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정말 망할까 : ‘두바이 쇼크’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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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한 호텔 로비의 對십자군 이슬람 전쟁 영웅 살라딘 像. 14세기 아랍의 역사철학자

이븐 할둔은 “사막의 유목 부족들은 끊임없이 무정하고 냉혹한 자기 변신의 순환을 거듭하기

때문에 도시의 엘리트들을 점령하고 지배한다”고 말했었다. 두바이가 이븐 할둔의 예언을

현대에 재현해갈 것인가, 혹은 사막의 신기루에 그칠 것인가.

두바이 신화의 주역이었던 투자지주회사 ‘두바이 월드’가 25일 채권자들에게 채무상환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두바이 월드 채무가 두바이 전체 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넘기 때문에 사실상 두바이 정부의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른바 ‘두바이 쇼크’다.
두바이의 신용부도스와프(CDS·국채 부도 가능성에 대비해 들어두는 일종의 보험 성격을 띄는 금융파생상품) 금리가 폭등했고,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주변국들까지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았다. 터키, 그리스, 러시아 등 경제규모에 비해 빚이 많은 나라들도 타격을 입었다. 빚더미 국가들의 국채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제2 금융위기설까지 솔솔 새어나온다. 두바이 쇼크는 실제로 있었다. 여기까지는 현상(現象)에 관한 팩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1/27/2009112700140.html

세계가 경악한 건 급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두바이가 아부다비의 돈을 빌리고 국채를 발행할 때 디폴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디폴트 바로 전날까지도 대세는"아부다비가 도와줄 거라 괜찮다", "부동산경기가 풀리고 공급초과 문제가 해소되는 2011년 초쯤부터 급속히 회복될 것"이라는 쪽이었다.

그렇다면 두바이가 정말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서서히 해결책을 찾아갈 가능성 쪽에 무게가 실린다.

위기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장할 필요도 없다. 두바이가 망할 거라고 섣불리 단정하거나 정치적 취향에 맞춰 단죄하려 들기 전에, 먼저 사태의 배경과 경과를 찬찬히 살펴 보는 것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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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일까. 두바이의 새 랜드마크가 될 부르즈 두바이는 내년 1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두바이가 맘에 들지 않는 주변 아랍국들

두바이에 물려 있는 돈은 상당 부분이 걸프국가들 돈으로 알려졌다. 두바이가 무너지면 손해보는 건 걸프국가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아부다비를 비롯한 주변 투자자들은 두바이의 디폴트 위기를 외면했을까.

두바이 면적은 제주도의 두 배 정도 밖에 안 된다. 인구는 12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데, 그 중 두바이 원주민은 20만명 정도다. 주변 걸프국가들처럼 짱짱한 석유 매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불에 육박한다. 인도네시아부터 북아프리카까지, 이민자들에게 두바이는 꿈이 이뤄지는 땅이다.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손톱만한 나라 지도자가 주변의 쟁쟁한 대국들을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것이다. 거기다 말도 잘 듣지 않는다. 주변 대국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아랍에미리트(UAE)는 걸프국가들의 연합인 걸프협력위원회(GCC) 단일 통화 논의에서도 탈퇴했다. 가장 발언권이 센 사우디 아라비아가 GCC 중앙은행을 두바이가 아닌 자국 상업도시 제다로 가져가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최근 카타르가 언론과 교육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업과 금융 중심으로 발돋움하려 애쓰지만, 두바이의 휘황함에 가려 빛이 나질 않는다.

아부다비도 두바이가 고깝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치적, 역사적으로 두바이는 항상 맏형 토후국 아부다비의 그늘 아래 있었다. 아부다비는 UAE 국토의 80%, 석유 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두바이를 포함해 나머지 6개 토후국은 다 고만고만하다. UAE는 아부다비 통치자가 대통령, 두바이 통치자가 총리를 맡는 구조로 유지된다. 연방국가라기보다는 셰이크(Sheik·족장)가 지배하는 부족국가(sheikdom) 연맹체에 가깝다. 국방과 외교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 분야는 거의 각각의 독립국에 가깝다.그 중에서도 두바이는 10여년 전까지 별도의 군대를 유지할 만큼 독립성을 유지하려 애써왔다. 두바이를 다스리는 알 마크툼 가문과 아부다비를 다스리는 알 나얀 가문은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경쟁하며 협력해왔다. 두 가문의 경쟁심은 낙타미인대회에까지 미칠 정도다. 우수한 낙타를 누가 더 통크게 많이 사느냐를 놓고도 백성들 사이엔 ‘올핸 누가 어쨌다더라’는 쑥덕공론이 이어진다.

