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는로버트프로스트의것입니다.그는20세기미국시단에서가장두드러진시인으로서1875년3월26일에샌프란시스코에서태어났습니다.그의부모는부부교사였는데아버지는그가10세때사망했습니다.그의모친은프로스트와함께고향인매사추세츠주로돌아와그의친할아버지가살고있던로렌스에정착했습니다.17세때에더트머드대학에입학했으나몇달도안되어중퇴하고맙니다.20세때고등학교동기동창인화이트(ElinorWhite)와결혼했고이어하버드대학에입학했으나여기서도채2년을채우지못하고중퇴하고맙니다.
그후그는시골학교에서교편을잡기도하고구두를만들어도보았으며결국1900년에는뉴햄프셔주의데리라는곳에서농사를짓기시작하였습니다.11년후에그는농사를그만두고가족을이끌고영국으로건너갑니다.여기서그는시를쓰면서문인들사회에발을들여놓았습니다.그때『소년의의지』(ABoy’sWill,1913)와『보스턴의북쪽』(NorthofBoston,1914)을출판하여사람들의주목을끌었습니다.
유럽에서제1차세계대전이터지자그는가족을데리고다시뉴햄프셔주의프랑코니아에서농사를짓기시작하였는데,『보스턴의북쪽』의미국판이출판되면서그는갑자기크게명성을얻어시인으로서의자리를굳히게됩니다.1916년에는앰허스트대학의주재시인(PoetinResidence)이되었고이어예일,미시간,더트머드,하버드,웨슬리대학등에서시를강의하기시작하였습니다.그의구수한음성과전원적인그의시는인기를모았고계속하여그는시집을발간하였습니다.
그는여러차례풀리쳐상을탔습니다.67세때에『표지의나무』(AWitnessTree)를발간하였는데,그것은그가해가갈수록노쇠하는것이아니고좀더지혜롭고확고해져가고있음을보여주는것이었습니다.1957년즉그가83세때에그는옥스퍼드,케임브리지등을포함한여러대학에서명예문학박사학위를받았고1961년에는케네디(JohnF.Kennedy)대통령취임식에서자작시“모조리바친것”(TheGiftOutright)을낭송하였으며다음해에는의회훈장(CongressionalMedalofHonor)이라는최고훈장을받았고이어미국무성의친선사절로소련을방문하기도하였습니다.다음해즉1963년에그는영광속에서그의일생을마쳤습니다.
로버트프로스트는많은대중들로부터사랑을받는시인입니다.쉬워서대중의사랑을받는다는것도사실이지만,그보다그의시에감도는인생의달관(達觀),미국의그대륙의풍모(風貌)와도같은광막하고고담스러운관조가오히려큰매력이라할수있습니다.이시에서는노경에든시인의커다란관조가더욱감동적입니다.여기배경으로펼쳐진숲속길은반드시사람이발을대는길만을뜻하지않을것입니다.
인생의살아가는길,잘났으면잘난대로,못났으면못난대로꾸준히걸어가는인생의길,누구에게나펼쳐진그인생의길을뜻합니다.시인은나이가들어그인생의길을지그시눈을감고되돌아보는후련한체관(諦觀)이여기에있습니다.
인생은자기길을자신의엄격한가치관으로선택할수도있고,아니면누구의권에못이겨취하게되는경우도있을수있으며,자신도모르게그리로발을옮기게되는경우도있을것입니다.그러나어떤경우든우리인간은두길을한꺼번에택할수있는나그네는아닙니다.우리인간은다유한하고절대적인선택을할수없는실존이기때문에보다그것이나으리라고생각해서선택할수밖에없습니다.그러나그것이좋든궂든내가택한길이기때문에자기자신이책임을질수밖에없습니다.그러므로신중하게잘선택해야합니다.우리인간은누구나세번의중요한선택이주어집니다.하나는학교선택이고,다른한번은결혼상대에대한선택이고또한번은직업선택입니다.어느하나도소홀히할수없는선택입니다.
어느길을선택하든그길에서딴전을피우지말고열심히살아야합니다.그리고나서나이가들면길의선택에대해잘잘못을캐려들지말고이미흘러간것으로서멀리두고바라보는것이좋습니다.프로스트가그러하기때문에독자들을매혹시킵니다.그렇다고인생을아무렇게나살아도좋다는뜻은아닙니다.어느한길을선택했는데,그것이잘못되었다할지라도너무따지지말고,그렇다고애써자책도하지말고주어진그길에서최선을다하며열심히사는것이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