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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칼리파, 우리 시대의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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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개장 축하 불꽃놀이.

부르즈 칼리파 우리 시대의 바벨탑

세계 최고 마천루들은 역사적으로 경제가 곤두박질칠 때 더 높이 솟아올랐다. 4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장식이 열린 ‘부르즈 칼리파’ 역시 세계 최고(最高)인 828m 높이를 자랑한다. 바로 전 날까지 세계 최고였던 대만의 101층짜리 건물 ‘타이페이 101 타워’(509m)보다 319m가 높고, 2012년 완공 예정인 상하이 타워(631m) 보다도 197m가 높다. 당분간 세계 최고 지위를 위협받을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부르즈 두바이는 상하이 타워가 세계 최고 지위를 위협하자 2005년 2월 착공 이후 계속 최종 높이를 높여 잡았다. 828m라는 최종 높이도 개장식에서 카운트다운을 하듯 전광판을 통해 확정 발표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마천루의 높이가 갖는 상징성으로만 보면 부르즈 칼리파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이정표처럼 보인다.

최고 마천루와 경제위기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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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싱어 빌딩(1908년)과 메트 라이프 빌딩(1909년)은 1907년 경제 공황의 와중에 완공됐다. 크라이슬러(1930)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은 대공황의 상징이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1972)와 시카고 시어스타워(1974)는 1970년대 세계를 휩쓴 스태그플레이션의 한 가운데 세워졌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1997)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예고편이었다. 2005년 세계 최고 마천루의 등장과 경제위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던 마크 손튼은 “나라마다 최고 건물을 이것저것 내세우고 세계 언론이 이를 비교해 가며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것은 글로벌 위기의 때에 나타나는 전형적 증상”(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2010.1.4)이라고 했다.

텅 빈 세계 최고?

부르즈 칼리파의 1∼39층은 아르마니 호텔, 40∼108층은 고급 아파트, 109층 이상은 사무실이다. 아파트는 이미 3년 전에 다 팔렸다. 문제는 대부분 투자 목적 매입이었다는 점이다. 직접 들어가 살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다. 개발사인 에마르 자산운용 측은 사무실과 아파트 분양률 및 거주 비율 등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부르즈 칼리파는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른 두바이 거품시대에 지어진 최고급 주거·사무빌딩들처럼 빈 채로 한동안 유지될 가능성 높아 보인다.

‘공(空·emptiness)’에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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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Buffet)이 투자한 라스베이거스 사하라 호텔과 카지노가 숙박 손님이 없어 3개 타워 중 2개 타워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한 때 미국 제조업 붐의 상징이었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농업기업이 도시 한 켠을 아예 논밭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로, 2006년 코믹 매커시(McCarthy)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더 로드(The Road)’는 마천루로 상징되는 도시문명이 잿더미로 변한 묵시록적 풍경을 걸어가는 부자(父子)의 이야기다. 덴젤 워싱턴이 출연하는 ‘엘리의 책(The Book of Eli)’, 제이슨 라이트먼의 ‘창공 저 위에(Up in the Air)’ 등도 도시의 폐허나 ‘비어 있음’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비어 있는 도시를 그려내는 수많은 사진과 영화 프로젝트들도 화제다. 미국 문화는 그 어느 때 보다 ‘공(空·emptiness)’에 사로잡혀 있다. 지갑이던 위장이던 혹은 집안이던, 뭐든 가득 채우고, 소비하고, 떠들썩한 파티를 즐겼던 미국 대중문화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막판에 이름 바꿔 ‘부르즈 칼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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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isitor walks past a display featuring 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 at the entrance to ”At the Top” visitor center in the Burj Dubai, the world’s tallest building, in Dubai, United Arab Emirates, on Monday, Jan. 4, 2010. Dubai’s 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 will open the world’s tallest tower today. It won’t be the world’s fullest. The occupancy rate at the 160-story Burj Dubai may reach 75 percent this year, with office leasing proving the biggest challenge for investors, said Roy Cherry, an analyst at investment bank Shuaa Capital PSC. Photographer: Charles Crowell/Bloomberg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Mohammed)는 개장식에서 “오늘 UAE는 인류 최고 높이의 건물을 갖게 됐다. 이 위대한 프로젝트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며 ‘부르즈 칼리파(Khalipa)’로 개칭하겠다고 선언했다. 칼리파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현 대통령이자 수도 아부다비의 셰이크인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이름이다.
두바이는 작년 말 국영 투자개발 지주회사 두바이 월드가 채권단에 채무 이행 연기 요청을 하면서 세계경제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두바이 위기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 아랍에미리트연합 내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였다. 두바이를 통치하는 알 마크툼 가문과 아부다비를 다스리는 알 나흐얀 가문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혈족이지만, 서로 경쟁하며 아라비아반도의 새로운 경제 모델을 추구해왔다. 두바이가 아부다비에 손을 벌리게 되면서, 두바이의 정치·경제적 독립성이 훼손될 거라는 우려도 컸다. ‘부르즈 칼리파’라는 이름은 그래서, 아부다비와 두바이 두 토후국 사이의 역학관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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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이미지의 원형이 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라크 사마라 ‘그레이트 모스크’의 미나렛(첨탑)과 피에르 브뤼겔의 그림 바벨탑.

부르즈 칼리파, 우리 시대의 바벨탑?

두바이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랬듯 현재 두바이가 공사 중인 대규모 인공 조형물들도 시간이 지나면 후대를 위한 유적이 된다”고 말했었다. 이 때 셰이크 모하메드의 비전은 5000년 뒤의 후손들의 손에도 먹고 살 수단을 쥐어주겠다는 데까지 가 있었다. 반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건축 비평가 크리스토퍼 호손(Hawthorne)은 부르즈 칼리파를 ‘오만함의 사원(Temple to Hubris)’라고 불렀다. 기독교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신에게 가닿으려는 인간의 오만의 상징이었다.
“현금 더미를 깔고 앉아 지속가능하지 않은 개발을 지속하던 시대는 갔다. (…) 두바이의 경제는 회복하겠지만, 최소한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은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두바이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세워 얻으려했던 상징성은 넓은 의미에서 이미 죽었다. 부르즈 칼리파가 스스로 폐허가 된다면, 그것은 폐허가 된 이상(理想)에 바쳐진 묘비석일 것이다.”(LAT 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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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날아라, 두바이!

<YONHAP PHOTO-0263> A man with a falcon attends the opening ceremony for the 200-story Burj Khalifa building in Dubai, United Arab Emirates, on Monday, Jan. 4, 2010. Dubai’s 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 opened the world’s tallest tower today and renamed it the Burj Khalifa after the ruler of neighboring Abu Dhabi, which bailed out Dubai during the country’s debt crisis last year. Photographer: Charles Crowell/Bloom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