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

도라지꽃

雲庭최연숙

물빛고요를살그래풀어놓은

구붓한아홉사리고갯길에

다릅나무에걸린안개도

제몸을풀어

세상으로난길을꼭꼭감추었다

이른아침

누릿재다랑밭에소리들이고여든다

초록이슬에얼굴을씻던나비한마리

무명저고리여미고보라꽃위에앉아

명주속치마가만가만펼친다

아슬아슬공중에다실집짓는

거미의땀방울을받아먹은

수억의흰보라꽃물결

햇무리따라허공을흔든다

(시집’기억의울타리엔경계가없다’에서.)

시인 윤동주의 死因은

죽는날까지하늘을우러러

한점부끄럼이없기를

잎새에이는바람에도

나는괴로와했다

별을노래하는마음으로

모든죽어가는것들을사랑해야지

그리고나한테주어진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별이바람에스치운다.

윤동주시인의서시序詩일부분이다.식민지삶속에서자신의의지대로할수없는것들에대한반성과단호한결의와고뇌하는젊은시인의맑은영혼이읽혀진다.SBS의"그것이알고싶다"를통해해방을6개월앞둔1945년2월16일27살의젊은나이로후쿠오카형무소에서옥사한윤동주시인이일제의생체실험에희생되었다는의혹을뒷받침하는기밀문서가확인되었다.장래가촉망한윤동주시인은의대에진학하라는집안의청을뿌리치고민족의식의뿌리가강한연희전문학교문과졸업후일본도시샤대학영문학과에진학하게된다.

도시샤대학재학시절하숙집뒷골목에서형사의검문을받은후하숙집에서체포당한다.죄명은조선독립운동,즉일본국가전복을꾀한치안유지법위반이었다.치안유지법은마음을재판하는것으로조선독립을기도하는음모를품고그룹을만들어서친구들에게독립사상을불어넣었다는것이다.언제누구와만났던사실까지낱낱이기록된것은체포되기전시인이계속감시를당하고있었다는증거였다.윤동주시인의육촌형제인윤형주씨이야기와여동생윤혜원씨의’별헤는밤’낭송등생생한증언도들을수있었다.

윤동주시인이후쿠오카형무소에수감된당시는태평양전쟁중이었다.일제는전쟁터에수혈용혈액이부족한상황이라미군포로들에게생체실험인혈액을뽑아낸뒤바닷물을대신주입하는방법을이용했다.이사건으로큐슈의대의사들이유죄를받았다고전해지지만어디의사들만의잘못이었겠는가.형무소에함께수감되었던사람의증언에의하면조선인죄수들이줄을서서주사를맞으러가더라는것이다.무슨주사인지도모를주사를죽기전까지강제로맞았다는것이다.주로반일사상의개전의정이없는사상범이대상이었는데수많은한국청년들이사상범으로몰려이름모를주사를맞고억울하게죽어간것이다.후쿠오카형무소에서당시윤동주의사망기록을알아보려했으나거부했고오래된자료라찾을수가없다는냉담한반응이었다.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햇빛인데

지금은교회당꼭대기

십자가에걸리었습니다.

첨탑이저렇게도높은데

어떻게올라갈수있을까요.

종소리도들려오지않는데

휘파람이나불며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사나이,

행복한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허락된다면

모가지드리우고

꽃처럼피어나는피를

어두워가는하늘밑에

조용히흘리겠습니다.

시가쉽게쓰이는것조차부끄러운일이라는암울했던시대의참회록을통해자신을자책하는반성이담긴저항시를읽는다.조선의글로글을쓰지못하는고국을잃은시인의슬픔,비애를같은마음으로느끼고싶지만그상황이아니면똑같은심정을알수없기에안타까움만가중된다.윤동주시인의집안에서는종손이죽었다는소식을주일예배를드리다가듣게된다.집안의어른들이계시니마음껏울지도못했던어머니의슬픔은어떠했을까.

