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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터너] 마이크 리의 명불허전 마스터피스

 

별 기대없이 봤는데, 마이크 리(Mike Leigh)의 ‘미스터 터너(Mr Turner)’는 명불허전 마스터피스다.
기대를 한껏 키웠던 작년 칸에서 마이크 리 감독의 두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되진 못했으나 , 주연 티모시 스폴은 남우주연상을 안는 영광을 누렸다.

실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터너 그림 앞에 섰을 때에야 breath-taking 이라는 표현이 본래 뜻하는 바를 알게 됐다. 영화는 테메레르호의 출항, 노예선, 칼레의 파도 같은 터너의 명화들을 장인의 세공품처럼 고스란히 벼려내 스크린 위에 재현한다. 터너의 눈을 통해 보는 시선, 혹은 풍경을 바라보는 터너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보는 잉글랜드와 유럽 곳곳 풍경에 가슴이 뛴다. 영화 좀 본다 자부하는 이들에겐 도전의지를 불러일으킬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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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본 것 같은데… 영화라네요
이태훈 기자

[名匠·명배우가 만든 미술영화, ‘미스터 터너’ ‘빅 아이즈’]

마이크 리 ‘미스터 터너’ – 화폭 옮긴듯 아름다운 장면
팀 버튼 ‘빅 아이즈’ – 눈 큰 아이 그림 400장 재현

미술과 영화를 함께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행복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명장(名匠)과 명배우가 뭉쳐 만든, 취향도 성격도 다른 미술영화 두 편이 극장에 걸리는 것. ‘미스터 터너'(22일 개봉)는 영국의 ‘국민 화가’ JMW 터너(1775~1851) 말년의 삶, 예술, 사랑 이야기. ‘빅 아이즈'(28일 개봉)는 1950년대 커다란 눈의 아이들을 그린 미국 화가 마거릿 킨이 사기꾼 남편에게 뺏겼던 원작자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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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도 화려하다. ‘미스터 터너’는 ‘비밀과 거짓말'(1996)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이크 리 감독 작품. 작년 칸에서 기대를 모았던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신 안면 미세 근육까지 움직이는 듯 명연을 펼친 터너 역의 배우 티모시 스폴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빅 아이즈’는 한국에도 팬층이 두꺼운 팀 버튼 감독 작품. 주연 여배우 에이미 애덤스는 이 영화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받았다.

BIG EYES

◇미스터 터너 : 스크린에 옮긴 터너의 황금빛 풍경

 이 영화는 아름답다.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등 터너의 유명한 그림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장면들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작달막한 풀꽃들을 머리에 인 하얀 해안절벽, 파란색과 보라색이 층을 이룬 저녁놀 무렵의 하늘, 바위들이 흩어진 바닷가로 열을 지어 몰려오는 파도…. 멀리 바다에는 주황색 돛을 편 배들이 떠 있고, 생선 장수들은 나무 도마 위에서 물고기를 손질한다. 감독은 화면의 색온도를 살짝 높여 터너 그림의 인장과도 같은 노란색 안료 황연(黃鉛) 빛깔을 충실히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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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감독 영화 ‘미스터 터너’ 속 장면(위)과 실제 터너의 그림 ‘테레메르 호의 출항’.

 

귀족의 살롱 음악회나 서민들의 시장통 풍경 등 19세기 영국 일상을 골고루 비출 뿐 아니라, 예술 애호가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환심을 사려는 왕립미술원 화가들의 경쟁과 질시 등 당시 예술판 풍경도 세심히 담았다. “그리스 조각 아프로디테를 닮았다”며 과부가 된 단골 여인숙 여주인에게 연심을 고백하는 터너의 모습이나, 현학과 허세로 예술을 논하는 귀족들 곁에서 하품하는 하녀 모습 등 소소한 재미를 주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져 150분 상영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청소년 관람 불가.

