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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잡 주지사 암살]자유의 태양, 이슬라마바드의 지평선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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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파키스탄에서 핍박받는 여성·소수민족 보호에 꿋꿋하게 앞장섰던 살만 타시르(66) 펀자브 주지사가 4일 경찰특수부대 소속 경호원의 흉탄에 암살당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펀자브 주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막아온 유력 정치인이다.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최고 핵심이고,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기도 하다. PPP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폭탄테러로 잃은지 3년여 만에 최악의 정치적 손실을 입었다.

이날 타시르 주지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번화가 코샤르 시장에서 식사를 마친 뒤 관용차에 타려다 경호원 말릭 뭄타즈 후세안 카드리(26)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카드리는 암살 직후 체포됐으며, 현지 두냐TV에 “나는 예언자(무함마드)의 종이며,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은 죽음 뿐”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주지사의 몸에는 총탄이 24발 박혀 있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현장의 경호원들은 아무도 카드리를 말리지 않았다”며 다른 경호원들과 공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레만 말릭 내무장관은 “배후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타시르 주지사는 악명높은 ‘신성모독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급진 이슬람 성직자에 의해 살해 명령과 6000달러의 포상금이 내걸리는 등 수많은 위협과 압박을 받아왔다. 1980년대 이슬람주의 군부 독재 시절 만들어진 신성모독법은 이슬람, 쿠란, 예언자 모함마드에 대한 어떤 모욕도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악법. 타시르 주지사는 지난해 11월 한 기독교도 여성이 이슬람에 대한 모욕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이 여성의 사면과 신성모독법 폐지 운동을 공개적으로 주도한 사실상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트위터를 통해 “인간은 또 국가는 강자(强者)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약자(弱者)에 대한 보호 여부로 판단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정부는 사흘간 공식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사흘내 야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각 불신임도 불사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던 최대 야당 ‘파키스탄 무슬림리그-N(PML-N)’은 애도를 마치는 40일 뒤로 최후통첩 기간을 연장했다.

현지에선 “정부에서 가장 용감했던 사람”(대통령 애도 성명),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을 내건 용맹한 사자”(PPP 의원), “파키스탄의 이성(理性)이 죽음을 맞았다”(현지 익스프레스 트리뷴), “자유의 태양이 이슬라마바드의 지평선으로 졌다. 오늘은 암흑시대가 시작된 날”(현지 데일리 타임스) 등 애도와 비탄의 성명과 보도가 쏟아졌다. 이슬라마바드의 암살 현장과 병원, 라호르의 타시르 주지사 자택 앞에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 등이 암살을 규탄했다. 반면 페이스북에는 극도로 분열된 현지 여론을 반영하듯 암살자 카드리를 ‘영웅’으로 미화하는 홈페이지도 생겨났다.

미국 abc방송은 “이번 암살의 가장 큰 희생 제물은 타시르 같은 정치가가 있어 가능했던 파키스탄의 정치, 종교적 온건화 가능성”이라고 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붕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