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와도 좋소

먼남녘에서온편지.
눈감은채코에갇다대니절절하게배인고향냄새.
이즈음앞무논에개구리울음소리들려오고뒷동산엔배롱나무
꽃등을걸어온동네환하게빛잔치열어놓고아무나와도좋소할테지.
고향에서오란다.열일제쳐두고길을나섰다.
눈길닿는곳마다초록이다.
서울의매연거리에서있는거무죽죽한가로수를생각하면시골의싱그러운
푸른숲을지나는바람조차도초록바람으로둔갑시킬것같다.
이렇듯엇갈리는대조는사람이나나무나하찮은미물조차도도시보다는
자연속에서생동감을느끼게됨을알수있다.
공휴일이어서하행길곳곳이정체이다.
밤여덟시가지나고서야겨우고향에도착했다.
오랜시간수고로움끝에당도한고향이라서인지땅을밟는
발마저도감회가새롭다.

동이
동이
그리움이고
서성이며
잠못들던날
고향도
사람도
옛것이아니련만
어젯밤도
너와놀던바닷가
마음에선하다

(졸시’고향’중에서)

해마다사월이면백제인으로일본으로건너가아스카문화를꽃피운왕인박사
축제가3박4일동안열려전국에서삼사십만명의관광객이우리고향을찾는다.
벚꽃백리길과다채로운행사도볼거리가많지만음식맛을못잊어다시찾는
사람들이많다한다.
갈비와낙지의만남인갈낙탕,개펄에사는짱뚱이탕도별미지만하나하나
정성스레마련한밑반찬에만밥을먹어도잃었던입맛을다시찾게되는곳이
손맛좋은고향이다.
그렇기에고향에오는길은배가고파도참고와서식사를하게된다.

연한미색모시개량한복을입고고향으로달려온나는뵙고싶었던분들과
반가운인사를나누고뜨거운애향의정을주고받으며뜻깊은시간을보냈다.
행사가끝나고호텔앞원형의길을막돌아나오는데남편의친구에게
연락이왔다.친구는길가에차를세워두고기다리고있었다.
출근하다가,동진이엄마비슷한분이왜여기계실까궁금해가까이가보니
니네엄마시더라고.그래전화도없이내려왔냐며따라오라하더니앞서간다.

영명식당,산낙지전문점이다.
이곳의세발낙지는다른곳의낙지와는달리맛이월등히좋다.
목포가가까워일명원조라고해야할만큼다른지방의사람들이일부러산낙지를
먹으러이곳까지올정도로유명하다.
산낙지를잘게잘라참기름을뿌려내오는데,‘와아’넷이먹다셋이없어져도모를
맛이다.이어서산낙지초무침이나와,밥을비벼맛바람에게눈감추듯이
맛있게먹었다.
고향에온이유를얘기하고창간호책을한권드렸더니빙긋이웃으시며
“아니용산리댁은서방님덕에유유(悠悠)하게사는구만이라우”
라고말하기에나는한술더떠서대답했다.
“아,네에.지금은유유이지만곧유유자적(悠悠自適)할것입니다요.하……”

읍네군청에근무하는청렴하고강직한성품의친구와남편은어릴적엔무척
악동이었다한다.
참외서리,고구마서리를하다혼쭐이나기도했고벌집을건드리다벌에쏘여
기절했던일,염소등에올라염소뿔을흔들다뿔에받혀죽을뻔한일,
방죽에서놀다둘다빠져죽을뻔한일등이야기보따리를풀면한이없다.
서로쳐다보며‘그때너그랬었지야’하며배꼽을쥐고웃는모습을보면
절로내어릴적추억도영상처럼스친다.
친구는유일하게제고향마을이름을따와나를용산리댁이라고부른다.
신혼여행을다녀와시부모님께인사드리러갔는데남편과제가가는곳이면
어디든지따라다니며짓궂게농담을해와얼굴을붉히게도했던친구였다.

남편이고향을다녀올때면늘묻는그친구의안부,자주만나진않아도
정은정끼리통하는모양이다.일년에한두차례만날때면고향인정도
인정이려니와어찌나챙겨주던지눈물이날지경이다.
지금은건강하지만한동안몸이아파우리부부를안타깝게하기도했던
친구는오늘도어김없이감칠맛나는위트로우리부부를즐겁게해줬다.
식사가끝나고갈길이바쁘다는우리에게“낭구나하나보고가그라.”하며
또앞장을선다.
가게에들러일회용카메라까지챙겨나와일백구십년된팽나무군락지로
우리를데려갔다.
팽나무는얼기설기큰줄기로휘감겨세월의더깨를싸안고있었다.
나무도오랜세월살다보니외로움을알게된것일까.이리저리손을뻗쳐
서로를부둥켜안고있으니말이다.
고향에는팽나무가많았다.
팽나무는잘부러지지않아어릴적자주올라가놀던나무이다.먹띠알같은
열매가익어떨어지면주워서입에넣고깨물기도했다.그떨떠름한맛이
느껴지는듯하다.오랫동안우거진숲에가려져팽나무군락지가있는것을
몰랐다가최근에야발견돼관광지로조성되었다는말을곁들였다.
“거기서봐,그림좋다.”
우리부부를세워놓고카메라셔터를누르며한쪽눈을찡긋하는친구의모습이
푸르고높은하늘만큼이나맑고도밝다.

따스한정을마음에안고돌아오는길이이렇게훈훈할수가없다.
철철넘치게받아온인정보따리를나는하루밤도못넘기고고향순임이를
불러나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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