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영산호

‘내고향남쪽바다그파란물눈에보이네꿈엔들잊으리오그잔잔한고향바다…’

이은상작곡의가곡’가고파’는어린시절내고향을상징하는것같아애창하게됩니다.영산강물이마을앞까지들락거리던남녘이내고향입니다.봄이면갯벌에매어있는몇척의돛단배에쏟아지는봄볕이한가로이졸고,들과바다의경계인긴둑길가에잔잔한풀꽃이유난히눈길을끄는조용한어촌마을입니다.

라디오대신집집마다연결된스피커를통해’새마을노래’를들으며아침체조와동네청소를겸해4H활동을도왔고학교에서는혼,분식장려도있었습니다.정오가되면목포에서출발한똑딱선이우리동네가까운곳까지손님을싣고오갔습니다.똑딱선뱃머리에서들리던가요섬마을선생님,바다가육지라면,영상강처녀,목포의눈물등은너무많이들어어린나이에부르고다녔던기억이새롭습니다.

고향을떠나온지십년만에가보았더니너무달라져있었습니다.그넓은갯벌이농토로변해버려무척실망스러웠습니다.해남댁네도여기살았더라면논일곱마지기를받을수있었을것이라는말에서본래삶의터전인갯벌을잃고도논몇마지기에마냥좋아하시던순박함에서글프기만했습니다.몇년후에는논값도치러야한다는얘기를들었습니다.그후로는갈때마다고향잃은서러움을실감하고올뿐,어릴적고향모습은꿈에서나볼수있게되었습니다.

‘갯벌간척사업은자연을무시한인간위주의개발정책으로갯벌생태계도파괴되고철새들의휴식처도사라지게만드는어른들의경제논리만앞세운어리석은행동에불과하다는것이라는데왜무엇때문에계속되고있는지선진국에선지금갯벌의소중함을뒤늦게깨달아개발과간척사업으로훼손된갯벌을되살리는작업을하고있다한다.갯벌의경제성을봐도사방1미터에적게는120,많게는300개가량의조개류가살고있다한다.같은넓이의땅에농사를짓는다고볍씨를뿌리고풀을제거하고물을대며농약과거름을주고벼를수확하고우리밥상에오르는시간까지의경제성과갯벌을잘보전하여조개류를수확하는경제성을비교해볼때그대답은자명한것이다.’

-녹색희망에서-

고향에도갯벌에서조개를1시간만잡아도가용돈에보태고필요한용돈을충분히만들수있었습니다.언니는조개를팔아어머니께드리고내게도용돈을주어해질녘이면동구밖에나가언니를기다리곤했지요.바닷가긴둑길에는조개를잡아머리에이고귀가하는아줌마와처녀들을기다리는가족들의발길이길게이어졌습니다.남포등을들고풀잎스치며걷던둑길어디메쯤내유년의기다림도잠들어있을것입니다.조개와해산물을잡아자녀들을대학공부를시키며어업을생업으로삼았던집도여러집있었습니다.

무엇때문에우리의소중한자산인갯벌이사라져가야합니까?푸른산이훼손되어야만합니까?골프장이다골재채취다하며파헤쳐져알몸을드러내고있는산과간척사업으로매립되는바다를보며속상한마음금할길없습니다.개발도절제의미가있어야아름다운것이아닐까요?산이울창한산림이되기까지는백년가까운세월이필요하다는데,하루아침에사라져버린금수강산,일관성없는자연보호정책은누구의잘못입니까?

사람의몸에병이들면오염되지않는곳을찾아수양하고싶어합니다.맑고깨끗한공기속에서자연치유가되기도하기때문입니다.그런데개발이라는미명아래아름다운강산이사라지거나병들어간다면우리의미래는어떻게될까요?

자연그대로가좋아낙향한어떤작가가어느날집가까이서불도저소리요란해나가보니,집을둘러싸고있는산이어떤목적으로인지마구파헤쳐지고있어이곳도내가살곳이아니다라는생각을하게됐다는얘길들었습니다.
모두가바라는아름다운자연본연의모습을고이간직해후손에게물려주는것이우리세대가줄수있는가장값진유산이아닐까요?