◇빅 아이즈 : ‘세상 가장 유명한 눈’을 둘러싼 진실게임

이 영화는 재미있다. 큰 눈의 멜랑콜리한 아이들을 그린 마거릿 킨(87)의 그림들은 1950년대 미국에서 포스터와 엽서로 불티나게 팔리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미술품 시장의 잠재력을 증명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하지만 남편 월터(크리스토프 왈츠)는 숫기 없는 아내 대신 그림을 팔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세상에 자신을 화가로 알리고, 아내를 골방에 가둬 그림을 생산하게 한다. 이 희대의 사기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하와이로 도피한 아내 마거릿이 소송을 걸면서 들통난다. 팀 버튼 감독의 미술팀은 400여장의 눈 큰 아이들 그림을 재현해 화가 마거릿 킨의 작업실과 갤러리를 방문하는 듯 충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상영시간 105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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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심은 단순한 그릇에 담길 때 더 빛난다: 다르덴 형제 감독

 

진심은 단순한 그릇에 담을 때 더욱 빛난다. 투박한 다완에 담긴 차향이 더욱 깊듯. 벨기에 출신의 리얼리즘 거장 다르덴 형제 인터뷰. 

탐심을 부르는 재화가 돼버린 일자리, 소외된 노동, 불안과 두려움 속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성에 관한 세련되고 정교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올해 첫 아트버스터라 할 만하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 받은 이 형제 감독은 “연대야말로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하는 가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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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64)와 뤽 다르덴(61) 형제.

 

“타인과 손 잡을 때 우린 또 한발 나아가죠”
이태훈 기자

[새해 첫 아트버스터 ‘내일을 위한 시간’ 감독 다르덴 형제 인터뷰]

리얼리즘의 巨匠 다르덴 형제… 소규모 개봉, 벌써 3만관객 모아
“가만히 있으면 ‘연대’ 안생겨… 내가 변해야 주변도 변하죠”

황금종려상 두 번, 심사위원대상 한 번, 각본상 한 번, 주연상 두 번. 영화감독 장 뤽 다르덴(64)과 피에르 다르덴(61) 형제가 현재 세계 영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려면, 좀 남우세스러워도 이들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받은 상의 목록을 훑는 것이 가장 빠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비토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리얼리즘 거장들의 전통 위에 서 있다. 불법 이민, 범죄, 빈민 문제 등 현대사회의 아프고 약한 부분을 세련되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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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국내 개봉한 형제 감독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상영관 수가 얼마 되지 않지만, 3만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새해 첫 ‘아트버스터’가 됐다. 영화는 직장 동료들이 보너스를 포기해줘야 복직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여성이 투표를 앞둔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호소를 이어가는 이야기. 주연 마리옹 코티아르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라비앙로즈'(2007)의 에디트 피아프로 한 차례 오스카를 거머쥔 그 여배우다. 다르덴 형제는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것,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손을 맞잡을 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뷰는 본지가 보낸 질문에 따라 부산국제영화제 이수원 프로그래머(유럽·아프리카 담당)가 프랑스어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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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아트버스터’가 된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내일을 위한 시간’의 주연배우 마리옹 코티아르(가운데)는 이번 영화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노린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 참석한 장피에르 다르덴(오른쪽)과 뤽 다르덴(왼쪽) 감독이 코티아르에게 키스하는 모습. /AP뉴시스

―스타 배우 출연이 드물었는데 마리옹 코티아르를 기용했다.

“코티아르는 지극히 예민한 배우다. 그 눈을 보면 그곳에 있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그곳에 있지 않은, 미묘한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그녀의 영화 속 역할인 산드라가 바로 그렇다. 그 눈을 들여다보다 그 속에 빠져들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하.”

―상업영화의 홍수 속에 ‘사회적 연대(連帶)’를 강조하는 당신의 영화는 낯설다. 그런 가치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 아닌가?

“연대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 안에 매몰된 채 가만히 있으면 모두 괜찮아지리라 여기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통해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 요즘은 일자리가 줄어들며 모두가 탐내는 대상이 됐다. 심약한 그녀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하는 과정은 무척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씩 변하며 주변 사람들도 변화한다.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연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결말은 이민자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유럽은 사실 저임금 이민 근로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영화 속 인물들은 남성,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같은 특정 계층을 대변하지 않는다. 많은 인물이 본업 외에 부업을 한다. 공장에서 퇴근한 뒤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도로 공사판에서 일하거나, 야채를 나른다. 즉, 모두가 사회·경제적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런 불안 속에선 누구나 내 이익을 앞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의견을 바꾸는 이들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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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를 위해 당신의 보너스를 포기해달라’는 산드라의 호소가 결국 감독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가?

“관객도 ‘내 입장이 되어봐 달라’는 산드라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묻길 바란다. 산드라의 입장이 돼보고 산드라가 만나는 동료들도 돼보고, 자신은 연대할 것인지 생각해보길. 그리고 끝날 무렵에는 영화 속 산드라의 동료들처럼 생각을 바꾸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