대화를나누기어려운시대에윤동주만은일본인들과조선인들사이를화목하게해주고그시대를극복해가려는힘이생기게했다는곱고아름다운영혼을가진시인윤동주는외마디소리를남긴채적국의감옥에서쓸쓸히죽어갔다.니오시카겐지교수는윤동주시인은아무도없는감옥에서한번죽었고64년이지난지금까지사인이밝혀지지않아두번죽음을맞는것이라고거침없이말했다.외로이죽어간시인윤동주,아니러니하게도일본인들에의해죽임을당하고일본인들의가슴에서가슴으로승화되어다시살아나고있었다.감수성이예민한시인의여린마음이당했을그고통의깊이가전해져가슴이아프다.

일본에서윤동주를알고싶다는사람들이늘어가고있었다.인상깊었던것은우리보다도더윤동주시인에게관심을갖고그의관한모든서적을구입해서읽으며정기적인시낭송모임을통해그의시를애송해왔음을목격하게된것이다.언젠가는윤동주의시를번역하는게꿈이라는가와이미츠코,윤동주의시에반해한글을공부하기시작했는데한국어를배운후부터는일본어로시를읽지않고한국어로시를읽는다며윤동주의시가눈물이날만큼아름다워너무나가깝고사랑하는사람으로여겨진다는것이다.그녀는500부한정본인귀한자필시고전집까지간직하고있었다.윤동주시모임대표인야아기하라야스코씨는일본에남겨진윤동주의흔적을찾고있다고말한다.윤동주의생애를연극에올린연출자도있었고윤동주시인이마지막찾았던공원에기념비를세우려고건립위원회를구성하고승낙서명을받고기념비제작비용을모금하여디자인까지마친상태였다.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어디다잃었는지몰라
두손이주머니를더듬어
길에나아갑니다.

돌과돌과돌이끝없이연달아
길은돌담을끼고갑니다.

담은쇠문을굳게닫아
길위에긴그림자를드리우고

길은아침에서저녁으로
저녁에서아침으로통했습니다.

돌담을더듬어눈물짓다
쳐다보면하늘은부끄럽게푸릅니다.

풀한포기없는이길을걷는것은
담저쪽에내가남아있는까닭이고,

내가사는것은,다만,
잃은것을찾는까닭입니다.

약간의어눌한발음이었지만또박또박감정을살려시낭송을마친가와이미츠코씨가섬집아기를흥얼거린다.

엄마가섬그늘에굴따러가면

아기가혼자남아집을보다가

바다가불러주는자장노래에

팔베고스르르르잠이듭니다.

아기는잠을고이자고있지만

갈매기울음소리맘이설레어

다못찬굴바구니머리에이고

엄마는모랫길을달려옵니다.

그녀가읊조리는섬집아기가마음을붙들고놓아주질않는다.시인의억울한죽음으로먹먹해진가슴을섬집아기의애잔한운율로다시한번정화시키고있다.슬픔은슬픔끼리맑은영혼은맑은영혼끼리코드가맞는다.유난히영혼이맑아보이는여인과윤동주의시는절묘하고도조화로운만남이었다.시인은갔어도섬세하고순결한영혼의결정체인시어는우리곁에영원히남아아름다운노래로피어나고있다.

일본인정치가들은아직도일제강점기를대단히온건하고정당한것이라고망발을하고있지만양식있는일본인들은조선인들의아깝고귀한죽음에잘못을뉘우치고있다.1991년일본고등학교현대문학교과서에윤동주의시와죽음이소개되기시작했다.교과서에는"요절이라고하지만윤동주는사고나병으로죽은것이아니다.후쿠오카형무소에서정체모를주사를반복해서맞았다는것이다.언젠가는일본인의손에의해그전모가명백히밝혀져야할것이다."고실려있다.윤동주시인에관한증거가확실하지않다고교과서에싣지못한다는당국의반대에도편집자의끈질긴노력으로싣게되어일본인학생20만명이교과서를통해윤동주시인을알게되었다.과거에일본인이조선인들에게어떤일을저질렀으며말까지빼앗아버린것을일본의젊은이들은마음속깊이사죄하고있었다.오랫동안일본인들에의해윤동주의시인의죽음의대한사인을밝히려고하고있는이때에우리는그동안너무잠잠했던것은아니었는가.