밧개 해수욕장에 다녀와서

남편과1박2일휴가를떠났다.
특별히목적지를정해둔곳도없이남쪽으로차를달렸다.
"어디로가실래요?"
"글쎄…"
남편도딱히생각해둔곳이없는것같았다.
"그럼바다구경가요.예서가까운서해안면도쯤으로요."
일전에잠시서해바다를다녀왔지만바다를떠올리면눈망울이동그래지며생기가도는나,고향바다의향수때문이리라.안면도는친구가다녀온후침이마르게자랑을한탓에꼭한번가보고싶은곳이었다.

지도를살피며서녘으로서녘으로내달렸다.가장무덥다는삼복더위8월초순은휴가절정의시기인만큼곳곳에줄이은차량으로체증을빚어내고있었다.충남홍성을거쳐궁리라는동리에서조금지나자서해안A지구방조제라고쓰인바다,바다가보였다.
"야호~바다다!"
나도몰래환호성을지르자남편이놀란다.
"우리여기서좀쉬었다가요."
대답을듣는둥마는둥차를세우고시동을껐다.세차게불어오는해풍에크게심호흡을하고방조제둑에올라서니어촌아낙들이회를먹고가란다.소라회를한접시앞에놓고바다를맞았다.멀리매어놓은고깃배들이물결에출렁거리고노랑,빨강,파랑,하양수놓으며푸른바다위를가르는요트들갈매기끼룩끼룩나를반기고한쌍은파도타기에여념이없다.잠길듯잠길듯잘도재주를넘는다.

멀리수평선너머엔누가살고있을까
먼남녘의한줄기그리움이해풍에실려곁에머물고…

다시차에올라비포장도로를한참달리니삼거리초소에서군인아저씨가씩씩하게걸어오더니면허증을제시하란다.수상한사람은없는데…무전기로주민번호를대니저편에서내이름을부르고됐으니즐거운여행이되란다.죄지은것도없는데괜스레가슴이두근두근.찾아찾아안면도에도착했다.바로오면4시간거리를정체로인해7시간이나걸렸다.국내에서여섯번째큰섬이라해서배를타고가는줄알았는데연륙교(육지와섬을이은다리)로연결되어별로섬같은기분이들지않았다.일단섬의끝마을을다녀오면서쉴곳을찾기로했다.

길은시원스럽게섬중앙을관통하게되었고잘포장되어있었다.길가숲에육지에서는보기드문해송들이한폭의동양화를감상하는것같았고생강과수박이경작물의주류를이루고있는것도인상적이었다."소상"문학의꽃피우자.는현수막이아담한빨간벽돌의담을감싸며바람에휘날리고있었다.이렇듯아름다운곳에서문학을논한다면맑은영혼에서울려나오는가장순수한언어의소리를들을수있으리라.

섬의끝마을영목은조그만포구이었다.배에서물고기를건져올리는남정네의바쁜손길에서튀는고기만큼이나생동감이충만해보였다.되돌아오는길,야트막한민둥산위에잔솔다섯그루는유치원꼬마의그림을보는것같았고유난히인상적인해수욕장이름들백사장,방포,꽃지,바람아래,밧개등등..참으로경치만큼이나아름다운이름들이었다.인파가그리많지않다는곳을찾아간곳이밧개.논가운데싱그런잎사귀를스치며조금가니해수욕장전경이눈앞에펼쳐졌다.

시간은오후7시20분.어느바다에서나낙조의아름다움을완상할수있지만서해바다낙조는어디에비할수없는다른감동이있다는이야길들었는데이를어쩌나서녘하늘에먹구름이해를가리고있으니…기대만큼실망은되었지만그래도바다는무척이나나를유혹했다.머물곳을정하지도않고차를바닷가에세워샌들을꺼내신고백사장으로내달렸다.파도가몰고온바닷물을요리조리피하며파도와함께들락날락거렸다.부드럽고가는모래가너무좋아샌들을벗어들고해변가를한없이뛰어다녔다.

…이해수욕장은군에서개발한곳이아니고조용한곳을찾는사람의발길이이어지면서자연발생적으로형성된곳이고얼마되지않아시설이미비하며오늘은밀물썰물의간조가가장큰날이니백사장에차를두지말라…
는동네이장님의말씀이확성기를통해서들려오고있었다.

