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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Ida)] 신과 역사, 인간과 욕망에 관해 묻는 이미지의 향연

이 영화는 신과 역사, 인간과 욕망에 관해 묻는 우아한 이미지들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덜어내도 꽉 차 있고, 절제해도 넘쳐 흐른다. 

★★★★

폴란드에서 온 이 흑백 영화는 두 개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고아원에서 자라 정식 수녀 서원을 앞둔 안나(아카타 트루제부초우스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피붙이 이모(아가타 쿠레샤)를 만나고 오라는 수녀원장의 명령에 처음 수녀원 밖으로 나선다. 이모는 ‘피의 완다’로 불리며 혁명의 적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의 판사. 안나는 자신이 본래 유대인이고 본명은 ‘이다’이며, 부모는 유대인 말살정책이 서슬퍼렇던 독일 점령기에 이웃에게 살해됐음을 알게 된다. “시신이 묻힌 곳이라도 수소문해 찾고 싶다”는 안나에게 이모가 묻는다. “그러다 신이 없다는 걸 발견하면 어떻게 할래?” 신과 역사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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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질문은 안나 본인의 몫이다. 이모와 함께 부모의 흔적을 쫓던 중 우연히 만난 유랑악사, 집시의 피가 섞인 그와 하룻밤을 보낸 뒤 “그단스크에 공연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남자에게 안나는 묻는다. “그 다음엔?” “해변도 산책하고.” “그 다음엔?” “강아지를 한 마리 살까?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자.” 안나의 입가에 알듯 모를듯 가벼운 미소가 실린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음을 묻는 건, 욕망과 인간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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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개봉하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이 아름다운 흑백영화는 유럽과 미국의 각종 영화제에서 56개 영화상을 탔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촬영상 후보로 올라 있다. 영화는 독일(프로이센)과 소련(러시아)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고통받은 폴란드의 피로 물든 역사, 1960년대의 한 때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 자체로 이뤄낸 미학적 성취만으로 그 역사와 무관한 관객의 마음까지 홀랑 사로잡는다.

잉마르 베리만을 연상시키는 꽉찬 구도의 흑백 화면, 베르메르같은 플랑드르 화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빛’을 다루는 놀라운 솜씨…. 곧게 뻗은 길, 평평한 들판, 수직으로 선 나무같은 폴란드의 자연 속에서 사람은 늘 비스듬하고 위태롭다. 카메라는 인물의 표정을 잡을 때도 앙감과 부감을 부여해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심리를 드러낸다. 신과 욕망, 역사와 인간에 관한 무게있는 질문과 대답이 체스말처럼 정교하게 오가지만 윽박지르는 법 없이 정갈하다.

‘안나’ 혹은 ‘이다’의 눈동자는 잉크를 빨아들인 백지처럼 영화 막바지로 갈수록 더 크고 검어진다.

벽에 고정된 그림처럼 완고하던 화면의 구도는 ‘이다’의 마지막 발걸음에 이르러서야 그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흔들림에 동참할 때, 관객은 비로소 어린 견습수녀 이다의 내면에 울리는 깨달음에 연결된다. 낯설고 황홀한 경험이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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