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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불문 파멸로 이끄는 ‘달콤한 연인의 덫(Honey Trap)’

1986년 이스라엘의 디모나 핵시설에서 일했던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Vanunu)는 이스라엘의 비밀 핵 개발에 관한 증거사진과 자료를 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런던 편집국을 찾아갔다. 기자들은 바누누를 근교의 안가에 은신토록 하고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조바심이 난 바누누는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신디라는 이름의 미국인 여성을 만났다. 바누누가 “신디와 함께 일주일간 로마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더 타임스 기자들이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바누누는 로마에 도착한 뒤 이스라엘 해외정보국 모사드 요원들에 붙잡힌 뒤 약물 중독 상태로 이스라엘로 보내졌고, 18년형을 살았다. 그 중 11년은 독방 신세였다. 신디는 셰릴 본 토브(Tov)라는 이름의 모사드 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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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Ronald H. Miller.
2004년 4월 21일, 반역죄로 18년 수감 생활을 마감한 뒤 예루살렘 성 조지 성당 뜰에 선 모르데차이 바누누. 그는 이스라엘의 비밀 핵개발을 폭로하려다 모사드 여성 요원에게 유혹당해 이스라엘로 압송된 뒤, 18년 감옥생활 동안 11년을 독방에서 보냈다. 현재도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로, 외국인과의 접촉이 전면 금지돼 있다.

◆파멸로 이끄는 달콤한 ‘연인의 덫(Honey Trap)

작년 영국 정보국 MI5는 영국내 은행·기업·금융기관 등에 ‘중국 스파이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14쪽짜리 보고서를 보냈다. 여기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등이 성적(性的)으로 핵심 인사들을 유혹해 “장기적 관계”를 맺으려는 다수의 사례들이 포착됐다고 경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첩보전의 세계는 성(性)을 무기로 써온 역사가 깊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온라인판은 최근 ‘연인의 덫(honey trap)’으로 불리는 첩보활동 방식을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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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프로푸모 스캔들’의 주인공 크리스틴 킬러. 킬러는 옥스퍼드대를 나온 전쟁영웅 출신의 스타 정치인 존 프로푸모 전쟁장관과,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잘생긴 해군 무관 예브게이 이바노프 두 사람 모두의 정부였다. 이바노프는 이후 소련으로 돌아간 뒤 영국 언론의 호들갑을 조롱하며 "당신 같으면 ‘오, 내사랑, 그런데 이번에 핵무기는 독일 어디에 배치되는 거예요?’하고 묻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크리스틴의 조사기록에는 그녀가 일반 대중에게 익숙치 않은 핵이나 안보 관련 용어를 예사롭게 사용하는 등 의혹의 여지가 컸던 것으로 나온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나 논픽션으로도 다수 만들어졌다.

◆유혹은 남녀불문

1960년대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모스크바 특파원 제레미 울펀든(Wolfenden)은 남자에게 유혹당한 경우다. 소련 정보국 KGB는 울펀든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외무부 이발사를 그에게 접근시켰다. 증거사진을 확보한 뒤엔 모스크바의 미국·유럽인들 사이에서 첩자 노릇을 하도록 협박했다. 이를 눈치챈 영국 비밀정보국(SIS)는 그를 이중간첩으로 활용했다. 울펀든은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알콜중독 상태에서 낙상(落傷)해 사망했다.

◆구 동독, 국가차원에서 ‘연인의 덫’

구 동독 정보국 슈타지의 수장이었던 마르쿠스 볼프(Wolf)는 국가 차원에서 ‘연인의 덫’을 쳤다. 그가 훈련시킨 여성 첩보원들은 나토의 핵무기 배치 정보를 빼오고, 헬무트 슈미트 당시 독일 총리 사무실에 직원으로 취직할 정도로 독일 사회 깊숙이 침투했다.
FP는 이밖에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고용된 여성 첩보원으로 프랑스의 기밀을 팔아넘겼던 마타 하리(Mata Hari), 1960년대 초 영국 전쟁장관과 러시아 대사관 해군 무관 양쪽의 정부(情婦)였던 크리스틴 킬러(Keeler) 등의 사례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