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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크롤러] 잔혹할수록 대담해진다… 광기 가득한 심야의 앵글


26일 개봉하는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자극적 사건사고 현장을 촬영해 방송국에 파는 영상취재 프리랜서 루 블룸(제이크 질렌할)의 뒤를 쫓는다. 범죄 현장에 경찰보다 빨리 달려가는 블룸의 빨간색 닷지 챌린저 스포츠카처럼 반전없이 급가속하는 스릴러다.

Night-crawler
루 블룸(제이크 질렌할)은 낡은 도요타 픽업트럭을 몰고 로스앤젤레스의 밤거리에서 맨홀이나 철제 펜스를 훔쳐 파는 하류 인생. 고물상 주인에게 채용을 구걸하다 “도둑놈은 안 쓴다”며 면박당한 밤, 교통사고 현장을 찍어 즉석에서 돈을 흥정해 방송국에 넘기는 ‘나이트크롤러(Nightcrawler)’들을 만난다. 영상이 잔혹할수록 더 큰 돈이 되는 매력적 비즈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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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코더와 경찰 무전기를 마련해 밤거리로 나선 블룸에게 지역 방송국 보도 책임자 니나(르네 루소)가 조언한다. “가난한 유색인종 악당에게 짓밟힌 부유한 백인 희생자를 찍어. 소심한 시청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그림을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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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탈취범의 총탄에 쓰러진 남자, 음주 차량에 치인 바이커, 무장강도, 살인, 자살…. 블룸은 공포와 고통에 질린 피해자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바짝 들이댄다. 양심의 꺼리낌도 없고 주저하지도 않는다. 블룸이 대담하게 사고와 범죄 현장을 조작할수록 특종 영상의 값어치와 뉴스 시청률도 치솟는다. 재계약 때문에 시청률 경쟁에 목 매고 있는 니나 역시 블룸의 잔혹 영상에 중독돼 가고, 이야기는 참극을 향해 촘촘한 긴장감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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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애처롭게 깜빡였던 질렌할의 큰 눈은 순수와 광기의 양 극단을 손바닥 뒤집듯 옮겨다니는 기묘한 능력을 지녔다. ‘조디악’에선 연쇄살인마를 쫓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암호광의 집념, ‘엔드 오브 왓치’에선 마약조직과 싸우는 경찰의 냉혈함으로 번뜩였다. 이번 영화에선 그 큰 눈에 깜빡임이 사라졌다. 불빛없는 한 밤 중에도 그의 두 눈동자는 허공에 뜬 혼불처럼 광기로 번들거린다. 동료의 생명도 하찮게 여기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의 광기다. 형사가 거짓말을 추궁할 때 블룸은 말한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거든. 당신도 인생 최악의 날에 나를 만나게 될 거요.” 경찰서 폐쇄회로 카메라에 비친 블룸의 싸늘한 미소에 식은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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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오 현재 국내 한 포털 사이트의 많이 본 뉴스 1·3·5위는 총기 난사사건, 2위는 연쇄성폭행범 이야기였다. 정말 이것들이 그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였을까. 실은 모두가 수많은 블룸들이 부풀린 핏빛 뉴스에 중독돼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선 작년 10월 핼러윈 주말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였다.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 스릴러 팬에겐 만족스런 118분이 될 것이다. 청소년관람불가.

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