두바이는 상상력과 비전 만으로 현재의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 다른 산유국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두바이 기업 법인의 40%가 사실상 이란인 소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방의 경제 제재에 목이 죄여 있는 이란도 두바이를 통해 숨을 쉬어왔다. 9·11 테러 이후엔 미국이 마뜩찮았던 걸프지역 투자자들이 두바이에 고유가로 얻은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들 역시 사막 한 가운데서 스키를 즐기고, 에어컨 빵빵한 쇼핑몰에서 루이비통 가방을 사들이며 보수적 본국 사회를 벗어나 숨을 쉴 공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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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쇼핑몰. 검은 차도르 차림여성들이 루이비통 가방과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르고 누빈다.

게다가 두바이는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걸프 국가들 중에 가장 서구 문물을 빨리 흡수했다. 이집트를 제외하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성들이 히잡이나 니캅을 쓰지 않고도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여성 5만명이 일자리를 갖고 있고, 그 중 30%는 정부 기관이나 국영기업에서 일한다. 호텔에선 맥주도 팔고, 밤이면 나이트클럽이 불야성을 이룬다. 이럴 때 마침 미국발 금융위기가 들이닥쳤다.

세간에는 “이번 기회에 걸프 지역 투자자들이 두바이의 버릇을 고쳐놓으려 한다”는 얘기가 연초부터 돌았다. “내 돈 빌려가 폼 잡았으니 한 번 당해봐라”는 것이다. 게다가 두바이의 위기는 국부펀드의 막대한 달러를 깔고 앉아 있는 걸프국가들에겐 공들여 지어 올린 자산을 손쉽게 꿀꺽할 기회다.

과거 아부다비 정부는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부다비의 UAE국영 항공사인 이티하드 항공을 타 보면,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에 깜짝 놀란다.사막 혹은 황금을 상징하듯 모든게 반짝반짝한다.이슬람여성의 머리장식을 형상화한 스튜어디스의 복장은 아마 세계 항공사를 통틀어 가장화려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부다비의 이티하드 항공은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넘어서지 못했다. 내가 만들 수 없다면, 뺏는 것이 사막의 생존 법칙. 이번 두바이 월드의 사실상 디폴트 선언 뒤에는 퀸엘리자베스 2호 호텔이나 턴베리 골프장 등 아부다비가 눈독을 들이는 두바이 자산의 구체적 목록까지 오르내린다.

그러니 걸프국가들이 두바이 국영 투자지주회사 두바이 월드가 채무 이행 유예를 요청토록 코너로 몰아넣은 것은 다목적이다. 버릇도 고쳐 놓고, 알짜 자산도 손에 넣을 일석이조의 기회다. 이에 맞서 두바이는 “채무 이행 유예요청은 채무 구조조정을 위해 면밀히 계획한 일”이라며 자산 매각보다 채권 발행을 통한 현금 확보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피땀흘려 쌓은 자산을 헐값에 잃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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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냉동고, 두바이의 실내 스키장. 그 자체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어트랙션이다.

유럽 금융시장이 홍역을 치른 이유

물론 이번 ‘두바이 쇼크’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분에 넘치는 외자 차입 경영이었다. 제조업 기반도 없는 나라가 매년 11% 경제 성장률을 목표로 잡았다. 산업연구원(KIET) 주동주 박사는 국내 학자들 중에 눈에 띄게 두바이 성장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학자다. 그는 “두바이는 GDP의 열 배 가까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사업을 너무 많이 벌렸다”며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없이 무작위적 공급 위주 정책으로 벌려 놓으면 수요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분명한 실책”이라고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두바이의 GDP 대비 부채 규모는 103% 정도로 추산된다. 800억 달러 조금 넘는다. 두바이가 벌려놓은 개발프로젝트 총액은 3000~4000억 달러인 걸로 추정된다. 그런데 두바이의 정부 및 민간부문 자산의 가치는 3000억 달러에 가까운 걸로 알려져 있다. 호경기일 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동성의 흐름이 널을 뛰는 불경기엔 삐끗하면 카운터를 맞기 쉬운 체질이었다.

