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인권운동의 상징’ 노벨평화상 탈까

분량이 제한돼 있는 신문의 국제면에선유독 홀대 받는 안타까운 뉴스들이 많습니다.

최근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폭탄테러, 사상자 발생 소식이 그렇습니다. 꾸준히 하루에 수십명씩 죽어나가지만, 웬만큼사망자가 많지 않고선기사화되기 어렵지요. 너무 오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며뉴스의 신선도가 떨어진 탓입니다.

또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의 힘없고 가난한 나라 얘기도 국제면에 자리를 잡기 어렵습니다. 짐바브웨에선 10여년 내전 기간 300만명이 사망했고, 수단에선 여전히 다국적군 투입 논란 속에 총격이 오가지만,지구를 한바퀴쯤 돌아 한국에도착하면 ‘너무 먼 나라 뉴스’가 됩니다.

Intl_Photos_30850598.jpg

신쟝 위구르 자치구의 주도 우루무치로 가는 기차 안의 위구르 원주민들. 위구르인은 2000년 전

부터 낙타로, 말로, 최근엔 철마로 실크 로드를 오고 갑니다. ⓒAP

그런 ‘구문(舊問)’ 중 하나가 중국 신쟝·위구르 자치구의 분리독립 문제입니다. 2000년 전 부터 위구르제국으로 찬란한 문화적 성취를 이뤘고, 한 때 당나라 왕조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위구르에선, 1900여만명 국민의 절반이 넘는 무슬림 원주민들이 줄기차게 분리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원래 이 지역의 원주민 민족이 ‘위구르 족’이고, ‘신쟝(疆·새로운 강역)‘이란 19세기말 러시아의 팽창을 막으려는 영국은행의 지원을 받은 청나라가이 지역을 점령한 뒤 붙인 이름입니다. 1940년대 잠시 동(東) 투르키스탄으로 독립했다가 1949년 이후 다시 중국의 지배하에 놓인 곳이죠. 중국에 치이고, 영국에 배신당하고 러시아에 사기당한 땅.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데다, 최근 중국 최대의 천연가스전이 발견되는 등, 에너지자원 측면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성공한 여성 사업가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위구르 독립운동의 상징이 돼버린 러비야 카디르(58)씨가 있습니다.

rebiya-kofi_annan.jpg

왼쪽이 러비야 카디르씨, 오른쪽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Human Rights Without Frontier

  • "이제 나는 온전히 위구르의 것이다"

나를 잔인한 현실로부터 구해내고, 미치지 않도록 지켜준 것은 위구르 동포들의 기도였습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동포들의 병을 고치는 치료약이 될 것이며, 그들의 눈물을 닦을 손수건이 될 것이고, 그들이 비를 피할 우산이 될 것입니다.

피 말리는 5년여, 언제 쥐도새도 모르게 처형될까 떨어야 하는비인간적 비밀 감옥에서의 투옥 생활 끝에 석방돼 미국에 도착한 카디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국경 없는 인권운동26일 안넬리에 에노흐슨 스웨덴 국회의원이 카디르를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그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위구르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크게 증폭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카디르의 삶은 피점령과 독립을 반복했던 조국의 역사만큼 험한 굴곡을 겪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떨치고 자치구 주도 우루무치에서 백화점과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3300만달러(1999년 당시)의 재산을 모은 입지전적 인물. 여성 취업·창업을 지원하는 1000 어머니 운동을 이끌며 가난에 찌든 이 지역에선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 됐습니다. 중국 중앙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CPPCC) 위원에 임명하고, 1995년엔 UN 국제여성회의에 중국 대표단 일원으로 뉴욕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rebiya.jpg

러비야 카디르.

  • 백만장자에서 정치범으로

1996년 반체제 운동가였던 남편 시디크 하디 루지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중국 정부의 카디르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카디르 가족에겐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1997년 카디르의 여권을 압수했고, 1998년엔 정협 위원 재임명을 막고 사실상 가택연금합니다.그리고 1999년 8월, 카디르는 우루무치의 한 호텔에 미국 의회 관계자들과 인권 문제를 논의하러 가던 중 마침내 체포되고 맙니다. 혐의는 국가 기밀 해외 유출. 그러나 카디르가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달한 기밀이란 지역 신문 스크랩일 뿐이었다고 자유라디오아시아(RFA)는 전하고 있습니다.

카디르는 2000년 3월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5년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넉달 쯤 앞두고 5년여 수감 끝에 석방됩니다. 당시 미국은 카디르 석방에 호응해 대중(對中) 인권 결의안 유엔 제출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 중국은 카디르를 내주고 EU와의 인권 협상에서도 숨통을 틔웠습니다.하지만 자유의 몸이 된어머니와 달리,위구르에 있던 아들 2명은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_40935545_xinjiang_urumqi_map203.gif

*Ethnically Turkic Muslims, mainly live in Xinjiang
*Made bid for independent state in 1940s
*Sporadic violence in Xinjiang since 1991
*Uighurs worried about Chinese immigration
and erosion of traditional culture ⓒBBC

  • 위구르의 ‘달라이 라마’가 될 수 있을까

카디르는 노벨상 후보 추천 소식을 들은 뒤 위구르의 억압받는 현실을 국제사회가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다. 위구르의 딸들은 중국 대도시의 창녀로, 아들들은 도둑·소매치기로 내몰리고 있다. 나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위구르 인권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론 크래너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2005년 카디르 석방 뒤이제 그가 위구르 인들을 위해 티베트 인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라는 ‘얼굴’로 인해국제사회의 더큰 관심을 받고 있는티베트처럼, 상대적으로 홀대받던 위구르 족도카디르를 계기로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얘기입니다.

KADEER_Rebiya_print[1].jpg

러비야 카디르 ⓒRafto Foundation, Norway

카디르는 2004년 노벨상 지름길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라프토(Rafto) 인권상을 받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라프토 상 수상자 중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1990),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 호세 라모스 오르타(1993), 김대중 전 대통령(2000), 이란의 시린 에바디 변호사(2001) 등 4명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10월 13일 발표될 예정입니다. 위구르 인권과 민주주의, 분리독립 문제가티베트 문제처럼 세계적 관심사가 될 수 있을지, 올해 노벨평화상 발표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28일 새벽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