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만나다 – 보이는 만큼 읽기

<명화를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100선>전은한국미술사의큰업적을남긴화가57명의수묵채색화,유화등회화작품100점을엄선하여한국회화의진수를살펴보게된다.이러한작품은도전적인실험작품부터최절정기의완숙함에이르기까지화가들의치열한창작의지와열정을담고있으며20세기초역사의격랑속에서관람객들과희노애락을나누어왔으며오늘날에도여전히우리에게감동을안겨주고있다.

이번전시는1920년대부터1970년대이르기까지한국근현대미술계를빛낸작가57명의수묵채색화30점,유화70점이출품되었다.지금은많은사람들이그시절미술가들의노고와열정을망각하고있지만근현대시기한국미술가들이성취한결과는매우크다.20세기초부터미술가들은망국의설움,일제식민지,서구근대체제의도입,태평양전쟁,제2차세계대전,한국전쟁등으로이어진전쟁,독립의과정,분단의상흔,정치사회적혼란과갈등과같은복잡다단한역사의현장을목격하고,극복하여나갔다.더욱이불안정한상황속에서미술에대한무지와미술가들의무시,경제적인어려움역시미술가들이맞닥뜨린또다른시련이었다.

그러한어려움에굴복하지않고미술활동을펼쳐나갔으며시대정신을구현하고,예술가로서자긍심을지니고노력하였다.그러므로작품들은작가들의꺼지지않은예술혼이결실을맺은결과이자한국근현대시기의여정을함께걸어온동반자이기도하다.더욱이작가,소장가,소장기관이작품을수집,보관한노력의덕택으로그러한인고의세월을살아남은작품들은오늘날우리에게20세기의정신과삶을오롯이일깨워주고있다.

박돈’성지'(1957)

성지의표기가한자가아니라성터인지,종교적인곳인지는분명치않다.

다만,사계의순환을표현한달빛이비쳐진숲길에서피리를불고앉아있는소년의모습에서평화가느껴진다.

숲길을가다가그피리소리에귀를기울이고있는새와토끼의모습도평온해보인다.

신발을벗고있다는것은쉼을의미한다.

이인성’해당화'(1944)

해당화는바닷가마을에서잘자라는나무다.

바다에물일을나간아버지를기다리는세딸일까?

물병을든소녀의손이입을가리키는데언어를암시하는듯하다.

해당화를터치하는듯한소녀는뭔가자신의기원을꽃에게이입하려는행동같기도하다.

맨앞소녀는무엇을갈망하는듯,원망하는듯한눈초리다.

바닷가모래밭에서먹이를찾는다소마른듯한누렁이에게선핍절함이느껴진다.

검은구름이덮힌하늘로바다물까지어둡다.

태풍전야의배한척이위태롭다.

작품이1944년에탄생했다.

시대적배경으로본다면일제강점기에우리말과문화말살정책에항거하는듯한의미를읽어내게된다.

해당화는왜저리붉은것이냐..

박상옥’閑日'(1954)

제목처럼향토적인냄새가물씬풍겨나는풍경에서한가한일상이느껴진다.

무료하면뒤뜰에서동네아이들과토끼를꺼내토끼몰이를하며놀았던유년시절이떠오른다.

토끼귀를잡았던감촉까지느껴진다.

점순이언니는언제나동생을업고와서쳐다보곤했다.

얼굴표정을디테일하게묘사하진않았지만선이굵고색감이독특하다.

정서적감흥을불러일으킨다.

박항섭’가을(1956)

반라의여인들이서구식기법으로표현했다.

여자도당당하게자기를드러낼수있어야한다는의미일까?

작가가남성이지만양성평등의세상을말해주는듯한암시를받는다.

결실의계절에수확하여머리에이고가는풍성함이보듯이

세여인의얼굴이흡족하다.

박영선’농부의가족'(1970)

향토적인농촌의풍경이맑게세탁된투명한모습이다.

가족이입은흰색옷과푸른빛으로채색한뒷배경이

전체분위기를결코농사일에찌들인모습으로보이지않게한다.

또한파이프를물고앉아있는농부의표정또한그렇다.

농번기에논밭에나가일해야할소도외양간에있다.