밤엔바다가보이는야외테이블에서식사를했다.싱싱한대합구이의맛은일품이었고하늘을올려다보니눈썹달이수줍은듯발그레떠오르고있었다.저녁바다와달빛몹시도아름다웠다.바다는쏴아쏴아나를부르고파도는더가까이오라며손짓하고.물이빠지자여기저기플래시불빛들모래밭에서무얼열심히찾는것일까?물가에서나오는길에보폭을세어보았더니350보나되었다.간조가가장큰날이라서인가보다.

밧개민박에서하룻밤을보내고아침바다가보고싶어일찍바닷가에나갔다.멀리가까이봉우리섬들이보이고밤사이나들이다녀온바닷물이다시외출을서두르고있었다.아기소라들이원을그리며숨바꼭질하고파도에밀려온게한마리파도보고함께가자는데파도는왜빨리오지않느냐하고.조개껍질두어개주워나오는발길..
발자국…

"바다야?내년에다시만나자꾸나~!"

새벽을 깨우는 소리

빗소리에눈을떴습니다.가뭄끝처마밑에놓여진양푼에떨어지는빗소리처럼반가움이앞섭니다.토독토독떨어지는소리에서도우주의질서와조화를느끼게됩니다.

이새벽에어인새소리일까요?일찍일어났는지밤새잠을이루지못했는지개울건너전나무숲에서자주들려주던귀에익은멧새소리.비오시는새벽미명에들려오는새소리가여러상념을불러옵니다.여럿이지저귀는가운데유난이구별되는저소리.같은소리도아침이나낮,저녁에듣는소리가다르고마음의상태에따라다르게들리듯새벽의고요를가르는새한마리가적적한마음에스며들어뒤척이게됩니다.


며칠침묵속에서내안의나와마주하던시간차마떨쳐내지못하고수묵으로물들이던아릿한편린들을어디론가전송하려는듯애슬피들려오는장단음이베이스로깔리는빗소리와묘한화음을이루고있습니다.

문득,새소리가여느때와는다른것을느낍니다.처량하면서도숨가쁘게울어예는소리가어쩌면어미새의구호요청인지도모른다는생각에머물자불현듯걱정이됩니다.혹어린새끼들이비를맞고있는지,아니면사나운날짐승이새끼들을채가기라도한것인지궁금증이더해만가누워있을수없습니다.겉옷을덧입고후래쉬를찾아대문을나섭니다.전나무가지를이리저리비춰보지만초록잎이울창한우듬지어디메쯤둥지가있는지보이지도않을뿐더러새소리도멈추고말았습니다.평소와는다른소리에나섰는데혼자만의걱정이었을까요.


아직아침을맞기에는시간이이른까닭에거실에앉아책을펴듭니다.청정한기운이흐르는새벽녘에무언지모를먹먹함이가슴을짓눌러옵니다.사노라면누구에게나흐린날,개인날있게마련이고고향이,부모님이그리워여러날마음앓이하는날도있을테지요.

어릴적새벽녘에소변이마려워눈을뜨면어머니는낚시가시는아버지를위해정성껏아침을지어도시락을준비하시고식사하시는동안윗목에서나즉나즉정겹게주고받으시던두분의대화가들려오는듯합니다.아버지는낚시대에그물망태기를돌돌말아어깨에매시고밀물때에맞춰집을나섰다썰물이되면돌아오시곤하셨습니다.잡아온바닷고기들을손질해서토담위에말려두었다불에굽거나호박위에얹어쪄서반찬으로먹었던어머니손맛이그립습니다.


빗소리가불러다주는고향생각,하늘나라로거처를옮기신부모님생각으로새벽이지납니다.유월의숲처럼짙푸른그리움으로강변에자주나앉아무연히강물을바라보는날이많아진요즘,마음을같이하는벗마주하며새벽달그림자드리워진속뜰을살갑게거닐고싶어짐은.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가끔거울을유심히본다.내마음의호수를바라보는일이다.얼굴은나의마음구석구석을있는그대로보여주기에가뭄에호수바닥이갈라지듯감성이고갈되지않았나점검할일이다.그리하여비상경보등이깜박인다싶으면눈물샘을자극하는영화를본다든가좋아하는음악을듣고,책을읽으며,조용히호숫가를거니는나만의방법으로감성의호수에물채우는작업을시작한다.

