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2월 2011
내년 크리스마스엔 우리 뭐 할까?… ‘가난한 부자’ 김재식·안정숙씨 부부의 크리스마스
“택배요!”
우체국택배기사가조그만
‘안녕하세요.크리스마스를남들처럼밖에서보낼수없는님들께향초가좋은선물이되길바랍니다.향초로크리스마스분위기를느낄수있었으면합니다.더좋은것을보내지못해죄송합니다.2011.12.18.’
재식씨의
희귀병에걸린아내는향초에새겨진산타클로스할아버지를신기한듯쳐다보고만지작거리다코로냄새를맡는다.“아,향기참좋다.”아내는아이처럼웃으며좋아한다.“크리스마스선물도받고기분이좋아졌네.여보,축하해.”잠깐이라도통증을잊고웃는아내를보며재식씨도웃는다.
“이번크리스마스에뭐하지?”
“글쎄.지난해처럼아마병원에있겠지.”
“우리지난해에뭐했었지?”
“경아씨가찾아와서케이크도먹고파티했잖아.”
“응,맞아.그랬었지.”
아내는다시눈을감고,재식씨는아내의다리를주무른다.지난20일충북청주시가경동씨앤씨재활병원405호에는크리스마스가성큼다가와있었다.
밤이깊다.그리고너무길다
서울양재동에서직장을다니던재식씨와아내는시골생활을꿈꾸다16년전사과향기가득한청주의한산골마을에내려왔다.큰돈은없었지만단란하고행복했다.하지만2008년아내에게다발성경화증이찾아오면서
병원에찾아오고걱정하던친인척과친구들도3년이란시간속에서점점멀어져갔다.아내의병은염증으로신경이죽고몸이굳어가는희귀병이었다.다발성경화증도여러분류로나뉘는데아내의병은빠른속도로끊임없이재발하는가장나쁜케이스였다.3년간열번이나재발했다.암센터에서치료받다호전돼재활전문병원으로이송,다시한달만에고열이올라큰병원으로이송,항암주사투입,다시10일만에욕실에서눈동자가돌아가고정신을잃어응급실행.병명은끊임없이늘어갔다.다발성경화증,중추신경계통말이집탈락급성횡단성척수염,시신경척수염,요로감염,욕창성궤양,제3뇌신경마비….아내의온몸은마비됐고한쪽눈은시력을잃었다.
재식씨는2009년부터다니던가구
‘속상하면휙나가서마음풀고올수도있지만아내는거동조차할수없다.’미안한마음에병실에돌아오면아내는울고있었다.아내의눈물을닦아주다재식씨는오열하고말았다.어느날부터아내는남편에게짐이되지않으려일부러물이나밥을적게먹었다.
외가에맡겨진겨우중학교1학년짜리막내딸은재식씨에게전화를걸며울었다.사는게너무힘들다고.아내가잠들면그는매일밤병원인근숲으로나가울다노래부르다소리를질렀다.차라리그만살고싶다,아내를데려가줬으면좋겠다,온갖생각을하다가도죄책감에고개를떨궜다.
재식씨형편에어마어마한병원비를감당할수없어빚을내다결국집을팔았다.아내는신용불량자가됐다.병원비청구서에맥빠진아내앞에선“내가알아서해결할게”큰소리쳤다.그래놓고선빈통장을들고몰래
‘하나님!앞이보이지않는밤이너무깊어요.발길에차이는돌부리가너무많아요.
지난해온몸으로울며쓴글이다.생이너무가혹하다며원망하다가다시신에게매달리는나약한보통의인간,재식씨였다.
살아있다는것
“참신기해요.그렇게돈이없었는데도돈때문에병원에서쫓겨난적이없었으니까요.”
병실에서만난재식씨가이렇게말하자아내가웃으며고개를끄덕인다.손가락하나까딱할수없던아내는상태가호전돼남편의도움을받아재활치료용자전거를탈수있게됐다.물론이마저도5분운동하면한참을누워있어야하고언제악화될지알수없다.
재식씨는병때문에많은것을잃었지만얻은것도많다고했다.그는절망과희망사이를수없이오가며조금더단단한사람이된듯했다.돈이없어궁지에몰릴때면이름모를누군가그에게치료비를주었고,그렇게그렇게기적처럼고비를넘겼다.재식씨의블로그를본새로운친구들은편지나선물을보내며부부를위로했다.
통장잔고가8700원까지떨어진날,
“결혼하고20년이지나서야사랑을알았어요.일상적인부부,아들딸의부모로지지고볶고살다그냥떠났으면몰랐을거예요.이사람이얼마나좋은지.예전엔아내가어떨땐마음에들고,어떨땐마음에안들었어요.없어지면다시볼수없으니까,이사람이없으면어떻게될까생각할수록아내가더귀해요.처음엔죽고싶다고발악했지만그러다점점깨달은거지요.사랑스러워요,집사람이.”
이말을들은옆침대의30대여성환자는한숨을쉰다.“아휴,나도저런사람있었으면.텔레비전드라마에서나보던사람이잖아요.병원에서도잉꼬부부라고,자상하다고,저런사람없다고다들난리예요.아,부럽다.”
누워있던아내가느릿느릿웃으며농담한다.“내가예전에잘하고살아서그런거지.”이말끝나기무섭게남편이아내자랑을한다.“환자노릇을참잘해요.병원에서도짜증거의안내고.정말잘참아요.아내나나나힘든걸서로한테
이쯤하니슬그머니옆침대에서“아휴”하고한숨쉬는여성환자심정에공감이간다.옆침대의환자가이렇게말한다.“제심정이해가시죠?아휴.”
70억인구중에서만난이두사람은20년넘게가장자주,같이한솥밥을먹은사이다.남편은오늘도아내입에밥을떠먹인다.얼마나더오래아내입에밥을먹일수있을까.
재식씨는넉달전지인의도움으로아내를간병하며쓴에세이집‘다보고계시지요?’를냈다.책에는이런내용이나온다.“당신,다시태어나도나랑결혼할거야?”아내가물었다.“아니.”재식씨가대답했다.섭섭한아내가재차물어도여전히재식씨는고개를저었다.그리고이렇게말했다고한다.“난당신이랑남편,아내말고친구가되고싶어.아주편한,친한친구.없는형편에살림하랴,애들키우랴,시부모님봉양에너무고생만시켰잖아.당신이‘어이,재식씨나오늘일안하고쉴래’라고마음편히말할수있는친구하고싶어.”
재식씨는인터뷰를마치며이런말을했다.“생은불공평하지않아요.어떤사람은겉은부자지만속이부자가아니잖아요.우리는가난하지만마음은부자에요.일방적인부자도가난한자도없으니까공평한거잖아요.”
재식씨와아내를만나고돌아오는서울행고속버스에서새삼두손모아기도를했다.숨쉬고살아있다는것이얼마나감사한일인지,사랑하는이들이곁에있다는게얼마나행복한것인지.오늘희망하고내일절망하더라도모레다시희망할것이다.그게‘가난한부자’재식씨의삶이다.
청주=글박유리기자,
(국민일보쿠키뉴스에서펌)