삭막해졌단다.실업자도많고..

감기기운때문에난,중간에졸았던가보다.에로틱한부분도있었다는데

피곤해서필기도못하고있다가나왔다.

예전에사춘남동생이친구들과배낭여행을온적이있었다.

프랑스친구중에하나가아파트를빌려주겠다고했다.친구와함께온다고했더니

그들은당연히여자친구를말하는줄알고더블침대를준비했었다.

그런데남자친구와오니까나에게그들이호모냐고물어보았었다.

여자와여자가손을잡고다니거나어깨동무를하면당연히동성연애자라고이곳에서는단정한다.

남자와남자가한침대에서자도동성연애자이다.

하지만한국에서는동성연애자가아니더라도여자와여자가손을잡고다니고

남자들끼리한침대에서자는일이허다하다는것을어떻게설명해야할지난감했던기억이있다.

le penitencier

이노래는프랑스의가수,JohnnyHollyday가오래전에불렀던노래이다.

이노래를제목도모르면서오랬동안좋아했었다.그것은어쩌면내게아름다운추억을불러일으키는노래였기

때문인것같다.

태양이작열하는붉은대지,40도를오르내리는열기를뚫고내게다가왔던노래이기때문이지도모른다.

아니,서울의친구들이너무그리워알프스의하이디처럼몽유병이라도걸리기를바라고있을때

내게친구가되어준그녀,갸르인의추억때문인지도모른다.

갸르인은옆집에살던나와동갑의벨기에소녀였다.

아버지가유엔에서근무하기때문에아프리카에나와살던소녀였다.

그녀의집에서는늘전축을틀어놓고음악을듣곤했었는데그때이노래도자주들려오던노래중의

하나이다.

아직말도모르던시절,그녀는늘친절하게노트와펜을들고나를찾아와그림까지그려주며

불어단어에대해설명을해주곤했었다.

그녀의집에는자주또래의남자아이들도많이드나들었었다.

그중에빨간머리에주근깨가많은남자아이는풍선껌을커다랗게부풀려서터뜨리거나

혀를쑥내미는장난을치기도했었다.

더위때문에12시에서오후4시까지가공식적으로낮잠자는시간으로지정된그곳은어떤의미에서

시간이정지된느낌을주기도하던곳이었다.

한낮이면나무그늘밑에서태평하게오수를즐기는아프리카인들을발견할수있었다.

그때어쩌면난,혼자서강할수있는힘을익혔는지도모르겠다.

서울처럼정신없이돌아가는생활속에서는결코느낄수없는자연을,원시의자연을향유하는

행운을나는누렸던것이다.

나중에알게된이노래의제목은lepenitencier,즉발목에쇠사슬을찬죄수를이르는말이다.

그러고보니그때갸르인은붉은대지속에갇힌신세라고이노래를늘듣고있었던것은아닐까라는

생각도든다.

답답하다고도느꼈던그시절이지금생각하면내삶의한가운데오아시스처럼자리하고있는것이다.

요즘은그때의내친구갸르인을찾아보고싶은생각도든다.

벨기에어디쯤에살고있을지도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