그때마다자주내손에들려있는책이있다.청마유치환시인이이영도여사에게보낸애틋한사랑의편지글인‘사랑했으므로행복하였네라’책제목처럼사랑한다는것은참으로행복한일이다.그촉촉한편지글을읽고있노라면내마음의호수를저어오는종이배하나쯤은띄울수있는얼마간의물이채워진다.사랑의대상은얼마든지자유로울수있다.상대는나를사랑하지않아도된다.행복은내가사랑을시작한시점부터시작이니까.

얼마만인가.이렇듯소녀적감상을되돌아볼수있었던때가.공연티켓을예매하고한달여를기다리던시간들이지루하지않았음은설레임이하루하루를즐겁게보낼수있는버팀목이되어주었기때문이다.

‘동그라미그리려다무심코그린얼굴내마음따라피어나던하얀그때꿈을……’

그대,내꿈속에피어나는그소년의얼굴을아는가.그소년의얼굴이그리운날이면나는노래한다네.수없이불러도들어도또듣고부르고싶은노래가있었다네.

눈을감고듣는다.보이지않던더많은것들이상상의나래를달고찾아온다.세월이아무리흘러도그노래를처음들었고불렀던소녀적감상은사라지지않는다.인생을,자연을,그리움을,고향을,부모님을,우린온몸으로듣고온몸으로울었다.언어에적합한음을찾아내윤기를칠함이이리도아름답게태어남이던가.애잔히적시다가휘돌아들다가가슴저깊은곳을후벼내는곡조있는시의기행.

누가말했던가.사랑하면알게되고알게되면보인다고.나지금사춘기소녀의사랑의열병을앓고있네.그대들의노래가,사랑의현을타고다시내게로오네.사랑은이렇게노래하는거라고온몸으로말해주었네.

해가바뀌어수첩이바뀌어도절대잊지않고기록되는얼굴,아름다운것들,아름다운것들을노래한양희은님만기억했을뿐그아름다운노랫말을누가작사했는지관심을기울이지않았다.방의경님,듣는이를이처럼편안하게해주며편안하게노래하는사람을내일찍이보지못했다.

나는또한마리의하양나비를보았다.일전에밭에서내게날아왔던하양나비.외로웠던것이다.생명이있는모든것들은외로움을안다.한마리외로운하양나비를들었다.그녀는노래속에서방랑하는자유인이었다.하늘을향해속삭이는고운모습까지사랑하지않을수없었던사람.

이성원님의기타와국악을접목시킨음악에한마디로넋을잃었다.입고간모시한복을나풀거리며춤사위로제흥에겨워나볼것을.

김의철님의신들린듯환상의음을튕겨내는모습을어떻게표현해야할까.기타연주에반해지금의남편과결혼한사람이그곳에있었음을꿈에도모르셨겠지.신혼의달콤함이기타선율에실려나의오감,아니육감,칠감을깨우며처음의마음으로돌아가라고처음의마음으로돌아가라고.

문지환님과장경아님의영혼을울리는천상의소리소리소리들…

그대들은영원히지워지지않을나의핑크리스트에올랐으니명심하시라.사랑의잠에빠진나를깨우지말라.내열렬히그대들의노래를사랑할터인즉,그대들을사랑함이나를사랑함이요.그대들의노래를향한나의사랑이내게끊임없이행복을제조해내는행복제조기가될터이니.사랑은무죄이다.나로부터시작된사랑,나에게서완성될사랑은무죄이다.짝사랑은이래서좋은것이다.

호수의강물은늘넘치지않을만큼찰랑찰랑맑고고운소리를내어그소리를듣는이들의마음에서마음으로행복의전염병은돌고돌터이니.

나그대를사랑하였으므로행복하였네라.

(윤연선님의콘서트에다녀와서.)

흔들리는 무지개


흔들리는무지개

雲庭최연숙

그는
밤마다시지프스가된다
그의시야는명징하지않다
불빛이보이지않는안개바다다
싸락눈내리는안개바다위로
네개의발을담은신발이홀연히사라진다
어둠은서서히온산을지우며
덫에걸려사투를벌이는
고라니의혈전을외면한다
각혈하는눈
막차가지난지오래인다랑포간이역
어미를기다리며서있는새끼고라니의
눈망울속으로
수천수만의무지개가뜬다
가로등마다원을반쯤매달고섰다
주인을잃어버린밤의
반쪽난무지개는더욱빛을낸다
달팽이관을찢는소리의울림이
집앞까지따라와
초인종을누른다
마른잎위에뒹군다

(시집’기억의울타리엔경계가없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