그런데 이번 ‘두바이 쇼크’를 대하는 서방의 태도를 살펴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표를 보자.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두바이에 물린 채권액을 보고, ‘두바이 쇼크’ 이후의 태도와 비교하면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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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민감한 반응을보인 건영국 언론들이었다. 당연하다. 금융위기로 죽을 쑤고 있는 영국이 가장 많은 돈을 물렸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바이 채무상환 유예요청 충격’이라고 제목을 뽑고, 내달 14일 만기가 도래하는 나킬(두바이 월드 자회사로, 팜 아일랜드 등 대규모 사업을 주도한 부동산 개발사)의 수쿠크(이슬람 채권) 문제도 정면으로 제기했다. 게다가 영국은 1960년대까지 아랍에미리트 지역을 실질 지배했다. 세계를 지배한 제국의 옛 습관일까. 영국 입장에서는 ‘거긴 원래 내 땅’이라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두바이 채권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물려 있는 유럽 금융시장도 함께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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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랜드마크, 칠성급 호텔 부르즈 알 아랍. 해변에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반면 미국 언론들의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25일 디폴트 발표가 나온 뒤에도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의 메인 화면에선 두바이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역시 매우 단순한 이유로 보인다. 미국이 물린 돈은 경제규모에 비해얼마 안 되고, 자국의 금융위기에 비하면 작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미국 언론들이 주말부터는 “제2 금융위기”(블룸버그), “채무국 국채 도미노 부도 우려”(WSJ) 등의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당장의 금융시장 타격보다 “두바이 사태가 더 큰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보고서는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사태로 일반화된 용어인 ‘테일 리스크(tail risk)’를 끄집어 냈다. “두바이가 국가 부도를 낼 경우 신흥시장에 대한 자금유입이 급속히 멈춰 경기 회복을 크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두바이 사태는 공공부채율 높은 나라들의 잇따른 부도사태 예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보도는 오히려선진국 투자자들에게 ‘리스크를컨트롤할 수 있다면, 지금이 신흥시장에 투자할 때’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설득력있는 상황 분석을 보자. 런던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알리아 무바예드는 “두바이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긴 하지만, 재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아부다비의 도움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또 ‘뱅커 매거진’의 에디터 브라이언 캐플런은 “두바이가 채무 불이행을 한다고 해도 그 충격파는 1조 달러 디폴트가 걸렸던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 비하면 미미하다. 새로운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할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셰이크 모하메드, 위기 극복의 리더십도 증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두바이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두바이의 기념비적 성공이 셰이크 모하메드의 지도력에 크게 의존했듯, 앞으로 두바이의 위기 극복도 그의 행보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나도 미친(crazy) 사람 취급을 받았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2007년 4월 당시 이명박 시장을 만나 “청계천을 추진할 때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어리석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어려운 생활환경이고 서방에 비해 뒤쳐져 있었지만 우리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남들이 의심해도 멈추지 않고, 경험과 비전을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 중동에서 더 나은 국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셰이크 모하메드 : 상상력과 비전의 리더십』,최진영).

두바이는 여전히 지도자의 혜안(慧眼)이 한 나라의 미래를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여기엔 단순히 국영지주회사의 한 차례 디폴트 선언 때문에 도매금으로 팔아넘길 수 없는 피땀과 고민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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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크리크. 넓은 인공수로에는 아직도 오래된 동력어선들과 돛배들이 가득하고, 수상택시가 강변을 오간다.

두바이는 작은 나라다. 원래 진주를 캐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일본에서 진주 양식에 성공하자 자연산 진주 가격이 폭락했고, 살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두바이를 통치해온 알 마크툼 가문은 일찍부터 먼 바다로 눈을 돌렸다. 현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아버지 셰이크 라시드는 ‘사막의 맨해튼’이라는 두바이의 명성에 기틀을 놓았다. 무모하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견디며 어촌 마을에 걸프 물동량을 빨아들일 최초의 항구 라시드 항을 완공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완공된 뒤 해상 운송수요가 몰리며 오히려 너무 작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세계 최대 인공 항구인 자벨 알리 항을 건설했다. 맏형격 에미리트(토후국)인 아부다비나 대국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1960년대에 발견된 소량의 석유는 두바이의 야심에 밑불이 됐다.