다만,밭일을마치고야채를이고온아내와아들이

가장에게보내는시선이곱지않은것을보면

농부는얼마간농사일을방치하고휴식의시간이긴듯하다.

김인승의’홍선'(1954)

이작품은이름에서느껴지는분위기와외모와붉은부채를든모습에서기생일거라생각하였다.

다만,얼굴에서는풍겨지는지적인분위기가결코시덟잖은기생은아니란것이다.

그것은뒤에놓인백자와반닫이,족자에서유추하게된다.

저고리선과치마폭의흐름이자연스럽고세밀한묘사다.

김흥수’길동무'(1957)

예술의참산함보다는질을추구하던시기인프랑스유학시절그린그림이다.

두여인의매무새나표정등이매우동양적이다.동무라는말이친근하게다가온다.

우리어릴적동요에서자주불리워졌던동무라는말이

언젠가부터북쪽에서다른의미로쓰여져친구라는말로대체된듯하다.

인생길에서동무가있다는것은결코외롭지않다는증거다.

두여인의표정만큼이나다른삶을살아왔을지라도

그길에진정한동무가있어허물없이대화하고

서로에게귀를내어줄수있는사람이있다는건행복한일이다.

두사람을네모칸속에묶어넣은것도그런의미가아닐까.

배운성’가족도'(1930-1935)

근대문화재로지정된작품이다.

이그림앞에갔을때큐레이터의설명이진행중이었다.

사람들이많아오히려자리를피하느라설명은듣지않았다.

자신의후원자가족을그린그림이라한다.

모두나를바라보고있는듯초상화같은사실기법이독특하다.

아이들이나어른의옷차림과개를통해유추하기론보통가정이아님이분명하다.

개가가족도속에서가족의일원으로당당하게자리한것은

오늘날을예견한선견지명은아닐까싶다.

참고로맨왼편남자가작가로서1950년월북했다고한다.

구본웅’친구의초상'(1935)

친구인시인이상을그린작품인데색상처리가매우어둡다.

건강까지사위어갈무렵이라선지병색이짙다.

시종난해한수법으로근대산업사회가불안과공포로나아가고있음을말하기도한

시대를앞서간천재시인이상의작품이당대에서는주목을받지못하다가

사후에야빛을발하게되었으니

현실과문학의갭사이에서방황했을지식인의고뇌에찬모습이고스란이드러나보인다.

그런이상의작품에빛을비춰준사람이상허이태준이었다.

짧은생을마감한이상의불행한삶의한순간을갠버스에옮겨불후의명화로불리워지고있으니

친구구본웅또한선견지명이있는대단한친구임에분명하다.

이그림은교과서에서도보았던기억이난다.

아직나목에싹이돋지않은것을볼때이른봄쯤되어보인다.

볕바라기하고앉아있는백구앞에파란나무그림자가인상적이다.

전체적인푸른색감은희망을말해주고있는듯하다.

"남향집"이라는주제와파랑색에서희망이보이지않는가.

백구에게밥을주러나오는사람의마음도읽혀진다.

먹어야사는것에지극히평범한삶이타의에의해그렇지가못한까닭에.

나라잃은암울한시기에눈물젖은한그릇밥의중요성을절절히느끼며살아갈시기였으니말이다.

자세한이야길거론하긴그렇지만

이작품의연대기등이논란이되고있다한다.

김인승’화실'(1937)

인텔리젠트의냄새가물씬풍긴다.

특히헤어스타일과의상에서도회적인세련된감각이돋보인다.

스케치중인남편의손끝을바라보는아내의깊이있는눈매가그윽하고도사랑스럽다.

그림한장에서읽혀지는삶의내용,그의미가자못크다.

예술이우리삶을풍성하게한다.

*작품은인터넷에서옮겨옴

김장

김장



날선칼이춤을춘다
희고푸르고검푸르미를썩뚝거리더니
붉고알싸한펄죽이되어
갯내음맡다풀죽어
씻긴가슴팍으로
갈피갈피스며든다

모모회사것이좋다고?
진열대위소리없는아우성들줄서기
누군가너를지명할때
너의심장의박동은시작될것이다

베란다에서여덟개의네모가샤워룰한다
누굴받아들일몸짓일까
말끔히몸단장끝내고화끈한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