진정한자아성찰은언제나부끄러움을동반한다.’부끄러움의미학’이라불리는그의시에는실천할수없는양심으로괴로웠던일제강점기에지식인의고뇌와저항정신이갈피마다에담겨있다.연세대에서시창작강의를들으며일제에항거했던저항시인윤동주의시비앞에서그의시를낭송했던적이있다.그때는그의고귀한희생을마음깊이느껴보지못했다.방송의위력이크다는것을실감하며서가에서’하늘과바람과별과詩’를다시꺼내든다.시인을사랑하는마음을고이담아고찰하고싶음이다.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윌리암 예이츠

이니스프리의호도(湖島)

윌리암예이츠

나일어나이제가리,이니스프리로가리.
거기나뭇가지엮어진흙바른작은오두막짓고
아홉이랑콩밭과꿀벌통하나
벌들이윙윙대는숲속에나혼자살으리.

거기서얼마쯤평화를맛보리
평화는천천히내리는것
아침의베일로부터귀뚜라미우는곳에이르기까지
한밤엔온통반짝이는빛
한낮엔보랏빛환한기색
저녁엔홍방울새날개소리가득한곳

나일어나이제가리.밤이나낮이나
호숫가에철썩이는낮은물결소리들리나니
한길위에서있을때나회색포도(鋪道)위에서있을때면
내마음깊숙이그물결소리들리네.

Iwillariseandgonow,andgotoInnisfree,
Andasmallcabinbuildthere,ofclayandwattlesmade;
NinebeansrowswillIhavethere,ahiveforthehoney-bee,
Andlivealoneinthebee-loudglade.

AndIshallhavesomepeacethere,forpeacecomesdroppingslow,
Droppingfromtheveilsofthemorningtowherethecricketsings;
Theremidnight’sallaglimmer,andnoonapurpleglow,
Andeveningfullofthelinner’swings.

Iwillariseandgonow,foralwaysnightandday
Ihearlakewaterlappingwithlowsoundsbytheshore;
WhileIstandontheroadway,oronthepavementsgrey,
Ihearitinthedeepheart’score.


BillDouglas(Music)
-JaneGrimes(Vocalist)

가을숲에서 배우다

산에다니면서부터온몸에생기가돌며건강이좋아졌다.오늘도언니와청계산에올랐다.늘6단지에서시작하던것을오늘은대공원어린이수영장입구쪽으로올라가는길을택했다.어떤사람이알려준그길은다름아닌지우과연두빛봄숲의숨막히던황홀감에푹빠져들었던길이었다.한적한길을걸으며그때우리가나누었던이야기와시낭송이떠올랐다.그때의추억을담은동영상이실수로지워진것이아직도서운했던지라한참을우리가지났던길을바라보았다.

추억은아름다운것,우리의얼굴까지연두색깔로물들여버리던햇잎들의축제였던그숲엔가을이와있었다.숲은가을이라고말하지않는다.다만,제각기색깔로말할뿐이다.어느땐말보다는침묵으로보여주는색깔이더욱아름답기도하다.만약나무들이입을열어큰소리로말을한다면숲의고요는사라지고말것이다.숲처럼가끔은침묵으로말보다더많은의미를전달하고싶다.숲에들면층층나무잎사이를지나는바람소리,다람쥐지나는소리,산새들노래소리에귀멀어멀고도깊은사색의강을유영하게된다.표현의자유는사람에게만있는것이아니다.숲속나무들도자신을자유롭게표현할줄안다.사람보다더고운빛으로절대방종하지않는겸손한자세로자유를채색한다.

가을숲엔단단히여문열매도풍성하다.열매를떨구는나무들을보면부끄러워진다.알밤을주우며상수리,도토리를주우며나는이가을무슨열매를맺었던가나무들을볼면목이없어진다.한해동안열심히물올리기를하며바람과햇빛을온몸으로받으며나무는그렇게열매를익혀온것이다.똑같은햇빛과바람을맞으며그보다더많은영양분을섭취하였을내가맺은열매는너무적어보이지않는다.수런수런가을잎들이바람의깃을만지작거리며가을로망스를연주한다.아주고요히나즈막히울려퍼지는산소같은노래를폐부가득들여마신다.산은언제나그넓은품으로우리를품에안고다독여주고나무들은정다운친구처럼내밀한말을걸어온다.