두바이를 통치하게 된 셰이크 모하메드의 눈은 선왕(先王)들보다 더 먼 미래에 가 있었다. 2006년에 왕위를 계승했지만, 10여년 전부터 사실상 두바이를 통치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가젤은 사자보다 느리면 잡혀 먹힌다. 사자는 가젤보다 느리면 굶어 죽는다. 당신아 가젤이건 사자건, 동이 튼 뒤에도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고 반복해 말했다. 2020년이면 고갈될 석유, 검은 황금이 사라진 미래에 어떻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초원에서 가장 빠른 사자처럼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할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은 항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시간과 싸우는 경주에서 우리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경주는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경주를 준비해야 한다. 더 큰 장애물과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2007년 2월 두바이 전략계획 2015를 발표하며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렇게 말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2000년 전략계획 2010을 발표하며 2010년까지 국민소득 2만3000달러, GDP 3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2005년 두바이의 GDP는 이미 37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만1000달러였다. 놀라운 초고속 압축 성장이다. 2000년 당시 10%였던 GDP 중 석유 매출 비중을 6%로 낮추겠다고 발표했고, 2005년말 3%까지 낮췄다. 1970년대 두바이 GDP에서 석유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5년 만에 10년 목표를 초과 달성한 뒤 새로운 10년의 목표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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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마천루 숲과 녹색 잔디밭. 사막의 맨해튼은 입으로 만든 게 아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시를 사랑하는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두 아들 라시드와 함단이 영국 왕립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도 축하시를 보냈다.

“라시드와 함단, 내일의 밝은 꿈들아
나는 그 꿈들을 그려왔다.
요람에서부터 나는 그 꿈들을 보았고,
포수에 희생되지 않을 사자와 매로 키웠다.”

그의 목표는 오직, 자신의 백성들이 강성한 주변 걸프국가나 서방국가에 휘둘리거나 희생되지 않도록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과 가문의 치재에 집중하고, 특권계층에 재부를 나눠주는 지대국가로 국체를 유지하는 다른 산유국들과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랬듯 현재 두바이가 공사 중인 대규모 인공 조형물들도 시간이 지나면 후대를 위한 유적이 된다”고 개발자들을 격려했었다. 그는 이 말을 할 때 5000년 뒤의 미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두바이의 마천루들은 5000년이 아닌 50년도 되기 전에 유적이 돼 버릴 수도 있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셰이크 모하메드에게, 이제 위기극복에도 호경기 때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정리해보면…

1. 두바이를 (사실상) 디폴트로 몰아넣은 직접적 원인은 도를 넘은 외자 차입경영이었다.

하지만 두바이 개발 모델 특성상 언젠가 한 번은 겪고 넘어서야 할 시련이기도 하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미 개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최측근 엘리트들을 가지치기하며 국영 기업 네트워크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고 있다. 채무 구조조정 뿐 아니라 조직과 사업에 피비린내나는 쇄신이 시작됐다. 여기서 셰이크 모하메드의 위기 극복 리더십이 검증될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1/28/2009112800124.html?srchCol=news&srchUrl=news2

2. 주변국들의 시샘과 두바이 자산에 대한욕심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상황 변화에따라 유동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두바이를 쓰러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주변국들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 서방국가들의 ‘호들갑’에 가까운 반응은 실제적 위험보다 감성에 휘둘린 측면이 적지 않다.

원래 금융시장이란 지나친 공포와 환호 사이를 오가는 법이다. 게다가 두바이 디폴트는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급도 아니다. 투자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겠지만,금융시장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는 쪽이 설득력 있다.

4. 두바이의 위기를 ‘두바이 모델의 종언’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바이 모델은 모래사막과 바다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라가 지도자의 상상력과 비전, 놀라운 추진력만으로 일궈낸 것이다. 개발의 목표도 시작도 과정도 모두 유니크하다.국내에서 추진되는 정부 프로젝트와 연관지으려는 정치적 노력도참 볼썽사나운 아전인수다.

한국외대 서정민 교수는 "두바이는 이미 사회적 제도적으로 많은 개혁을 이뤘다.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두바이가 특별히 잘해서라기보다 다른 아랍국가들이 워낙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바이 모델이 다른 중동국가에서 복제 가능한가의 질문은 미뤄두자. 현재 중동에는 두바이 외에 대안이 없다.

두바이는이번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것인가,그냥 주저앉아 버릴 것인가. 일시적 유동성 위기인가, 두바이 성장 모델의 근본적 위기인가. 예단은 금물이다. 일단 14일로 예정된 나킬의 수쿠크 상환, 내년 초에 도래하는 다른 두바이월드 채권 상환이 원만히 이뤄지느냐 여부가 앞으로 두바이가 얼마나 더 오래 비틀거릴 것인지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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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왼쪽)와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칼리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