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씨 졸업 축하해요. 연주 넘 멋졌어요. ^^

16일 오전 대전 배재대(총장 정승훈) 졸업식장. 발달장애(자폐증) 3급의 오유진(吳流鎭·24)씨가 단상 위 피아노 앞에 앉자, 웅성대던 2500여명의 참석자들이 순간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창작곡 밀레니엄 소나티네를 연주하는 윤씨의 손이 건반 위를 쉴 새 없이 옮겨 다니는 5분여 동안, 어머니 유계희(52)씨는 줄곧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요. 저렇게 늠름하게 연주하는 걸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요.

이날 평점 3.0으로 음악학부를 졸업한 유진씨는 음악 서번트(savant). 자폐증 등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서번트 신드롬, 그런 사람을 서번트라고 한다. 유진씨의 창작곡 밀레니엄 소나티네는 지난해 TV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네티즌 사이에선 이미 인기곡이다.

4살 땐가, 차에 태우고 쇼핑을 가다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를 틀어 줬거든요. 집에 들어오자 마자 피아노에 앉아 서너 소절을 그대로 따라 치더라구요.

아버지 오철균(52)씨는 피아노를 가르친 적도 없는데, 유치원에서 저 혼자 동요 반주를 하더라고 했다. 청주의 특수학교인 성신학교에서 초등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1 때부터는 작곡 공부도 했다. 평소엔 집중이 안돼 대화도 어렵지만, 피아노 앞에선 딴 사람처럼 변했다. 전국 규모의 장애인 음악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고, 고등학교도 밴드부가 있는 청주농고를 졸업했다.

처음 대학을 보낼 땐 괜히 시작했다가 마음만 아프게 할까 싶어 주저했어요. 애 엄마가 기회마저 뺏어선 안된다며 고집을 부렸죠.

2002년, 유진씨는 평범한 학생들과 똑같이 수능과 실기를 치르고 배재대 음악학부에 합격했다. 청주 집에서 대전의 학교까지 시외·시내버스를 갈아 타며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 아버지 오씨는 혹 교통사고나 나지 않을까, 갑자기 대소변이 급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 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유진씨는 4년 내내 혼자 통학하며 훌륭히 대학 생활을 해냈다.

서번트는 대부분 암기·암산 등 특정 분야에 재능을 보일 뿐 창의적인 일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진씨는 다르다. 직접 쓴 연주곡만 벌써 20여곡에 달한다. 음악학부 채경화(47) 교수는 5분이 넘는 곡을 쓸 땐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한 번 분위기를 타면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감성을 이끌어낸다고 평가했다. 이날 함께 졸업한 학교 친구 강소령(여·22·공연영상학부)씨는 유진이가 졸업 영화 바디 메모리즈의 엔딩곡도 만들어줬다여성적이고 섬세한 느낌의 곡을 원한다고 했더니 2~3일 만에 꼭 맞는 음악을 들려줘 모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유진씨는 이날 졸업장과 함께 대학원 2년 장학증서를 받아, 2학기부터 석사 과정을 시작한다. 쌍둥이 형 웅진씨도 160여개 나라의 국기를 모두 그리고 수도·언어 등을 외우는 등 암기력이 특출난 발달장애인. 어머니는 유진이가 1년에 두어번 쯤 혼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 때가 있다물어 보면 별 일 아니라고 하지만, 저도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슬퍼하는 것 같아 그럴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오씨는 장애인의 재능을 키워주는 교육 시스템을 갖춘 선진국으로 유학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형편이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까지 마쳤으니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지 싶어요.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받아들여 줄 순 없을까요. 어디 교향악단 단원이라도 돼서 독립된 사회인으로 살 수만 있다면. 어머니 유씨의 작은 욕심이다.

/대전=이태훈기자 libra@chosun.com

“유진씨 졸업 축하해요. 연주 넘 멋졌어요. ^^”에 대한 2개의 생각

  1. 저도 TV에서 보았습니다. 대단한 음악실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장애인도 이 정도로 잘한다는 평가가 아니라 절대적인 평가가 좋은 음악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음악가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2. 배재대 졸업식서 밀레니엄 소나티네 멋지게 연주한 유진씨는 예쁜 사람 찾는데도 선수랍니다. ^^ 예쁜 여성을 보면 빤히 얼굴을 쳐다 봐서 가끔 오해를 받기도 한다네요. 교수님들이 "유진이가 검증하지 않으면 진짜 예쁜게 아니다"고 할 정도니까요. ^^ 원장님 격려, 유진씨에게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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