산처럼듬직하여모두를포용하고숲처럼상쾌하여민트향처럼향기롭고잎처럼아름다운빛을내는사람이되고싶다.가을숲에서면마음의키가자꾸만나무를닮아간다.나무처럼시류에초월하여한갖진오솔길을거니는나그네의마음잡이가되고싶다.해해년년알토란같은열매를모두에게선물하고싶다.무엇보다하늘에게배운나무의사랑을배워사랑하며살고싶다.내게주어진소중한날들을향기나는사랑의빛깔로물들이고싶다.삶의마지막날나무의사랑을배워행복하였노라는고백을또박또박손글씨로남기고싶다.

바다의 기별

바다의기별

저자

김훈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펴냄|2008.11.17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김훈신작에세이『바다의기별』.’칼의노래’,’현의노래’등우리말의아름다움을글로표현해낸….

"글을쓸때는마음속에서국악의장단이일어난다."고말하는저자는한걸음더나아가글은몸속의리듬을언어로표현해내는악보라고한다.앞부분은짧은단상들을모았고뒷부분은이미발표한책들의서문과문학상수상소감으로구성되어있다.그의글은익히알고있듯이천의얼굴을가진언어들이무한의사유를이끌어내어눈길을떼지못하게한다.간혹엉성한자신의글의허를말하지만그건엄살일뿐,세련된기교와언어의조탁미에놀랄새도없이휘몰이와자진모리사이에서주춤거리게된다.

용수철처럼튕겨져오르는언어는홀로튀는듯하지만어느새다음행의언어와알맞은높이를유지하며갈피에감추어진의미를전달한다.주저하지않고언어의연금술사라는수사를붙여가며그의지적통찰을더듬어내리고있다.무늬진언어의갈피갈피숨겨진맛갈스런기호를해독한다.정교한단청이오랜세월비바람에퇴색되어고색창연한멋을자아내는것같다가밤사이완성하여아침햇살에선명한다층의색상을뽐내는단청같기도하여종잡을수없는언어의유희에휘말려든다.

동인문학상수상작인’칼의노래’를쓴배경이20대초반에읽은’난중일기’였다.영문과에서예이츠와릴케의시만암송하다가그렇게정확한문장은처음만났단다.군인의성격이드러난군더더기없는명징한언어에서신선한충격을받아그후오랜시간이지나면서자신의삶에체험되고숙성되어소설을완성하게되었으니한줄글이,한권의책이사람에게미치는영향은과히놀랍다.하긴타고난글쟁이기에가능했을지도모른다.글을쓰기위해바람처럼떠날수있는그의자유가부럽다.

그는온갖사물을뒤집어그밑바닥에서파생된언어를길어올리면서도동음이의어에고민한다.조사하나의중요성을피력한다.세상의언어가존재하는목적은오직하나소통을위해서이며의견과사실을구별하지않고말을해버리면오히려인간과인간사이의단절을심화시킨다는대목은의미심장하다.감성에서실제로실제에서상상의세계로까지언어의전이를자연스럽게드러낸다.에세이란자기의주관을타인의공감대를이끌어내어객관화시키려는노력일수밖에없다.

아쉬운것은뒤사분지일페이지는이미세상에나온자신의책들을홍보하고있어격을떨어뜨린감이있다.에세이면에세이로마지막까지편집을했으면더완벽한책이되었을것이다.억지로페이지를채운감이있어앞의좋은글의품격이반감된다는이야기이다.의도적이든그렇지않든책을편집하는사람이꼭유념해야할사안이다.그만이지닌언어의사금가루사이를다시금유영하고싶다.날카로운언어의칼날에베일지라도베임에서배여나는선홍의미감을즐기고싶다.

바다의기별/김훈/생각의나무/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